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제 76장 조조曹操의 반격反擊
유비가 군사를 조련하고, 원매가 업성에 있을 때.
조조는 심한 두통으로 앓아 누워있었다. 의원들을 물리치고 홀로 끙끙 앓고 있을 때, 곽가가 빙긋 웃으며 들어왔다.
“나가. 지금 아픈 거 안보여?”
조조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쏘아붙이자, 곽가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픈 사람치고는 목소리에 힘이 넘치시는군요.”
그제야 조조가 빙글 몸을 돌렸다. 날카로운 안광이 곽가의 두 눈을 찔렀지만, 그는 안색을 바꾸지 않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뭔 생각을 하고 싱글싱글거리는 거야? 머리 아파 죽겠는데.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이번에 원매에게 당해서 속병이 난 것 아닙니까? 뭔가 반격을 하고 싶은데 딱히 계책이 생각나지 않으니 이렇게 앓아 누은거고요.”
“좋은 계책이 있는가?”
“감히 황궁을 향해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는 대역죄입니다.”
“대역죄? 원매 그 놈이 꿈쩍이나 할 것 같아. 콧방귀도 안 뀌지. 아마 그 놈은 지 아비처럼 황제가 되고픈 욕심이 가득한 놈이야. 안 봐도 훤-하지.”
“원매를 주군만큼이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연계하면 어쩌면 좋은 그림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눈을 반짝였다.
“원담을 말하는 겐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봐.”
“원담, 원상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책사인 심배, 곽도, 신평입니다. 이들은 큰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원매를 성토하면 꽤 볼만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정보만 흘려주고 불구경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 답답한 속이 후련해지는 말이로군. 순문약(순욱)이랑 계책을 상의해서 실행하게. 자네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야. 그만큼 중요한 상황이니 그런 것이지.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곽가는 미소를 지으며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치소를 나온 곽가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져있었다.
‘뭐든지 순욱과 연계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게 없구나. 빌어먹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곽가는 쓴웃음을 지으며 순욱의 치소로 향했다.
업성.
심배와 곽도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자리를 함께했다. 심배는 죽간을 곽도에게 건네주며 읽어보라는 시늉을 하였다. 곽도는 심배를 흘끔 쳐다보고는 죽간을 꼼꼼하게 읽은 후, 약간 경멸하는 눈으로 심배를 바라보았다.
“이거 뭐 하자는 겁니까?”
“뭐하긴. 삼공자(원매)가 저리 난리를 치니, 한번 기세를 꺾어보자는 것이지.”
심배는 하회탈처럼 얼굴을 만들며 능글능글 웃어댔다. 곽도는 짜증이 났지만, 대략 짐작 가는 바가 있어서 심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말야. 삼공자가 감히 황궁이 있는 영천군을 공격했어. 이건 반역죄일세. 어떤가? 우리가 힘을 합쳐서 주군께 말씀을 드린다면 적어도 삼공자의 한팔 정도는 꺾이지 않겠는가?”
“글쎄. 솔직히 이게 어디서 났냐? 묻고 싶지도 않소. 뻔할 테니까 말이오. 하지만, 과연 이게 통하겠소? 지난번에 책사 이유를 영입한 것을 진언 드려서 궁지로 몰아넣었는데도 삼공자는 유유히 빠져 나왔소. 그리 만만하지가 않단 말이오. 더구나 그의 뒤에는 봉호군(봉기)이 있소.”
“왜? 봉호군이 무서운가?”
순간 곽도는 속에서 울컥하고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심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상대방을 격동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그의 방식을 알면서도 번번이 당하는 것이다.
‘이 쳐죽일 놈의 새끼! 오냐 지금은 내가 너와 손을 잡는다만, 때가 되면 내 손으로 직접 네놈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곽도가 말이 없자, 심배는 계속 이어갔다.
“내가 선봉을 맡을 테니, 자네는 지원을 해주게.”
“그럼. 언제 할 거요?”
“삼공자가 떠났으니, 내일 바로 시작하지.”
심배는 곽도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고는 자리를 파했다.
이튿날. 봉기는 환한 얼굴로 맹대와 진림을 거느리고 대전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일주일 결산을 하는 날이었다. 그가 나타나자, 많은 종사관들과 하급관리들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봉기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한 명, 한 명을 격려했다.
회의가 시작되었고, 분야별로 보고를 시작했다. 회의 중에 특별한 지적이 나오지도 않았고, 원소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이었다.
“그래. 고생들 했어. 오늘은 이것으로 회의를 마칠까 하는데, 혹시 더 할 말 있는가?”
“주군. 삼공자께서 남양군을 점령하고 원가의 기세를 높이셨으니 참으로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렇지. 심치중(심배)이 그리 말해주니 기쁘군. 아주 쾌거였어. 허허허-“
“지금 황제의 권위가 많이 추락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 힘이 무시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데, 삼공자께서 지나치게 오만하여 황궁이 있는 곳으로 군대를 출병시켰습니다. 이는 대역죄로 몰릴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한번쯤은 주군께서 따끔하게 훈계를 해주셔야 합니다.”
“대역죄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원소가 뭔 생뚱맞은 말이냐며 되묻자, 곽도가 바로 진언을 올렸다.
“황제께서도 이에 대해 매우 불편해 하셨다고 합니다. 아직은 유씨의 나라이고, 곳곳에 유씨를 따르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삼공자가 큰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큰 실책을 저지른 것은 사실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요? 그렇게 따지면 조조가 제대로 천자를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는 천자를 모시던 양봉, 한섬을 한때 도적이었다고 하여 내쳤고, 시중 대승, 상서 풍석을 죽였소. 이런 대역죄를 저지른 놈이 호가호위를 하고 있는데,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시오?”
곧바로 봉기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심배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지요. 왜 모릅니까? 다만, 삼공자께서 황제께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군께서 하북을 통일하고, 남쪽의 조조를 정벌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시작하기도 전에 명분상으로 조조에게 밀리게 됩니다. 제 말뜻 아시죠?”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봉기가 원소를 보고 진언을 올렸다.
“주군. 이건 억울한 모함입니다. 삼공자께서는 오로지 원가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서 밤낮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설령 조금 잘못을 저질렀지만, 죄를 추궁하시면 안됩니다.”
원소도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만하지. 조조가 그걸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면 내 손에서 처리하겠네.”
원소가 이야기를 끝내려고 하자, 이번에는 신평이 진언을 올렸다.
“주군 조조가 문제가 아니라 천자의 진노가 문제입니다. 천자께서 황궁이 있는 영천군을 침입한 죄를 물어 원매를 소환하면 어쩝니까?”
쾅-
원소가 분노를 드러내며 탁자를 내리쳤다. 순간 대전 안이 싸늘해졌다.
“그만하라고 했어. 신별가(신평)는 내 말이 우습게 들리는가?”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잘 들어. 이것이 문제가 된다면 내 손에서 처리할 테니. 더는 거론하지 말아.”
원소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서자, 봉기가 화난얼굴로 씩씩대며 심배에게 다가왔다.
“네 이놈. 뭔 수작을 꾸미는 것이냐? 이러는 것이 네 명줄을 재촉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아이고. 무서워라.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어디 찔리는데 있으신가? 허허허- 거참. 이거 무서워서 살겠나?”
“조조와 배를 맞춘 모양인데, 증거라도 나온다면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죽일 놈 같으니라고.”
여전히 심배가 빙글거리며 이죽대자, 봉기는 쌩- 하고 등을 돌려 걸어갔고, 맹대와 진림은 무서운 눈초리로 째려보고는 뒤를 따랐다.
곽도는 어두운 얼굴로 치소에 왔는데, 신평이 따라 들어왔다.
“이 보게. 공칙(곽도). 우리가 잘못 건드린 게 아닌가? 주군께서 그렇게 분노하신 것은 요 근래에 처음일세.”
“심정남(심배) 그 죽일 놈의 새끼 때문에 잘못하면 줄초상을 치르겠구나.”
“그럼 이 모든 게 심정남이 꾸민 일이란 말인가?”
곽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간의 정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신평은 답답했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자 곽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조만간 폐하께서 여기 업성과 남양군으로 삼공자의 죄를 추궁하는 사자를 보낸다고 하시네. 아마 열흘 이내로 오겠지. 그렇다면 다시 공론화 될 것이야. 사실 이 정도면 대의를 중시하시는 주군께서 어느 정도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야 대공자(원담)나 사공자(원상)가 움직일 여유도 생길 터이고.”
“그렇군. 자네의 생각에 일리가 있어. 하지만, 주군의 태도가 너무 강경하셔서 사자가 온다 치더라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이거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큰일 치르겠어.”
“그래. 내가 주군의 의중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나선 게 화근이었어. 일단 자중하고 상황을 살피세. 그러다가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면 심정남을 조조의 간자로 몰아붙이세. 그러면 우리는 빠져나올 틈이 생길 걸세.”
“흐흐흐흐- 역시 자네 머리 좋은 것은 여전하군. 알겠네. 심정남의 계책이 먹히면 그리로 움직이고, 안되면 그 놈에게 다 뒤집어 씌우세. 그렇지 않아도 능청스러운 그 놈을 볼 때마다 재수가 없었어.”
신평이 곽도와 입을 맞추고는 자리를 뜨자, 곽도도 머리를 흔들며 상념을 떨쳤다. 회의에서 보여준 원소의 강경한 태도가 웬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뭐, 안되면 심배에게 모조리 뒤집어 씌우면 되겠지. 이건 네놈이 자초한 일이니 나를 원망 말거라.’
원소는 자신의 치소로 들어와서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손으로 연신 관자놀이를 마사지 했다.
‘어째 하나같이 모두 그 모양이냐? 천자가 뭐가 대단하다고 저리 입방정이야. 휴- 당분간은 참는다. 전풍이나 저수의 기를 꺾어 놓아야 하니까. 나는 반드시 황위에 오를 것이다. 이것을 방해하는 자는 어떤 놈이든 가만두지 않겠다.’
원소의 눈빛은 단호하다 못해 섬찟했다. 그는 황제를 하고 싶은 원대한 계획이 틀어질까 두려웠다. 자신이 공손찬을 멸망시키고 조조를 격파하여 중원을 접수할 때, 원매가 형주까지 점령하면 천하가 대부분 자신의 손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황위에 오를 것이다. 반대를 하는 놈은 모조리 숙청할 생각이었다. 그 거대한 계획을 오전에 심배, 곽도가 막아서니 분노가 치밀었던 것이다.
업성에서 거센 폭풍이 지나가고 있을 때, 남양군 완성에도 거센 풍랑이 불어 닥쳤다.
원매는 치소에서 죽간을 들여다보며 일을 하다가 햐얗게 질린 순유를 보고는 죽간을 내려 놓았다.
“무슨 일이오?”
“우장군. 큰일 났습니다. 폐하께서 황도를 어지럽힌 죄를 물으신다며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시오.”
“그것이······”
순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고개를 돌렸다.
“그건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유가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항상 미소를 걸고 살았고, 어떨 땐 느물거려서 언짢을 때도 있었지만, 이유의 굳은 표정은 낯설었는지라 원매도 긴장했다.
“우장군의 직위를 박탈하고, 잡호장군에 제수한다고 하셨으며, 여기 순공달(순유)에게 우장군을 제수했습니다.”
“그건 어찌 아셨소? 아직 사자가 온 것도 아니잖소?”
“허창에 순치중의 조직이 생각보다 큽니다. 의랑 오석이 내용을 파악하고는 먼저 상황을 전파했습니다.”
원매는 기가 막혀 말이 없었다. 잡호장군이라면 우장군에 비해서 한참 아래에 있었다. 더군다나 순유를 우장군이라니. 이런 부분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이런 자책이 들었다. 어찌 해야 하는가?
“여기에 왔다면 조조가 업성에도 보냈겠지요?”
“그럴 것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대장군입니다. 대의명분을 중히 여기시니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으음-“
원매는 그 부분은 장담할 수 없었기에 답답했다. 그는 가후를 호출했다. 아직 사자가 오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으므로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