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제 39장 관중전투關中戰鬪-4-2
“화살을 장전하라! 내 명령을 기다려라!”
감녕은 전방에서 거침없이 진군해오는 이각군을 보면서 이같이 명령을 내리고는 긴장한 듯 주먹을 말아 쥐었다. 방패를 들었기에 활을 쏜다 하더라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어떡하든 최대의 성과를 내야 했다.
“정확하게 조준해서 쏘아라! 알겠느냐?”
“예! 장군!”
감녕이 다시 한번 강조를 하고는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이윽고 이각의 선발대가 장애물 앞에 도착하여 철거작업을 시작하자 그의 오른손이 빠르게 내려왔다.
‘삐이이이익-’
이를 신호로 날카롭게 귀를 후벼 파는 호각소리가 울려 퍼졌다.
‘슈슈슈슈슉-’
미리 조준하고 있던 궁병, 노병들은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장애물을 치우는 동안 다른 병사들이 방패로 막아주었지만, 화살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마치 세워두었던 통나무가 쓰러지듯 이각군이 쓰러졌지만, 그들은 꾸역꾸역 후방에서 밀려 들어왔다.
“보병들은 수성전을 준비하라!”
감녕이 얼굴을 굳히며 다음 단계를 지시했다. 이각군은 장애물을 모두 치우지 않고, 길을 만든 후 곧바로 진격해왔다. 그들 앞을 다시 가로막은 것은 길게 옆으로 이어진 구덩이였다.
호붕은 사방에 사다리, 널빤지를 걸치고 건널 것을 명령했다.
쿵-쿵-
사다리, 널빤지가 구덩이를 가로지르면서 사람이 움직일 공간은 확보되었다. 이각군은 방패를 들고 일제히 구덩이를 건너기 시작했다. 전투는 장애물을 치울 때보다 훨씬 격렬해졌다. 이각군의 사상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각군에서 장애물을 처리하고 자리 잡은 궁수들이 지원을 시작했다. 양쪽에서 화살이 날아오면서 감녕군과 이각군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각군은 죽은 병사들을 구덩이로 밀어 넣어 메꾸는 참혹하지만, 현실적인 전술을 펼쳤다.
쿵-쿵-
통나무를 든 이각군이 목책을 쳤다. 강력한 통나무의 공격에 목책이 흔들리자, 감녕군은 돌을 던지고, 화살을 쏘며 저항했고, 뜨거운 물까지 부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감녕이 죽을 고생을 하며 싸우는 동안 위연은 하늘이 노래지도록 소리를 질러야 했다. 감녕군영이 산 끝자락에 있는 반면에 위연군영은 위수에 연한 갈대밭에 있었다. 방어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위연이 나이가 젊고 가장 용장이었기에 이곳에 배치한 것이다.
이각군은 거침없이 밀려들고 또 밀려들었다. 7천이 버티는 위연군영은 견고하게 버티고 버티었다.
이각은 후방에서 전투를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보다 원매군이 저항이 격렬했기 때문이었다.
“대사마. 이제 기병을 진격시키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능은 하지만 지금 돌격시키면 기병의 피해가 커져. 일단 보병을 이용해서 방책을 무너뜨리는 게 급선무야.”
이각은 냉정하게 이리의 요구를 일축하고는 기병을 점고하라며 돌려보냈다. 이유가 눈에 들어오자, 손짓하여 불렀다.
“아직 원매는 조용한가? 충집한테 어떤 소식이 없느냔 말이야?”
“원매가 충집에게 손을 뻗으려면 시간이 좀 더 지나야 합니다. 우리의 공격이 주춤할 때 충집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그럼 빠르게 원매군을 돌파해버리면 충집에게 손을 뻗치지도 못하겠군.”
“그럴 것입니다. 충집은 기병을 이끄니 일단 돌격해나가면 연락할 틈이 없으니까요. 다만 저들의 저항이 강력해서 원매의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자네는 아직도 장기전에 미련이 남아있군.”
이각이 조금 힐난조로 쏘아붙이자, 이유는 빙긋 웃음을 지었을 뿐이었다. 이각은 말을 끊고 답답한 마음으로 전방을 지켜보았다.
벌써 한 시진(두 시간)이나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방책이 무너진 곳은 없었다. 일부가 무너지면 보병들이 쏟아져 나와 전투가 벌어지고, 다시 보수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위연과 감녕의 방책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이각은 이응과 노욱에게 일만을 주어 진격시켰다. 보병이 틈만 만들어 놓는다면 기병을 돌격시켜서 전과를 확대할 생각이었다.
고람은 후방에 있던 이각군이 급하게 앞으로 밀려들자, 파재, 이통에게 대응할 것을 명령했다.
둥--둥—
북소리가 계속해서 울리며 파재와 이통이 8천의 군사를 이끌고 쏟아져 나왔다. 감녕과 위연이 호붕, 양정을 상대로 버티는 가운데, 파재와 이통이 이응, 노욱이 이끄는 이각군과 백병전을 벌였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이들이 감녕, 위연군영을 협동 공격하여 무너뜨릴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처절한 백병전은 서로 밀고 밀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고람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전예군이 백병전에 참전한다면 도움이 될 터이지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각의 기병 때문이었다. 기병의 돌격은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막기가 어려웠다.
이각은 참지 못하고 기병을 돌격시켰다.
삐이이이익--
고람은 이각기병의 돌격을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길게 호각을 불어 알렸다. 파재와 이통은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백병전에서 철수하여 목책 안으로 후퇴했다. 이제 처절하고 외로운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서로가 돕지 못하는 가운데 방책 안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버텨야 한다.
이각은 원매의 기습에 대비하여 기병 3천을 남겨놓고, 5천을 돌격시켰다. 기병이 방책 사이를 휘젓자, 원매군의 방책은 고립되었다. 이각의 모든 보병은 감녕군영, 위연군영으로 몰려들었다. 원매휘하의 가장 강력한 용장인 위연, 감녕은 어려운 상황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원매기병군영.
원매는 착잡한 눈길로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병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연과 감녕은 죽을 고생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기병은 빨라서 화살로 공격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일부 기병이 쓰러졌지만,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적어도 며칠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야 이각군에 틈이 생길 것이다. 어쩌면 한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초조하지만 버텨야 한다.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반드시. 그때 충집에게 반란을 유도해야 한다. 답답하구나. 장기전을 각오했지만 답답해.’
원매가 이런 생각에 잠기며 전황을 지켜보고 있을 때, 사마구가 다가왔다.
“도독. 충집이라는 장수가 반란을 일으키겠습니까?”
“글쎄. 지켜봐야지. 할 말이 있는가?”
“지금 이각군에는 병사뿐만 아니라, 군수지원을 맡은 수많은 백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눈치 빠른 병사들을 세작으로 내려보내어 충집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리 영특한 장수가 아닌 만큼, 변고가 생겼다면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할 것입니다. 이런 것을 살핀 연후에 계책을 시행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다. 당장 시행하라!”
원매는 사마구의 계책을 받아들여, 백성으로 변복한 병사들을 세작으로 보내 충집을 감시하게 했다.
무려 세 시진(여섯 시간)에 걸친 전투는 이각이 징을 쳐서 군대를 물리면서 끝이 났다. 너무 오랜 시간 전투가 지속되면서 병사들의 피로가 극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이각군이 물러나자 위연군과 감녕군은 모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만큼 전투가 만만치 않았다.
“빌어먹을. 이각 이 지독한 놈 같으니라고.”
가장 격렬했던 위연군영. 위연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욕설을 토해냈다. 단 한 번의 전투로 방책이 많이 망가지고, 병사들이 많이 상했다. 위연은 일각(15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곧바로 병사들을 재촉하여 죽은 병사들의 시체들을 치우고, 방책을 보수하는 등 또 있을 이각의 공격에 대비했다.
전예는 급히 병사들을 위연, 감녕군영으로 파견하여 방책을 보수하고 장애물을 다시 세우는 일을 도왔다. 위연, 감녕군영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져서 사상자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전예가 도우러 온 것이다.
고람은 망루에서 전장을 주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힘겨운 첫 번째 전투가 끝났군. 순치중은 이번 전투를 어찌 생각합니까?”
“대단히 격렬했던 전투인 것은 맞지만 희망이 보입니다. 기병 없이 저들의 공격을 훌륭하게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이대로 며칠을 지난다면 이각은 흔들릴 것입니다. 그때 도독께서 시기를 잘 맞추어 기습하면 끝날 것입니다.”
순유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예상보다 이각군의 기세가 강렬하여 걱정했지만, 역시 원매군의 능력도 대단했다. 고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순유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각군영.
제장들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각은 얼굴을 일그러졌다. 여섯 시간을 싸우고도 방책을 하나도 점령하지 못했고, 수많은 병사의 목숨만 날린 것이다.
“도대체 뭘 한 것이냐? 목이 날아가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이각이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터트리자, 장수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특히 충집은 머리까지 찧어댔다. 이각의 호통이 이어지는 가운데, 장수 중에서 누구 한 명 대꾸하지 못했다.
“이리! 이응! 말해봐. 아까는 공격만 하면 바로 점령할 것처럼 떠들었잖아.”
“그게 어디 한 번에 됩니까? 며칠 더 공격하면 분명히 돌파될 것입니다. 노여움을 푸시고, 시간을 주십시오.”
“이런 못난 놈들! 모두 나가서 병사들 정비 시켜! 그리고 오늘 밤에 다시 공격한다. 어서 준비해!”
“예! 대사마!”
장수들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물러났다. 그나마 이각의 동생인 이응이니 한마디 대꾸한 것이다. 다른 장수들은 대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장수들이 물러나서 다시 공격준비를 하고 있을 때, 이유가 이각의 표정을 살피며 진언을 올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또 장기전을 말씀하시는 게요?”
이유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이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거부했다.
“이미 명령을 내렸고, 전투가 시작되었소. 반드시 저놈들을 박살 내서 구겨진 내 체면을 회복해야겠소. 그러니 더는 그런 말은 꺼내지 마시오.”
분노한 이각을 보며 이유는 입을 다물었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결판을 내야 한다. 그는 밖으로 나왔다.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서량으로 돌아갈 수는 있을까? 이번 전투는 원매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 큰일이로구나.’
이유는 눈물이 흘렀다. 뻔히 상황이 보이는데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사마구가 보낸 세작은 백성들 틈에 섞여 이각군영으로 침투했다. 그는 병사들이 시키는 자질구레한 일을 하며 틈을 엿보았다. 밤이 되자 사방이 공격준비를 하느라 어수선했고, 그는 은밀히 충집군영으로 스며들었다.
충집을 비롯한 사마, 도백의 표정은 어두웠다. 특히 충집은 멀리서 보기에도 표정이 어둡고,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다른 장수들 군영과 분위기가 달랐다.
세작은 한참을 더 살핀 후에 은밀하게 군영을 빠져 나왔다. 어두운 밤이었고, 온 군영이 야간 공격준비를 하느라 어수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산을 타고 올라온 그는 곧바로 사마구를 찾았다. 사마구는 한참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원매에게로 향했다.
늦었지만 원매는 군말 없이 사마구를 안으로 들였다. 사마구의 보고를 듣고 고민을 한 원매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충집을 믿기가 어렵겠군. 덜떨어진 위인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표정 관리를 못 하다니.”
“혹시 들통난 것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중요한 것은 이리돼서는 이용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지. 아무래도 충집은 포기해야겠어. 쓸데없는 고생만 했군.”
원매는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안쪽에서 반란을 일으켜주면 훨씬 일이 수월하게 풀렸을 테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충집은 원매의 예상보다 훨씬 못난 위인이었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틈을 봐서 급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원매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쉬움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어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어차피 장기전이다. 하나의 계획이 어그러졌을 뿐이다. 충분히 승산은 있다. 오늘 전투도 고람이 훌륭하게 치러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