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제 41장 관중전투關中戰鬪-4-4
“우아아아아--”
이각군이 위연군 방책을 점령하고 외치는 함성이 정현 일대를 진동했다. 그토록 고생해서 이제 하나 점령한 것이다. 이제 노력하면 더 많은 방책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들의 표정은 환해졌다. 장수들은 병사들에게 휴식을 부여하고, 다친 병사들을 돌보며 재정비를 시작했다.
“우하하하하— 그럼 그렇지. 이제야 본 실력이 나오는구나. 언제까지 애송이 원매에게 당하겠는가? 여봐라- 누구 있느냐?”
“예. 대사마.”
“오냐. 당장 저들에게 술을 내주어라. 승리했으니 상을 내려줘야지.”
“안됩니다. 술은 안됩니다.”
술을 내려주려는 이각을 이유가 급하게 제지했다. 이각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이유가 진언을 올렸다.
“이제 겨우 방책을 하나 넘어섰습니다. 병사들을 휴식시키고 곧바로 다른 방책을 점령해야 합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는데 술이라니요? 안됩니다. 명을 거둬주십시오.”
“어차피 오늘은 정비해야 해. 그간 얼마나 힘들게 싸웠는가? 장수들만 한 잔씩 하라는 것이야.”
“전쟁이 끝난 후에 술판을 벌여도 늦지 않습니다.”
“그만 나불거려!”
이각의 입에서 거친 표현이 쏟아지자, 이유가 급히 입을 닫았다. 그간 황제조차도 제 아래로 보며 마음대로 살아왔던 이각이었다. 장수들이 고생했다고 술을 내려준다는데, 이유가 막아서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잘 들어. 동상국의 책사였기에 내가 그나마 대우를 해주는 것이야. 자네는 계책을 짜서 내게 헌납하면 돼. 그 이상은 주제넘게 나서지 말게. 알겠는가?”
서슬 퍼런 이각의 말에 이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각의 명령대로 장수들에게 축하의 술이 하달되었다. 술은 장수들에게 한 병씩 돌아갈 정도로 적은 양이었다. 이유는 술의 양을 보고는 자신이 조금 예민한 게 아닌가 생각하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장수들이 술을 먹으면 병사들은 흔들린다.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온 연못을 채우듯 분명히 기강이 해이해질 것이다.’
이유는 안타까웠지만, 자신이 더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이각이 승전을 축하하는 술을 내리자, 장수들은 사마, 도백들을 불러서 경계강화를 명령하고는 간단히 술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넘어가며 속을 싸하게 감싸자 절로 ‘크흑-’하는 트림 소리가 흘러나왔다. 몇 번 마시자 술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아쉽게도 딱 목을 축일 만큼만 제공되었다.
장수, 교위만 술을 마시면서 분위기는 미묘해졌다. 사마, 도백이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각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그동안 참아왔던 갈증을 풀었다.
“이 좋은 걸 그동안 어찌 참았는지 모르겠군.”
동생인 이응과 조카인 이리는 연신 술을 권하며 들이켰다. 이응이 폭음하자, 이각이 눈을 부라렸다.
“이놈아. 내일 전투를 또 벌일 텐데 적당히 좀 마셔라.”
“형님. 오늘 승리했으니 봐주슈. 장수들만 슬쩍 마시고, 병사들은 지금 경계를 열심히 설 테니 문제없소.”
이응은 벌써 혀가 꼬이고 있었다. 이각도 더는 말리지 않고, 술잔을 비웠다. 오늘은 술을 먹고 전투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싶었다.
원매는 위연군영이 함락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격명령을 하달했다. 그들은 말고삐를 쥐고, 조심스럽게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각의 눈을 피해 제법 높이까지 올라갔기에 내려오는 데만 한참 걸렸다. 희미한 달빛 덕분에 간신히 사물을 분간해 가며 어렵게 평지로 내려오자, 곧바로 기병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원매는 다시 장수들을 불러모았다.
“내가 앞장설 것이다. 그러니 나를 따라오면 된다. 우리의 목표는 이각이다. 이각 한 명만 보고 돌격한다. 알겠느냐?”
“예! 도독!”
“준비하라!”
원매의 짧고 단호한 명령에 병사들이 말에 올라탔다. 말 울음소리가 퍼졌고, 3천의 기병이 개활지에 모였으므로 이각군도 조만간 원매의 기습을 눈치챌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사마구. 불화살 세 발을 연이어 쏘아 올려라!”
사마구는 고람과 약속한 신호인 불화살 세 발을 연이어 쏘아 올렸다. 이제 이각군도 불화살을 보고 의아함을 가질 것이다.
“공격한다! 돌격하라!”
두두두두두두--
3천의 기병들은 일제히 이각군영으로 내달렸다. 장수들은 호각을 불고, 소리를 지르며 기병대형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속했다. 3천의 기병이 내달리는 소리는 엄청났다. 이각군영이 시끄러워지며 횃불이 밝혀졌고, 병사들이 방책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속도로 내달린 원매기병은 순식간에 이각군영에 가까워졌다.
“발도拔刀!”
원매의 명령에 장수들이 일제히 ‘발도!’을 외치며 도를 뽑아 들었다. 이미 정찰을 통해 이각군영의 약한 부분을 파악해놓았기 때문에 기병은 거침없이 돌격했다. 바로 취사, 군량 창고가 집중된 후방 쪽이었다. 다소 약하게 설치된 방책을 그대로 넘어서거나 선두의 기병들이 부딪치면서 무너뜨렸다.
활을 쏘며 저항하던 이각군은 방책이 돌파되며 기병들이 몰려들자,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다. 3천의 원매기병은 이각군영을 휘젓기 시작했다.
“이각을 잡아라! 모조리 불을 놓아라!”
곳곳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이 급하게 몰려나왔고, 기병들이 허겁지겁 말에 올랐다. 정상적으로 준비를 하고 맞붙었다면 이각기병이 수적으로 유리했지만, 준비가 안 된 그들은 원매기병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이각이 술에 취한 채 급히 밖으로 나왔다. 곳곳에서 불길이 솟았고, 전투가 벌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자 이각은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 이 쳐죽일 새끼들!”
“원매기병이 기습했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양밀이었다. 양밀은 최대한 빠르게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그리고 자리를 피할 것을 권했다. 3천의 기병이 급습했고, 방책 안에서 꿈쩍도 안 하던 원매보병이 공격해오고 있었다.
“대사마. 어서요. 시간이 없습니다!”
“갑옷을 가져오너라! 내가 동상국(동탁)을 따라 천하를 호령하던 이각이다! 내가 이각이란 말이다!”
천하의 용장이었던 이각은 술기운이 돌자,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었다. 양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갑옷을 받쳐입고, 장창을 들었다. 곧 그의 주위로 호위기병들과 장수들이 몰려들었다. 급하게 준비를 했기에 그들은 다소 엉성했다.
“가자! 원매라는 애송이만 죽인다면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각의 판단은 나쁘지 않았다. 무작정 도망친다면 추격을 당하여 죽겠지만, 상대편 대장인 원매를 죽인다면 충분히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각은 급히 일천의 기병을 모아 원매를 찾아 나섰다. 이리, 충집이 그를 호위했다. 이각의 눈은 점차 음울하게 가라앉았다. 예상보다 피해가 심각했고, 원매기병의 위력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멀리서 새까맣게 몰려오는 보병을 보자 양밀의 진언을 물리친 것이 후회되었다.
“저놈이 이각이다! 모두 나를 따르라!”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이각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파죽지세로 일점돌파를 하며 달려드는 기병이 눈에 들어왔다. 맨 앞에서 도를 휘두르는 장수의 무용은 실로 대단했다. 마치 기병들이 죽여달라고 목을 도에 갖다 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각을 잡아라!”
“이각을 잡아라!”
사방에서 기병들이 일제히 이각을 발견하고는 몰려들었다. 충집과 이리가 기병들을 이끌고 달려나갔다. 치열하게 기병접전이 이어졌지만, 원매기병이 점차 이각기병을 압도하고 있었다.
“이놈-”
아까 일점돌파를 하던 장수가 이각기병을 척살하고 이각의 눈앞까지 짓쳐 들고 있었다. 용장이었던 이각이 장창을 들고 그놈과 맞붙었다.
‘창-’
엄청난 힘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뛰어난 기술에 이각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밀리기 시작했다. 그간 장안에서 술과 향연에 취해 살면서 무인의 감각이 떨어진 탓이었다. 이각이 힘으로 간신히 몰아붙이고는 입을 열었다.
“네놈은 누구냐?”
“원매!”
원매는 더는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 짧게 자신을 밝히고는 그대로 몰아붙였다. 그의 반월도는 갈수록 위력을 더해갔다. 위험을 눈치챈 이리가 원매를 막아서자, 이각은 급히 도주했다. 원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는 이리를 상대하며 명령을 내렸다.
“당장 이각을 쫓아라! 어서!”
원매의 명령에 조독과 장의가 기병을 몰아 추격을 개시했다. 분노로 가득 찬 원매의 반월도를 이리는 힘겹게 힘겹게 막아섰다.
“죽어라!”
원매가 작심하고 무거운 반월도로 이리를 내리치자, 이리가 급히 도를 들어 막았다. 하지만 반월도는 도를 그대로 박살 내며 이리를 갈라놓았다.
“이각을 추격한다! 나를 따르라!”
원매가 조독과 장의를 따라서 곧바로 추격에 나섰다. 군영 밖에서 기병들 간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독과 장의가 이각기병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었다. 원매에게 밀렸지만 이각은 이각이었다. 조독과 장의가 이각을 죽이지 못하고 밀리고 있었다.
“길을 열어라! 이번에는 도망치지 못한다!”
원매가 큰소리로 외치자 기병들이 일제히 길을 텄다. 이각까지 연결되는 일직선의 길이 만들어지자, 원매는 반월도를 비스듬히 내리고는 달려들었다. 이각은 원매를 발견하자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저 원매 개자식을 또 만나는구나!”
이각은 이빨을 악물며 장창을 들고 원매에게 내달렸다. 두 장수가 맞붙는 커다란 반경 안으로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원매는 이미 이각의 약점을 파악한 듯했다. 최대한 근접하여 장창의 효용을 무력화시킨 후, 옆으로 지나치면서 반월도로 말을 후려쳤다.
이각의 말이 놀라서 날뛰며 이각이 흔들거리자, 원매가 달려들어 그대로 두 동강을 내버렸다.
“이각이 죽었다! 모조리 격살하라!”
“우와와와와--”
원매기병들이 힘을 내서 남아 있는 이각기병들을 몰아붙였다. 이각을 따르던 일천의 기병들은 참혹하게 몰살되었다. 이각의 목을 창대 끝에 꽂아 세우고는 원매기병이 일제히 소리쳤다.
“이각이 죽었다! 이각이 죽었다!”
원매기병이 내지르는 소리는 엄청났다. 정현 일대를 쩌렁쩌렁 울렸다. 이각의 죽음은 이각군을 마비시켰다. 만약 이인자를 키워놓았다면, 그가 곧바로 지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인 독재를 하며 이인자를 키우지 않은 탓에 이각군은 곧바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각이 살아있었다면 곧바로 어떤 조치가 있었을 테지만, 그게 없었다.
보병들까지 밀려들면서 일부 저항하는 병사들은 참혹하게 몰살되되기 시작했고, 대부분은 엎드려 항복했다. 원매가 사마구와 일백기병의 호위를 받으며 전쟁을 주시하는 동안, 기병들도 다시 전투에 참여하여 전과를 확대했다. 이각이 죽어 승기는 넘어갔지만, 일부 이각군은 끈질기게 버티었다.
결국, 날이 밝아서야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위연군영을 점령하고 지키던 노욱, 양정이 이끄는 팔천의 보병은 전예군에 막히어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다가 이각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항복했다. 이각을 따랐던 이리, 양밀, 충집이 죽었고, 마지막까지 군대를 이끌고 저항했던 이응도 결국엔 목숨을 내놓았다.
송과는 무기를 내던지고 항복했다. 보병 2만 중에서 1만 3천, 기병 8천 중에서 5천이 항복했다. 나머지 병사들은 죽거나 도주를 했을 것이다. 실로 대승이었다. 이각을 죽이면서 그들의 사기를 꺾어 놓은 것이 주효한 결과였다.
원매군의 피해도 컸다. 기병대장 한순이 불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한순의 죽음은 원매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보병은 압도적으로 밀어붙였기에 다행히 죽은 장수들은 없었다.
원매군은 보병 2만 4천 중에서 도합 4천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으며. 기병은 7백이 죽거나 다쳤다. 처음 돌파를 할 때와 이각을 따르던 정예기병을 몰살할 때 집중적으로 피해가 생겼다. 야간기습이 성공했기에 이 정도에 피해가 그친 것이다.
장수들이 항병을 분류하고, 전장정리를 하는 동안, 기병이 한 명의 늙은이를 끌고 왔다.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