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제 42장 관중점령關中占領-2-1
[이유(61)]
지력:94, 정치력:76
이유는 병사들에게 끌려와 원매 앞에 무릎 꿇려졌다. 이유는 다소 무심한 표정을 지으며 원매를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어째서 아무 말이 없는 것이오? 이각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오?”
원매의 질문에 이유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어찌하다 보니 이각을 따랐을 뿐이오. 나도 그를 진정한 주군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데면데면하게 대했소. 그러니 충성심은 없소. 또한, 평소 내 행실이 올바르지 못했으니, 어떤 변명도 소용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말없이 죽기만 바랐던 것이오.”
“그대라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 터이니, 그간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 삶을 살아보는 것이 어떻소?”
이유는 뜻밖의 제의에 물끄러미 원매를 바라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죽여주시오. 내가 무슨 염치로 또 목숨을 구걸하겠소.”
원매는 고개를 돌려 순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앞으로 나와 이유 앞에 앉았다. 이유는 그를 보자 매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공. 나를 알아보시겠소?”
“알다마다. 촉군태수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가지 못했나 보구려.”
“길이 막혀서 가지 못했소이다. 지금은 여기 사례도독을 모시고 있소이다. 공께서도 마지막 황혼을 원도독을 위해서 불태워보시는 것이 어떻소?”
“내가 그대를 위해 잘해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 그대는 내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오?”
“그때는 상황이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이제는 천하가 혼란스러워졌소. 누군가는 빠르게 이 세상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나는 그 적임자를 원도독으로 보고 있소이다. 이공의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능력이라면 더 빠르게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오.”
순유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유는 눈을 돌려 원매를 쳐다보았다.
“동상국(동탁)과 원가는 물과 기름처럼 화합할 수 없는 사이요. 나는 동상국의 책사였고, 도독께서는 원가를 대표하는 대장군(원소)의 자제입니다. 저를 등용한다면 원도독께서는 많은 비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중원의 여러 제후와 싸워야 할 것이오. 거기에는 여남의 원공로(원술)도 포함될 것이오. 비난받을 것은 각오했으니 신경 쓸 일이 아니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충성심과 능력이오. 어떻소? 나와 함께 일을 해보겠소?”
이유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뜻을 정하고는 원매에게 예를 갖춰 절을 올렸다. 원매가 급히 이유를 일으켜 세웠다.
“고맙소. 이제 삼보를 어찌하면 좋겠소? 많이 피폐해졌으니 복구도 해야 할 터이고, 장안성에 남아 있는 이각의 잔당도 처리해야 하오. 좋은 생각이 있으시오?”
“장안성에 이섬과 병력 2천이 남아 있는데, 성이 워낙 견고하여 공성전을 하게 된다면 병사들의 피해가 무척 클 것입니다. 하여 이곳의 항병들을 잘 정리한 후, 군대를 몰고 장안성으로 진군하여 삼면을 둘러싸고 공격할 태세를 갖추십시오. 그리고 서쪽은 슬그머니 열어 놓는다면, 이섬은 그곳을 내버리고 서량으로 도주할 것입니다.”
“그럼 매복을 놓았다가 잡으면 어떻겠소?”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지리멸렬할 것입니다. 특별한 지휘능력도 없는 장수입니다. 어쩌면 제 발로 들어와 항복을 청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장안성을 점령하면 곧바로 삼보의 주요 현들을 통합하여 가능하면 난민들을 모조리 경조윤, 우부풍으로 불러들여 이곳부터 개발해야 합니다. 좌풍익과 위수 북쪽은 서량의 마등, 한수, 이민족의 약탈이 많은 곳입니다.”
“그렇다면 경조윤, 우부풍을 개발하여 힘을 키운 후, 좌풍익의 이민족이나 마등, 한수를 격퇴하라 이 말이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서두를 일이 아닙니다. 지금 제일 급한 것은 항병들을 도독의 군사로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홍농 화음현에 주둔하고 있는 단외를 빨리 회유해야 합니다.”
“단외?”
원매는 그제야 단편적인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조조에게 귀순하여 198년에 배무와 함께 이각을 토벌한 장수였다. 지금이 197년 10월이니 어쩌면 늦었을지도 몰랐다.
“단외는 동상국을 따라나섰던 장수입니다. 무력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병사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전술에 해박합니다. 조목사(조조)가 천자를 모시고 있는데, 단외에게 관직을 내리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다면 도독께서는 정말 피곤해질 것입니다.”
이유의 정확한 지적에 원매는 소름이 돋았다. 홍농 화음은 중원으로 나가는 길목이었고, 동시에 중원에서 관중으로 들어오는 요충지였다. 이곳에 조조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자신의 뒤를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하자 뒷골이 서늘해진 것이다.
“고맙소. 즉시 처리하겠소. 회유가 안 되면 토벌이라도 해야지.”
“긴 전투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자칫하면 병사들의 원성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직한 장수에게 병력을 주어서 섬현을 먼저 장악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단외는 고립되니 그때 천천히 회유하면 될 것입니다.”
막힘없이 계책이 술술 흘러나오자, 원매가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이각이 그대의 계책을 제대로 수용했다면 목이 달아나는 쪽은 내가 되었겠구려.”
“그럴 리가요? 순공달(순유)이 있는데 그리되겠습니까? 다만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이각이 무너지지는 않았겠지요.”
원매는 이유의 계책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격하게 고마움을 표했지만, 어떤 생각에 미치자 조금 얼굴이 굳어졌다.
“이공 그대에게 별가를 제수하겠소. 이별가. 나는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사람이오. 이제까지의 잘못은 덮을 수 있지만 앞으로 문제가 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소? 모범을 보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죄를 범하는 것은 곤란하오. 할 수 있겠소?”
이유가 원매의 예상을 뛰어넘는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자, 원매가 조심스럽게 당부를 한 것이다. 설득조로 말한 것은 그만큼 이유의 재능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이유가 묘한 웃음을 터트렸다.
“원도독께서도 이런 면이 있었군요. 흐흐흐- 저는 욕심 많은 악인입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처음에는 썩어빠진 현실에 대한 반발로 동상국을 따라나서며 천하를 뒤엎으려고 했지요. 결국, 동상국도 죽고, 이각도 죽는 것을 보면서 헛된 꿈을 꾸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제는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일을 많이 시켜주시면 됩니다.”
이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제 나이도 60을 넘었으니, 이제는 명예를 얻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별가지만, 공을 세운다면 그에 합당하게 지위를 올려주십시오. 그러면 지켜보는 사람도 많고, 재물도 당연히 따라올 것이니 도독께서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것입니다.”
“충성심과 능력 있는 자가 높은 관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신조요. 그리하지.”
원매는 이유를 위로한 후, 곧바로 장수들을 소집했다. 사마, 도백들이 항병들을 분류하고 그들을 재교육시키는 가운데, 주요장수들이 자리에 참석했다. 원매는 위연, 감녕의 공을 크게 칭찬했다. 그들이 이번 전투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었다.
“고장군(고람)이 장수들의 공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보고해주시오. 내가 곳간을 열어서 그에 합당한 포상을 하겠소.”
“예. 도독. 준비하고 있습니다.”
“순치중(순유). 죽거나 크게 다친 병사들을 파악하여 그의 집안에 일 년에 쌀을 두 섬씩 나눠주시오. 이것은 내가 백성들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이니, 반드시 정확하게 시행되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전예! 문칙! 보병 4천, 기병 4백을 이끌고 지금 즉시 홍농군 섬현을 점령하라! 화음현에 주둔하고 있는 단외가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발밑에 적이 숨어있는 모양새가 되어 골치 아파진다. 그대가 섬현에서 길목을 지키는 있을 때, 나는 장안성을 점령한 후 단외를 압박하여 회유하겠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나머지 장수들은 병사들에게 정비를 시키면서 항병들에게 재교육시키시오. 이곳에서 적어도 열흘 이상 머물 것이니 그들을 확실하게 우리 병력으로 만든 후, 장안성으로 진군하겠소. 또한, 오늘은 돼지를 잡고 대거 쌀밥을 지어 병사들을 배부르게 먹이시오. 그동안 정말 고생했소!”
“감사합니다. 도독!”
“그리고······. 안타깝게도 기병대장인 한순이 이번 전투에서 순직했소. 내 팔이 끊어져 나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오. 하동군에 남아 있는 그의 가족들을 평생 돌볼 것이오. 자- 잠시 눈을 감고 그의 명복을 빌어줍시다.”
원매가 말을 마치자 군영 안은 숙연해졌다. 그들은 잠시 한순을 떠올리며 그를 추모했다. 그 후, 회의를 파했다.
장수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리고 밖으로 나갔고, 군영 밖은 소란스러워졌다. 돼지를 도축하고 국을 끓이느라 기름 냄새가 진동한 것이다. 전예, 문칙의 군대가 바로 출병해야 했기에 그들에게 뜨끈한 국물과 밥을 먼저 먹였다. 그 후, 고깃국과 밥은 공평하게 분배되었다. 항병들도 예외 없이 배급되었다.
장수들이 물러난 후, 항장인 양정, 노욱, 송과가 원매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매우 불안한 표정으로 원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각이 모질게 자신들을 다룬 경험이 있는 그들이었기에, 원매가 어찌 나올지 몰라 두려움이 들었다.
[노욱(33)] 무력:63, 통솔력:58
[양정(31)] 무력:70, 통솔력:62
[송과(34)] 무력:73, 통솔력:65
“내가 이각을 죽인 것은 그가 폭정이 너무 지나쳤기 때문이야.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었는지는 자네들이 더 잘 알 것이야. 내 휘하에 있으면 오로지 능력에 따라서 장군으로 진급하고, 포상을 받게 되네. 어떤가? 나를 따르겠는가?”
노욱, 양정, 송과는 원매가 능력만 있으면 진급까지 시켜준다는 파격적인 제안에 경악했다. 동탁, 이각은 오로지 친족 아니면 서량 출신이어야 고위직급이 가능했다. 특히 이각은 자신의 동생, 조카 등을 중요요직에 앉혔다. 원매가 그들의 생각을 짐작한 듯 입을 열었다.
“나는 이각과 달라. 일례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향도 성도 다르지. 그리고 원씨성을 가진 자도 없다네. 왜 그러겠는가? 오로지 능력 위주로 뽑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
원매는 다시 그들에게 책사, 장수들을 얻은 이야기를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그들의 진정한 마음을 끌어냈다. 항장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한 명의 장수를 대하는 원매의 태도에 그들은 크게 감복하여 엎드려 절하며 충성을 다짐했다. 원매는 그들은 한 명씩 손을 잡고 격려를 했다.
충성의 답례로 술을 한잔을 내려 같이 마셨다. 셋은 다시 충성을 외치고는 원매의 지시에 따라 고람에게로 향했다. 원매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가 항장들을 이례적으로 부드럽게 다루며 설득한 이유는 항병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장수들이 원매를 따라 그들을 잘 설득한다면 원매군으로 돌아서는데 훨씬 도움이 될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문칙이 4백의 기병을 이끌고 먼저 섬현으로 나아갔고, 전예가 4천 보병을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전예는 병사들과 행군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지형의 특성으로 봤을 때, 섬현은 반드시 점령해야 한다. 만약 단외가 조조를 따르기로 마음먹고, 지원군을 요청했다면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다. 서둘러야겠구나. 관중의 상황이 만만치가 않구나.’
“서둘러라! 급속행군한다!”
전예의 명령에 병사들은 큰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잰걸음으로 행군을 이어갔다. 정현전투에서 전예군은 가장 후방에 위치하면서 전투가 거의 없었기에 체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칙과 전예는 화음현의 단외를 만나지 않고 우회하여 그대로 섬현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