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제 35장 이간책離間策-2-1
197년 8월 건안 2년.
197년을 기점으로 제후들의 대립이 격렬해지며 천하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조조는 허도에 황궁을 짓고, 헌제를 모셔왔다. 또한, 헌제를 호위했던 양봉을 양국에서 격파하여 물리치고, 서황을 항복시켰다. 원소는 헌제에 대해서 크게 미련을 두지 않았으나, 조조에게 빼앗기고 명분을 잃자 헌제의 치소를 업성에 가까운 견성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
조조는 헌제를 견성으로 옮기는 것은 거절했지만, 원소가 두려워 태위 벼슬을 내려 달래고, 자신은 대장군을 받았다. 원소가 이를 듣고 분통을 터트리자, 조조는 급히 대장군을 원소에게 양도함으로써 원소와 조조의 갈등은 봉합되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말이다.
원술은 황제를 모시는 것에 실패하자, 스스로 황제의 지위에 오르고 중仲을 건국했다. 이에 황제의 정통성을 지켜야 하는 조조, 유비와 원술의 대립이 격화되었으며, 강동의 손책은 때를 놓치지 않고, 원술을 비난하며 독립했다.
원매는 하동군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백여 명의 종사관을 선발하여 교육 후, 현으로 보냈으며 이들에게 주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지시함으로써 현의 통제력을 강화했다. 또한, 삼보에서 들어오는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빈 땅을 주어 자작농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당장 이번 가을부터 나타날 것이다. 호족이 이들을 수탈하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 조치를 취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안읍성 원매치소.
원매는 순유로부터 중원의 상황을 보고받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현실로 닥치자 대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순치중(순유). 중원의 세력은 어찌 대처하면 좋겠소?”
“중원에서 관중으로 들어오려면 험한 산지를 넘어야 하는 데, 이곳을 넘볼 세력은 조조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조조는 원술과 전투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하니 일단 저들에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관중을 온전히 접수하는 데만 총력을 기울이십시오.”
“원술은 물산이 풍부하고, 군사력이 강하지만 곧 조조에게 무너질 것이오. 유비 또한 서주에서 강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니 조조에게 당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북쪽은 대장군(원소), 남쪽은 조조, 강동은 손책으로 세력이 정리될 터인데, 미래의 적이 될 조조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못마땅하오.”
“마치 미래를 아시는 것처럼 단언하시는군요.”
“능력을 본다면 조조가 원술보다 위에 있고, 유비는 세력이 견고하지 않은 데다가 여포가 어찌할지 모르니 그리 말한 것이오. 조조의 힘을 꺾을 방책이 없겠소?”
흠- 순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도독의 분석이 참으로 예리하십니다. 제가 상황을 지켜봐도 결국 조조가 황하 이남을 차지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더군다나 명분까지 얻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리되려면 적어도 3~4년은 지나야 할 것입니다. 그사이에 도독께서는 관중, 한중을 차지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어 주의를 환기한 순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병을 키우기 위해서는 서량을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서량이 매우 방대할 뿐만 아니라 마등, 한수 등으로 나뉘어 있어서 쉽지 않습니다. 하여 서량은 적당히 한쪽은 견제하고, 한쪽은 동맹을 맺어 말을 얻는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은 힘을 남양군으로 돌리십시오.”
“남양군?”
“남양군은 인구가 많고 땅이 넓습니다. 그곳을 얻으면 조조와 원술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조조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익주는 차차 상황을 봐서 얻으면 될 것입니다.”
원매는 순유의 말을 듣고 나자 비로소 앞길이 보였다. 남양군을 얻는다면 책사 가후를 얻을 것이고, 장수는 서량 무도군 출신이니 그를 통하여 한수 마등을 견제하고, 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호거아를 얻는 것은 덤이다.
“그럽시다. 올가을에 관중을 얻고, 내년에 한중을 얻은 후에 남양군을 노려봅시다. 이각을 공격할 방안은 생각해 보셨소?”
“이각이 미련하기는 하지만 동탁의 맹장이었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약탈에 익숙해지고, 군기가 느슨하지만 역시 강병이고요. 정면대결을 벌인다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되리라 판단합니다. 하여 이번에도 계책을 써서 장안을 얻는 것이 어떻습니까?”
“계속해보시오.”
“가을이 되면 분명히 군량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때 사자로 오는 자를 포섭하여 이용하는 것입니다. 임분성에서 상요가 성문을 열어 쉽게 전투를 끝냈던 것처럼 이번도 쉽게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글쎄, 너무 속단하는 것 아니오?”
“제가 동탁이 상국으로 있을 때 관직 생활을 해봐서 이각이나 그 휘하 장병들의 속성을 잘 압니다. 그때에도 장수들 간의 알력이 심했지만 동탁이 중심을 잡아줬기에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이각은 꽁지를 말고 서량으로 도주를 하려다가 가후의 계책으로 장안을 얻은 자입니다. 용력은 있지만, 부하들의 신망을 얻지는 못합니다.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원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순유의 진언에 동의하다가 문득 걱정되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동탁의 꾀주머니를 하던 이유란 자가 어찌 되었는지 알고 있소?”
“폐하께서 소제를 독살한 죄를 물어 죽이려고 하였으나 이각이 막아서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그 이후는 행방이 묘연합니다. 상당히 영특하고 간악한 자인데, 지금으로서는 이각에게도 배척당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의 말을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폐하께서는 절대로 낙양으로 못 갔을 것이며, 삼보가 지금처럼 망가지지는 않았겠지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그대로 시행하세.”
“알겠습니다.”
장안성. 이각치소.
삼보의 장안은 낙양에 이어 부유함을 자랑하는 큰 도시였지만, 이각과 곽사가 약탈과 방화를 저지르면서 몇 년 사이에 가장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있었다. 백성들은 형주, 익주, 중원으로 도주했고, 남아있던 백성들은 식량이 부족하여 굶어 죽었다. 지금 이곳은 땅만 넓을 뿐 백성들이 거의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대사마(이각). 원소의 아들 원매가 하동군을 완전히 점령한 듯합니다.”
“원매라? 솜털도 벗지 않은 쥐새끼 같은 놈이 하동군으로 들어온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점령했단 말이냐?”
양밀은 이각이 화를 내자, 목이 자라목처럼 움츠러들었다. 그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백파적 놈들은 무식하고, 왕읍은 우유부단하니 원매가 운 좋게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어쩐다? 그동안 하동군에서 공물을 바쳤는데, 이번에도 바칠까?”
“사람을 보내서 타진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대사마께서 군대를 이끌고 몰아치면 제 놈들도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알 터이니, 순순히 공물을 바칠 것입니다.”
“좋아. 이리와 충집을 보내도록 하지.”
“명을 따르겠습니다.”
양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왔다. 이각의 명령을 받은 이리(이각의 조카)와 충집은 기병 5백을 이끌고 안읍성으로 향했다. 그들의 기세는 사뭇 당당했다.
이리와 충집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원매는 장의에게 기병 4백을 주어 포판현에서 맞이하도록 했다. 장의는 쌀을 가지고 갔는데, 이리가 약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하동군 태수의 명을 받아 마중을 나온 장의라고 합니다.”
“나는 대사마의 명을 받은 중랑장 이리고, 이쪽은 중랑장 충집이오. 어찌 원태수(원매)가 직접 나오지 않으셨는가?”
장의는 이리가 하대하며 원매를 들먹거리자, 분통이 터졌지만 원매에게 단단히 주의를 받은 것이 있어서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참았다.
“태수께서 공무가 바빠서 제가 대신 나왔습니다. 노여움을 푸시지요.”
장의는 미리 준비해놓은 막사로 그들을 이끌었다. 그곳에서 장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전예를 얻을 때도 장의의 사근사근한 성격이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원매가 그를 내보낸 것이다. 장의는 실력을 발휘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 이리 일행을 안심시켰다. 또한, 가지고 온 황금과 비단을 그들에게 내주어 환심을 샀다.
식사를 마치고 포판현을 떠나 안읍성으로 향할 때, 이리와 충집의 적개심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입안의 혀처럼 굽실거리는 장의 덕분이었다. 장의는 웃는 얼굴과는 달리 속은 매우 불편했다. 그가 볼 때, 이리와 충집은 도적이나 다를 바 없는 죽일 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틀간 말을 달려 안읍성에 도착하자, 원매가 신하들을 이끌고 나와 이리 일행을 맞이했다.
[이리(25)] 무력:71, 통솔력:64
[충집(34)] 무력:70, 통솔력:61
“어서 오십시오. 제가 하동군 태수 원매입니다.”
“저는 중랑장 이리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진작 대사마께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하동군을 간신히 얻고 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만 축내다가 기회를 놓쳤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자- 들어가시지요.”
원매가 고개를 숙이자, 신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리와 충집은 잦은 환대에 우쭐해진 기분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원매는 이번 가을에 수확하면 반드시 공물을 바치겠다며 다짐하고는 또다시 그들에게 선물을 건네어 환심을 샀다. 이들이 며칠을 머무는 동안 원매는 이각의 조카인 이리를 제쳐두고, 충집을 포섭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이리는 술을 먹고 먼저 곯아떨어졌고, 충집은 오줌을 누러 밖으로 나왔다.
“어- 시원하다.”
충집은 기분이 좋았다. 처음으로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아본 것이다. 원매를 비롯하여 모든 문무 대신들이 고개를 숙이며 환대하자, 마치 황제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충장군-”
충집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순유가 공손하게 예를 표하며 서 있었다.
“아니. 순치중 아니신가? 어쩐 일인가?”
“답답하여 나왔습니다. 어휴-”
“뭐가 답답하길래 그리 한숨을 내쉬는가?”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충장군은 하늘이 내려주신 명장임을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한신이나 항우가 살아온다고 해도 충장군을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각을 따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워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습니다.”
“허어- 무슨 소리를. 나 같은 자가 어찌 한신이나 항우에 비교하겠는가?”
“이러니 답답합니다. 그토록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도 모르시다니요. 원태수께서도 일찍이 삼보 제일의 장수는 충장군이라도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지요.”
“대사마가 있는데, 내가 최고의 장군이 되겠소. 남들이 들을까 두렵소이다.”
순유가 치켜세우자 충집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두려움이 덜컥 들었다. 이각의 잔혹한 성정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순유에 이어 등지, 두기까지 합세하여 추켜세우자, 충집은 우쭐해졌다. 그리 똑똑한 위인이 아니었는데, 술까지 먹고 보니 오만방자해진 것이다.
“사실 대사마도 욕심만 많지 능력이 없어. 장병들이 두려워서 따르고 있을 뿐이야. 죽일 놈 같으니라고.”
술김에 충집은 이각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순유는 미소를 지으며 충집의 모든 말을 뇌리에 고스란히 새겼다.
다음날.
충집은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느끼며 일어났다. 그는 급히 물을 찾아 마셨다.
“젠장. 어제 너무 많이 마셨어. 실수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실수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충집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순유가 단정하게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지금 뭐라 했는가?”
“실수했다고 했습니다. 어제 술에 취해서 대사마를 욕하시더군요. 참으로 혼자 듣기 민망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그제야 충집은 아스라이 기억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