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제 48장 방덕영명龐德令明
"아무튼 이공은 못 당하겠습니다. 하지만 영명(방덕)은 아끼는 장수라서 ......"
마등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뜨뜻 미지근한 반응을 내놓았다. 그는 화음현을 차지하고 군량을 얻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방덕을 내놓으려니 아까웠다.
"원도독 주변에 쓸만한 장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마장군 휘하에는 방덕이 빠지더라도 여기 맹기(마초)도 있고, 마대도 있지 않습니까?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 그리 하시지요. 원도독께서 우리의 군량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주셨지 않습니까?"
마초가 우직하게 끼어들자, 마등은 혀를 찼다. 아까운 방덕을 내주더라도 하나를 더 챙기려는 심산이었는데, 마초가 그것도 모르고 협상을 일그러뜨린 것이다.
"역시 마맹기의 호연지기가 대단하군요. 마장군. 이는 원도독과 마장군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할 것입니다. 관중에서 소금이 많이 나니, 마장군께는 조금 싸게 공급해드리겠습니다."
마등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얻은 것이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다 협상 자체가 틀어진다면 큰일이다.
"농서군의 한수는 워낙 교활한 인물이니 그는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좌풍익 출신인데 어찌 그걸 간과하겠습니까? 한수는 시간이 되면 토벌을 해야지요."
마등은 이빨을 깨물었다. 새삼 한수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원도독께서 한수를 치기위해 군대를 일으킨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이유는 원매의 친필이 담긴 죽간을 건넸다. 동맹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소금부분은 따로 이유가 추가했다.
"3월이 되어 눈이 녹고, 길이 좋아지면 쌀 5천섬을 보내겠습니다. 그것으로 버티시다가 가을에 화음현에서 조세를 걷으면 충분할 것입니다."
"고맙소. 호쾌한 결정에 감사를 드리오."
잠시 후 마등의 명을 받은 방덕이 곧장 달려와 이유에게 예를 올렸다.
"자네가 방영명이로군. 이제는 원도독의 사람이 되었으니 떠날 준비를 하시게."
"마장군으로부터 명을 받았습니다. 곧바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방덕은 원매를 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자, 마등을 주군에서 마장군으로 호칭을 바꿔 불렀다. 이유는 이런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방덕이 준비를 하는 동안 부간이 이유에게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이공. 장안으로 가실 때, 같이 가시지요. 주군께서 즉시 화음현으로 이동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마등의 발빠른 움직임에 이유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은 임경성에 하루를 쉬고, 다음날 아침에 장안으로 출발했다. 방덕, 부간, 마휴까지 합류했다. 부간과 마휴는 곧바로 화음현으로 이동할 것이다. 무도군의 국연은 눈이 녹는 3월에 만나기로 결심했다.
열흘에 걸쳐서 장안에 도착하자, 마휴와 부간은 이유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화음현으로 나아갔다. 이유는 기병들을 쉬도록 조치하고는 방덕의 어깨를 '툭-'쳤다.
"어떤가? 도독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긴장되는가?"
"당연하지요. 이제부터는 이 놈의 주인이 되실 분이 아닙니까?"
"자네는 적들을 만나도 절대 물러나지 않고, 두려움없이 싸운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보군."
"명령에 따라 적은 죽이면 되니 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싸우다 죽으면 다 끝나니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장군에게서 원도독으로 모시는 주군을 바꾸었으니,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긴장할 수 밖에요."
이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방덕은 무력도 대단했지만, 조리있는 말투를 보면 나름대로 뛰어난 지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원매는 죽간을 훑어보며 일을 하다 이유를 따라 들어오는 방덕을 보고는 벌떡 일어섰다. 이유는 방덕을 세워두고는 원매 앞으로 나섰다.
"이별가 정말 잘했소이다. 방영명(방덕)을 데려오다니.....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구려."
"마등은 이제 군량이 충분할 것이니 도독께 협조적으로 나올 것입니다. 도독께서 중원으로 출정할 때, 마초, 마대가 이끄는 기병이 합류할 것입니다. 그들이 병법에 뛰어나지는 않지만 용맹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맹장입니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초, 마대의 용맹이라면 잘 알지."
"그리고 무도군의 국연도 군량을 미끼로 하여 잡아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연까지 도독에게 돌아서면 한수가 관중으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한수를 토벌할 때, 마등, 국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이번 삼월에 제가 무도군에 다녀오겠습니다."
"안정군 출행도 힘들었을 텐데, 무도군을 가다니 괜찮겠소?"
"괜찮습니다. 며칠 푹 쉬면 체력이 돌아올 것입니다. 그럼 방영명과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고생했소."
원매는 이유의 손을 맞잡고 진심으로 그의 공을 칭찬했다. 육십을 넘은 이유가 안정군에 다녀오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원매는 마음이 애잔하게 저려왔다.
[방덕(29)]
무력:94, 지력:75, 통솔력:85
원매는 방덕의 능력치를 확인하고는 너무 기뻐서 환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가 원매일세. 자네가 내게 오다니 정말 기쁘군."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방덕, 자는 영명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방덕이 깊숙하게 허리를 숙였다. 원매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자리에 앉혔다.
"술 한잔 하겠는가?"
"예. 감사합니다."
원매는 미리 준비해 놓은 독한 술을 한잔 주었다. 한 두잔은 추운 겨울 날씨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리 조치한 것이다. 원매는 방덕에게 관중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고, 방덕은 주의깊게 들으며 머릿속에 새겨넣었다.
원매가 편안하게 이야기를 유도하자, 방덕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등, 많이 편해진 듯했다.
"그런데, 도독께서는 참으로 특이하신 분같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처음에 대장군의 자제분이라고 하셔서 귀한 공자를 연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무예가 엄청나십니다. 이 정도면 중원에서 도독을 막아설 자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가? 그럼 자네와 비교하면 어떤가?"
"제가 어찌 도독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솔직하게 느낀 것을 말해 보게. 나는 무력의 끝을 보기로 작정했고,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사람이야. 아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네."
방덕은 멈칫했다. 어찌 표현해야 하나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독께서 뛰어난 무예를 지니셨지만,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경험부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전장에서 십년 이상을 구르면서 수많은 강자들을 꺾었습니다. 한 번에 여럿의 강자들을 상대한 적도 있었고, 저보다 강한 자를 죽인 적도 있습니다. 항상 강하게 나오면 상대가 거기에 적응을 합니다.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힘을 응축하여 쏟아내야 합니다. 그게 되신다면 제가 상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역시 영특하군. 자네를 기병대장에 임명하겠네. 마침 그 자리가 공석이야. 그리고 날이 풀리면 나와 대련을 해보세."
"기존의 장수들이 있는데 어찌 제가 대장을 맡습니까?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괜찮아. 여기서는 오로지 실력이야. 자네가 십년 넘게 서량기병을 이끌었고, 수많은 전투를 벌였어. 또한 무력도 최고수준이고. 반발할 자는 없을 것이네. 대장은 오로지 실력있는 자가 차지하는 것이지."
"최선을 다하여 모시겠습니다."
원매는 곧바로 기병장수인 조독, 문칙, 장의, 송과를 불러들였다. 그들에게 방덕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를 한 후, 기병대장에 임명한다고 밝혔다. 조독과 문칙은 공석인 기병대장을 자신이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조교위(조독)! 내 인사방침이 무엇인가?"
원매의 날카로운 질문에 조독이 실책을 깨닫고는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욕심에 잠시 눈이 어두웠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래. 사실 조교위나 문교위(문칙)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있어. 여기 방장군(방덕)이 오지 않았다면 자네 둘 중 한 명이 기병대장이 되었을 것이야. 대장은 가장 뛰어난 자가 맡아야 해. 그래야 적은 병사들을 희생시키면서 승리를 거둘 수가 있지. 내 마음을 잘 알고 여기 방장군을 잘 따르게. 알겠는가?"
"예. 도독!"
조독과 문칙은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복명했다. 원매가 이 정도까지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는 데, 딴 마음을 먹을 수는 없었다. 또한 그런 일이 고람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이면 정말 난리가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매는 그들을 충분히 달래고는 따로 네 명의 장수들에게 조금씩 포상을 챙겨주었다.
'방덕이라면 저들을 잘 지휘할 것이다. 문제 없을 것이야.'
원매는 물러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중얼거렸다. 원매는 방덕을 얻자 마음이 들떠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는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맞으면서 뜨거워진 머리를 식혔다. 그러자 조금씩 냉정함이 돌아왔다.
관중을 점령한 후 혼자서 항상 있다가 이제는 모친, 부인과 함께 생활을 하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대문을 열자, 곧바로 황옥과 봉영이 반겨주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 하는 것이 소소하지만 기쁜 행복이었다.
"욱- "
봉영은 식사를 하다 말고,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구역질이 낫기 때문이었다. 헛구역질을 하며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입덧인가? 아이를 가진 것인가?'
봉영이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있을 때, 황옥이 숟가락을 내려 놓고는 급히 다가왔다. 그녀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수태(임신)를 한 것이 아니냐?"
"잘 모르겠습니다."
"의원을 불러서 진맥을 살펴보면 알 것이다."
황옥이 직접 나서서 명을 내리자, 집사는 급히 하인들을 데리고 의원을 데리러 밖으로 나섰다. 원매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라 봉영의 손을 꼭 잡았다. 이각(30분)정도가 흐르자, 집사의 손에 이끌리어 의원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원매에게 급히 인사를 올린 후, 조심스럽게 진맥을 시작했다.
진맥은 한참을 이어졌다. 상대가 원매였기에 실수를 하면 안되었고, 그러다보니 신중을 기해서 진맥하느라 늦어진 것이다. 이윽고 확신이 서자, 그는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소리쳤다.
"도독! 감축드립니다. 수태를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오오- 그 말이 참이렸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수태를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 수고했다. 물러가거라."
의원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집사로부터 수고비를 받고는 물러갔다. 황옥은 봉영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아가. 고맙다. 이제부터 몸조심을 하거라."
"예. 어머니."
원매와 봉영은 한참동안 황옥으로부터 주의사항을 교육받고 나서야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원매는 봉영을 말없이 안았다.
"고맙소. 이제 나도 아버지가 된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려. 순산할 수 있도록 몸을 중히 여기시오."
"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간 수태가 되지 않아서 내심 초조했습니다. 이제 면목이 섰습니다."
봉영의 환한 얼굴을 보며 원매도 환하게 웃었다.
장안성이 훤히 내다보이는 낮은 언덕 위. 한 사내가 성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강인한 체격을 지닌 그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원매. 일년만에 이각을 물리치고 관중을 장악했다. 백성들을 위하는 혁신정책을 펼치고, 관리들을 오로지 능력으로 등용하고 진급시킨다고 들었다. 관중에 제대로 된 통치자가 드디어 나타났구나.'
사내는 가슴 속에 품은 죽간을 살며시 만져보았다. 하동태수 왕읍의 추천서가 담긴 죽간이었다.
"가보자. 뛰어난 자라면 이 관구흥의 가치를 알아봐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