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제 85장. 형님! 정말 이럴거요?
원소가 황옥과 오붓한 시간을 나누는 동안, 원매는 처소에서 수많은 대신들을 접견하고 있었다. 사실상 중간에 눈치를 보던 대신들은 모조리 참석했다. 떠들썩하게 술자리가 이어졌다. 봉기는 이미 얼굴이 벌개졌다. 그는 붉어진 얼굴로 침을 튀겨가며 원매의 대단함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여러분, 여기 내 사위가···.. 아니지. 이런 실언을 했소. 여기 우장군께서는 단 삼 년 만에 관중, 한중, 남양을 점령했소. 나는 지금껏 살면서 단기간에 이렇게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소이다.”
봉기가 과장되게 원매의 업적을 칭찬했지만,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옳소! 하며 열심히 박수를 쳐댔다. 사실 황제로부터 우장군 직위를 박탈당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원매를 우장군으로 불렀다.
원매는 참으로 낯 뜨거웠다. 대놓고 이렇게 아부를 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하지만, 봉기가 미리 언질해준 것이 있어서 미소를 지으며 대신들을 대하고 있었다.
‘이보게 사위. 아니지 우장군. 곧 만나게 될 대신들이 간신배처럼 보이더라도 티를 내지 마시게. 저들도 목숨을 지켜야 하니 그러는 것이야. 그리고 흠이 좀 있더라도 큰 흠은 없는 자들이지. 자네가 주군의 대를 이으려면 저들의 지지는 반드시 필요하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원매는 봉기의 조언을 회상하고는 곧바로 술 한잔을 들이켰다. 맹대와 진림은 제일먼저 원매를 지지해서 그런지 입이 찢어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크게 웃고 있었다.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갖고, 파한 후에 원매는 피곤하여 잠자리에 곯아 떨어졌다. 일어나보니 벌써 늦은 아침이었다. 기지개를 켜면서 밖으로 나오자, 사마구가 꾸벅 예를 올렸다.
“별일은 없었는가? 지난밤에 너무 마셨어.”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대신들도 모두 돌아갔구요. 대장군께서 시간이 되는 대로 들리시라고 연통을 보내오셨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어서 준비를 하고 가봐야겠어.”
원매는 빨리 씻고 깨끗한 옷을 차려 입은 후, 곧바로 원소에게로 향했다. 치소로 들어서자, 원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수와 전풍이 같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이쪽으로 앉아.”
그가 예를 표하고 자리에 앉자, 원소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아? 어제 너무 마신 것 같은데 말이야.”
“주는 대로 받다 보니 조금 무리를 했습니다.”
“잘했어.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들이니 교류를 넓혀둬. 그리고, 여기 저감군(저수), 전별가(전풍)에게도 내가 당부를 해뒀어. 그러니 필요한 일이 있고 하면 같이 의논도 하고, 조언도 얻고 그렇게 해.”
“아버님.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
원소가 전풍과 저수에게 나가보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들은 원소와 원매에게 예를 표한 후에 자신의 치소로 돌아갔다. 원매는 그들이 나가자, 숨겨두었던 옥새를 꺼내 원소에게 바쳤다. 그는 옥새를 한참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서랍에 넣고 잠갔다.
"고맙구나. 정말 수고했어."
"아버님께 칭찬을 들으니 제가 일을 잘 처리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저감군, 전별가에 대해서는 따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녀석. 눈치가 늘었구나. 사실 저수와 전풍은 내가 좀 견제를 했어. 성격이 꼬장꼬장하기도 했고, 기주 대호족 출신이라 세력이 강해. 이번에 주변을 정리하면서 저들을 어찌할까 고민했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나더구나. 네가 저들을 많이 믿고 의지하라고 한말이 생각이 났어. 능력이 출중해서 가능하면 데리고 있고 싶은데, 문제는 내가 황위에 오르려는 욕심을 드러내면 어떻게 나올까? 이게 걱정이지. 그래서 네 의견을 물어보고 싶구나.”
원매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저들이 과연 황위에 오르는 원소를 반겨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능력으로만 본다면 정말 아까운 사람들이니까요.”
“그건 내가 더 많이 느끼지. 저 정도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얻은 건 내게 큰 행운이야. 다만, 대사를 앞에 둔 상황에서 거대한 세력을 지닌 저들이 반대를 한다면 골치 아파지지. 어쩌면 더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차라리 제가 남양군으로 데려가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순유를 올려 보내 아버님을 뒷받침하겠습니다.”
“이놈아. 그게 그렇게 간단한 줄 아느냐? 저들은 보이지 않는 기주 호족세력의 대표야. 최악의 경우 죽여야 끝나. 그러고도 한참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겠지.”
“내년까지는 시간이 남았으니 제가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저들을 설득해보겠습니다. 그래도 안된다면 아버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게 어떤 것 일지라도요.”
“그래.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네가 그들과 종종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었어. 그러니 잘 말해봐. 어쩌면 쉽게 될지도 모르고, 아니면 아예 조금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고 겉돌지도 몰라.”
원소는 이 말을 끝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진짜 중요한 말이 남았다는 것을 원매는 직감적으로 느끼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윽고 원소의 입이 열렸다.
“사실 업성은 큰 문제가 아니야. 설령 전풍과 저수를 쳐낸다 하더라도 어려움은 있겠지만, 극복 못할 정도도 아니고. 병주의 고간도 큰 문제가 안될 거야. 설령 그 놈이 다른 마음을 먹는다 해도 그곳이 워낙 척박해서 고립시켜버리면 끝이니까. 진짜 문제는 첫째 담이야.”
원소는 힘들게 말을 꺼내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 담이를 먼저 해결했어야 했는데.”
“어제 조조와의 전투를 끝내고 담판을 짓는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하룻밤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원소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곽도, 신평, 신비가 청주로 가서 돌아오지 않고 있어. 지난번에 추궁하는 사신을 보냈는데, 오늘 아침에 빈손으로 왔어. 너를 후계자로 생각하니, 그 놈들이 서운한 건 이해를 하겠는데, 감히 내 명령을 어길 정도냐는 거지. 아무래도 담이가 그들을 봐주고 있는 것 같아.”
그제야 원매는 원소의 속뜻을 알아차렸다. 원담이 밉지만, 아들이니 차마 어찌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과감하고 냉정한 원소였지만, 자식에게는 그러질 못했다. 특히 첫째인 원담에게는 약해질 때가 많았다.
일례로 원담은 폐출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청주의 군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이를 우려하는 대신들의 진언이 있었지만, 원소는 결코 군권을 회수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원담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원매는 고민을 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힘드시다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형님은 반드시 살려오겠습니다.”
“담이가 정치적으로 무능해서 그렇지, 군사분야는 만만치가 않아. 더군다나 청주를 쥐고 있어서 군사력도 막강하고. 휴- 내가 담이에게는 너무 물렀어. 폐출을 했을 때, 과감하게 병권까지 뺏었어야 했는데. 그리고 여기서 내전이 일어난다면 조조가 분명히 틈을 노릴 것이다. 이리 저리 골치가 아프구나.”
“걱정 마십시오. 형님의 군사력은 대략 어느 정도 됩니까?”
“보병 5만, 기병 7천정도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기주, 유주, 병주의 병사들은 그대로 두십시오. 조조와의 전투에 대비하게 하십시오. 전투를 명령하면 그들도 상당히 난감해할 것입니다. 제가 서량기병과 관중/남양의 병력을 이끌고 공격하겠습니다. 제가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 들일 테니, 아버님께서는 계속해서 형님을 추궁하십시오. 그리고.”
원매는 원소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힘주어 말했다.
“저에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오냐. 내 그리하마. 목표가 생겼는데 여기서 멈출 수야 없지. 고맙다.”
원매는 원소와의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곧바로 남양군으로 전령을 보냈다. 원매가 전령을 보내고 기다리는 동안 원소는 원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조치를 하나씩 취해나갔다.
대신들과 장수들이 후계자는 원매라고 암암리에 수긍을 하고 있었는데, 원소가 나서서 후계자는 원매임을 공포한 것이다. 원소의 입에서 직접 터져 나오자 그 효과는 매우 컸다. 대신들뿐만 아니라 주요 장수들도 시간을 내어 원매에게 인사를 다녀간 것이다.
그 다음으로 곽도, 신평, 신비에게 명령불응죄를 물어 즉시 업성으로 소환하도록 명령했다. 죄를 추궁하는 사신들이 원담의 치소인 평원성으로 갔지만, 그들이 올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대신들과 주요장수에게 원매가 원담을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즉, 원매가 원담을 치는 것이 아니라 명령에 불복종하고 있는 곽도, 신평, 신비를 공격하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런 상황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청주 평원성 원담치소.
원담은 눈이 시뻘개져서 상좌에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곽도, 신평, 신비가 머리를 조아린 상태였다.
“빌어먹을! 아버님께서 노망이 난 것이 틀림없어! 지난번에 나를 폐출시켜놓더니, 뭐? 원상이를 중산군 태수로 쫓아내? 이건 대놓고 후계자는 원매다. 이런 선포잖아!”
“그렇습니다. 분명합니다. 내년에 조조를 친다고 대장군께서 선포를 하셨지 않습니까? 만약 이 상태로 간다면 조조와의 전투가 끝난 후에 대공자(원담)의 병권을 회수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끝이 납니다.”
곽도가 진언을 올리자, 신평이 곧바로 진언을 올렸다.
“벌써 대장군께서는 두번씩이나 사자를 보냈지 않습니까? 이것은 대공자의 힘을 빼려는 원매의 음모입니다.”
“나도 알고 있소. 아버님께서 어찌 나올 것 같소?”
“대장군께서 직접 군대를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수들 중에서 감히 대공자께 창을 들이댈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무리 대장군께서 명령을 내리셨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둘째공자(원희)나 병주목(고간)도 감히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삼공자(원매)입니다.”
곽도는 목이 타는지 차를 들이켜고는 진언을 이어갔다.
“그는 공공연히 십만이 넘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큰 소리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장수와 군사들은 대부분 관중이나 남양, 서량출신입니다. 기주와 관련이 있다면 고람이나 조독 정도입니다. 그러니 원매가 공격명령을 내린다면 그 놈들은 거침없이 대공자에게 칼을 들이밀 것입니다.”
“십만이라? 이 미친놈이 뭔 짓을 했길래 그렇게 많이 모은 거야? 곽공칙! 솔직하게 말해보게. 원매와 내가 싸우면 어찌될 것 같아?”
“쉽지 않은 전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내 앞인데도 쉽지 않다고 떠드는 것을 보니 내가 불리하다는 말이로군. 그건 그렇고 생각해둔 방책은 있는가?”
곽도는 지그시 원담의 눈을 바라보더니 독하게 입을 떼었다.
“이 전투는 원매만 이기면 끝이 납니다. 그러면 장수들의 마음도 다시 돌아설 것입니다. 대장군께서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요. 그래서 말인데, 조조의 도움을 받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뭐라? 조조라니? 지금 제정신이오?”
“멀쩡합니다. 지금 조조가 돕지 않으면 원매를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일단 그를 꺾고 나서 뒷일을 생각하시지요.”
“안돼. 집안싸움에 조조를 끌어들이다니. 나중에 아버님을 어찌 뵙는단 말인가? 내가 원매 그 놈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말이야?”
“서량기병까지 동원하면 기병만 이만일 것입니다. 아무리 대공자의 통솔력이 뛰어나더라도 기병에서 두 배나 차이가 나면 힘듭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십시오. 이미 잘못은 대장군께 있습니다. 대공자가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일단 원매를 물리치고, 강하게 나가십시오. 지금 주군의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대신들과 장수들이 대공자께로 돌아설 것입니다. 독하지 않으면 사내대장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원담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생각할수록 원매가 얄미웠다. 첩실의 자식주제에 감히 후계자를 욕심 내다니. 이 죽일 놈의 새끼! 원매에게 업성에서 두드려 맞았던 기억까지 떠오르자, 원담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분노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곽공칙이 조조에게 다녀오시오. 이번에 끝장을 봐야겠어.”
“명을 따르겠습니다.”
곽도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