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제 37장 이유李儒
이각은 말없이 충집을 노려보며, 조금 전에 이유가 말한 내용을 떠올렸다.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원매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말 없이 화난 표정을 지으며, 충집을 노려보십시오. 그럼 제 놈이 켕기는 게 있을 것이니 토설할 것입니다.’
이각은 처음에 이유가 무슨 말을 하나 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충집의 행동이 이상했다. 이각이 똑똑하진 않아도 표정을 보고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빨랐다. 수많은 병사를 다루고, 적들을 죽이면서 오랜 세월을 살다 보니, 상대의 얼굴을 보면 대략 어떤 감정을 지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충집 이놈이 뭔가를 숨기고 있군.’
충집은 이각이 살기를 풍기면서 노려보자,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납작 엎드렸다.
“대사마. 살려주십시오. 소장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소상히 이야기해봐.”
충집은 울먹이며 모든 것을 토설했다. 연신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살려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각은 칼을 뽑아 들으며 벌떡 일어섰다.
“이런 개자식을 보았나? 뭐? 내가 멍청해? 오냐. 죽을 각오는 되어 있겠지. 단칼에 죽여주마!”
“대사마 참으십시오. 충집이 자복했고, 용서를 빌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원매와 싸워야 할 때입니다.”
분노한 이각을 이유가 차분하게 달래자, 이각이 칼을 회수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씩씩거리다가 억지로 입을 열었다.
“뭐······. 음······. 그래. 충집 공을 세워서 잘못을 만회하거라. 그리하면 내가 너를 용서하마!”
“감사합니다.”
충집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서자, 이유가 그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이야기를 했다. 충집은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충장군. 철저하게 비밀을 지켜야 합니다. 만약 원매에게 토설이 된다면 그때는······.”
“알다마다요. 확실하게 비밀을 엄수 하겠습니다.”
이유가 충집에게 다짐을 받고 물러나자, 충집은 벌벌 떨며 이각을 바라보았다. 이각은 다시 한번 겁박을 한 후, 그를 돌려보냈다. 이각은 충집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쓴 입맛을 다시고는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이유를 바라보았다.
“나는 자네의 계책이 이해가 잘 안 되는군. 저런 놈은 죽여버리고 군대를 이끌고 가서 원매를 격파하면 끝이야. 왜 이리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가?”
“원매는 한 달 만에 백파적을 격파했고, 대호족 정은을 무릎 꿇렸습니다. 결코, 만만한 자가 아닙니다. 원매는 충집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을 테니, 나중에 뒤통수를 맞으면 당황할 것입니다. 알아보니 원매의 기병은 겨우 2~3천이고, 대사마의 기병은 8천입니다. 그때 강력한 서량 기병을 이용해서 끝장내시면 됩니다.”
“알겠네. 그리하지.”
이각은 뭔 말을 하려다가 이유의 계책에 동의했다. 꼴 보기 싫은 인간이기는 했지만, 이유의 계책만큼은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탁의 집권에 이유의 공이 컸음을 이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안읍성 원매치소.
치소안에는 원매를 비롯하여 책사와 장수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원매가 상좌에 앉아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각이 군량을 보내 달라는 제의를 내가 거절했어. 그놈의 성정으로 볼 때, 분명히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올 것이야. 이번 전투는 만만치가 않아. 나도 목숨을 걸고 싸울 테니, 모두 목숨을 걸어! 알겠는가?”
“예! 도독!”
원매가 순유에게 눈짓을 보내자, 순유가 자리에서 일어나 지시봉으로 상황판을 짚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보병전투력은 비슷합니다. 문제는 기병입니다. 하동군에서 기병을 증강 시켜서 겨우 3천인데, 이각은 7~8천입니다. 야전을 벌일 때 특별한 계책을 강구 하지 않는 한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수성전을 벌일 수도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저들은 공성전에 취약할 터인데요.”
파재가 의문을 드러내자, 순유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저들은 공성전에 약합니다. 수성전을 하면 저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하면 하동군을 약탈할 것입니다. 애써 가꾸어 놓은 하동군이 한순간에 망가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수성전이 불가합니다.”
“음-”
장수들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병에서 확연하게 밀리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승패를 장담하기 어렵고, 이긴다 하더라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순유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포판현에서 하수(황하)를 건너면 홍농군입니다. 이곳에서 장안까지는 평평한 지형입니다. 하여 군대를 진격시키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곳이 정현인데, 천령산맥 줄기가 이어져 있어서 낮은 언덕이 많이 존재합니다. 이곳에서 매복하여 이각군을 공격해야 합니다.”
“적이 이쪽으로 올지 어떻게 확신합니까?”
전예의 궁금증에 순유가 대답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위수가 흐르고 있는데, 위수가 삼보를 남, 북으로 갈라놓고 있습니다. 장안에서 하동군으로 오려면 위수를 따라 진군하다가 하수를 건너는 것이 제일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수, 하수, 낙수를 세 번 건너야 하므로 힘듭니다.”
“그렇군요. 도하가 문제였군요.”
“이곳 정현을 먼저 선점하여 방책을 치고, 장애물을 설치한 후 적의 기병을 막아야 합니다. 적의 기병과 보병 공격을 막아서며 기회를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기병으로 적들의 후방을 급습해야 합니다.”
“그때가 무엇입니까? 기병에서 차이가 난다면 방책을 치고 방어를 하더라도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전예였다. 순유가 원매를 바라보며 허락을 구했고, 원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각의 장수 한 명을 포섭했습니다. 그가 후방에서 교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면 저들에게 틈이 벌어질 것이고, 그때 모든 기병을 투입하여 공격한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원매가 순유를 자리에 앉게 한 후 입을 열었다.
“기병 전력 차이가 크니까 모두 불안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전투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아니야. 방책을 치고 죽기를 각오하며 적의 기병 공격을 막는다면 저들도 당황할 거야. 그때 저들의 후방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더욱 당황하겠지. 마음이 쫓기는 그들을 급습해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해. 이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야.”
“만약 그자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우리가 함정으로 빠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번에는 이통이었다.
“함정에 빠지는 것은 아니야. 확실하게 그놈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 반란을 일으킬 것이야. 만약 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작전에는 변함이 없어. 이번 작전이 최대한 버티면서 저들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급습을 통해서 승기를 잡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지. 반란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싶으면 급습을 할 거야. 그리 알고 준비를 해.”
“예! 도독!”
장수들은 우렁차게 복명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서렸다. 원매는 군대를 점고하여 출병준비를 확실히 할 것을 지시한 후, 그들을 돌려보냈다. 순유와 둘이 남자 당당했던 원매의 얼굴에도 근심이 끼었다.
“나도 저들과 같은 생각이 들어. 만약 충집이 배신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아까 말한 계책대로 버티면서 저들의 틈을 노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배신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이 좀 더 길어질 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십시오. 저들의 약점은 인내심이 부족하고, 단결이 안 된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기병을 위주로 한 속도전을 펼쳤고, 군량이 부족하면 약탈하는 게 저들의 일입니다. 한수와 마등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번조를 의심스럽다고 죽이고, 부하인 이몽을 껄끄럽다고 죽였습니다.”
“그래 전쟁이 길게 늘어지고, 군량도 약탈 못 하게 하면 제 놈들 간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이유는 무서운 책사입니다. 이각이 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도독께서는 하동군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각이 이유를 멀리하는 것이 도독께는 행운입니다. 이번 전투에도 이유가 따라 나와 초반에는 어느 정도 계책도 내면서 군을 통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전으로 몰아가면 이유와도 틈도 벌어지고, 내부분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니 승리는 도독의 것입니다.”
“좋소. 반드시 그래야 해. 이각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찌 천하를 넘보겠는가?”
순유가 빙그레 웃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는 허벅지를 탁탁- 두드리다가 원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유를 어찌 생각하십니까?”
“응? 이유는 죽일 놈이지.”
원매는 순유의 말에 무심코 대답을 하다가 입을 닫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이유를 사로잡으면 데리고 써라. 이런 말인가?”
“그만한 책사도 구하기 힘듭니다. 물론 이유의 사람 됨됨이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장점은 풍부한 실전경험입니다. 책략이라는 게 병법을 열심히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실전에서 펼쳐보고, 장단점을 분석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계책을 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분야에서 일인자가 이유입니다. 그다음은 남양군에서 장수를 모시고 있는 가후입니다.”
“자네가 말하는 책사들은 나이가 많군. 이유는 61세, 가후는 50세이니 말이야.”
“어느 부분이든 노력 못지않게 경험이 중요합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부 열심히 했다고 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책을 내는 것은 더더욱 그렇고요. 예를 들어 중원에서 제일 똑똑한 책사가 있는데, 실전경험이 없다면 도독께서는 그의 계책을 쓰겠습니까?”
“그렇군. 작은 전투라면 믿겠는데, 지금처럼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승부라면 불안하겠어. 그건 차차 생각해보겠네.”
원매는 순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유의 나이도 40세. 그간 여러 관직에 있으면서 많은 경험을 했고, 동탁과 연합군이 싸우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켜봤기에 이런 의견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며칠의 준비 끝에 원매는 출병을 명령했다. 평양성에 상요와 일천을 남겨 하동 북부를 지키게 하고, 임분성의 엄정과 일천을 강읍성으로 옮겨 하동 중앙부를 지키게 했다. 가장 중요한 포판현에 곽조와 이천을 남겼다. 상당군 고도현에는 오록과 일천을 그대로 두었다. 5천을 수비병력으로 남겨둔 것이다. 포판현은 삼보에서 하동군으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다.
이각 정벌군 병력은 기병 3천, 보병 2만 4천의 규모였다. 이것도 백파적을 흡수하고, 최대한 기병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가능한 숫자였다. 보병 장수로는 고람, 전예, 이통, 파재, 감녕, 위연, 기병 장수로는 한순, 조독, 장의, 문칙이 나섰다.
포판현에 도착하여 기병 3천을 먼저 도하시켰다. 그 후 정현을 선점하기 위해서 선발대로 먼저 출병시켰다. 기병이 출발한 후, 보병은 일개 부대가 도하를 완료하면 곧바로 출발시켰다. 장비를 가지고 움직이는 부대는 후발대로 뒤를 따랐다.
대규모로 움직이는 병력이었기에 소식은 곧바로 장안성에도 전파되었다. 이각은 이유의 예측대로 원매가 움직이자, 급히 출병준비를 지시했다. 장안성이 출병준비로 시끄러워졌다. 이유는 충집을 불러 다시 한번 다짐을 받았다. 며칠에 걸친 준비가 끝나자 이각도 군대를 이끌고 곧장 출병했다.
장안에 조카인 이섬과 2천을 남겨두고, 보병 2만, 기병 8천을 거느리고 출병했다. 보병 장수로는 호붕(생질), 이응(동생), 노욱, 양정, 기병 장수로는 이리(조카), 양밀, 송과, 충집이었다. 이각의 혈연으로 맺어진 장수들이 주요보직을 독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