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제 36장 이간책離間策-2-2
“지금 뭐라고 했는가?”
충집이 놀란 눈으로 하대를 하며 묻자, 순유가 잔인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이각은 정치 재능이 조금도 없는 멍청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이각이 한심한 것인지 멍청한 건지 구분이 안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때 대사마라고 안 하고 이각이라고 하대를 한 것이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어렴풋이 이각을 욕했던 상황이 떠오르자, 충집은 자신의 머리를 치며 자책했다. 그리고는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술을 먹고 실수를 했군. 자네가 듣지 못한 것으로 해주게. 이것이 대사마께 알려진다면 내 입장이 곤혹스러워지네.”
“글쎄요. 저 말고도 들은 사람이 많은지라 그것이 입막음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사람이 들었다는 말에 충집은 아득해졌다. 만약 이것이 이각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이면 잔인한 그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충집이 우물쭈물하며 제대로 말을 못 꺼낼 때, 원매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충집은 그제야 살길이 생겼다는 듯 급히 원매에게 매달렸다.
“이보게. 원태수. 내가 어제 술이 과해서 실수했네. 자네가 신하들을 단속해서 잘 막아주게.”
“들은 사람이 열 명도 넘는데 그것이 입막음이 되겠는가?”
“그럼 어쩌는가? 술김에 말실수했다고 목이 날아갈 수는 없잖은가?”
“잘못했으면 목이 아니라 더한 것도 날아가는 법이지.”
충집은 이제야 원매가 하대를 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간 굽실거리던 원매가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는 숨기기 어려운 살기와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원태수. 나 좀 살려주시게.”
“너무 많은 사람이 들었기에 입막음을 할 수는 없어. 조만간 나와 이각이 전투를 벌일 것이니, 자네는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되네.”
“이놈이 함정을 팠구나. 내가 대사마께 용서를 빌고, 네놈의 계략을 알릴 것이다. 결코, 네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게. 어서 장안으로 가게.”
원매가 나가라며 문을 열어주는 시늉까지 했지만 충집은 쉽게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원매가 잔인하게 쏘아붙였다.
“충집! 정신 차려라. 네놈이 이런 것을 보고하면 처음에는 이각이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네놈이 욕한 것을 떠올리겠지. 그러면 어찌 되겠느냐? 이각이 얼마나 잔혹하고, 매몰찬 인간인지는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설령 욕한 부분을 쏙 빼놓고 보고한다고 하더라도 어떡하든 그것이 이각의 귀에 들어가게끔 조치를 취할 것이다. 어떠냐? 아직도 살길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충집은 입만 벙긋할 뿐 말을 잇지 못했다. 원매가 냉정하게 설득을 시작했다.
“자네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설령 내게 협조를 한다고 해놓고, 나중에 이각의 편을 든다고 하더라도 소용없네. 시간이 지나면 자네가 욕한 부분을 짚고 넘어갈 것이야. 그의 성정이 얼마나 독하고, 악랄한지는 자네가 잘 아니 더는 설명은 필요 없겠지?”
“내게······. 무엇을 원하시오?”
“나중에 세작을 통해서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일만 잘 성사된다면 자네가 평생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조치해주겠네. 내게 이빨을 드러내는 개를 용서하지 않아. 하지만 꼬리를 내린다면 살길은 보장하겠네. 이리가 알지 못하도록 조치를 해주지.”
원매가 입을 닫자, 순유는 지그시 충집을 바라볼 뿐이었다. 충집은 원매와 순유를 힐끔힐끔 불안한 듯 바라보다가 결심을 한 듯, 넙죽 엎드렸다. 그의 입에서는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디 약속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충집은 위기에 처하자 한없이 약해지는 소심한 자였다. 원매는 그를 다독이며 격려했다.
“걱정하지 마시게. 내가 현령을 약속하겠네. 물론 그 자리에 앉는다면 법도 잘 지키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해. 일단 이리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곧 군량을 보낸다고 하게.”
충집은 불안함에 눈물을 떨궜다.
이틀을 머문 이리와 충집은 환대를 받으며 안읍성을 떠났다. 충집의 안색이 좋지 않자, 이리가 그 연유를 캐물었다.
“아···. 아닙니다. 지나치게 술을 마셨더니 속이 좋지 않아서요.”
“그거 적당히 마시지······. 나 참.”
그들은 말을 몰아 장안성의 이각치소로 향했다. 이각은 궁금했던 군량부터 캐물었다.
“곧 추수하면 바로 십만 섬을 보낸다고 합니다. 하동군을 간신히 장악해서 할 일이 너무 많아 대사마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군량을 가져오면서 인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이문우(이유)가 원매가 위험한 자라고 조심하라는 진언을 해서 내심 긴장했는데, 별거 아닌 놈이군.”
“그 늙은이의 헛소리는 믿지 마십시오. 이번에 만나 보니 원매는 대사마를 두려워하는 것을 바로 느꼈습니다. 참, 이것은 대사마께 바치는 원매의 선물입니다.”
이리가 큰 상자를 넘기자, 이각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상자를 열었다. 황금, 비단, 옥 등을 발견하고는 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도 받았는가?”
“예. 저희도 소량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군량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그때 약탈해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 늙은이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의 말에 수긍했다. 정치력이라고는 좁쌀만큼도 없기는 이리, 이각이 똑같았다. 이 정도의 정치력이니 삼보를 몇 년 사이에 거덜을 낸 것이다.
충집은 자신의 치소로 돌아온 후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할수록 두렵고 또 두려웠다. 원매와 이각은 사나운 늑대였다.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용서를 빌어도 대사마는 자신을 욕한 나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결국은 원매를 따를 수밖에 없는가?’
“이보게 충집. 무슨 고민에 빠졌길래 사람이 온 것도 모르시는가?”
“으헉-”
충집은 이유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고민하느라 그가 온 것도 몰랐다. 이유가 교활한 눈을 굴렸다. 60이 넘은 이유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충집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뜨끔했다.
“원매를 만나고 왔다고 해서 궁금해서 왔다네. 그 작자의 요새 행동이 이상해서 말이야. 그런데 자네 표정이 왜그런가? 무슨 일 있는가?”
“무슨 일은······. 없소. 술을 많이 마셨더니 속이 좋지 않아서 그렇소.”
“자네는 원매를 어찌 평가하는가?”
“뭐, 대단치 않은 자요. 대사마가 두려워서 군량을 보낸다고 했소. 겁 많고 유약한 자니 신경 쓸 것 없소.”
“이상하군. 이상해. 호재, 이락이 이끄는 백파적이 원매에게 격파되었어. 대호족 정은도 속수무책으로 당했지. 그게 겨우 한 달 만에 일어났어. 그런데 겁 많고 우유부단하다? 자네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도······. 잘 모르오. 내가 볼 때는 겁쟁이였소. 나는 명령에 따라 싸우는 장수이니 그런 것은 캐묻지 마시오. 쉬어야겠으니 어서 나가시오.”
이유는 충집의 축객령에 교활한 눈을 굴리며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방향을 돌려 처소를 나가다가 문 앞에 우뚝 섰다.
“또 오겠네. 그런데 자네 왜 이리 땀을 많이 흘리는가? 기가 허한 모양이로군. 허허허허-”
충집은 이유가 나간 문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저 교활한 늙은이가 의심을 품었다. 큰일이로구나. 어쩐다?’
충집은 고개를 흔들고는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답답했다. 그저 나오느니 한숨뿐이었다.
충집의 치소를 나온 이유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며 회랑을 걷고 있었다. 영활한 그의 두뇌는 비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소에 도착한 그는 벌써 생각을 정리한 상태였다.
‘뭔가가 있구나. 충집이 약점이 잡힌 것일까? 왜 저리 불안해 하는 것이야. 어쩐다? 이거 느낌이 좋지가 않아. 일단 사람을 붙여서 감시를 해야겠어.'
단순히 원매의 궁금증을 해결하러 충집을 찾아갔는데, 그의 말과 행동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일단 의심이 들자, 이유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종사관을 시켜서 감시를 지시한 후,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거듭한 것이다.
‘일단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하면서 충집을 감시하고, 확실한 증거를 잡으면 그때 대사마께 보고를 하면 되겠지.’
이유가 충집에게서 뭔가 부조화를 느끼고 뒤를 캐고 있을 때,
안읍성 원매치소.
원매는 순유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장안성의 이각을 어찌 공격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충집이 제대로 해줄까? 위인이 좀 덜떨어져 보여서 불안하긴 한데.”
“제가 볼 때, 변수는 딱 한 가지입니다. 바로 이유이지요. 그가 이각에게 중용되지 않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60이 넘은 교활한 늙은이입니다. 한눈에 충집을 보고 낌새를 눈치챌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면 이유도 충집을 모함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성공할 확률은 반반입니다.”
“그래. 아쉽군. 그 이유라는 놈은 어떻게 처단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할수록 꺼림칙해.”
“장안성에 있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충집이 성공한다는 방향으로 작전을 계획하고, 그가 실패할 때도 대비하겠습니다.”
“내가 이각을 공격해서 물리치지 않으면 그놈이 하동군으로 군량을 약탈하러 올 것이야. 생각해보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난적을 만나는 느낌이야. 만만치가 않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원매는 순유의 대답에 힘을 얻고는 지도를 보면서 야전을 할 것인지, 공성전을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계획을 작성할 것을 지시하고는 그날의 회의를 끝냈다.
9월 말. 추수가 시작되자, 이각은 이리를 보내서 군량을 독촉했다. 원매는 이리를 직접 만나주지 않고, 장수들을 시켜서 대충 둘러대며, 언제 군량을 보내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이각은 이리의 보고를 듣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애송이 자식이 하동군을 얻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게로구나. 죽일 놈 같으니라고.”
“군대를 보내서 약탈하면 됩니다. 군량이 눈앞에 보이니까 욕심이 생긴 것이 분명합니다.”
“좋아. 이리! 양밀! 충집! 송과! 기병 8천, 보병 1만을 줄 터이니 지금 즉시 하동군으로 가서 군량을 모조리 가져와! 가서 서량 기병의 무서움을 보여주거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각은 자신의 명령에 제동을 건 자가 누군지 알았다.
‘귀찮은 늙은이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왔는가?’
이각은 짜증이 났지만, 말을 해보라며 턱짓을 했다. 이유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동탁의 책사였기에 그래도 기본적인 예를 다하고 있었다.
“잠시 귀 좀······.”
이유가 뭔가를 이야기하며 눈으로 충집을 힐끔 쳐다보았다. 충집은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방망이질 쳤다. 이각은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이유를 바라보았다. 충집을 힐끔 쳐다본 이유는 다시 뭐라 보고를 했다. 그제야 이각의 표정도 조금 굳어졌다.
“험- 알겠네. 음- 내가 너무 성급하게 명령을 내렸던 것 같아. 명령은 잠시 보류하도록 하지. 모두 돌아가서 쉬게. 다시 명령을 내릴 터이니 단단히 출병준비를 하고 있게.”
“대사마. 빨리 가서 군량을 확보해야 합니다. 원매가 뭔 짓을 할지도 모릅니다.”
이리는 이유가 중간에 이각의 명령을 막아선 것이 못마땅했다. 이각의 조카로 장안성의 모든 장병이 자신을 두려워했지만, 이유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이유가 싫었다. 특히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눈길을 받을 때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토 달지 마라! 어서 돌아가!”
이각이 냉정하게 명령을 내리자, 장수들이 물러났다. 이유가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뗐다.
“충장군은 잠시 남으시지요.”
충집은 몸을 부르르 떨며 멈춰섰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유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