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47화 (47/253)

# 47

제 47장 노련한 협상協商

198년 1월 건안 3년.

조조가 한중의 장로를 정벌할 때, 초기에 실패하여 군대를 물리고자 하후돈을 보냈는데, 하후돈이 길을 잘못 들어 장로군영으로 나아갔고, 장로군은 이를 기습으로 오인하여 퇴각했다. 조조는 즉각 군을 진군시켜 한중을 얻었다. -장로전 주석 위명신주-

장안의 겨울 추위는 혹독했다. 야외 훈련은 모두 취소되었으며, 대부분 쌀을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전예는 장안의 모처에서 염상(소금상인) 홍유(가공인물)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관중에서 나오는 소금을 한중으로 가져다가 팔았기에 전예에게 협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네 말은 양평관을 지키는 양임이 허술하다 이거지? 양평관이면 한중으로 들어가는 관문 중 가장 큰 곳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군.”

“현재 한중에서 장사군(장로)의 신임을 받는 자가 양송인데, 욕심이 많은 필부입니다. 양임은 양송의 친척으로 능력이 부족하지만 중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고도가 너무 길고 험하단 말이지.”

“어차피 한중으로 들어가는 길 중에서 편한 길은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 더 힘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자의 마음을 돌릴 좋은 방법이 있는가?”

“쉽지 않습니다. 재물 욕심이 많기는 하지만 관문을 연다는 것이 한중을 내놓는다는 것을 알 것이니, 쉽게 승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건 그래. 양송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쉽지 않겠지.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혹시 그놈의 약점을 잡아서 협박을 같이하는 것은 어떨까?”

“글쎄요. 한중군에서 양송의 힘은 대단합니다. 웬만한 약점 잡아서는 어림도 없을 것입니다. 양임은 설령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양송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것입니다.”

“끙--”

전예는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감쌌다. 중랑장에 오르고 처음으로 맡은 임무였는데, 굉장히 중요했다. 이것을 잘 처리하면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탄탄대로가 펼쳐질 것 같았다.

“자네가 한중을 잘 아니 좀 더 연구해보게. 이번 일만 성공하면 포상은 내가 확실하게 챙겨주겠네.”

“여기저기 정보를 알아보면 나오는 게 있을 것입니다. 2월이면 조금 날씨가 풀리는데, 그때 날랜 애들을 보내서 확실히 알아보겠습니다.”

전예는 상인에게 수고비로 황금을 건네주며 확언했다.

“이일만 성공하면 한중뿐만 아니라 남양군으로 장삿길을 열어주겠네.”

한중보다 몇 배나 큰 남양군이라는 말에 홍유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허리를 숙였다. 반드시 성공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전예는 홍유를 돌려보낸 후 곧바로 원매를 찾았다.

“그러니까 한중으로 올라가는 길이 눈으로 막혔다 이 말이지?”

“그렇습니다. 내년 3월이야 되어야 험준한 천령산맥을 넘어 한중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왕래하는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겨울에는 눈이 많아서 이동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원매는 전예와 한중지도를 보면서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다.

“관문을 지키는 장수를 회유하는 것은 어찌 되고 있는가?”

“장안에서 한중으로 들어가는 길이 자오도, 낙곡도, 사곡도, 고도가 있는데 고도의 관문을 지키는 양임이라는 자를 포섭하려고 합니다. 재물 욕심도 많고, 능력이 그리 출중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한중군 실력자인 양송의 친척이라 난관이 있습니다.”

“다른 관문의 상태는 어떤가?”

“자오도는 지나치게 돌아가는 길이고 성양에서 막는다면 돌파하기가 힘듭니다. 하여 자오도는 처음부터 배제했습니다. 낙곡도, 사곡도가 가장 적격인데 그곳을 지키는 장수가 이휴와 강합입니다. 이 둘은 무장으로서의 능력이 있고, 올곧아서 회유가 어렵습니다.”

“그것참. 어렵군. 어려워. 그러면 양임을 무조건 회유시켜야겠군.”

“그렇습니다. 염상 홍유란 자가 있는데, 한중의 사정에 밝습니다. 그가 정보를 파악하고, 2월에 사람을 보내 확인한다고 하니 기다려보시지요. 제가 성공을 한다면 남양군의 소금판로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잘했어. 한중을 얻는다면 뭘 못 해 주겠는가? 어차피 관중의 소금을 파는 것이니 내게도 큰 이득이 되는 일이야. 적당히 수고비도 주면서 달래보게. 꼭 성공해야 해.”

“알겠습니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전예가 물러나자, 이유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어왔다.

“도독의 홍복이십니다. 아주 영특한 친구입니다.”

“그렇소. 한중의 일을 맡겼는데, 잘 처리하고 있소이다. 서량의 일 때문에 오신 것이오?”

“예. 지금 서량의 사정이 복잡합니다. 남쪽에는 한수가 북쪽에는 마등이 서로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한수가 조금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그럼 한수나 마등 중 누가 낫겠소?”

“마등이 훨씬 낫습니다. 한수는 서량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란에 항상 이름을 올렸습니다. 믿기 어려운 자입니다.”

“마등이라······. 마초와 마대, 방덕을 동시에 얻을 수 있겠군. 구체적으로 계책을 말해보시오.”

“서량이라는 곳이 항상 군량이 부족한 곳입니다. 땅은 거칠고 백성은 적은 곳이지요. 하지만 말이 많고, 사람들의 성정이 거세서 강병들이 넘칩니다. 이번에 마등을 회유하려면 군량을 가지고 회유해야 합니다. 그를 화음후로 임명하시면서 설득해야 합니다.”

“화음현을 그의 영지로 주자.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곳은 관중에서 피해를 적게 입은 곳입니다. 최소 이 정도는 되어야 마등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서량으로 들어가서 마등과 담판을 짓겠습니다.”

“마등이 나를 따르기만 한다면야 화음현은 아깝지 않소. 하지만 그 정도로 가능하겠소? 아무리 생각해도 괜히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은데.”

원매는 마등을 얻는다면 마초, 방덕, 마대를 얻을 수 있기에 기뻤지만, 과연 마등이 이런 제의를 받아들일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도 서량에서 한수와 함께 명성을 떨치는 마등이었다. 이유가 원매의 마음을 눈치챈 듯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마등은 동맹군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서량의 영지를 그대로 놓아두면서 홍농군 화음현을 내어 주면 됩니다. 저들은 그곳에서 조세를 걷어 군량을 보충할 것입니다. 군량이 부족하면 보충해주시면 됩니다. 반대급부로 도독께서는 전투를 벌일 때 서량기병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쩝- ”

원매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서량기병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거래였다. 마초, 마대가 이끄는 서량기병을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절로 힘이 났다. 이유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방덕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아- 정말 좋은 장수이지요. 위연, 감녕도 좋지만, 방덕은 기병에 특화되어 있으니 얻을 수만 있다면 꼭 얻고 싶소.”

“그렇군요. 아까 방덕을 언급하셔서 눈치를 챘습니다. 제가 서량으로 가서 한번 협상을 벌여보겠습니다. 방덕은 충분히 데려올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소. 그가 온다면 기병의 힘이 훨씬 막강해질 것이오. 그대에게 전권을 위임할 터이니 꼭 데려오시오.”

원매가 이유의 손을 잡고 당부를 하자, 이유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예를 표하고는 치소를 나왔다. 이유는 일백기병의 호위를 받아 곧바로 북서쪽으로 나아갔다. 두툼하게 몸을 감쌌지만, 날씨는 추웠다.

‘세상일이 참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구나. 이각이 죽으며 비참하게 인생을 마무리할 줄 알았는데, 천하의 원가에서 인정을 받다니. 원매. 참으로 기묘한 사나이다.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인생의 마무리는 제대로 하고 가겠구나.’

이유는 낮에는 말을 타고 이동하고, 밤에는 마을에서 쉬면서 십 일을 이동한 끝에 안정군 치소가 있는 임경성에 도착했다. 한수가 농서군 일대, 국연이 무도군 일대를 장악하고 있다면, 마등은 안정군 일대에서 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유는 동탁 때부터 마등과 안면이 있었다.

“장안에서 안적장군(마등)을 뵈러 온 이유라고 아뢰거라.”

이유의 근엄한 말에 성문을 지키던 병사는 급히 안으로 달려갔다. 일각(15분)정도를 기다리자, 안에서 소란스러워지더니 풍채가 당당한 젊은 장수가 나타났다. 마초였다.

“마맹기(마초) 아니신가? 오랜만에 보는군.”

“날씨가 추운데 이공께서 이곳까지 어인 행차십니까? 자- 안으로 드시지요. 아버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유는 마초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맹기. 자네는 더더욱 늠름해졌군. 서량에서 자네의 용맹을 당해낼 자가 없다고 들었네.”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십니까?”

“좋은 선물을 가지고 왔다네.”

“선물을요? 그게 무엇입니까?”

“이 사람아. 원도독께서 자네 부친께 전해드리라고 하셨네. 궁금하더라도 조금만 참으시게.”

“관중을 원도독이 모조리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참이었군요.”

마등의 치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이유는 마초에게 원매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맛깔나게 이어졌다. 마초가 궁벽한 서량에 있으면서 세상물정에 어두웠기에 능수능란한 이유의 화술은 더욱 빛을 발했다. 이유가 마초에게 사근사근하게 대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원매에게 호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마등의 치소에 도착하자, 그제야 마등이 부하들을 이끌고 마중을 나왔다.

“안적장군을 뵙습니다. 무탈하셨습니까?”

“오랜만에 뵙소이다. 이공. 자- 먼 길을 오셨는데 안으로 드시지요.”

실내로 들어선 이유는 마등이 내주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어려운 것은 없습니까? 정북장군 겸 사례도독이신 원도독께서는 마장군을 굉장히 높게 평가를 하고 계십니다. 하여 도울 일이 있다면 마땅히 도와야 한다며 저를 보내셨습니다.”

“저와는 아무런 안면도 없거늘 어찌 그런 평가를 하십니까?”

“서량의 영웅은 마장군입니다. 농서의 한수나 무도의 국연이 어찌 영웅이겠습니까? 그러니 안면이 없더라도 장군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요.”

“허허- 이거 참.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지요.”

“예로부터 서량은 군량이 항상 부족한 곳입니다. 동상국(동탁)께서도 항상 군량 때문에 고생을 하셨지요. 마장군께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유가 아픈 곳을 건드리자, 마등은 안면이 경직되었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이각에게 군량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에 전투를 벌였지만 대패한 아픔이 있었다. 그만큼 서량의 식량 사정은 궁핍했다. 강족, 저족이나 마등, 한수, 국연등이 자꾸 관중을 노리는 이유도 결국 따지고 보면 군량 부족이었다.

“홍농군 화음현은 단외가 잘 지켜서 땅이 기름지고, 매년 쌀 수확량이 많은 곳입니다. 원도독께서는 이곳을 마장군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부족한 군량은 충분히 해결될 것입니다. 또한, 그래도 부족하다면 군량을 무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마등은 물론이고 마초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회한 마등이 곧바로 생각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도독께서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곧 중원에서 큰 전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 서량기병을 지원해주시면 됩니다. 여기 맹기가 공을 세운다면 그에 따른 포상은 따로 해 주실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동맹이 되지 않겠습니까?”

마등은 이유의 제안에 솔깃했다. 그렇지 않아도 군량이 부족하여 약탈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이거 원도독께서 조금 불리한 것 아닙니까? 저도 화음현이 어딘지를 알고 있습니다. 삼보는 망가졌지만, 그곳은 풍요로운 곳이지요. 이거 이렇게 덥석 받아먹어도 탈이 나지 않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드려야 할 텐데, 이곳이 척박해서 드릴 것은 없고. 허허허허--”

기쁜 듯 웃음을 터트리는 마등에게 이유가 별거 아닌 듯 무심하게 툭-하고 내뱉었다.

“뭐- 주실 게 없으시면 방영명(방덕)이라도 주십시오.”

마등과 마초의 얼굴에 띄어졌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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