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제 38장 관중전투關中戰鬪-4-1 (지도첨부)
한순이 이끄는 기병 3천은 정현에 도착하자마자 조를 나누어 지형을 정찰하고는 최적의 장소를 잡아 방책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경계병을 세운 가운데, 나머지 병사들을 이용하여 길게 구덩이를 파고 주위의 나무를 베어와 장애물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들이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긴 구덩이를 파놓았을 때, 그 뒤를 이어 파재가 이끄는 5천의 보병이 당도했다. 파재는 기병들에게 휴식과 경계를 부탁하고는 곧바로 구덩이를 확대하고, 목책을 세우는 일에 매달렸다. 계속해서 도하를 한 보병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장애물을 만드는 일은 활기를 띠었다.
방책은 길게 이어지며 완만한 U자 형태를 띠게 만들어졌는데, 가운데 뚫린 부분이 장안을 향하게 설치되었다. 원매가 도착했을 때는 방책이 상당 부분 완성되어 있었다. 원매는 방책을 둘러보고는 순유, 고람, 파재, 이통, 전예를 호출 했다. 네 명이 보병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지휘관이었다.
“내가 기병을 이끌고 적의 틈을 노릴 터이니, 자네들을 이곳에서 이각을 막아. 짧게 끝난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려. 군량은 충분히 가져왔으니 겨울까지 싸운다는 생각으로 전투에 임하게. 나는 끈질기게 기다리며 적의 틈을 노릴 것이야. 틈이 생기지 않는다면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니 여기서 먼저 무너지면 안 돼. 알겠지?”
“알겠습니다.”
“고장군! 자네가 이곳의 총대장이야. 순치중과 항상 의논하고, 여기 네 명의 의견을 들어서 일을 처리하게. 우리가 이각보다 앞서는 것은 단결력과 인내심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
원매는 순유와 장수들을 일일이 격려하며 말에 올랐다. 순유가 걱정스러운 듯 다가왔다.
“책사가 한 명은 따라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두부주(두기)를 데려가십시오.”
“그곳은 기병들만 있는 곳이야. 빠르게 기동을 해야 하는 만큼 방해가 될 것이네. 그리고 책사라면 여기 있잖은가?”
원매는 사마구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사마구는 얼굴이 붉어지며 급히 손을 내저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도독의 신변을 보호할 뿐입니다.”
원매가 사마구를 보고 싱긋 웃더니 순유에게 말했다.
“이미 중요한 계략과 신호체계에 대해서는 의논을 마치지 않았는가? 걱정하지 말고 이곳을 지키게. 반드시 성공해서 다시 만나세.”
“무사하셔야 합니다.”
순유가 안타까운 눈으로 원매를 바라보았다. 원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이 일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장수들이 일제히 군례를 올렸다. 원매의 명령에 문칙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한순, 조독, 장의, 사마구가 원매를 호위하여 이동했다.
고람은 원매가 떠나가자 순유와 의논하여 지역과 장수배치를 완료했다. 왼쪽 첨병으로 위연이 7천의 군사를, 오른쪽 첨병에는 감녕에게 5천을 주어 지키게 했다. 이 두 곳이 전투가 가장 크게 벌어질 곳이기에 장애물을 가장 많이 배치하고, 구덩이도 깊게 파놓았다. 감녕이 산 끝자락에 있었고, 위연이 강가에 있었기에 위연에게 보다 많은 병력을 배치했다.
그 뒤를 파재, 이통이 각각 4천씩 거느리며 위연, 감녕을 돕는 역할을 맡겼고, 후방에 고람, 전예, 순유가 5천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지켰다. 첨병부대 못지않게 최후방의 고람/전예의 진영이 중요했다. 만약 이곳이 뚫리는 날이면 이번 전투의 승기가 이각에게 넘어갈 수 있었다.
고람은 장수들을 배치하고는 망루에 올라 그들이 방어준비를 하는 것을 침착하게 지켜봤다. 최후방은 전예가 책임지고 방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순유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전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을 도독께서 맡으셨습니다.”
“도독께서는 항상 전투에 앞장섭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런 것을 예상했습니다.”
순유가 이상한 듯 쳐다보자, 고람이 오해는 하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처음으로 도독께 도법을 가르쳐주었소. 그때는 겨우 입문단계였소. 하지만 지금은 우리 군 최고 용장인 위연, 감녕도 버거워할 정도로 성장하셨소. 겨우 일 년입니다. 일 년 만에 평범한 무장에서 최강의 무장으로 등극한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무력의 끝을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그러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겠습니까?”
“아니? 그게 가능합니까? 일 년 만에 평범한 무장이 최강의 무장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까?”
“내가 듣고, 본 바로는 도독이 처음입니다. 아마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도독을 믿으십시오. 무력도 무력이지만 상황판단능력도 굉장히 뛰어납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불사신처럼 살아올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순유는 고람의 말을 듣고는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원매는 장병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주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대 같은 책사는 어쩌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전장은 조금만 실수해도 목숨이 날아가는 치명적인 현장입니다. 누구나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때 장수가 뒤로 빠지면 병사들은 용기가 나지 않아 사기가 떨어집니다. 하지만 장수가 어려운 임무에 항상 앞장선다면 병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는 법입니다. 도독께서는 항상 앞장을 서십니다. 그래서 장병들에게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장군도 도독께서 무조건 승리를 하시리라 확신합니까?”
“그렇습니다. 확신합니다.”
순유는 고개를 돌려 흐린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원매를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 이 정도로 믿음이 있었기에 도독께서는 단결을 강조하셨고, 그것이 앞선다고 말한 것이다. 어쩌면 예상보다 손쉽게 승리를 거둘지도 모른다. 어쩌면. 제발 잘되었으면 좋겠는데.’
원매군이 방어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이각은 군대를 이끌고 거침없이 진군하고 있었다. 이유가 문득 불안한 듯 이각에게 다가와 진언을 올렸다.
“정찰하면서 행군을 천천히 하시지요. 원매 이 여우 같은 놈이 매복이라도 펼치면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자네는 빠져있게. 내가 애송이 놈을 어찌 교육하는지를 보여주지. 서둘러라!”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이각의 군대는 힘을 내서 급속행군을 지속했다. 이유는 ‘휴-’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며 뒤를 따랐다.
거침없이 진군하던 이각군은 선발대로 보냈던 이리가 호위병만 이끌고 돌아오면서 멈췄다.
“대사마. 원매군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어떤 진형이더냐?”
“양쪽에 동그랗게 방책을 만들었고, 안으로 깊숙하게 포진한 학익진의 형상이었습니다.”
“기병은 보이지 않더냐?”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방책을 쳤으니 그 뒤로 숨지 않았겠습니까?”
이각은 이리를 잠시 입 닫게 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곰곰이 적의 의도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각이 정치력은 떨어지지만, 전투에 대해서는 대단한 장수였다. 영천에서 주준을 격파했으며, 여포군을 격파하여 서영을 참수하기도 했을 정도로 무력으로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었다.
“일단 근처에 주둔지를 편성해라. 적 진영을 살펴보고 그다음에 결정하자.”
이각의 명을 받은 이리가 군례를 올리고 다시 전방으로 달려나갔다. 이각군은 원매군의 진영으로부터 약 이 마장(약 800m) 떨어진 곳에 군영을 설치했다. 병사들이 군영을 설치하는 동안 이각은 이응, 이리와 이유를 거느리고 원매군을 진영을 훑어보았다.
“어찌 생각하시오?”
“이거 좋지 않습니다. 저들은 장기전에 대비한 것이 분명합니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대사마께서 불리합니다.”
이유는 한눈에 원매의 계책을 눈치챘다. 이각도 장기전이라는 말이 나오자 얼굴이 굳어졌다. 이때 같이 왔던 이응(동생)이 발끈했다.
“우리가 기병이 8천이오. 뭐가 두렵소. 그냥 부숴버리면 되지. 대사마께서는 장안성을 함락할 때 여포도 물리치고, 서영도 참수했소.”
“맞습니다. 그냥 부숴버리지요. 목책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일제히 몰아치면 무너질 것입니다. 소장이 앞장을 서겠습니다.”
이응과 이리가 강하게 전투를 종용하자, 이유가 얼굴을 굳히며 이각에게 거듭 진언을 올렸다.
“지금이라도 장안에 사람을 보내서 군량을 더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저들은 우리가 장기전에 약하다고 생각하고 저리 하는 것이니, 우리가 끈질기게 버틴다면 분명히 당황하여 틈이 생길 것입니다. 그때 공격하면 대사마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게요? 저 알량한 목책이 두려워서 기다리잔 말이오? 우리의 강점은 공격력에 있소이다. 강점을 앞세워야 승리를 한단 말이오. 대사마. 병사들에게 하루 정도 휴식을 주고 당장 공격하시지요. 보병을 이용해 장애물을 걷어내고, 기병을 돌격시키면 됩니다. 목책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이응이 강하게 반발하며 무서운 눈길로 노려보자 이유는 섬뜩했다.
“하루만 더 생각해보자. 그리고 너는 눈을 왜 부라려? 안 깔아?”
이각의 호통에 이응이 그제야 눈길을 돌렸다. 이각은 좀 더 원매 군영을 확인하고는 되돌아 왔다. 뒤를 따라가는 이유는 답답했다.
‘그전에도 공격적이긴 했지만, 이 정도 전술은 이야기하면 금방 알아들었는데. 대사마가 그간 장안성에서 환락에 빠지면서 전투에 대한 감이 떨어졌다. 단기전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면 모든 게 끝인데. 큰일이로구나.’
이각은 군영으로 돌아와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령하고는 고민에 빠졌다. 장기전을 벌인다고 생각하니 벌써 답답함이 밀려왔다. 편안한 장안성을 내버려 두고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그래. 이응 말대로 장애물 걷어내고, 돌격하면 괜찮을 거야. 애송이 놈이 실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으려고.
이각은 결심을 굳히며 일어섰다.
원매 기병 군영.
원매 기병은 산속 깊숙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각군을 기습하려면 평지까지는 말을 끌고 조심히 내려간 후에 기습해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이었지만 이각과 이유를 속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원매는 공터에서 반월도를 뽑아 들고 무술수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때가 되면 항상 마음이 차분해지고,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이각(30분) 동안 도법을 수련한 원매는 숨을 토해내며 도를 멈추었다. 확실히 무력이 90을 넘어선 후 모든 것이 부드럽게 연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91에서 벽에 막힌 것처럼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원매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사마구가 다가와 보고를 올렸다.
“도독. 이각군이 저 아래에 군영을 설치했습니다.”
“계속 감시해. 아직 우리가 나서려면 멀었어. 저놈들이 공격이 무뎌지고, 내분이 일어날 때 그때 우리가 나서는 것이야. 그러니 감시를 철저히 하고, 기병들에게 휴식과 가벼운 훈련을 시켜.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해.”
“알겠습니다. 도법 수련은 잘되십니까?”
“글쎄. 어느 부분에서 막힌 듯하더니 그 이상은 진전이 없구나. 아무래도 내려가서 전투를 해봐야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이각군의 이름난 장수라 할지라도 도독을 당해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리 쉽게 만족할 것이면 업성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그저 따뜻한 밥 먹고 편안히 산다면 큰 욕심 부리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큰 야망을 이루려면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부단히 노력하고 노력한 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면 된다.”
“만약 하늘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죽겠지. 중간은 없다.”
원매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고 따르거라!”
사마구가 고개를 숙이며 복명했다.
이각군영.
이각은 하루 동안 고민을 하고, 여러 장수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결정했다. 공격하기로! 이유는 이각이 공격 결정을 내리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각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호붕, 양정이 방패를 든 군사들을 이끌고 진군을 개시했다. 그 뒤에는 통나무를 든 병사들과 중장보병이, 그 뒤를 기병이 대기했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