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80화 (80/253)

# 80

제 80장. 유비劉備 그리고 공손찬公孫瓚

199년 3월.

유비는 출병준비가 완료되자, 원매를 찾아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여남군으로 출병을 하려고 하는데, 일만으로 아무래도 부족할 듯합니다.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원술이 사실상 자멸의 상황입니다. 그대로 놔두었다면 조조가 공격을 했을 터인데, 제가 여기 있으니 불안해서 포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기병 이천을 지원해 드린다고 그전에 약조를 해드렸는데, 그것으로 부족하십니까?”

“보병 오천 지원을 부탁 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의 편의야 제가 봐드려야지요. 장비를 보내드릴까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기간은 원술을 토벌할 때까지입니다. 잔당처리는 알아서 하시고, 빠르게 옥새를 찾아서 가지고 오십시오.”

“전쟁 중에 옥새가 사라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낙양에서 손책이 옥새를 얻을 때도 궁녀가 우물에 빠져 죽었는데, 거기서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답답하시군요. 왜 이리 말을 못 알아 들으십니까? 무조건 가져오세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와라 이게 주문입니다. 원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으시면 그리 하십시오. 이건 대장군의 주문이기도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유비는 모욕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말투야 공손했지만, 이거야 부하장수를 다루는 것과 다름없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힘을 가졌다고 이리 막 나오시는가?”

“이게 제 협상방식입니다. 협상을 하지 않는 자가 뛰어난 협상가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좌장군(유비)께서 원술을 물리치고, 옥새를 찾고, 제게 가져오면 됩니다. 그리고 기병과 장비를 반납하시면 됩니다.”

“만약 내가 여남군을 점령한 후 거절한다면 어찌하겠는가?”

“글쎄요. 그런 말을 듣고 보니 상당히 걱정되는군요. 그리 된다면 아마도 십만의 보병과 이만의 기병이 백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여남군에 입성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군대를 움직이려면 군량도 소모되고 힘듭니다. 그럼 또 두기가 군량 어쩌고 난리 칠 텐데. 아- 나도 머리 아픕니다. 그러니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유비는 힘없이 원매의 치소를 나왔다. 원매는 조조보다 더 뻔뻔한 놈이었다.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가져오라니. 옥새가 어디 빵 찍어 내듯 만들 수 있는 물건이란 말인가?

“휴- 이거야. 애송이한테 당하고나니 속이 다 뒤집히는 구만. 원술을 물리치는 전쟁이 아니라, 옥새를 찾는 전쟁이야.”

유비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는 치소로 돌아갔다. 관우는 유비로부터 원매와의 대화내용을 전해 듣고는 펄쩍 펄쩍 뛰면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유비가 그냥 놔두었으면 원매를 죽인다고 달려나갔을지도 몰랐다.

흥분한 관우를 달래고는 진도에게 준비를 차분히 하라고 지시했다. 그래도 장비가 지원을 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원매는 유비를 돌려보낸 후, 다른 생각에 잠겼다. 이번 가을이 되면 형주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유표가 어쩌고저쩌고 항의를 할 테지만, 그런 것은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다.

‘양양성을 공략하자니 면수를 넘기가 너무 어려워. 그렇다고 수군이 금방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대별산을 넘어서 강하군을 공략하면 되겠지. 황조만 잘 넘고, 거기 수군을 항복시키면 괜찮아 질 거야. 그 다음에 문빙, 감녕에게 수군을 맡기면 될 테고.’

생각을 마치자, 곧바로 문빙과 감녕을 호출했다. 원매의 부름에 그들은 급히 달려왔다.

“앉으시게. 자네들도 알겠지만, 지금 나의 큰 약점은 수군이야. 수군이 전무하지. 그렇다고 지금 수군을 양성하자니 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할게 한 두 개가 아니야. 머리가 아프구만. 혹시 좋은 생각 있는가?”

감녕이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강하군을 치십시오. 남양군에서 대별산을 넘으면 강하군인데, 그곳의 소비가 수군을 맡고 있습니다. 아주 괜찮은 장수입니다. 황조만 죽이고, 수군을 흡수하면 됩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네. 그럼 소비를 항복시킬 수 있겠는가?”

“충의로운 자입니다. 쉽게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공격을 하시고, 전투를 해서 한번은 격파해야 합니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해야 항복할 것입니다. 황조는 오랫동안 자치권을 누려온 자이니, 항복시키기 보다는 죽이는 것이 낫습니다.”

“예전에 황조가 자네에게 몹쓸 짓을 해서 그런 것은 아니신가?”

“저도 사람인데, 황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냉정하게 보더라도 오랫동안 강하에서 왕처럼 산 자인데, 설령 항복을 하더라도 주군께 제대로 충성하겠습니까?”

“그렇지. 평생을 뱀 머리로 살면 절대 용 꼬리를 못하는 법이지. 자네 말을 받아들이지. 문중업(문빙)은 할말 없는가?”

“남양군에서 만들면 좋지만 앞에 양양성이 있으니 쉽지 않습니다. 감장군의 말대로 강하군을 점령하고 그곳의 수군을 흡수하여 크게 양성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장강 건너편에 손책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손책. 그래 그 놈이 있었어. 감장군. 손책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보게.”

“아주 대단한 놈입니다. 나이는 어린데 머리 쓰는 것도 비상하고, 무예도 출중합니다. 손랑이라 불릴 정도로 귀하게 생겼습니다. 무엇 하나 빠질게 없는데, 단 하나 약점이라면 성격이 폭급합니다. 아주 희한한 놈이죠. 일단 열이 받으면 그때부터는 누구 말도 안 듣고, 개망나니가 됩니다.”

“하하하- 그 정도인가? 통치하는 것이나 영토 등은 어떤가?”

“아- 제가 방향을 잘못 잡았군요. 회계, 오, 단양, 예장까지 4개군을 쥐고 있는데, 제법 영웅기질이 있어서 잘 휘어잡고 있습니다. 강남이 개발이 덜된 곳이기는 하지만, 오와 단양은 괜찮은 곳입니다. 그래서 군사력도 막강하고, 특히 수군이 대단합니다. 아마, 이대로 몇 년 놔두면 황조도 당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 올해 가을에 반드시 강하군을 내가 점령해야겠군. 어떤가? 자네 둘에게 수군을 맡기면 손책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손책을 공격해서 땅을 빼앗으라면 확답을 못 드리지만, 강하군을 지키고 수군을 키우며 미래를 보라고 하시면 자신 있습니다.”

감녕이 대답하자, 문빙이 신중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강하군은 교통의 요지입니다. 수로는 물론이고 육로도 발달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곳을 저와 감장군에게 맡긴다면 제가 강하군 방어를 중점적으로 맡고, 감장군이 수군을 육성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 후, 손책의 기세를 꺾일 때를 기다렸다가 공격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문빙의 말에 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책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경솔하여 관도대전 전후에 허공의 식객들에게 죽기 때문이었다.

“좋소. 그럼 지금부터 강하군의 첩보를 수집하고 준비하시오. 아- 물론 현재 맡고 있는 보병들을 잘 관리하면서 해야 하오? 알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원매는 그들을 격려하고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전한 후 돌려 보냈다. 원매가 이런 저런 준비를 하면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유주. 역경성.

그간 원소의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었다. 역경성의 대부분이 허물어졌다. 외곽에 있던 공손찬 부하들은 대부분 원소에게 항복하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원소를 비롯한 대부분의 책사와 장수들도 이곳에 총출동한 상태였다.

“지겹게 버티더니 결국 이렇게 끝이 나는군. 저감군(저수). 자네가 생각하기에 며칠이나 걸리겠어?”

“삼, 사 일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설령 최악으로 늦어진다고 하더라도 열흘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공손찬은 어찌 나올까?”

“어떤 방식을 택하든 죽음을 택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한때는 주군과 하북을 다투었던 영웅입니다. 순순히 항복하지는 않겠지요.”

“무슨 소리요? 하북의 영웅은 오직 주군 한 명이오. 어찌 공손찬따위가 영웅이란 말이오? 초창기에 조금 힘을 썼는지 몰라도 이제는 역경성에 쳐 박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초라한 늙은이란 말이오. 어서 말을 정정하시오. 감히 주군과 그런 늙은이를 비교하다니.”

기회라고 생각하자 재빠르게 곽도가 치고 나왔다. 신평도 지지를 했고, 심배도 거들었다. 하지만, 저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이 상황이 저리 되었지만, 한때는 영웅이었다. 그런 뜻이었습니다. 감히 주군을 어찌 폄훼하겠습니까?”

“공손찬따위에게 영웅이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주군을 모욕하는 것인데, 아직도 모르겠소?”

심배가 곧바로 저수의 말을 반박하자, 저수는 쓴 웃음을 지을 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원소는 이야기가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당황스러웠다.

“그만해. 공손찬은 여기서 끝나는 거야. 곧 죽을 놈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다툼할 필요 없어. 나는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 장수들을 재촉해서 빨리 끝내도록 해.”

결국 원소가 상황을 정리하고는 저수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저수가 꼬장꼬장해서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일 처리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인재도 드물었다. 아니 없다고 봐야 했다.

저수의 장담대로 역경성은 빠르게 함락되어갔다.

공손찬은 망루에서서 음울한 눈으로 원소군영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요즘 들어서는 통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그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다 망가져 있었다.

“하북이 좁다고 호령하던 공손찬은 어디 가고,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힘없는 늙은이 한 명이 남았구나. 참으로 인생무상이로구나. 누구를 탓하고, 원망할 것인가? 다 내 불찰인 것을.”

공손찬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호화롭게 장식된 실내, 아름다운 첩들. 수많은 자식들까지.

“흐흐흐흐- 다 쓸데없는 짓을. 내가 죽는다면 저기서 몇 명이나 살아남는단 말인가?”

공손찬은 밖으로 나왔다. 수많은 장병들이 놀라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급히 군례를 올렸다. 이제껏 안에만 있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엄강! 전해! 기병을 준비하라!”

“주군. 이제는 기병도 몇 백기가 다입니다. 그리고 성안에만 갇혀 있어서 제대로 움직일지도 의문입니다. 제 불찰입니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엄강과 전해가 바닥에 엎드려 눈물을 쏟으며 죄를 청했다. 더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 그들을 암담하게 만들었다.

“일어서. 죽기 전에 한번 원 없이 달려보자꾸나. 되는대로 준비하거라. 선경!”

“예. 주군.”

“자네는 내가 죽거든 병사들을 무리시키지 말고, 항복시키게.”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선경이 엎드리자, 병사들도 일제히 엎드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공손찬은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마지막은 공손찬답게 마무리 지어야지.’

공손찬의 자신의 애마를 쓰다듬고는 곧바로 올라탔다. 오랜만에 말에 타자 몸이 휘청였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잡고 조금 달려보자 예전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공손찬의 재촉에 엄강과 전해가 남은 기병 사백을 이끌고 나왔다.

“죽기 싫은 자는 이곳에 남아라!”

오랜만에 보는 공손찬의 단호한 명령이었다. 기병들은 굳은 얼굴로 공손찬을 바라볼 뿐이었다.

“바보 같은 놈들! 가자-“

날은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여러 겹의 성곽 중 맨 안쪽의 성문이 열리며 공손찬이 기병 사백을 이끌고 튀어나왔다. 그들은 원소군을 무인지경으로 헤집으며 본진으로 내달렸다. 원소는 멀리서 곧장 달려오는 기병무리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공손찬이로구나. 누가 나가서 공손찬을 상대하겠느냐?”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원소가 고개를 돌려보니 안량이었다. 허락이 떨어지자, 안량은 기병 일천을 이끌고 공손찬을 덮쳤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공손찬 기병이 힘을 내었지만, 상대는 원소군 최정예 기병을 이끄는 안량이었다. 더군다나 술로 찌들어 힘이 빠진 공손찬이었다.

번쩍-

공손찬의 목이 떨어졌다.

그렇게 동탁조차도 두려워했던 공손찬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