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제 61장 소칙문사蘇則文師
원상의 처소에는 심배, 염유가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관리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몇 명만 모여도 삼공자(원매)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아직까지 흔들리지 않지만, 중립이었던 맹대, 진림이 삼공자를 지지하는 것은 분명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염유의 진언에 원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심배에게 물었다.
"제가 관리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아버님의 허락은 안 떨어졌습니까?"
"주군께서는 공자님의 연령이 어리시니 열여덜살이 되면 관직을 내려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삼년 후가 아닙니까? 현옹(원매)형님께서 저리 위세를 떨치는데, 어찌 한가하게 기다리란 말입니까?"
"주군의 의지가 워낙 강하십니다. 기다리십시오. 현재 주군의 의도는 공손찬을 멸하는 동안, 삼공자에게 명을 내려 남양군을 점령하게 할 것입니다. 그 후, 하북의 네 개주에서 대군을 동원해서 조조를 공격하여 무너뜨리고, 중원을 석권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현옹형님께서 남양에서 조조를 공격하여 아버님을 돕겠군요?"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주군을 설득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시면서 때를 기다리십시오. 분명히 기회가 올 것입니다."
심배는 원상의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원상은 심배의 대답을 듣고는 짧게 탄식을 할뿐 더는 묻지 않았다.
"심치중(심배)만 믿겠소."
원상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담은 정치력이 워낙 형편 없고, 방탕하여 폐출되었고, 원희는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후계자가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원매가 급하게 치고 나오면서 후계자 구도는 안개속처럼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원상이 심배와 답답함을 토로하는 동안, 원매는 봉기와 함께 원소의 치소로 향하고 있었다. 봉기와 헤어진 후, 원매는 종사관을 통해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강녕하셨습니까? 원가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어서 오너라. 볼 수록 든든하구나."
원소는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원매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리로 안내했다. 원매는 원소가 주는 차를 마시고는 걱정부터 쏟아냈다.
"아버님 건강은 어떻습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좀처럼 호전이 되지를 않는구나. 하지만, 걱정 말거라. 이 아비는 중원을 통일하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원소의 호언장담에도 원매의 굳은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역사대로 진행된다면 원소의 생명은 아마 4년 정도 남았을 것이다. 이런 것을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으니, 그저 건강을 걱정하고, 탕재를 잘 챙겨드시라는 말이 전부였다.
"이놈아- 그런 표정을 치워라. 내가 죽을 날 받아 놓은 늙은인줄 아느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표정 짓지 않겠습니다. 탕재 잘 드시고, 의원의 주문을 잘 들으십시오."
"걱정 마라. 그리고 이번 한중군은 정말 잘 처리했어. 때로는 힘으로 몰아 붙여야 하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살살 달래서 항복시키는 것도 큰 능력이야."
"아버님께서 기뻐하시니 다행입니다."
원소는 일어나서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죽간을 가져와 원매에게 내밀고는 읽어보라는 시늉을 하였다. 원매는 공손히 받아 죽간을 폈다. 원매를 우장군에 임명한다는 황제교지였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원소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뭘 그리 놀라느냐? 관중과 한중을 원가의 영역으로 만들었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거기장군(조조)이 아버님의 뜻을 반대하지는 않았습니까?"
"맹덕(조조)이 천자를 모시면서 확연하게 세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야. 하지만, 감히 내게 이빨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지. 내가 우장군을 제수하라고 하면 하는 거야."
원소의 단호한 말투에서 끝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 원매는 원소에게 감사를 표하자, 원소가 진중하게 표정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매야, 아마도 내년이면 공손찬도 정리가 될 것이다. 그 후, 세력을 정비해서 조조를 공격할 것이야. 한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있을 수는 없어. 이 아비가 하북을 완전하게 정리하는 동안 너는 남양을 점령하거라."
"조조가 올 가을이나 내년에 서주(여포), 여남(원술)을 공격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가 군대를 움직일 때, 군대를 이끌고 뒤를 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원소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묵직한 음성을 쏟아냈다.
"그런 방식은 나랑 맞지가 않아. 맹덕과 나의 인연은 꽤 복잡하지. 물론 이런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를 잘 알기 때문이지. 맹덕은 힘으로 확실하게 눌러 놓아야 패배를 수긍한다. 지난 번에 연주에서 여포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어떠했느냐? 겨우 세개현 밖에 남지 않았지만, 끝까지 싸워서 결국 여포를 물리쳤지. 내가 뒤를 급습하면 장기전으로 치닫을 가능성이 높아. 오히려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어."
"하지만, 아버님......."
"맹덕에 관한 것은 이 아비에게 맡겨두거라. 내가 공손찬을 무너뜨리고, 하북의 병력을 끌어 모아 남진하면 다 끝나는 일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버님께서 조조를 공격할 때, 저도 남양군에서 공격해서 무너뜨리겠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기주, 유주, 청주, 병주에서 병력을 동원하면 적어도 보병 이십만 이상, 기병 삼만은 동원할거야. 그리고 예주일대에서 내명을 받은 호족들이 대거 일어날 테고. 조조는 넓어진 영토 때문에 십만도 힘들 것이다. 내가 직접 출정해서 맹덕을 꺾을 것이다. 너는 그 사이에 유표를 쳐서 형주를 점령하거라."
"아버님. 거기장군은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또한, 유리하다고는 하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릅니다. 제가 돕겠습니다."
"솔직히 말이다. 맹덕과 일전을 벌이면 네가 돕지 않더라도 내가 두배 이상의 병력으로 그를 공격하는 거야. 그런데 너까지 합류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생각해보거라. 그런 상황에서 이 아비가 질 것이라 생각하느냐?"
원소의 확신에 찬 눈을 보면서 원매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허유의 배신으로 인해 군량기지가 불타고, 곽도의 모함으로 장합이 배신해서 패하게 됩니다. 아버님!'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허유, 곽도, 장합은 원소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자들이다. 원소가 원매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원매의 신뢰도만 추락할 것이다.
"녀석. 걱정이 되는 것이냐. 내가 계책을 철저히 세워서 실행에 옮길 것이니 걱정 말거라. 너는 이 아비가 말한대로, 남양군을 점령하고 형주를 공격하거라. 네가 형주를 점령하는 동안, 내가 중원을 석권하마."
원매는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기에, 차차 책사들과 의논을 해서 방책을 강구하기로 결심했다. 원소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밖으로 나온 원매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봉기를 찾아, 원소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건 심치중(심배)이 제안을 한 것이지. 나도 듣고 보니 괜찮은 듯 해서 찬성을 했고, 다른 대신들도 반대하지 않았어. 왜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
"문제라기 보다도...... 심치중이 왜 그런 계책을 진상한 것입니까?"
"그것은 아주 간단하네. 시간을 벌겠다는 얄팍한 수작이지. 왜냐하면 형주를 점령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고, 그 사이에 사공자를 어떡하든 후계자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지.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지. 또한, 자네가 형주까지 완전히 점령하면 후계자 문제는 끝이 나는 거야. 그러니 걱정 마시게."
심배가 원상을 위해 내놓은 계책으로 인해 원소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원매는 답답해졌다. 만약 그리된다면 하북은 큰 혼란이 벌어질 것이고, 원매의 계획은 모두 흐트러질 것이다. 물론 형주를 공격하는 것도 흐지부지 될 것이다.
봉기를 비롯한 대신들이 계획에 찬성했다고 하자, 원매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미래를 알아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가 있어야 허유, 곽도, 장합을 견제할 것인데. 내가 있어야. 참으로 큰 일이로구나.'
"장인어른. 허자원(허유)과 곽공칙(곽도)을 경계하십시오. 신뢰하기 어려운 자들입니다."
"왜? 그자들이 탐욕스러워서 그런가? 욕심이 많은 인물들이지. 하지만, 능력이 출중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야. 주군의 신뢰가 강하니 지금은 어쩔 수가 없네. 자네가 후계자가 되서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쳐 버리게."
"만약 그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아버님을 배신하면 어쩝니까?"
봉기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푸하하하- 하고 대소를 터트렸다.
"자네 답지 않은 허술한 생각이야. 지금 조조의 신하들이 알아서 세작 노릇을 하고 있어. 그런데 그들이 주군을 배신하고 조조에게 붙겠는가? 욕심이 많지만, 아주 영리한 자들이야. 시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일세."
봉기의 반박할 수 없는 논리에 원매는 입을 닫았다. 이후 여러가지 좋은 말을 들었지만, 원매의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원매는 업성에 머물면서 맹대, 진임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업성에서 자신을 위해 힘을 실어줄 사람들이었다.
업성을 떠나면서 원매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심배의 계책에 모든 것이 꼬여 버린 것이다. 그는 하동군 안읍성에 들려 왕읍을 격려하고는 곧바로 장안성으로 향했다. 이십 여일만에 돌아 온 것이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죽간들을 확인하고 인장을 찍었다. 아직 두기가 올린 계획은 없었다. 일을 처리한 후 쏟아지는 졸음에 원매는 크게 기지개를 켜다가, 치소로 들어오는 순유와 눈이 마주쳤다.
"우장군(원매). 아~ 이거 좋군요. 정말 잘 어울립니다. 감축드립니다."
"고맙소. 할 말이 있으시오?"
"뛰어난 인재가 제발로 찾아왔습니다. 하여 이렇게 급히 찾아 뵈었습니다."
"누굽니까?"
"이름은 소칙 자는 문사이고, 우부풍 무공현 출신입니다. 동탁 / 이각의 만행을 피해 서량으로 도망을 쳤다가 이 곳의 소식을 듣고는 돌아왔습니다. 학식이 깊고, 올곧은 인물입니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소칙이라........ 데려 오시오. 좋은 인재라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지."
순유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가 소칙을 데려왔다.
[소칙(40)]
무력:72, 지력:77, 정치력:83, 통솔력:75
진수가 그를 평가하기를 "위엄과 용맹으로 반란을 평정했으며, 나라를 다스림에 뛰어났고 강직했으며, 그의 풍모와 절개는 칭찬할 만큼 뛰어나다." 라고 하였다. 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원매는 소칙의 능력치를 확인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급히 소칙의 손을 덥썩 잡으며 말했다.
"왜 이제야 오셨소? 천하를 위해서 같이 일해 봅시다. 별가를 제수할 터이니, 일단 그곳에서 일을 하시오."
소칙은 대뜸 별가를 제수한다는 말에 의아했다. 순유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긴 했지만, 별가라는 높은 위치를 바로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왜 별가가 마땅치 않소? 더 높은 관직을 원하시오?"
"아, 아닙니다. 사실 별가의 벼슬이 높은 벼슬이지 않습니까? 처음부터 이리 환대해 주시니 놀라서 그렇습니다."
"능력을 발휘하면 되오. 단,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별가를 회수하겠소."
원매가 빙그레 웃으면서 농을 하였지만, 소칙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일처리도 제대로 못 한다면 제가 먼저 사퇴를 할 것입니다. 이리 믿어 주셨는데, 실망시켜드려야 되겠습니까?"
"고맙소. 그럼 관중의 관리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감찰하시오. 이게 첫번째 임무요."
"명을 따르겠습니다."
소칙이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원매는 소칙을 얻은 기쁨에 잠시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