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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71화 (71/253)

# 71

제 71장 은근한 협박脅迫

198년 11월. 건안 3년.

원매가 남양군을 점령하고 숨 고르기를 하며 영토를 안정시키고 있을 때.

9월 조조는 유비와 함께 여포를 공격했다. 원술이 여포를 도왔지만, 결국 조조에게 패배했다. 그 해 11월에 하비성이 함락되면서 여포는 멸망했다. 조조는 원술로부터 구강군, 예주 동쪽을 빼앗았고, 여포로부터 서주를 빼앗아 강력한 제후로 거듭났다.

여남군. 평여현. 원술치소.

원술은 수춘성을 조조에게 빼앗기고, 예주의 절반을 빼앗겨 여남군과 그 일대를 세력으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워낙 풍요로운 지역이라 원술이 정신을 차렸다면 재기의 기회가 있었지만, 지나친 낭비로 인해서 재정적자가 지속되었고 파탄 나기 일보직전이었다.

“휴- 짐이 저런 무지몽매한 조아만(조조)에게 밀리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구나.”

원술이 바닥이 꺼져라 탄식을 터트리자, 곁에 있던 염상이 간언했다.

“대장군(원소)의 삼남인 원매가 지금 남양군을 점령하여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유표가 보낸 칠만의 대군을 격파할 정도로 힘이 강성하다고 합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십시오. 여포가 무너졌습니다. 분명히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때는 늦습니다.”

“공이 다녀오시오.”

원술은 힘없이 허락했다. 아직 거대한 여남군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원술의 처량한 음성을 뒤로하고, 염상은 남양군으로 향했다. 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오일을 달려 남양군 완성에 도착했다.

염상은 이곳으로 오면서 원매의 능력을 다시 실감했다. 백성들의 상태가 좋아 보였고, 곳곳에서 검문을 하는 병사들의 사기도 매우 높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종사관이 나와서 염상을 치소로 안내했다. 원매는 미리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지라, 냉막한 표정을 지으며 염상을 맞이했다.

[염상(36)] 지력:70, 정치력:75

원술이 칭제를 하려고 하자, 주문왕 고사를 내세우며 옳지 않음을 간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중仲(원술이 세운 나라)에서 온 염상이라고 합니다. 폐하께서는·········”

원매가 손을 들어 염상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폐하는 허창에 계신데, 무슨 말을 하시는가? 또 중은 어디 있는 나라인가?”

원매의 냉철한 질타를 받은 염상의 얼굴은 수치스러움에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주군인 원술을 이대로 죽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중은 예주와 양주일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도 우장군과 같은 원가입니다.”

“그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황제가 되었으니 조공이나 바쳐라! 이건가?”

“아닙니다. 극악무도한 조조가 여포를 쳐서 무너뜨렸고, 이제는 폐하를 공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같은 원가로서 모른척하지 마시고 도움을 부탁 드립니다.”

원매는 속으로 욕설이 터져 나왔지만, 이유로부터 들은 말이 있어서 참았다.

“부탁이 무엇이오? 두루뭉실하게 말고, 정확하게 말해보시오.”

원매가 호의적으로 나오자, 염상의 인상이 조금 펴졌다.

“군량 십만 섬만 차용해주십시오. 반드시 내년 가을에는 갚겠습니다.”

“생각을 해보리다. 며칠간 이곳에 머물러 계시오.”

원매는 염상을 객사에 머물게 하고는 이유를 찾았다. 이유는 빙글빙글 웃으며, 차를 마실 뿐 말이 없었다.

“왜 말이 없으신 게요? 아까는 화가 나더라도 참고 들어주라고 해서 열심히 들었소. 십만 섬을 지원해달라고 하더군. 나참— 가당치는 않은 말을 들어야 하다니.”

“오만 섬을 지원해주십시오. 그래도 감지덕지할 것입니다. 지금 조조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몇 달 안에 끝장을 보려고 할 것입니다. 궁지에 몰리면 우장군께로 오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 제정신이 아닌 놈을 내가 왜 받는단 말이오? 조조가 공격할 때 같이 공격해서 땅을 뺏어 버리고 싶구만. 능력도 없는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황제를 참칭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돼.”

원매가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쏟아내자, 이유가 눈을 반짝였다.

“유독 원술에게는 악감정이 있으신 듯 합니다.”

“황제를 하고 싶으면 이를 악물고 힘을 길러서 떳떳하게 황제가 되던가? 힘이 없으면 그냥 있을 것이지 왜 칭제를 해가지고 원가를 욕 먹인단 말이오?”

“호오~ 그럼 강력한 힘을 가지면 황제를 해도 된다? 이런 말입니까?”

“못할 것은 무엇이오? 한을 세운 유방도 따지고 보면 무뢰배에 겨우 정장출신이오. 나는 한고조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오. 어떡하든 살아남아서 승리했고, 황제에 올랐으니 성공한 인생이오. 그에 비하면 원술이 하는 행동은 한심하기 이를 데 없소. 조만간 조조가 공격할 텐데, 아마 한 달도 못 버티고 죽을 것이오. 멍청한 인간 같으니라고.”

“바로 그것입니다. 멍청하니까. 그걸 이용하자는 것이죠. 힘이 없어지면 분명히 도움을 청할 것이고,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결국 우장군께 의지하려고 올 것입니다. 그러면 적당한 현하나 줘서 가둬버리고, 옥새를 빼앗으면 됩니다."

“옥새를 어찌하면 좋겠소? 아버님께 바쳐야 하는 것 아니오?”

“그전에 한가지 묻겠습니다. 황위에 오르고 싶습니까?”

“물론이오. 무뢰배 유방도 한일을 원가의 핏줄인 내가 못할 것은 없소. 기회가 되고, 힘이 된다면 반드시 황제에 오르겠소.”

“그래도 이런 질문에는 조금 거절하는 시늉이라도 내시고,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셔야지요. 흐흐흐흐- 너무 노골적이십니다.”

“하긴 사마구가 나보고 뻔뻔하다고 하더이다. 자— 내 대답을 들었으니 그 다음을 말해보시오.”

“원술을 받아들일 때, 기병들을 도적으로 위장하여 중간에 공격해서 옥새를 빼앗으십시오. 그리고 모른척하며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리고 힘을 길러서 중원을 대부분 평정하시면 그 때 황제에 오르시면 됩니다. 오만 섬은 원술의 마음을 잡아두기 위한 것이니 아까울 것 없습니다.”

원매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역사상으로 원술이 조조에게 힘도 못쓰고 망하는 것은 맞는데, 그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랐다. 다만, 공손찬이 멸망하고 원소와 조조의 전투가 시작되므로 조만간 조조가 원술을 공격할 것임은 자명했다.

“그럽시다. 가별가에게 원술/조조의 행동은 하나도 빠뜨리지 말고 파악하라고 하시오. 분명히 일이 터질 것이오. 나는 꿀물이나 한 사발 갖다 놓으면 되겠군.”

“알겠습니다.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이유가 예를 표하고는 원매를 대신하여 일을 처리했다. 위연이 오천의 군사를 이끌고 오만 섬을 평여현으로 운반했다. 중간에 멋모르는 도적들이 달려들었다가 위연의 칼 아래 고혼이 되었다.

원술은 오만 섬을 받자,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염상이 눈물로 간언을 올렸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 무렵 제대로 녹봉마저 지급되지 않았고, 원술 휘하의 주요 장수들은 자신의 근거지에 할거하며 반독립적인 세력이 되어 있었다.

허창성. 조조치소.

원매가 원술에게 군량을 지원했다는 소식은 조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조조는 순욱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요 원가의 쥐방울 만한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가? 같은 원가라고 동정심이 생겨서 저리 하는 것은 아닐 테고.”

“동정심은 아닙니다. 원매는 제 사람에게는 너그럽지만, 적이라고 판단되면 한없이 독해지는 사람입니다. 주군께서 여세를 몰아 원술을 토벌하고 여남군을 점령하려고 할 때, 딴죽을 걸 것이 분명합니다. 유표의 칠만 대군을 하루 만에 격파했고, 겨우 삼 년 만에 관중, 한중, 남양까지 얻었으니 절대 만만히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지난번에 원매를 흔들었으니 주군께 앙심을 품었을 것입니다.”

“이유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유를 품은 것이 알려지면서 원매의 처지가 상당히 곤혹스러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유유히 풀고 나왔습니다. 지금 남양군에 십만 정도의 정예병이 모여있다고 하니, 원매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이런 애송이자식의 눈치까지 봐야 한단 말인가? 천자를 모시는 내가 말이야?”

“원가를 적수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 원소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원가와 척을 져서는 안됩니다. 사실 원매를 흔들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 내 실책이야. 그 어린 놈이 이렇게까지 클 줄은 낸들 알았겠나? 그럼 어찌 했으면 좋겠어?”

“제가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자네가? 만약에 그 놈이 자네를 억류하면 어쩌려고?”

“지난번에 곽봉효(곽가)도 무사히 오지 않았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어쩌면 협상이 잘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듭니다. 원매는 사고방식이 개방적입니다.”

조조는 순욱을 몇 번 말리다가 조심히 다녀오라고 당부를 하며 보내주었다. 순욱은 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남양군으로 들어섰다. 벌써 11월이라 날은 꽤 쌀쌀했다.

남양군 완성. 원매치소.

[순욱(35)] 지력:96, 정치력:99, 통솔력:56

조조의 장자방. 왕좌지재로 불렸으며, 조조는 모든 일을 처결할 때, 순욱의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원매는 순욱을 빤히 바라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잘생기고, 머리 좋고, 집안 좋고, 거기다가 최고의 책사로 조조에게 인정을 받는 순욱이었다.

“어떤 일로 오셨는가?”

“폐하께서 허창에 계신데, 원공로(원술)가 참담하게도 칭제를 했으니 역적입니다. 그런데 우장군께서는 어찌 그런 역적에게 군량을 지원해주시는 것입니까?”

“그것까지 내가 말해줄 필요성은 못 느끼오. 내가 그대의 주군인 조목사에게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대가 잘 알고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오셨소?”

“주군께서는 우장군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십니다.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신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시오.”

순욱의 눈에 이채를 띠며 반짝였다. 원매가 나이는 어리지만, 표정의 변화도 별로 없었고 노련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원술의 영토를 반반 나누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목사가 원술을 공격할 때, 내가 뒤통수라도 칠까 봐 그러시오?”

“아닙니까?”

“만약 순욱 당신이 나를 따른다면, 조목사가 원술을 어떻게 하더라도 상관치 않겠소.”

노골적인 원매의 말에 순욱은 살짝 얼굴을 경직시켰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농이 과하시군요. 아직 제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참. 씨도 안 먹히는 구만. 여남군 평여현을 기준으로 북쪽을 내가 가질 터이니, 나머지는 조목사가 차지하시오. 그리고 원술은 내가 데리고 갈 터이니, 손대지 마시오.”

“저의 주군께서 거절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뭘 어떻게 해? 뒤통수 치는 거지. 여기 보병 십만, 기병 일만이 있고, 필요하면 서량에서 기병 일만은 더 데려올 수 있지. 조목사가 원술을 치러가면 내가 바로 이 병력을 이끌고 허창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거야. 어떻소? 이래도 조목사가 거절할 것 같소?”

“주군이 거절할 수가 없겠군요.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하나 더. 지금 조목사가 여포를 쳐서 서주를 평정하고, 예주를 많이 차지해서 영토가 넓어졌지만, 아직은 불만세력이 많아서 힘들 것이오. 그곳이 원래 원가의 영역이니까. 내가 일년 동안 얌전히 있을 테니, 그 동안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시오.”

“무엇을 대가로 원하십니까? 매우 놀라운 제안이군요.”

“뭐, 별거 아니오. 여포의 부하로 있다가 항복한 장료라고 있을 것이오. 내 놓으시오.”

순욱의 얼굴이 굳어졌다. 장료는 조조가 크게 기대를 하고 있는 장수였다. 원매가 쐐기를 박았다.

“잘 생각하시오. 일년 동안 내가 참아주면 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오. 그거에 비하면 비리비리한 장료 한 명 주는 것이 뭐가 아깝다고는 말 못할 것이오.”

“주군께 여쭈어 보겠습니다.”

“12월말까지 결정하시오. 그럼 조심히 가시오.”

원매의 냉정한 축객령에 순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밖으로 나왔다. 원매의 제안은 괜찮았다. 서주와 예주를 막 평정했기에 기반을 다질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원매가 강력한 군사력으로 국경을 침범하기 시작하면 조조는 매우 골치가 아플 것이다.

‘그거 참. 묘한 곳을 찔러 들어오는구나. 장료가 괜찮은 장수이긴 한데.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괜찮은 장수임에 틀림없어. 일년이면 어느 정도 서주와 예주를 안정시킬 것이다. 휴— 주군을 뵙고 말씀을 드려보자.’

순욱은 빠르게 허창으로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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