# 86
제 86장. 조조曹操의 고심苦心
원매의 지시로 서량에서 마초와 마대가 기병 8천을 이끌고 출발했으며, 남양을 장수, 곽준과 보병 2만, 기병 5천으로 방어를 하게한 후, 보병 7만 5천, 기병 5천을 불러들였다. 또한 관중과 한중을 긴밀하게 연결하여, 필요하면 언제든지 지원하도록 조치를 해놓았다.
대군이 업성으로 출발하고 있을 때, 원담의 명을 받은 곽도는 허창성에 도착했다. 곽도는 곽가를 먼저 찾았다.
“아니 여긴 어쩐 일이시오?”
뜨뜻미지근한 곽가의 대답에 곽도가 서운하다는 듯이 받아 쳤다.
“이 사람아. 내가 남인가? 자네가 지난번에 업성에 왔을 때도 내가 편의를 봐줬지 않은가?”
“그거야 당연히 알지요. 내 말은 업성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나 이거지요.”
곽도는 주위를 살피더니 귓속말로 곽가에게 자신의 목적을 설명했다. 곽가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반짝였다. 이것은 기회였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주군을 만나고 오리다.”
곽가는 성큼성큼 조조의 치소로 향했다. 조조는 신병을 뽑고 훈련을 시키는 일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는 곽가를 보자 웃음을 짓고는 자리를 권했다.
“아- 정말이지 힘들구만. 갑자기 십만을 만들어 내려니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냐. 그런데, 무슨 일로 왔는가? 눈빛을 보니 뭔가 큰 건수를 잡은 것 같은데?”
“역시 주군의 눈을 속이기는 힘들군요. 지금 원소진영에 내분이 생겼습니다. 원소가 원상을 중산군 태수로 보내면서 사실상 원매를 후계자로 확정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원담이 분노를 터트리며 원소와의 일전도 불사한다고 한답니다.”
“그래? 가만. 원담이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원소에게 맞설 수 있을까? 제대로 알아본 거야?”
“네. 주군 말씀대로 원소도 장자인 원담을 치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매가 남양에 있던 병사들을 이끌고 원담을 공격할 것 같습니다. 하여 주군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조조는 실눈으로 곰곰이 생각하더니 곽가에게 앞일을 어찌 예상하는지를 물었다.
“원매는 남양에 2~3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기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하면 원매와 원담의 일전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만약, 주군이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원담이 원매를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럼 말이야. 원담을 도와주는 대신에 그 틈을 이용하여 남양과 여남을 내가 차지하는 것은 어떨까?”
“좋은 방법은 아닐 듯합니다. 여남은 몰라도 남양은 대비가 되어 있을 것이고, 설령 빼앗아도 과연 지킬 방도가 있겠습니까? 원담이 무너지고 내년이면 원소가 쳐들어 올 텐데요. 주군이 원담을 도와주어 원매를 물리친다면 저들의 분열은 더욱 커집니다. 원소는 감히 군대를 이끌고 내려오지 못하겠지요. 그때 가서 여남군과 남양군을 접수해도 늦지 않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뭔가 찜찜해. 자네가 놓치는 게 있는 거 같단 말이야.”
곽가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조조는 또 순욱의 의견을 구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곽가가 머뭇거렸지만, 조조의 호출에 순욱이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와 앉았다. 조조가 조곤조곤하게 이야기를 풀어가자, 순욱이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습니다. 원담의 청을 들어줄 수도 없고, 안 들어줄 수도 없으니까요.”
“자세히 설명해봐. 어째서 그런 거야?”
“원소나 원매휘하에는 전풍이나 순유 같은 뛰어난 책사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이정도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겠습니까? 원매가 원담을 공격할 때, 주군이 원담을 돕는 것을 막기 위해서 원소가 군대를 이끌고 내려와 시위를 할 것입니다. 이 시위가 골치 아픈 것입니다. 분명히 싸울 의사가 없는 시위지만, 주군께서 제대로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침략군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원담을 돕지 않는다면 원담은 원매에게 무너질 것입니다.”
“장패를 이용해서 돕는다면 되지 않습니까? 주군께서는 원소의 군대에 맞서고, 장패가 별동대를 이끌고 돕는다면 원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곽가가 나름대로의 대안을 즉각 제시했다. 순욱이 짧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다시 진언을 이어갔다.
“물론 그게 가능합니다. 원담이 살아남아야 주군께도 유리하고요. 그런데 군대를 모조리 이끌고 나가서 원소군과 대치를 한다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 대거 뽑아놓은 신병들의 훈련이 정지되고,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서 결국 주군이 계획했던 10만 양병이 무산되게 됩니다. 또한, 장패가 별동대를 이끌고 돕는다 하더라도 과연 원매를 이길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솔직히 저는 부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침없는 순욱의 대답에 곽가는 얼굴이 붉어졌다. 공을 세운다는 생각에 10만의 신병양성에 대한 부분을 놓친 것이다. 조조는 역시 순욱을 부르기를 잘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어?”
“곽도를 돌려보내시고, 업성으로 사신을 보내십시오. 우리는 원가의 내분에 일체 관여를 하지 않겠다고요. 오로지 평화를 원한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10만의 대군을 양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이십시오. 그래야 내년에 원소가 밀고 내려왔을 때, 제대로 전투를 치를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보지. 봉효(곽가)는 곽도를 잠시 머물게 하게. 곧 결정을 내릴 거야. 의견 잘 들었으니 둘 다 물러가게.”
순욱과 곽가가 물러가자, 조조는 아쉬움에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원소가 흔들리고 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곽가의 의견대로 무조건 원담을 돕고 싶었다. 하지만, 냉철하게 생각하면 순욱의 의견이 옳았다. 기존의 십만 정예병에 이번에 양성하는 십만을 합친다면 원소와도 일전을 벌 일만 했다.
결국 곽도는 조조로부터 어떤 답변도 얻지 못하고, 평원성으로 돌아갔고 곽가가 사신이 되어 업성을 방문했다. 곽가와 친분이 있던 곽도, 신평등은 모두 평원성에 있었기에 할 수없이 그나마 안면이 있는 순심을 찾았다.
순심은 곽가를 맞이하고는 내용을 들었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곧바로 원매를 찾았다. 원매는 설명을 듣자 곽가를 만나러 치소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곽봉효! 참으로 오랜만이로군.”
곽가는 원매를 보자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업성에 왔으니 원매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예전에 원매가 이유를 품은 것을 업성에 퍼트려서 그를 궁지로 몰았기에, 곽가가 더욱 속이 켕겼는지도 몰랐다.
“우장군께서 오셨군요.”
원매가 우장군을 박탈당하고 잡호장군을 제수 받았지만, 감히 그의 앞에서 잡호장군이라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자네가 지난번에 내게 준 선물을 잘 받았어. 덕분에 이가 갈릴 만큼 고생을 했지. 그때는 자네를 만나게 된다면 산채로 포를 뜨겠다고 다짐하며 분을 삭였지.”
곽가는 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용서하십시오. 주군의 명령에 따라 저는 계책을 내었을 뿐입니다. 저는 책사라는 제 역할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우장군께 어떤 개인적인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훗- 머리 좋은 것은 여전하군. 조거기(거기장군 조조)의 사신으로 왔으니 어찌할 수는 없고. 원가의 싸움에 발을 빼겠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저희는 평화를 바랄 뿐입니다.”
“뭔 꿍꿍이를 가지고 이렇게 나오는 것이야? 네놈들이 형님(원담)을 지원하면 원가가 분열되고 좋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나오냐 이 말이야?”
“저희는 평화를 원할 뿐입니다. 또한 거기장군께서도 대장군과는 척을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십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원매는 말없이 곽가를 노려보다가 기다리라고 말한 후, 곧바로 원소를 찾았다. 원소는 원매로부터 상황을 전해 듣고는 곧바로 전풍을 호출했다.
“별 것 아닙니다. 조조는 주군이 내년에 공격할 것임을 어슴푸레 짐작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설프게 군대를 지원했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군량을 낭비하느니 냉정하게 힘을 키우겠다는 전략입니다.”
전풍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대답했다. 원매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들이 준비를 하는 부분은 우리가 어쩌지를 못하니, 제가 빠른 시간 내에 청주를 쳐서 분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하면 되겠어. 전별가는 다른 계책이 있으신가?”
“우장군 뜻대로 하시지요. 조조는 신병을 열심히 양성하는 모양인데, 훈련이 능사는 아니지요. 실전경험이 부족하니 주군께서 그 틈을 파고드시면 됩니다. 그리고, 청주전역에 곽도, 신평, 신비를 대역죄인으로 선포하고 이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며, 대공자에게 어떤 처벌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먼저 심리전을 전개하셔야 합니다.”
“호오- 기주 내에 있는 친대공자 세력에 대한 조치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장자였기에 아직도 막연하게 대공자를 마음에 둔 장수들이나 관리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지요. 우장군께서 곽도등을 공격한다고 하면, 저들도 불편한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좋은 의견이야. 전별가는 매가 작전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줬으면 좋겠군. 여러 가지 계책도 내고 말이야.”
“명령을 내리시면 당연히 따라야지요.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전풍은 잠시 말을 끊고는 원소를 정면으로 응시하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정리를 하셨으면 합니다. 굳이 불씨를 남겨놓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심치중(심배)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딱히 명분이 없어. 크게 비리가 드러난 것도 없고. 그리고 상이를 보면 마음도 아프고 말이야.”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모질어야 합니다. 비난을 받더라도 과감하게 조치를 하십시오. 관직을 삭탈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우장군 영지인 관중으로 보내십시오. 그리고 병주목 고간을 불러들여 확실하게 다짐을 받으십시오. 병주목이 큰 걱정거리는 아니지만 확실하게 처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치중은 내가 처리하지. 매야. 전별가와 함께 청주를 공략할 방법을 연구하고, 때가 되면 시작해. 전권을 네게 위임하마. 담이는 살려서 데려오고.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남양에서 군사들이 도착하는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전별가와 함께 물러가서 계책을 세우겠습니다.”
원소는 둘이 예를 표하고 물러나자, 곧바로 심배를 호출했다. 심배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곧 가슴을 쭉 펴며 당당해지려고 애썼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원소는 심배를 보자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는 자리에 앉혔다. 한동안 이런 저런 흘러가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결국 원소가 무겁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심치중이 나를 위해서, 상이를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했어. 내가 그것에 대해서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제게 주어진 소임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이거 칭찬을 받으니 괜히 으쓱해지는군요.”
“자네는 거만해도 돼. 열심히 일했으니까. 그간의 공도 있고 하니까, 잠시 쉬는 의미에서 별가를 제수할 테니, 관중을 제대로 만들어 놓게. 그곳의 대신이란 자들이 능력이 부족해. 아무래도 자네가 가서 방법 좀 알려주게. 길지 않을 거야. 딱 2년만 다녀오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심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순간 원소는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내일 출발하게. 이사람 많이 약해졌구만. 잠시 쉬라고 했다고 눈물을 흘리는가?”
이튿날.
심배는 관중으로 힘없이 출발했고, 곽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창으로 향했다. 또한 원소의 지시를 받은 전령이 병주 태원군 고간의 치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