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제 74장 장비익덕張飛益德
“장비는 제 의형제라서 떨어져 있기가 불안합니다. 진도라고 괜찮은 장수가 있는데, 그로 대체하면 어떻습니까?”
“안됩니다. 장비가 아니라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아주 달라는 것도 아니고, 10년만 데리고 있겠다는 것입니다. 시간되면 서로 왕래를 하셔도 되고요. 무리한 요구는 아닙니다.”
원매가 단호하게 자르자, 유비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기병 2천을 주십시오.”
“보병 일만은 약속대로 드리겠습니다. 기병 2천은 돌려주셔야 합니다. 장비는 10년간 데리고 있겠습니다. 이게 저의 제안입니다. 받아들이시든가, 아니면 돌아가십시오. 지금 조조의 책사들이 좌장군을 의심하여 입지가 좁아졌지 않습니까? 솔직히 제가 파격적으로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기병 일천이라도 주십시오. 더는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지원요청을 하면 기병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후로도 기병을 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전투에 꼭 필요한 기병은 절대 주지 않겠다는 말에 유비는 허탈해졌다. 그제야 원매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한 것이다.
“조조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선택한 것이구만. 맞소?”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알고 계시다니 솔직히 말씀 드리지요. 장비는 인질이라고 보셔도 됩니다. 좌장군께서 힘이 강해졌을 때, 제게 칼을 들이밀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최소의 안전장치입니다. 지금 북쪽은 원가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제 뜻에 반해서는 기병을 키우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아- 요동에서 데려올 수는 있습니다. 다만, 배편이 문제가 되겠지요.”
원매는 차를 홀짝 마시고는 지그시 유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박정한 것은 아닙니다. 일만으로 원술을 무너뜨리고 여남군 동쪽을 얻으면 충분히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여남군이 많이 망가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동쪽에 50만이상이 있을 것입니다. 여강의 유훈 정도면 좌장군께서 힘을 키워서 격파할 수 있습니다. 이래도 제가 박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우들과 의논을 하고 더 말씀을 드리지요.”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내일까지는 답변을 주시기 바랍니다.”
유비가 일어서자, 원매는 일어서서 동시에 예를 표했다. 유비는 답답한 마음으로 처소로 걷고 있었다. 힘이 없다는 것이 이토록 서러운 것이다. 그는 장비와 관우를 불렀다. 술을 한잔씩 돌리고는 유비가 무겁게 입을 떼었다.
“우장군의 말은 진심이었어. 일만을 줄 터이니 훈련시켜서 봄에 원술을 공략하고, 동쪽을 가지라고 하더군.”
“형님. 감축 드립니다.”
관우와 장비의 입에서 동시에 축하인사가 터져 나왔다. 유비가 쓴 웃음을 짓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익덕(장비) 자네가 10년 동안 우장군 휘하에서 군을 통솔해야 하네. 그게 조건일세.”
쾅—
관우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 질렀다.
“내 그럴 줄 알았소. 우장군이라고 하나 겨우 25살의 애송이요. 아버지 잘 만나 지금 자리에 앉아있으니 무슨 의협을 알고, 전투를 알겠소? 그저 욕심만 많아서. 건방진 애송이 같으니라고.”
“운장!”
유비가 낮지만 단호하게 소리치자, 관우가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내가 몇 번을 말했느냐? 호족들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라고. 물론 대부분은 네 의견이 맞다. 어디를 가나 철없는 놈들이지. 하지만, 우장군은 다르다. 단적인 예로 그의 무예는 중원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내가 단언한다.”
“아니. 형님. 농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니오?”
“네놈이 이 형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냐? 진정 경을 쳐야 말을 들을 것이냐?”
“알겠습니다요.”
관우는 유비의 눈을 피하며 술을 마셨다. 유비는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진짜 화가 나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비는 정색을 풀고는 장비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내가 남겠소. 솔직히 형님이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은 아니잖소. 군사 일만 주고, 여남군 점령하면 그거 절반 뚝 떼어주고, 조조로부터 보호도 해준다고 했잖소. 괜찮은 조건이오. 원가라면 최고의 명문가이니 배울게 많을 것이오.”
관우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원매가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우의 걱정과는 반대로 장비는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고맙다. 내 너의 마음을 잊지 않으마. 십 년이 길긴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이다. 우리가 황건적을 무찌르기 위해 의용군을 일으킨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년이다. 그러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거라. 때가 되면 데리러 올 것이다.”
“걱정 마시오. 지금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직 몇 달은 남지 않았소. 그런데, 진정으로 우장군의 무예가 그리 출중하오?”
“그래. 정말이지 처음에 봤을 때, 풍기는 기도가 어찌나 대단하던지 숨이 막히더구나. 물론 너나 운장 만큼은 아니지만. 겨우 25살인 것을 감안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중원제일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아무튼 대장군이 엄청난 자식을 두었어.”
관우는 유비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믿기지도 않았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원매란 놈의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자신과 아우인 익덕을 앞에 두고, 원매의 무예를 칭찬하니 기분이 매우 언짢았다.
이튿날.
장비는 원매를 만나러 치소로 향했다. 그도 원매에 대한 궁금증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종사관의 안내를 받아 치소로 들어섰을 때, 원매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비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장비(33)] 무력:99, 통솔력:94
만인지적. 전략, 전술, 지략 모두 빠지지 않는 최상급 장수. 군자는 경애했지만, 소인에게는 경솔했다. 부족한 사람, 부하들에게는 상당히 냉혹하게 처신했는데, 범강/장달에게 죽은 것을 보면 안타깝다.
“우장군을 뵙습니다.”
“장익덕! 처음 보는군. 자- 이리로 앉게나.”
원매가 가리킨 자리로 앉으며 장비도 충격을 받았다. 유비에게 말을 듣긴 했지만, 설마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직접 보니 유비의 말이 부족함이 있었다. 그만큼 원매에게서 풍기는 위압감은 대단했다.
“무예가 대단해보이십니다. 이토록 압박을 받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그런가? 내가 무예의 끝을 보고 싶어서 계속해서 대련을 하고 무예를 연마하고 있다네. 자네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내 심장이 쪼그라들 정도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나와 대련을 해보세.”
“칼에는 눈이 없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하하하- 당연하지. 천하의 용장이라는 이각도 이 손으로 죽였지. 이각은 자네도 알지?”
“물론입니다. 이각, 곽사라면 서량의 대단한 용장 아닙니까?”
“그렇지.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힘을 다해서 천하를 안정시키세. 자네라면 선봉을 맡겨도 충분하고, 대군을 맡겨도 문제가 없을 것이야. 10년일세. 딱 10년만 내 휘하에서 군대를 지휘하고, 돌아가게. 약속하겠네.”
“알겠습니다.”
장비는 원매의 말에 곧바로 수긍했다. 이미 유비에게 일만의 병사를 지원해준 마당에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자네에게 별부교위를 내리도록 하지. 사실 더 높은 직책을 주고 싶지만, 내 주위에 보는 눈이 많아서 힘들어. 공을 세우게. 그러면 내가 합당하게 포상도 하고, 직위도 내려줌세.”
“감사합니다.”
장비는 원매로부터 이런저런 당부사항을 듣고는 치소를 물러났다.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그의 얼굴을 할퀴며 지나갔다. 덕분에 잠시 들떴던 그의 기분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원매. 묘한 매력을 지닌 사나이다.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위압감으로 볼 때 적어도 백초지적은 될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나는 그 나이 때 결코 저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원매는 유비에게 형주군 일만을 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장비를 전예에게 배속시켜 병사들을 훈련시키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장안에 있던 고람을 불러 들였다. 고람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장위, 손경, 파재가 관중/한중을 잘 지킬 것이기에 곧바로 남양으로 달려왔다. 사실 겨울이라 험한 산을 넘어 적이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198년 12월.
“어서 오시게. 얼굴을 못 봐서 잊어먹는 줄 알았네.”
“우장군께서도 강녕하셨습니까?”
“덕분에. 자- 이리로 앉으시게.”
원매는 고람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었다. 고람은 처음부터 원매에게 큰 힘이 되어준 장수였다. 또한 능력도 출중하여 원매의 모든 군사들을 지휘하는 감군의 위치에 올라 있었다. 여러 신변잡기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원매가 당부의 말을 꺼냈다.
“이곳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내가 업성에 다녀와야겠어. 그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해서, 고감군(고람)이 내대신 이곳을 잘 관리해주시게.”
“알겠습니다. 제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까?”
“좌장군(유비)군대가 같이 있으니 혹여 불협화음이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게. 그간 새로운 장수들이 꽤 되니 인사라도 하고, 잘 관리해주게. 조조가 어찌 나올지 모르니 경계를 게을리하면 안되네.”
“명심하겠습니다.”
“부탁하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전예에게 맡기려고 했어. 하지만, 명색이 감군인데 자네가 맡는 게 옳은 일이라 생각했네. 이별가, 가별가, 순치중과 의논해서 처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야.”
“책임이 막중하군요. 반드시 믿음에 부응하겠습니다.”
원매는 고람에게 업무를 볼 수 있는 치소를 만들어주었다. 하북에 가서 상황을 좀더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는 여러 일을 마무리 지은 후, 곧바로 퇴청했다. 원매가 남양군에 머물면서 황옥, 봉영도 이곳으로 옮겨와서 살고 있었다.
원매는 아무 말도 못하고 조금씩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원패를 보자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기뻤다. 그저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다음날, 업성에 다녀온다고 하자, 황옥과 봉영은 놀라긴 했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워낙 바쁜 원매였다.
사마구와 기병 오백을 거느리고 업성으로 출발했다. 길은 멀고 험했다. 무관을 넘어, 장안-하동-업성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무관, 상당군을 지날 때는 눈이 쌓여 고생을 해야 했다. 상당군을 지날 때 날이 어두워지자, 인근 마을로 향했다.
산골이라 변변한 숙박시설이 부족했기에 넓은 공터를 잡아 임시막사를 구축했다. 가운데 공터를 중심으로 둥글게 만들었으며, 공터에는 불을 크게 피워놓았다. 사마구는 시간대별로 경계조를 작성하여 병사들에게 숙지를 시켰다.
만약을 대비하여 한번에 50명이 경계를 섰고, 말들은 가운데 공터로 몰아 넣었다.
원매는 불편한 잠자리에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지만, 입 밖으로 불평을 내뱉지는 않았다. 모두가 고통스러웠던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자 솥을 걸어 쌀과 말린 채소, 고기를 넣은 걸쭉한 죽을 만들어 허한 뱃속을 달랬다.
“사냥을 하면서 조금 여기 머물다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간 너무 쉬지 않고 달려오셨습니다.”
“그럴까? 역시 내 생각을 해주는 것은 사마구 자네밖에 없어. 그런데, 짐승들이 있을까?”
“말 타고 달려보시지요. 잡으면 좋고, 못 잡으면 또 어떻습니까? 마음 편하게 며칠 쉬시다 가시는 것이지요. 잠자리가 불편하지만, 괜찮지 않습니까? 병사들 중 날랜 자들을 뽑아서 들짐승을 잡아오게 시키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밥 먹고 가보세.”
원매는 사마구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았다. 실로 오랜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