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제 75장. 난제難題
찬바람을 맞으며 사냥을 하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었다. 사냥은 그리 소질이 없었는지 원매는 허탕을 치고 돌아왔지만, 병사들은 제법 잡아왔다. 토끼 10마리, 고라니 2마리나 잡아왔다. 오백 명이 먹으려면 조금씩 돌아가겠지만, 솥을 걸고 죽을 쓰니 제법 먹을 만큼 돌아갔다.
원매는 며칠을 이곳에 머물면서 다시 한번 동료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믿고 따르는 장수, 병사들이 많아야 한다. 그는 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을 쉰 원매는 다시 길을 나섰다. 이틀을 더 달려 업성에 도착하자, 반가움에 코끝이 찡해졌다. 그는 봉기를 만나서 그간의 사정을 들었고, 자신을 지지하는 맹대, 진림을 만나서 그들을 격려했다. 자신만의 세력이 생기자 원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원매는 원소를 만나기 전에 전풍을 다시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요즘 우장군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번에 남양군까지 점령하셨구요?”
“그렇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천만에요. 형주군 칠만 오천을 물리쳤는데, 그게 운이라니요. 지나친 겸손은 자만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지난번 일도 해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군요. 하하하하-“
“그때는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실 전별가의 조언이 필요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아버님께서는 공손찬을 멸망시키면 세력을 정비해서 조조를 공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당연하지요. 누구나 그리 생각합니다. 계속 하십시오.”
“그렇다면 전투가 업성과 허창의 중간지대인 하내군 일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전투가 어찌 되리라고 예상하십니까?”
“우장군. 시작도 안 했는데, 그것을 예측하라니요?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전풍은 빙긋 웃으며 손사래를 치다가 원매의 진중한 눈빛을 접하고는 그도 고민에 빠져들었다. 생각한 것은 있지만, 과연 이것이 원매의 기준을 충족시킬까라는 걱정 때문에 고민을 하는 것이다.
“조조는 사방이 적입니다. 남쪽의 손책도 대비해야 하고, 서쪽의 우장군도 대비해야 하지요. 그렇다면 병사를 아무리 모아도 십만이 어려울 것입니다. 그에 비해 대장군께서는 적어도 이십만은 모을 것입니다. 군량 또한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획기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전투는 대장군의 승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획기적인 변수란 무엇을 예상하십니까?”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워낙 전력차이가 압도적이다 보니······ 흠······ 내부에서 크게 반란이 일어났을 때, 조조가 총공격해 오든가, 군량창고의 위치를 어찌 알고 모두 불태워버린다면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군의 본진이 뿌리 채 흔들릴 정도의 내부반란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확률이 너무 낮지요. 또한 군량창고라면 뛰어난 장수가 적어도 일만 이상으로 지킬 텐데,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전풍은 더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투로 두 팔을 벌렸다. 원매는 전풍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관도대전에서 허유의 배신을 제외하면, 실제로 패망한 변수를 전풍이 그대로 짚어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풍이 말했다시피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군요. 만약에 ······.. “
원매는 목소리를 낮추어 대화를 이어갔다.
“허자원(허유), 곽공칙(곽도), 신중치(신평)등이 매우 욕심이 많습니다. 사실 찾으려고 하면 부정을 저지른 것도 꽤 될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이들을 아끼시니 뭐라 못하는 것이지요. 이들이 배신하면 어쩝니까? 그러면 위의 변수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전풍은 안색을 경직시키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매우 치밀 하시군요. 놀랍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엄청난 압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주군의 신임이 워낙 커서 웬만한 비리는 묻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쉽지 않으리라 판단됩니다. 예전에 저감군(저수)이나 제가 그런 부분을 진언한 적이 있는데, 싫은 내색만 하셨고, 아무런 조치는 없었습니다. 덕분에 그들로부터 미움만 단단히 받고 있습니다.”
“심치중(심배)이 허자원이나 곽공칙의 비리를 캐고, 그것 때문에 그들이 배반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상황이 가능하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정말 대책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군께 말씀을 드려도 믿지 않을 테니까요. 머리 좋은 자들이니 바로 대책을 강구할 것이고, 저를 죽이려 들것입니다. 아- 우장군께는 감히 칼을 들이밀지 못하겠지만, 계속 모함을 한다면 그것도 무시 못 할 것입니다.”
“방법이 없다 이 말씀이십니까?”
“아니지요. 확실한 증거가 없는데 목숨을 걸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저들이 제게 이를 갈고 있는 상황이고, 모함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증거 없이 잘못 입을 놀리면 목숨이 날아가니까요. 옳은 일에 목숨을 건다면 아깝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지 의심이 간다고 목숨을 걸 수는 없으니까요.”
원매는 탄식을 터트렸다. 그는 종종 가르침을 받겠다며 전풍에게 감사를 표했다. 밖으로 나온 그의 안색은 어두웠다. 전풍의 말대로 쉽지가 않았다. 살아있는 권력을 쳐야 하는 일이었다. 증거.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허유가 비리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그가 배신할 증거를 어찌 찾는단 말인가? 기가 막힌 상황에 원매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원매는 남양군으로 돌아가면 가후, 이유, 순유를 모아놓고 물어보기로 마음먹고는 곧바로 원소를 찾았다. 원소의 후계자가 되려면 자꾸 공을 세운 것을 보고하고, 안면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물론 원담이나 원상은 끔찍이 싫어할 것이다.
“어서 오너라. 아주 큰 공을 세웠어. 유표의 칠만 오천 대군을 물리치다니. 정말이지 처음에 듣고는 내 귀를 의심했다.”
“장병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전투를 한 덕분입니다. 아버님 건강은 어떻습니까?”
“음-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 이놈아- 탕재 잘 챙기고 있으니 그런 표정 좀 짓지 마라.”
“알겠습니다. 공손찬은 어찌 되고 있습니까?”
“거의 다 됐다. 내년 봄이면 끝이 날 거야. 질기고 질긴 놈이었지.”
“그럼 곧바로 조조를 공격할 생각이십니까?”
“글쎄. 바로는 힘들지. 일년 정도는 병사들에게 휴식도 주고, 군량이나 이런 것도 준비해야지. 이제 조조도 무시 못할 만큼 세력이 커졌어. 너는 힘을 키워서 내 걱정 말고 형주의 유표를 끝장내 버리거라. 네가 형주까지 점령하면 누구도 네 앞을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원매는 눈을 들어 원소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것은 후계자자리를 주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고대 역사를 보더라도 내부의 분란이 있으면 전투에서 예상치 못한 고초를 겪는다고 들었습니다.”
“또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냐? 물론 나도 그들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 부정도 저질렀지. 하지만, 재능은 정말 뛰어나고, 이번 조조와의 전투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이야. 그러니 그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자.”
원소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끊어버리자, 원매는 더는 할말이 없었다. 전풍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막막한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조금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내년 봄에 유비를 앞세워서 여남군을 공략하려고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음-“
원소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같은 원가지만,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면 적이야. 네 뜻대로 하거라. 유비를 앞세운다면 그에게는 어떤 것을 제시할 것이냐?”
“병력 일만을 주었고, 여남군을 점령하면 여수 동쪽을 주려고 합니다. 서쪽은 제가 가지고요.”
“여수 동쪽이면 꽤 큰 땅이야. 그곳이 아무리 망가졌어도 칠,팔십 만은 있을 것이다. 너무 후한 것은 아니냐?”
“조조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입니다.”
“알았다. 어련히 잘 하겠지. 그건 너에게 맡기마. 그리고 원술을 토벌하면 옥새를 반드시 찾아서 가져오거라.”
“당연하지요. 꼭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담이 때문에 답답했던 게 너를 보니 풀리는 구나.”
“형님이 무슨 사고라도 쳤습니까?”
“휴- 정치적인 재능이 아예 없어. 호족들을 적당히 견제도 하고, 어르고 달래면서 이득을 취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놈들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으니. 청주의 백성들이 기주, 연주, 서주로 도주를 한다고 들었다. 백성의 수가 곧 힘인데, 이 미련한 놈이 그걸 모르는구나.”
“걱정 마십시오. 조조만 물리치면 더 이상 큰 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안되면 아버님께서 혼을 내주시지요.”
“사실 형님의 호적으로 입적했으니, 솔직히 뭐라 할 명분은 없어. 하지만, 조조를 물리치고 나서도, 그 버릇 그대로이면 혼을 내줘야지. 그 놈이 너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내가 걱정이 없겠다.”
이후 원소는 원담, 원희, 원상의 걱정을 이어갔다. 원매가 워낙 특출 나게 앞서나가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그들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원매는 원소의 불만과 걱정을 간간히 추임새를 넣으며 들어 주었다.
원매는 업성에 머물면서 답답한 마음이었다. 딱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아, 성을 배회하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형님.”
응? 뒤돌아보니 원상이었다. 이제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상이로구나. 이곳은 어인 일이냐?”
“형님이 업성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았습니다. 어찌 제게는 한번도 찾아주시지 않습니까? 섭섭합니다.”
거참. 원상 입에서 섭섭하다는 말이 나오다니. 참으로 오래 살고 볼일이라 생각했다.
“관중, 한중군에 이어 남양군까지 점령하셨다고요. 이야- 중요한 지역을 모조리 차지하셨군요. 대단합니다.”
“녀석. 빙빙 돌리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솔직히 우리가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지 않느냐?”
“이제부터 친해지고 싶습니다. 형제간인데 언제까지 데면데면하게 굴 것입니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원상이 빙글빙글 웃자, 원매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은 생각할 게 많아서 마음이 복잡하니, 시간이 되면 연통을 보내마.”
원매의 말과는 상관없이 원상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사실 큰형님(원담), 둘째형님(원희)과는 답답해서 말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형님과는 말이 통할 것 같습니다. 형님 휘하에 서량기병도 있다면서요? 그들은 유주기병에 비해서 어떻습니까?”
원매는 그제야 원상의 의도를 알아챘다. 궁금한데 듣는 정보가 한정되어 있으니,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직접 정보를 캐려고 온 것이다. 원매는 한편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이 들어 과장되게 설명을 시작했다.
마초, 방덕의 용맹. 서량에서 기병 이만을 동원하면 어떤 지역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등등. 과장을 보태서 서량기병의 위력을 설명해주었다.
원상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원매가 어딘가 미심쩍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매의 말이 실로 교묘했다. 사실에 근거해서 일부 과장을 하였고, 강한부분만 집중적으로 부각하다 보니 경험이 적은 원상이 말려들었다.
원상은 답답해서 정보를 얻으려 왔다가 왜곡된 정보(원매가 무지 세다.)만 잔뜩 머릿속에 담았다. 원상은 한참을 듣고는 고개를 흔들며 돌아갔다. 원매가 빙긋 웃으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상아. 네 재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아직은 어리고 경험이 적구나. 나는 네가 성숙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모든 것은 다 끝나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