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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5장 한중공략漢中攻略-6-3
방덕과 위연이 성고성을 함락시키고 있을 무렵. 파재와 감녕은 보병 일만 오천으로 포중성을 에워쌌다. 견고한 성고성과는 달리 포중성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성이었으며, 성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커다란 장원에 가까웠다. 사실 한중의 성이 대부분 이와 같은 형태였고, 성고성이 특이한 형태였다.
양앙은 성 주변을 새까맣게 둘러싼 원매군을 보고는 이를 '딱딱딱-' 소리를 내며 떨었다. 양평관의 양백과 마찬가지로 양송의 힘으로 장군이 된 양앙이었다.
"항복하시오! 반 시진(한 시간)내로 항복하지 않는다면 공격하겠소!"
감녕의 거센 호통이 밤이라 그런지 더욱 크게 들렸다. 감녕이 양앙을 회유하는 동안 파재는 공성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성벽이 높지 않았기에 이 정도면 큰 희생 없이 점령할 것으로 판단했다.
"항복을 한다면 목숨을 부지할 것이고, 장군의 직위도 유지시켜 주겠소. 그게 싫다면 다른 관직을 제수한다고 원도독께서 말씀하셨소. 일각(15분) 남았소.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오!"
양앙은 얼마 안 가 성문을 열고 나와 감녕과 파재 앞에 엎드렸다. 파재는 양앙을 위로하고, 즉시 원매에게 포중성을 점령했음을 보고했다.
원매가 성고성, 포중성이 함락되었음을 보고 받았을 때, 벌써 날이 어슴프레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이제는 장로도 대략적인 상황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원매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노욱! 보병 일천을 이끌고 포중성을 방비하라. 내가 군대를 이끌고 남정성을 공격할 것이니 그곳으로 장로의 군대가 집중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대규모 군의 공격이 있다면 사곡도 관문으로 후퇴하라! 지금 당장 포중성으로 출발하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강경! 자네는 보병 이천을 거느리고, 성고성을 방비하라. 포중성에 비해서 견고한 성이니 설령 대군이 공격하더라도 열흘 이상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버티면 지원을 해줄 것이니 반드시 사수하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강경과 노욱이 병사들을 점고하여 출발하자, 원매는 고개를 돌려 강합을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강합! 자네는 이 관문을 지키게! 군량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하네. 관문이 견고하니 현재 병력으로 무리 없이 지킬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원매는 점령한 지역의 방어조치를 완료하자, 송과와 함께 보병 이천, 기병 이천을 이끌고 남정성으로 진군했다. 동쪽의 성고성에서 방덕, 위연이 보병 오천, 기병 삼천을 이끌고 진군했다. 서쪽의 포중성에서는 파재, 감녕이 보병 일만 오천을 거느리고 남정성으로 진군했다.
남정성 장로치소.
날이 밝아 해가 떠올랐을 때, 장로는 떠들썩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쾅-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장위였다. 장위가 아니였다면 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더라도 이렇게 할 사람이 없었다. 장로가 약간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이냐?"
"큰일 났습니다. 원매군이 벌써 관문을 넘어서 한녕(한중)으로 들어섰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런 상황이 우려되서 양백을 끌어내고, 장부를 보냈지 않은가? 그리고 견고한 양평관이 그리 쉽게 함락된단 말인가?"
"양평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고성에서 도주해 온 기병들이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낙곡도가 아니면 사곡도로 넘어왔습니다. 어서 치소로 가시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장로는 안색을 굳히며 급히 옷을 챙겨 입고는, 장위를 따라 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염포, 양송, 이서, 장성(장로 둘째아들)이 모여 있었다. 이서와 장성은 남정에서 예비대 일만을 지휘하고 있었다.
장로가 나타나자, 이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장로는 그들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는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그가 상좌에 앉자 곧바로 염포가 보고를 시작했다.
"지금 포중성과 성고성이 저들에게 넘어갔습니다. 면수 이북이 원매의 손에 들어갔다고 보시면 됩니다. 정찰 결과에 의하면 원매군이 벌써 면수를 도하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야? 벌써 도하를 한단 말인가? 포구에는 병력이 있을 터인데, 그곳마저 점령되었단 말인가?"
"이곳은 면수의 상류지대라서 강이 깊지 않은데다가, 평야지대라서 강폭이 넓고, 유속이 느립니다. 하여 원매군이 나무토막에 의지하여 일제히 도하를 하는 상황입니다."
"끄응-"
장로는 생각에 잠겼지만, 좀처럼 현재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입을 열어 궁금증을 질문했다.
"양평관의 병력을 빼는 것은 어떤가? 지금 남정성에는 일만명 밖에 없잖은가?"
"그곳 병력을 빼면 고도로 넘어오는 원매군은 어찌합니까? 일만이 넘는 군대가 오고 있는데, 그들마저 한녕으로 들어서면 모든 게 끝이 납니다."
"허허허허허-"
장로는 기가 막힌 듯 헛웃음 터트렸다. 적군이 공격했다는 보고를 지금 처음으로 받았는데, 벌써 손을 쓰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군! 적들의 기병이 수 천이고, 벌써 도하를 하는 상황이라 군대를 보내서 저지하기는 어렵습니다. 남정성을 굳건히 사수하면서 상용, 서성과 파중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는 병력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염포의 의견에 장로는 장위를 바라 보았다. 장위는 짧게 탄식을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는가? 염공조의 의견이 타당한 것 같은 데, 자네 의견은 어때?"
장위는 마지 못 해 입을 열었다.
"남정성에서 수성전을 벌이면서 파중을 지키고 있는 삼천의 병력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서성, 상용의 방어병력은 힘들다고 봐야 합니다. 그곳의 병력이 이곳으로 오려면 매우 먼 길을 와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성고성을 지나야 합니다. 원매가 제대로 우리의 약점을 움켜 쥐었습니다."
"전령을 보냈으니 버티면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양평관에서 대공자가 저들을 물리치고 이쪽으로 병력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으시면 안됩니다."
염포의 진언에 장로는 정신을 차렸다.
"장성! 이서! 수성전을 준비하라! 어서 시행하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장성과 이서가 밖으로 달려 나갔고, 장위와 염포가 상황판을 보면서 의견을 나누는 동안 양송은 얼굴이 하얘져서 아무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장로는 양송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남정성이 분주하게 방어준비를 서두르는 가운데 원매군은 대부분 도하를 하였다. 병사들은 경계를 하면서, 불을 피워 젖은 옷을 말렸다. 한중의 백성들은 원매군이 나타나자,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양평관.
이곳에는 교위 두명, 사마 다섯명, 병사 일만이 수성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장부는 병사들에게 수성전을 철저히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망루에 올랐다. 벌써 전예군 일만이 관문 앞까지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공격을 할 것처럼 공세를 취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놈들이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 공격하려면 빨리 할 것이지 왜 이리 뜸을 들이는 거야?"
아침부터 이어지는 전예와의 신경전에 장부는 신경이 곤두섰다. 양평관이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어서 아직 포중성, 성고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 때쯤, 하루 종일 신경전을 벌이느라 피곤한 장부는 망루에서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가 전예의 의도가 뭘까 고민하고 있을 때, 교위 금양이 급히 달려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장군! 급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포중성이 원매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원매는 군의 일부를 그곳에 남기고 일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남정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저기 적들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어찌.......?"
장부는 혼란스러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사곡도나 낙곡도의 관문을 넘어 온듯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포중성이 함락될 리가 없습니다."
"아아- 이를 어쩐다? 빨리 사군께 지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험이 부족한 장부가 쩔쩔매자, 금양이 다시 진언을 올렸다.
"병력을 빼면 앞에 있는 저들은 어찌 막으려고 하십니까? 또한 남정성에서 명령이 내려오기 전에는 절대로 병력을 빼서는 안됩니다. 명령 없이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반역행위입니다."
"자네가 경험이 많으니 잠시 수성전을 지휘하게."
"명을 따르겠습니다."
장부는 금양에게 수성전 지휘를 맡기고는 자리에 힘없이 털썩 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이 곳의 군사를 이끌고 남정성으로 가고 싶지만, 금양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는 없었다.
'사곡도, 낙곡도 관문이 굉장히 견고할 터인데, 어찌 이리 쉽게 열렸단 말인가? 전투가 벌어졌다면 분명히 여기에도 소식이 들어왔을 터인데....... 그렇구나. 내응을 했구나. 어떤 놈이 배신을 했어! 이런 쳐 죽일 놈 같으니라고.'
장부는 주먹을 불끈 쥐고 탁자를 내리쳤다.
전예군영.
전예는 양정에게 보병 칠천을 주어 공성전을 준비케 하고, 조독의 기병 삼천을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병사들이 사다리를 손질하고, 방패를 손질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전예는 눈길을 양평관문으로 돌렸다.
'지금부터 내 역할이 중요하다. 이곳의 병력을 반드시 잡아 두어야 한다. 그래야 도독께서 수월하게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전예는 급히 날랜 병사 이십 명을 불렀다. 그들에게 십일 치의 보급품을 안겨 주고는 양평관을 전망할 수 있는 산으로 올라가 정찰을 명령했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대규모 병력이 양평관을 빠져 나가면 불을 피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준비가 완료되자, 전예는 의자에 앉아 허벅지를 두드렸다. 양정이 공격준비를 잘 하고 있었기에 조금 여유가 있었다. 이때 조독이 다가와 궁금증을 드러냈다.
"전장군! 저들이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면 어떡합니까?"
"눈치채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소. 중요한 것은 병력을 남정성으로 빼냐 안 빼냐 그것이오. 만약 병력을 빼는 것이 확인되면 무조건 총 공격을 해야 하오."
"그리되면 병사들의 피해가 큽니다. 도독께서도 최대한 병력을 보존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그래야 남정성으로 가는 지원병력이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양평관에 일만 정도는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의 병력이 남정성으로 간다고 생각해 보시오. 그렇다면 도독께서도 상당히 난감해 할 것이오."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양평관이 참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필요하면 기병들도 공성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조장군(조독)! 기병은 양성하기 어려우니 함부로 공성전에 투입할 수는 없소이다.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공성전에 기병을 쓰지 않겠소. 그저 저들이 볼 때, 공성전에 참여하는 병력으로 보이게 끔 준비만 하시오. 그러다가 성문이라도 열리면 그 때 공격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조독은 전예의 지시에 따라 기병들을 다시 점고하고, 움직였다. 양평관에서는 장부와 전예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성고성과 포중성이 원매에게 함락되면서, 남정과 양평관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전투로 한중의 승자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