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제 62장 가후賈詡의 제안提案
소칙은 별가를 제수받은 후, 순유로부터 여러가지 제반사항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있었다.
"제 임무가 꽤 막중하군요. 관중 전체를 둘러보며, 관리들을 살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어렵지요. 그래서 기병을 지원해 드릴 터이니 반드시 동행하십시오. 항상 행선지를 알리시고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별가를 제수해주신 것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별가면 꽤 높은 벼슬 아닙니까?"
"높지요. 소별가(소칙)께서 받은 별가는 어찌 보면 임시직입니다. 능력을 발휘하면 상설직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높은 지위지만, 동시에 불안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시간을 충분히 줄 터이니, 능력을 발휘하여 기회를 붙잡기 바랍니다."
소칙은 순유의 냉정한 말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별가라는 벼슬을 받았다고 언제까지 기뻐할 수는 없었다.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소칙은 살짝 얼굴을 굳히고, 순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는 각 군별로 작성된 여러 개의 죽간이 있었다.
밖으로 나서자 기병 일백이 벌써 대기를 하고 있었다. 소칙은 원매의 발 빠른 일 처리에 혀를 내둘렀다.
원매는 성벽 위에서 기병과 함께 떠나는 소칙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빠른 것 아니오? 며칠 쉬면서 업무를 파악하고 보내도 될 터인데."
"소별가가 강직합니다. 두 말을 못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것을 반길 것입니다. 그러니 빠른 것은 맞지만, 괜찮을 것입니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 같소이다?"
"하하- 말을 하고 보니 그렇군요. 이 기회에 우장군(원매)께서도 조금 여유를 가지고 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고려해 보겠소."
원매는 빙긋 웃으며 순유의 진언을 받아 들였다.
원매는 저녁이 되어 퇴청하려고 준비를 할 때, 이유가 빙긋 웃으면서 '똑똑-'하고 문을 두드렸다.
"퇴청을 준비하시는군요. 보고할 게 있는데, 흠......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지금 하시오. 조금 늦게 퇴청하면 되니까요."
원매는 이유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종사관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명했다. 이유는 차를 한모금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
"지난 번에 남양군을 공략할 방법에 대해서 지시하셨지 않습니까?"
"그렇지. 벌써 준비가 되었소이까?"
"아직 보고를 드릴 만큼 구체화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우장군을 찾아뵌 것은 남양군을 직접 다녀올까 해서지요. 허락하신다면 장수와 가후를 만나 설득을 해보겠습니다. 그들도 서량출신이고, 동상국(동탁)휘하에서 같이 근무를 했기에 안면이 조금 있습니다."
"나이가 있으시니 말려야 하는데.......미안하오. 조심해서 다녀 오시오. 그리고 가후가 상당히 껄끄러운 인물이니, 조심해서 상대해야 합니다."
"가후는 아주 영특한 인물입니다. 도독의 사람이 된다면 천군만마가 될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죽여야합니다. 두고 두고 후환이 될 자를 살려둘 수는 없으니까요."
"아아- 너무 앞서 나가지 맙시다. 가후는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소. 최대한 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추진하고, 최악의 경우 조조에게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 때는 이별가의 뜻대로 합시다."
"명심하겠습니다. 제가 이래서 악당 소리를 듣나 봅니다.흐흐흐흐-"
"난 어설픈 자는 싫소. 글을 많이 읽어 명성이 높아도 실무능력이 없는 자는 관심이 없소. 이별가는 오로지 능력 하나만 보고 내 곁에 두고 있으니, 이번에도 능력을 발휘해 보시오. 그리고 갈 때, 기병 일백을 내줄 터이니 호위병으로 데려가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겠습니다."
이유는 남은 차를 호르륵- 마시고는 자리를 일어섰다.
이튿날. 날이 밝자, 이유는 기병 일백의 호위를 받으며 남양군으로 향했다. 중간에 성을 지날 때, 위병들의 제지가 있었지만, 원매의 위력 덕분에 무사히 통과되었다. 이유가 나이가 많은 지라 빠르게 이동을 하지 못했고, 결국 열흘 만에 장수의 치소가 있는 완성에 도착했다.
"아니. 이별가께서 여기까지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가후는 매우 놀란 눈치였다. 이미 경계병으로부터 이유가 온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실제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둘 다 동탁과 이각을 위해서 일을 했고,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가후가 장수를 따르고, 이유가 원매를 따르면서 둘의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장수가 아직 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큰 세력에 의탁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원매는 독자적인 거대한 세력으로 거듭났기 때문이었다.
"가문화가 보고 싶어서 왔네. 차 한 잔 주시겠는가?"
"어려울 것 없지요. 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이유와 가후는 그간의 안부인사를 묻고 과거를 회상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후는 이유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모른 척하며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신경전이 지루했던지 이유가 먼저 본론을 꺼내들었다.
"자네의 주군이신 장장군(장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가?"
"남양군을 어찌하면 잘 다스릴까? 이것만을 생각하고 계십니다. 애민의식이 크시거든요."
"이 사람아- 내 말 뜻을 알면서 어찌 그리 대답하시는가? 이제 장장군도 선택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선택을 한다면 거기장군(조조)보다는 대장군(원소)이 낫지 않겠는가?"
"흠- 문우선생(이유)께서 이렇게 솔직히 말해 주시니 저도 더는 다른 말을 할 수 없군요. 솔직히 고민중입니다. 거기장군은 천자를 모시니 명분에서 앞섰고, 대장군은 세력에서 앞서 있으니까요. 참. 그리고......"
가후가 말을 끊고는 능글맞게 웃었다. 그리고 약간의 비아냥이 담긴 목소리로 되물었다.
"원도독(원매)께서는 다른 말씀이 없으십니까? 예전에 본인을 따르라고 말을 한게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우장군을 제수받으셨네. 사례도독은 내려놓았지. 그럼 다시 제안을 하지. 우장군을 따르겠는가?"
이유는 가후의 비아냥거리는 느낌을 눈치챘지만, 진중하게 다시 물었다. 가후가 쓴 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제 말투가 거슬렸다면 용서하십시오. 솔직히 우장군의 능력에 대해서는 매우 놀랐습니다. 겨우 2년 만에 관중과 한중을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서량의 한수를 물리치고 마등을 우군으로 삼았으니까요. 지금 중원의 어떤 제후도 단시간에 이와 같은 능력을 보인 자는 없습니다."
이유는 침을 꿀꺽 삼키며 가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대장군이나 거기장군에 비하면 아직은 약소합니다. 좀더 능력을 보여 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우장군의 세력이 크긴 하지만, 주군(장수)의 세력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린가? 장장군이 남양에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겨우 북부를 차지하고 있고 유목사(유표)가 군량지원을 끊는다면 당장 곤궁해지지 않는가? 차이는 매우 크네. 결코 비슷하지 않아."
이유가 정색을 하자, 가후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많이 변하셨군요. 그 애송이가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천하의 악당인 문우선생께서 이리 변하신 것입니까?"
가후가 슬쩍 이유를 격동시켰다. 이유는 빙그레 웃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이유였다.
"나 같은 악당을 홀릴 정도로 매우 유능하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일세.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 자네가 내 뒤를 이어서 우장군을 도와 주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내 바람일세."
"만약 끝까지 거부를 한다면 전쟁이 되겠지요?"
"부인하지 않겠네."
"만약 저와 주군이 끝까지 거부하고 거기장군에게로 도망친다면 어쩌겠습니까?"
"거기장군과 전면전을 각오하고 추격할 것일세. 장장군은 몰라도 자네의 목은 베어야겠어. 이것은 우장군의 뜻이기도 하지. 자네를 적으로 삼는 것은 무모한 짓이야. 그러니 미리 싹을 잘라야지."
"하하하하하- 역시 문우선생은 시원 시원합니다. 좋습니다.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알려주시는데, 언제까지 떠볼 수는 없지요. 제가 말하는 조건을 충족해 주십시오. 그리한다면 제가 책임지고 주군을 설득하겠습니다."
"말하시게."
"첫째, 주군께 현 하나를 영지로 주십시오. 남양군을 바치는 것이니 무리한 요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지. 다음을 말하시게."
"남양군의 곡창지대인 남쪽은 아직 유목사의 세력범위입니다. 이곳을 점령하여 우장군의 힘을 보여 주십시오."
"그렇다면 유표와 전쟁을 벌여서 번성 이북을 차지하라는 말이군."
이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자, 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곳을 점령하고, 주군으로부터 남양군 북쪽을 받는다면 남양군 전체를 차지하게 됩니다. 힘은 들겠지만,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유목사를 넘어설 힘이 있느냐가 문제가 되겠지요. 유목사마저 꺽는다면 주군께서도 우장군의 능력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따를 것입니다."
"유표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장장군은 중립을 지키겠지?"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건 일종의 시험입니다. 시험을 통과하면 아주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실패하면 보상은 없고, 속만 쓰릴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누구도 비웃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은 유목사의 세력이 크니까요."
"하겠네."
"우장군의 허락을 얻으셔야지요?"
"어차피 유목사와는 전투를 벌여야 해. 다만, 그 시기가 앞당겨 진 것 뿐이지. 나중에 딴 소리 마시게. 그때 가서 다른 말을 한다면 전면전이 될 걸세."
"주군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여기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가후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한참 후에 가후는 장수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유가 일어나서 예를 갖추자, 장수도 예를 갖추었지만, 조금 딱딱하게 말을 이어갔다. 이유의 계략에 혹시라도 말려들지 않을까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알고 있는 이유는 워낙 지략이 뛰어나서 상대하기 거북한 존재였다.
"오랜만이오. 가문화로부터 이야기는 들었소. 우장군이 거기장군에 비해서 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 않소? 그러니 강력한 힘을 보여주시오. 유목사를 물리친다면 우장군의 능력을 인정하겠소. 그리고 그 정도는 되어야 이 장수가 의탁할 만 하지 않겠소?"
"물론입니다. 이번 가을에 전투를 벌여서 남양군 남쪽을 점령하지요."
이유는 그리 말하고는 증거를 요구했다. 가후가 죽간을 작성하고 장수가 인장을 찍자, 이유는 조심스럽게 죽간을 말아 품에 넣었다.
"우장군께 보고 후, 곧바로 죽간을 작성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잘 선택하셨습니다."
이유는 예를 표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멀어져 가는 이유의 뒷 모습을 바라 보던 장수에게서 이를 악문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문화. 일을 너무 크게 벌린 것 아니오? 원매가 진짜로 유표를 물리치고, 남양군 남쪽을 점령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원매를 따르면 됩니다. 겨우 이년 만에 관중과 한중을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막강한 유표마저 물리친다면 조조보다 낫습니다. 그의 뒤에는 원소가 있으니까요. 설령 원매가 유표에게 진다 하더라도 주군께서는 모르는 일이라 딱 잡아 떼면 됩니다. 그리고 조조를 따르기는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내가 그의 아들과 조카, 그리고 장수 전위를 죽였지. 불편하고 말고."
"그럼 천천히 지켜보십시오. 원매가 꽤 능력이 있는 자입니다. 또한, 그 휘하에는 흑산적, 백파적, 수적등 다양한 계층의 장수들이 많습니다. 이유를 품은 것만 보아도 꽤 도량이 큰 자입니다. 주군께서 일신을 의탁하기에 가장 적당한 자입니다. 그러니 조용히 원매의 선전을 기원하시면 됩니다."
장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