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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73화 (73/253)

# 73

제 73장 유비현덕劉備玄德

순유는 자신이 가진 첩보조직을 이용해서 오석에게 접근했다. 오석은 당시 의랑을 맡고 있었는데, 조조의 의심을 피해 유비에게 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세작으로부터 죽간을 받아 들은 오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의 횡포에 분개를 하고 있던 오석은 원매가 밖에서 흔들어준다고 하자, 당차게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조심스레 유비를 찾았다. 11월 말이라 저녁이 되자 상당히 쌀쌀했다.

“아니. 오의랑(오석)께서 웬일이십니까?”

“좋은 술이 생겨서 술이나 마시고 싶어서 왔습니다.”

유비는 내심 의아했지만, 오석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비장함을 발견하고는 그를 실내로 이끌었다. 오석은 떠들썩하게 신변잡기를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고, 유비에게 따라주었다. 그의 입과는 다르게 손은 빠르게 물을 찍어 글씨를 쓰고 있었다.

유비는 놀라움을 뒤로하고, 맞장구를 치며 호응했다. 오석이 품에서 죽간을 꺼내 상 밑으로 전달했다. 유비는 여전히 오석의 신변잡기에 말 맞추면서도 눈은 죽간을 빠르게 훑어갔다. 모두 읽은 후, 돌돌 말아 이불 밑으로 숨기고는 그도 물로 글씨를 썼다.

-고맙소. 연락 드리겠소.-

한시진(두 시간)가까이 이어진 술자리는 오석이 자리를 일어서면서 파했다. 유비는 술에 취한 듯, 일찍 잠을 잔다고 떠들썩하게 말하고는 불을 껐다. 유비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조조의 신하로 전락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정욱도 그렇고 조조 책사들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아. 원매를 믿고 실행해야 하는가?’

며칠을 고민하던 유비는 결국 원매의 제의를 수락했다. 조조휘하에서 숨죽이며 살기에는 가슴속에 품은 야망이 너무 컸다. 평범하게 살라는 것은 그에게 죽으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198년 12월.

남양군 완성 원매치소.

“유비가 내 제의를 수락했소. 이번에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전투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오. 다만, 조조를 흔들어서 유비가 탈출하도록 돕는 것이오. 전예! 이통! 문빙!”

“예. 우장군.”

“그대들은 보병 구만을 이끌고 영천군으로 천천히 이동하면서 대치만 하시오. 조조도 대규모전투를 원하지 않을 것이니 대치만 하시오. 구체적인 것은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방덕!조독!”

“예. 우장군.”

“그대들은 기병을 이끌고 영천군 북부를 흔드시오. 아- 당연히 싸울 필요가 없으니 주요 성은 우회하시오. 기병은 우리가 우세하니 저들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오. 뭉쳐서 다니다가 전투가 필요하면 치고 빠지시오. 나는 언제라도 전투를 벌일 준비가 되어 있소. 다만, 쓸데없는 피를 흘리기 싫어 이리하는 것이오. 알겠소?”

“명을 따르겠습니다.”

“좋아. 내일 아침에 출병하시오. 방한 장비를 단단히 준비하고, 병사들이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하시오.”

“예. 우장군.”

장수들이 물러가자, 원매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병력을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다. 기병들은 북방출신이었기에 겨울출병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원소가 공손찬과 1월에 대규모 전투를 벌여서 승리한 적이 있었다.

허창성.

조조는 화톳불을 쬐며 생각에 잠겼다. 원매가 그의 심기를 건든 이후로 두통에 시달리는 횟수가 늘었다. 한번 두통이 밀려오는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원매 이놈을 다시 보면 그 잘난 목을 잘라버리고 싶구나.’

조조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빠르게 걸어오는 순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순욱의 안색은 평온해 보였지만, 눈빛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원매가 대군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접경지대에서 연락이 왔는데, 보병은 십만으로 추산되고, 기병이 일만을 넘는다고 합니다. 기병은 벌써 영천군 북부지방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런 개새끼가 다 있나?”

조조는 순간 욱하여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편두통이 밀려오자 ‘끙-‘하고 주저 앉았다.

“아니 이 자식은 나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러는 거야? 지금이 한겨울이야. 한겨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저놈의 의도가 무엇이냔 말이야?”

“글쎄요. 시위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진짜 전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장료를 내놓으라고 시위를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대규모 군대를 일으켰으니 주군께서도 군대를 일으켜서 대응하셔야 합니다.”

“그럼 자네 생각은 대치만 하다가 끝날 것 같다 이건가?”

“아마 그럴 것입니다. 전투는 어찌 될지 모르니 당장 군대를 이끌고 맞서야 합니다. 전투를 하여 양쪽 다 큰 타격을 입는다면 주군이 훨씬 불리해집니다.”

조조는 말없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다. 순욱이 왜 불리하다고 했는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정예군이 큰 타격을 입는다면 조조는 훌륭한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원매의 영토인, 한중/관중은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격하기 힘들었고, 결정적으로 원소가 뒤에 버티고 있으니 다른 제후들이 원매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조가 신속하게 명령을 내리자, 영천군에 주둔하고 있는 칠만의 대군이 움직였다. 허창성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백성들은 또다시 전쟁이 터진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었다.

유비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곧바로 조조에게로 달려갔다.

“장군. 원매가 군대를 일으켜 변경을 침범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미약한 힘이지만 보태겠습니다.”

조조는 말없이 유비를 바라보았다. 이자의 속내가 뭘까? 하고 고민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유비의 청을 수락했다.

유비는 관우, 장비등 주요 장수들과 문관들, 자신을 따르는 오백의 병사들을 점고하며 준비시켰다. 그들은 이미 유비에게 전해들은 말이 있어서 비장한 신색이 역력했다.

드디어 영천군 곳곳에 주둔하고 있던 조조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비군은 조조군의 본대에 배속되었다. 조조의 본대가 출병할 때, 정욱이 급히 달려와 조조에게 진언을 올렸다.

“주군. 이 기회에 유비를 제거하십시오. 믿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가 만약 도주하여 힘이라도 키우는 날이면 그때는 후회해도 늦습니다.”

“그리하면 내가 덕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내가 덕으로 대하면 그도 내 뜻을 알겠지.”

“그렇게 해서 알아듣는 자도 있지만, 유비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어수선한 틈을 타고 도주라도 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자네의 걱정대로 유비의 야망이 커서 문제라면, 설령 도망가더라도 어디로 가겠는가? 원매가 야망이 큰 유비를 받아주겠는가? 그렇잖아? 이제 이 일은 그만하지.”

조조는 정욱이 간언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는 갑옷을 단단히 챙겨 입었다. 그들은 군대를 이끌고 천천히 행군하여 접경지대인 부성현 일대로 나아갔다.

원매기병이 휩쓸고 지나갔다고 했지만, 피해규모는 미미했다. 마치 경주를 하듯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조조는 순욱의 의견을 기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괘씸한 놈. 감히 내게 이런 식으로 나오는 놈이 있을 줄이야.’

부성현 일대에 이르자, 원매군이 동그랗게 방원진을 편성하고 있었다. 끝없이 일렬로 늘어선 방원진을 보고 조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십만대군이라 하여 믿지 않았는데, 오히려 십만이 넘어 보이는 엄청난 규모였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자, 원매군은 소리를 지르고, 북을 쳤다.

그리곤 불화살이 일제히 날아왔다. 조조군도 방책을 치고 있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장병들은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치를 하는 미묘한 상황이 며칠간 이어지며 병사들의 피로가 누적되자, 밤 경계가 다소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본군 끝자락에 위치해 있던 유비는 한밤에 일어나 장병들을 점고했다. 은밀하게 준비를 한 후, 막 날이 밝아오는 새벽에 장비와 관우를 선봉에 세워 관문을 돌파했다.

생각 치도 못한 내부의 기습에 방책의 관문은 힘없이 무너졌고, 유비군은 유유히 빠져나갔다.

둥둥둥둥—

급하게 경계병들이 상황을 전파했고, 조조도 북소리를 듣고 잠결에 일어났다. 사방은 희미하게 밝아 오고 있었고, 새벽이라 매우 추웠다. 병사들이 가장 움직이기 싫어하는 시간대였다.

장병들이 불만에 가득한 모습으로 꾸역꾸역 기어 나왔다. 관문이 부서져 열려있는 것 빼고는 조용했다. 원매군의 공격신호도 포착되지 않았다.

“왜 북소리가 난 거야?”

조조가 막사를 벗어나 찬바람을 맞으며 소리를 질렀다. 정욱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보고했다.

“주군···.크 큰일 났습니다. 유비가 도주했습니다.”

“도주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도주를 한다면 어디로 한다고. 설마 원매에게로 갔어?”

“아닙니다. 남쪽으로 갔습니다.”

“남쪽? 그럼 원술한테 간 거야?”

조조는 헛웃음이 나왔다. 평소 한의 충신 어쩌고 고고한척하더니, 역적 원술에게로 도망을 친 것이다. 조조는 급히 하후연에게 기병을 이용해 추격을 명령했다.

하후연이 급히 기병을 점고했지만, 이각(30분)이 소요되었다. 그것도 난리를 쳐서 가능했다. 급히 추격했지만, 유비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사이에 벌써 사라진 것이다.

하후연이 더 수색을 하였지만, 찾지 못하자 조조에게 돌아와 죄를 청했다.

“묘재(하후연). 네 잘못이 아냐. 작정하고 도주한 놈이야. 이각이면 어디든 벌써 숨었겠지. 괘씸한 놈!”

조조는 이런 상황이 답답했다. 벌판에서 싸우지도 않고 찬바람이나 맞고 있으니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다. 그렇다고 전투를 하자니, 애꿎은 병사들이 대거 희생될 테고,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정중덕(정욱). 원매는 아주 젊은데, 어찌 이렇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갈까?”

“지금 원매 주변에는 이유, 가후, 순유가 책사로 있습니다. 이유, 가후는 서량출신이라 정확히 모릅니다. 다만, 순유는 잘 압니다. 결코 순문약(순욱)에 뒤지지 않는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순유가 계책을 내는 것 같습니다.”

조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순욱으로부터 원매의 책사로 순유가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걸 정욱이 다시 끄집어내자 순유를 놓친 것이 더욱 속이 쓰렸다.

십일동안 아무런 전투도 없이 버티던 원매는 단계적으로 철군을 개시했다. 엽현에 곽준이 오천으로 지키는 가운데, 기병을 맨 뒤에 세워놓고, 철군이 이뤄진 것이다.

조조는 기가 막힌 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공격하면 꽤 전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도 엄청난 타격을 입어야 할 것이다.

“주군. 군대를 물리시지요. 장병들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동상 걸린 병사들도 많고요.”

정욱이 간절하게 철군을 진언했다. 조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죽일 놈의 원매란 애송이게 놀아났다는 것이 분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원매와 적대하는 것은 원소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기에 답답해도 참아야 했다.

완성. 원매치소.

[유비(37)] 무력:77, 지력:78, 정치력:82, 통솔력:80

원매는 유비의 능력치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를 만났을 때의 충격은 없었다.

“우장군. 호의를 베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좌장군(유비)께서 어려우신데, 제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야지요. 자- 이리로 앉으세요.”

원매와 유비는 차를 마시며 신변잡기를 떠들어댔지만, 의중을 들여다보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유비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죽간의 내용은 참입니까?”

“그렇습니다. 항복한 형주군 일만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원술은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니 일만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제가 기병 이천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내년 봄까지 군대를 정비하시어, 원술을 격파하고 여남군을 점령하십시오.”

“흠- 그 후에 여남군 북쪽과 원술은 돌려드리면 되는 것이지요. 남쪽은 제가 영지로 차지하고요.”

“그렇습니다. 기병도 돌려주시고요. 형주군 일만은 온전히 드리는 것이니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 이후에는 좌장군께서 그곳을 기반으로 힘을 기르시면 됩니다.”

유비는 빤히 원매를 쳐다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옥새도 포함이 되겠지요?”

“당연히. 그게 없어진다면 저는 좌장군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잘 챙겨주시고. 나중에 조조가 압박을 하면 그것은 제가 다 막아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저의 진심을 아시겠습니까?”

“그게 다입니까?”

“뭐. 감사를 표하고 싶으시다면 장비를 빌려주십시오. 제가 십 년 만 객장으로 데리고 있다가 돌려드리겠습니다. 우애가 돈독하다고 들었습니다. 필요하면 만나러도 오시고요. 딱 십년입니다.”

유비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일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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