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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82화 (82/253)

# 82

제 82장. 꿀물 한 사발의 값어치

원소는 공손찬에게서 빼앗은 영지에 재빠르게 태수와 현령을 임명했고, 급히 쌀을 풀어 백성들의 민심을 다독였다. 유주에서 큰 전쟁이 몇 년간 지속되었기에 이번 일년은 전쟁 없이 지낼 계획이었다.

저수와 봉기에게 군사통제를 일임시켜 훈련을 시키게 했고, 전풍/곽도/신평등에게 내정을 총괄하여 관리토록 했다.

원소는 여러 가지 일을 대신들에게 맡겨두고는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중요한 일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원상은 원소의 호출에 언뜻 불안감이 가득한 눈으로 치소로 향하고 있었다. 종사관의 안내를 받아 치소로 들어서자, 원소는 반갑게 맞이했다.

“상아. 바빠서 아비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구나. 네가 이해를 하거라.”

“괜찮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워낙 바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그래. 지난번에 심치중(심배)을 통해서 들었는데, 너도 이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예. 아버님. 소자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그간 열심히 학문을 익혔고 주변관리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음- 이번에 기주 중산군 태수를 내어 줄 터이니 그것을 해보거라. 그간 태수들이 잘 관리를 해놓았고, 조직도 잘 정비되어 있으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원상은 중산군 태수라는 말에 어- 어-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중산군이라면 업성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형제들은 목사의 위치인데, 자신만 태수였으니 불안했다. 직감적으로 자신이 후계자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알고 열심히 다스려봐. 잘하면 더 좋은 자리를 내주겠다.”

“아. 아버님. 업성에서 할 일은 없습니까?”

“바닥부터 차근차근 다져 올라오거라. 백성들이 어찌 사는지도 모르면서 업성에서 어찌 통제를 하려고 하느냐? 네 형 매를 생각해보거라. 내가 그 거칠고 조악한 상당군의 세 개 현을 내주었어. 그런데 삼 년 만에 벌써 관중, 한중, 남양군을 얻었지. 거기다가 서량을 완벽하게 단속하고 있어. 너는 이런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느냐?”

셋째 형님과 저는 다릅니다!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차마 뱉어낼 수는 없었다. 일단 한번 결정하면 좀처럼 번복하는 일이 거의 없는 원소였다. 원상은 찔끔하고는 중산군 병부를 받아 들고 나왔다.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심배를 찾았다. 심배 또한 원상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책이 없었다. 지금의 대세는 누가 뭐래도 원매였다.

“일단 중산군으로 가십시오. 거기서 올바르게 태수직을 수행하시면, 제가 주군께 주청을 드려서 업성에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주군께 불만을 품거나 비위를 거슬리는 행동을 하신다면 큰일 나십니다. 부디 불편하더라도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버님께서도 이곳의 생활을 정리할 시간을 며칠 주셨습니다. 그리할 테니, 심치중께서 아버님을 설득해 주십시오. 이대로 몇 년간 지방에서 태수나 하다 보면 모든 게 끝납니다.”

“부디 몸 성히 다녀오십시오. 더 노력하겠습니다.”

원상이 나가자 심배는 힘이 빠져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원소를 오랫동안 보좌하면서 그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원소는 칼을 뽑아 든 것이다. 하나씩 정리를 할 것이고, 이때 반기를 든다면 그 순간 죽임을 당하거나 최소한 유배 정도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그렇기에 눈물을 흘리는 원상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것이다.

원상은 심배를 만나도 도움이 되지 않자, 곧바로 모친 유씨(원소의 본처)를 찾았다. 유씨는 눈물을 펑펑 쏟는 원상을 보고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이 말을 해보겠다며 원상을 다독이고는 돌려보냈다.

저녁때가 되어 돌아온 원소에게 유씨는 간단한 다과상을 차리고는 그간의 노고를 격려했다. 식혜와 약과를 먹으며 유씨로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은 원소의 표정은 많이 풀어졌다.

“상공. 이번에 상이를 중산군 태수로 발령내셨다고요?”

“그래. 그랬지. 내가 그렇게 했어.”

원소는 자책하듯이 말을 중얼거렸다. 유씨는 순간적으로 더 이상 이것을 건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원상의 슬픈 얼굴을 떠올리자 용기를 냈다.

“상이가 너무 어립니다. 업성에서 데리고 계시면서 일을 시키심이 어떠신지요.”

“이미 결정했으니 더는 말하지 마시오. 시작도 하기 전에 분란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용납할 수 없소이다. 그러니 부인께서도 더는 그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마시오.”

“그럼 후계자를 매로 정하신 것입니까?”

쾅-

주먹으로 상을 후려치자, 약과와 식혜가 어지럽게 방에 떨어졌다. 어느새 원소의 눈에서는 서늘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입에 담지 말라고 하였어. 부인도 나와 오래 사셨으니 나를 절대로 건들면 안 되는 때가 있는 걸 알지 않소. 지금이 그때요. 언급하지 마시오.”

유씨는 이를 악물었다. 후계자 자리를 첩실의 자식에게 빼앗기게 생긴 것이다.

“매는 첩실의 자식인데, 이럴 수는 없습니다. 담이도 아니고, 희도 아닌데 그렇다면 상이어야지요. 어찌 매란 말입니까?”

원소는 얼굴을 굳히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봐라. 내가 나갈 터이니 준비하라!”

나가려는 원소의 다리를 유씨가 잡았다.

“아니 됩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놓으시오.”

원소는 우악스럽게 유씨를 밀치고는 방문을 나섰다. 유씨는 대성통곡을 하였지만, 원소의 눈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는 힐끔 유씨의 방을 째려보고는 가마에 올라탔다.

‘뭐가 어째고 어째? 첩의 자식?’

원소는 지나간 옛일이 떠오르자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간 원술에게서 얼자라고 놀림을 받았던 기억, 첩의 자식이라는 신분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려 삼년상을 두 번이나 치렀던 기억이 떠오르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삼년상은 너무 힘들어서 다시 상이 난다고 할 정도로 매우 고된 노동이었다. 오로지 악과 깡으로 버티고 버티면서 삼년상을 두 번이나 치렀다. 덕분에 명성을 얻고 힘을 얻었지만, 동시에 고칠 수 없는 폐병도 얻었다.

‘내가 황제를 하더라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놈을 황태자로 앉혀야 해. 담이는 싹수가 안되고, 희는 너무 물러. 상이는 너무 어려서 대신들에게 휘둘려. 오직 매만이 가능해. 그 놈이라면 내 뒤를 이어서 잘해나갈 것이다. 누구도 이것을 방해하는 놈은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한동안 분노로 치를 떨던 원소는 힘이 빠졌는지 잠시 몸을 편하게 기대었다. 문득 원매의 모친인 황옥이 떠올랐다. 자신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보고 싶었다.

‘그래. 한번 보자. 매를 따라 남양군으로 간 후, 너무 소원했어. 내년에 조조와의 일전을 치르기 전전 정리할 것은 모두 정리를 하자.’

원소는 잠시 눈을 감고 황옥과의 과거에 빠져들었다.

남양군 원매치소.

장비는 원술을 끌고 와서 밖에 두고는 원매에게 옥새를 바쳤다.

“고생했소. 정말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어.”

“감사합니다.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해 보시게. 이정도 해줬으니 웬만한 것은 다 들어 줘야지.”

“아직 여남군이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잔당들도 곳곳에서 설치고 있고요. 그래서 당분간 제가 그곳에 남아서 돕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알겠네. 지금이 봄이니 가을까지 시간을 주지. 어떤가?”

“감사합니다.”

원매가 시원하게 허락하자, 장비는 급히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너무 쉽게 허락이 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찰나에 원매의 냉정한 당부가 이어졌다.

“딴 생각은 마시게. 자네는 좌장군(유비)을 도와주는 처지이고, 지금은 내 휘하의 장수란 말이야. 그걸 잊지 말게. 나는 웬만한 것은 적당히 말로 타이르지만, 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하면 끝장을 내는 사람일세.”

장비는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끝장이 무엇인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고생했어. 어서 여남군으로 가보게. 가을에 돌아오면 공에 대한 포상을 약속하지. 자네는 나와 같은 호족출신이고, 냉정한 사람이니 내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믿네.”

장비는 예를 올리고 다시 여남군으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원매의 냉정한 말이 떠나지 않았다. 이제까지 원매의 처신을 본다면 눈밖에 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장비가 굳은 표정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원매는 원술을 만나고 있었다.

“여기 꿀물이나 한잔 드시오.”

원술은 말없이 노란색의 꿀물을 바라보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유비에게 죽도록 맞고, 장비에게 끌려오면서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같은 원씨라고 자신을 챙겨주는 원매를 생각하자 울컥해졌다.

“고맙네. 내가 자네를 도와주어야 하는데, 염치가 없군.”

“그럼 지금부터 일을 하시면 됩니다. 아직 휘하에 괜찮은 장수들과 관리들이 있지 않습니까? 모두 불러 주십시오. 제가 요긴하게 데리고 쓰겠습니다. 그리고 숙부(원술)님께는 조용한 현을 하나 드릴 테니 거기서 편하게 노후를 지내시면 됩니다.”

자신의 것을 모조리 내놓으라는 원매의 말에 원술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원매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뭘 그런걸 가지고 정색하고 그러십니까? 그들도 먹고 살아야지요. 그러니 제가 데리고 쓰겠다는 겁니다. 자- 어서 죽간에 서명을 하십시오.”

원매는 이미 준비해놓은 여러 죽간들을 원술 앞에 내놓았다.

“털도 안 뽑고 모조리 뺏으려는가?”

“현하나 드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거면 충분히 먹고 살 것입니다. 아닌 말로 제가 숙부님을 모시지 않으면 들판에서 죽을 운명 아닙니까? 고마운 줄을 아셔야지요. 좋아하신다는 꿀물까지 드렸는데 이렇게 나오실 것입니까?”

“그렇다면 땅을 더 주게. 이대로는 안되네. 내가 한때는 황제였던 사람이야. 겨우 현 하나로 어찌하란 말인가?”

“하기 싫으면 관두십쇼. 지금 즉시 여남군으로 돌아가십시오. 가서 좌장군에게 쳐 맞든, 농민들에게 맞아 죽든, 굶어 죽든 맘대로 하십시오.”

원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본인의 의자에 앉았다. 그의 눈에서는 차가운 눈빛이 흘러나왔다.

“아- 뭐하십니까? 어서 가세요.”

원술은 몇 번이나 안색을 붉으락푸르락하다가 결국 체념을 하고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유비에게 두드려 맞을 때는 차라리 죽자고 생각했는데, 막상 살았다고 생각하니까 죽고 싶지 않았다.

“조카. 내가 실언을 했네. 여기 죽간에 서명을 하면 되는가?”

그제야 원매도 다시 원술의 앞에 앉아 자세히 설명을 시작했다.

“서명도 하시고, 지금 상황이 여차저차해서 남양군에 있으니 저를 따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리고 완성 옆에 서악현이 있는데, 물산이 풍요롭습니다. 그곳을 드릴 터이니 세상시름 잊고 편안히 사시면 됩니다. 제가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원술은 한숨을 내쉬며 원매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죽간을 작성했다. 곧바로 원술을 서악현으로 옮겼고, 그곳에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동시에 인사를 맡고 있는 순유를 호출했다.

“자 이걸 가지고 사람을 풀어서 데려오시오.”

순유는 여러 개의 죽간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주요 인재들에 대한 원술의 추천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대단하십니다. 이자들은 괜찮은 인재들입니다. 이런 복안이 있어서 원술을 데려오셨군요.”

“내가 그리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오. 숙부가 안타까워서 돌봐드리는 것이지. 힘드신 것 같아서 꿀물 한 잔을 드렸고, 나는 그 답례를 받은 것뿐이오. 자- 어서 움직이시오. 특히, 염상, 한호, 기령, 장훈, 원환을 꼭 데려오시고, 다른 괜찮은 자들도 있으면 데려오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순유는 급히 예를 올리고는 치소를 물러나, 여남군으로 사람을 급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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