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제 78장. 극강極强의 무력武力
199년 2월.
아직 날씨가 쌀쌀했지만, 남양군의 훈련장에서는 강한 군사훈련이 이뤄지고 있었다. 유비는 관우, 진도와 함께 매의 눈으로 병사들을 지켜보며 강병을 육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익덕(장비)이 같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유비는 관우와 진도가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모습을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살짝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익덕 말이 맞아.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이 아니다. 벌써 나이가 40을 바라보고 있는데, 언제까지 남의 객장이나 하란 말인가? 필요하면 지원군으로 요청할 수 있고, 10년만 참으면 된다. 솔직히 조조에게 계속 남아있었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유비가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날이 어두워지자 병사들은 훈련이 끝나고 처소로 돌아갔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시오?”
“아- 끝났느냐? 고생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3월이면 곧바로 여남군을 공략해야 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하구나. 잘될까? 이런 불안감도 있고 말이야.”
“난 또 뭐라고? 걱정 마시오. 내가 형님의 앞길을 막아서는 놈들은 모조리 목을 베어버리겠소. 원술휘하의 장수들이라 봐야 제대로 된 놈이 누가 있겠소? 내가 모조리 목을 칠 테니, 형님께서는 푹 쉬고 계시오.”
“너의 장담을 듣고 있으니 기분은 좋다만, 너무 자만하지 말거라. 원술이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했다. 쉽게 생각하다가 큰 코 다칠 수가 있어.”
“형님이 전체적인 작전을 입안하고, 지휘를 하시오. 나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달려드는 놈의 목이나 베겠소.”
“허허허허- 그래. 그리 해보자꾸나.”
유비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관우는 가슴을 치며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진도는 큰 표정변화 없이 그런 유비와 관우의 뒤를 따랐다.
남양군 완성 원매치소.
원매는 갑자기 나타난 마초와 마대를 보고 다소 당황했다.
“아니 자네들이 웬 일인가?”
“저희가 오면 안됩니까?”
“안되긴 이 사람들아. 나야 언제든 환영이라네. 자- 이리로 앉으시게.”
원매는 그들을 자리에 앉히고는 따뜻한 차를 내어 주었다. 마초가 차를 마시는 동안 마대가 입을 열었다.
“우장군. 주군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 난 이제 더는 우장군이 아니야.”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여기 맹기(마초)형님도 그렇고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희들에게는 우장군이십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마장군(마등)께서 내게 전할 말씀이 있으신가?”
“주군께서는 화음현을 받고, 군량문제가 온전히 해결되었다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가을까지 어떻게 버티나 하고 군량문제를 고민하셨죠. 봄에 가을을 걱정할 정도로 식량사정이 나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인사를 보내면서 도와드릴게 있으면 돕고 오라고 했습니다.”
“말만 들어도 고맙군. 지금은 딱히 할게 없어. 군량은 부족하지는 않지만, 가을까지는 최대한 모아야 해. 아마도 가을이나 내년 봄에는 큰 전투가 있을 것 같으니 자네들도 올해는 쉬면서 군대를 정비해두게.”
“알겠습니다.”
마대가 말을 끝내자, 마초가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우장군. 지난번에 대련을 하자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오호- 기억을 하고 있었는가? 내 그리 말했지. 사실 그때 너무 바빠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나갔다네. 준비를 하고 내일 대련을 해보는 것이 어떤가?”
“저도 우장군처럼 무예의 끝을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내일은 최선을 다해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고맙네. 사실 나를 위한답시고 대충한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일세. 내일 보세.”
완성의 연무장은 많은 장병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유비/관우는 물론이고, 장비도 눈을 반짝이며 기대를 하는 모습이었다. 관우는 콧방귀를 뀌며 신경을 쓰지 않는듯했지만, 눈길은 매섭게 연무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장비는 그 동안 장수들과 안면을 익혔는지 감녕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감장군께서는 오늘 대결을 어찌 보십니까?”
“글쎄. 이번만큼은 주군도 고생을 할 것일세. 지난번에도 방덕에게 밀리다가 수세를 극복하고 결국 이긴 걸로 보면 방심할 수는 없긴 하지. 아무튼 분명한 것은 오늘도 내 눈이 호강을 한다는 것이지.”
“그렇군요. 마초라는 장수도 언뜻 봤는데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 굉장하더군요.”
“지금 완성에 있는 누구도 마초를 이기지 못할 걸세. 그가 전투에서 보여주는 무예는 정말 숨막힐 정도로 대단했지. 겨우 몇 번 본 것이 전부지만, 말을 타고 대도를 휘두르는 솜씨는 정말이지 일품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말을 마친 감녕은 장비를 바라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자네에게도 대련을 요청할 것이니, 오늘 주군의 솜씨를 잘 봐두시게.”
“감장군께서는 어떠셨소?”
“나야 죽도록 맞았지. 물론 그때 술을 마신 상태여서 제대로 힘을 쓰지는 못했어. 흐흐흐- 하지만, 변명은 하고 싶지 않네. 그간 술을 먹고 싸우더라도 감히 나를 꺾을 자가 없었거든.”
감녕과 장비의 대화는 거기서 중단되었다. 원매와 마초가 양쪽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장병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원매가 반월도를 뽑아 들고는 무형의 기운을 발산하자, 마초 또한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뿜어냈다. 일순간 엄청난 장병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무장은 정적속으로 빠져들었다. 한 수, 한 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공격하십시오.”
“고맙네. 사양하지 않겠어.”
원매는 도약을 하며 순식간에 간격을 좁히고는 그대로 반월도를 내리쳤다. 마초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두 손으로 대도를 잡아 반월도를 막아냈다. 원매는 강력하게 도를 휘두르며 마초를 압박했다.
얼핏 본다면 원매가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지만, 실제로 마초는 원매의 치명적인 공격을 흘려내었다. 확실하게 마초가 한 수위의 기량을 보인 것이다. 이십여 초를 견뎌내던 마초는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공세로 전환한 마초의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뿜어냈다. 원매가 매우 위험해 보일 정도로 인정사정 없이 몰아붙였다. 사마구는 원매가 위험에 처한듯하자, 불안해하며 몸을 움찔움찔했다. 그때, 옆에 있던 방덕이 그의 등을 살짝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매우 위험해 보이지만, 주군께서는 상당히 효율적으로 마초의 도를 막아내고 있소. 그리고 마초가 그 정도의 눈치는 있으니 걱정 마시오. 정말 위험한 순간이 되면 그도 도를 멈추거나 살짝 비틀어 허공을 찍을 것이오. 그는 타고난 천재요.”
방덕은 말을 하면서도 눈은 계속 둘의 대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원매도 그대로 당하지 않았다. 항상 자신보다 강자를 만나 결국을 극복한 저력이 있었기에, 마초의 빈틈을 보면서 매섭게 반격을 하여 수세를 벗어나곤 했다.
50초가 지나면서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다.
‘빌어먹을! 방덕보다는 확실히 한수위로구나.’
일초, 일초에 방덕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해야 했기에, 어느새 원매는 조금씩 틈을 드러냈다. 마초가 힘으로 반월도를 들어올리자 검이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곧바로 마초가 도를 버리고는 주먹을 뻗어왔다.
실제전투였다면야 그대로 베어버리면 끝이었지만, 상대는 원매였다. 반월도가 날아갔으니 맨주먹싸움으로 바꾼 것이다.
원매는 웅크리며 팔뚝으로 마초의 주먹을 막아냈지만, 엄청난 힘에 한발자국 밀려났다. 몇 번을 밀리다가 천금 같은 기회가 주어지자, 연속으로 마초를 타격했다. 좌우안면강타에 이어 옆구리를 그대로 꽂아 넣었다. 이 정도면 흔들려야 정상인데, 마초는 끄떡도 하지 않고 마치 탱크처럼 밀고 들어왔다.
원매의 주먹을 산발적으로 맞아대던 마초는 그대로 일권을 원매의 배에 작렬했다. 그걸로 승부가 났다. 원매가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마초가 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는 원매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원매는 머리를 흔들었다.
“휴- 정말이지. 자네 대단하군. 내 주먹을 버틴 것은 자네가 처음이야. 그렇게 끄덕 없이 밀고 들어올 줄을 정말 예상치 못했네.”
“저도 지금 온몸이 쑤시고 아픕니다. 사실 그때 실패했다면 무너지는 것은 저였을 것입니다. 도저히 기술로는 당할 수가 없기에 모험을 걸었는데, 그게 성공한 것이지요.”
원매의 마초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는 마초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장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댔다. 원매의 패배였지만, 장병들은 대단한 고수의 대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마초는 거듭 원매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예를 올린 후,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사마구가 급히 달려와 원매를 부축했다.
“괜찮아. 걷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구나. 마초가 참으로 대단하구나. 좀더 힘을 기른 후에 다시 한번 대련을 해봐야겠어. 네가 볼 때는 어떻더냐?”
“저는 마음이 졸여서 혼났습니다. 이번처럼 아슬아슬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마초의 무예가 대단해. 나도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 어떻게 그 덩치에서 그런 정교하고 빠른 무예가 펼쳐지는지 ······.. “
원매는 질려버린 듯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장병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원매도 사마구의 보호를 받으며 치소로 돌아갔다. 거의 대부분의 장병들이 빠져나갔지만, 관우와 유비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관우는 얼굴이 더욱 붉어져서 말이 없었다.
“어떠냐? 세상이 참으로 넓지 않느냐? 우장군도 대단하지만, 저 마초라는 장수는 너나 익덕이와 비교해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네 생각은 어떠냐?”
“마초를 이기려면 나도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르겠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이 정도의 압박감을 주다니. 우장군에 대해서는 형님말씀대로 제가 경솔하게 처신했소. 호족이나 고관대작의 자제로 저 정도의 대단한 무예를 지녔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어찌 세상이 우리의 좁은 눈으로 모든걸 알 수 있겠느냐? 너도 이번을 기회로 오만한 성품을 버리거라.”
“뭘 또 오만하다고 그러시오? 이건 자신감이오! 자신감!”
유비가 말없이 눈을 부릅떴다. 관우는 정색을 한 유비를 보자 움찔하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 알았소. 그렇다고 그리 정색을 하시오. 이제 돌아가시죠.”
관우가 진정으로 수긍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유비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오만함이 결국 적을 만들 것이다. 동지를 만들어도 부족할 판에 적을 만든다면 어찌하란 말인가?’
유비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진도가 충의롭게 뒤를 따랐다.
“숙지(진도). 장병들은 어떠냐? 동요하는 것은 없느냐?”
“무슨 말씀이신지?”
“익덕이 우장군에게 갔어. 그래서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으니, 하급장수들이나 병사들의 동요가 있지 않느냐 이 말이다.”
“글쎄요. 그런 놈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큰 동요가 없습니다. 주군께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도 끝까지 따른 자들이 아닙니까? 이번에도 그런 어려움중의 하나로 대부분 생각합니다. 설령 그런 놈들이 있다면 제가 목을 치겠습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불만만 토해내는 놈들은 필요 없습니다.”
“너는 익덕이 우장군에게 간 것이 불만스럽지 않느냐?”
“불만스럽지만 어쩌겠습니까? 언제까지 안 된다고 징징거릴 나이는 지났습니다. 군사 일만과 여남군 동쪽이라는 근거지 확보. 주군의 선택이 옳습니다. 정에 이끌려서 대세를 망치는 장수는 결국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게 됩니다. 저는 주군의 냉정한 선택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고맙구나. 가자.”
유비는 진도의 말을 듣고, 마음속에 있는 무거운 돌을 조금 내려놓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