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제 32장 하동군河東郡-백파적白波賊-3-2
“아이고, 배야.”
“빨리 나와!”
평양성은 야밤에 난리가 났다. 화장실마다 병사들로 가득 찼고,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재촉하다 참지 못한 병사들은 바지에 실례하기까지 했다. 성안에서 이곳저곳에 싸대는 통에 냄새가 진동하자, 호재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 무슨 냄새냐? 이놈들이 화장실을 놔두고 어디다 싸는 것이야? 왜 이 난리야?”
“쌀이 조금 상했나 봅니다. 설사해대는 통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럼 성 밖으로 내보내. 거기서 싸고 들어오라 해!”
“야밤인데 원매가 기습이라도 하면 어쩝니까?”
“기습? 너 이쪽으로 올라오는 군사를 봤어?”
“못 봤는데요.”
“그럼 빨리 내보내. 그리고 경계를 철저히 시키면 될 거 아냐. 냄새 못 참겠으니까 경계병을 세우면서 밖에서 설사하고 들여보내.”
곧이어 성문이 열리며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계병들이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곳곳에서 설사가 시작되었다. 초저녁부터 이어지는 설사 행렬은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매섭게 주위를 경계하던 병사들도 이제는 하품하고 있었다. 그들도 냄새를 맡으며 이 짓을 하려니 곤욕이었다.
“그만 좀 싸라! 이 죽일 놈들아!”
경계병들이 화가 나서 두드려 팼지만 소용없었다. 나오는 걸 어찌 참는단 말인가?
이때 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감녕과 위연이 이끄는 부대였다. 위연이 감녕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글쎄, 이 정도면 순치중(순유)이 판은 잘 깔아 놓았는데, 어찌한다. 우리가 공격하면 저놈들이 성문을 닫아 버릴 것이고.”
“말을 타고 내달리면 성문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글쎄. 여기서 성문까지 일 마장(약 400m)은 된단 말이야. 빠르게 달린다면 40정도 세면 도착하지 않을까?”
“그럼 얼추 성문을 닫는 시각이랑 비슷할 것 같은데요. 개량형 노가 명중률이 높으니, 측면에서 사격을 가하면서 기병을 돌격시키고 그 뒤를 보병을 돌격시키면 되지 않겠습니까? 말 네 마리 사이에 통나무를 끼고 달려가다가 가까이서 통나무를 놓아 버리고 옆으로 피한다면 통나무가 성문에 끼일 것입니다.”
“그래 그거 괜찮군. 통나무가 끼인다면 성문을 닫지 못할 것이야. 그 뒤를 보병들이 밀어닥쳐서 성문을 부수고, 기병을 돌격시키면 끝이겠어.”
“그리고 우리가 공격하면 설사하던 놈들도 성으로 들어가려고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문을 닫기 어렵겠지요.”
“좋아. 그렇게 하지.”
감녕은 즉시 후방에 있는 고람에게 전령을 보냈다. 고람은 죽간을 받아보고는 조독에게 자세히 설명하고는 먼저 출격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부대들을 지휘하여 출병을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조독이 가려 뽑은 정예기병이 통나무를 가운데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기병 넷이 통나무를 줄로 묶어서 잡고 내달리자 처음에는 약간 불안한 형태였지만 일단 가속도가 붙자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헛- 저게 무엇이냐? 빨리 성으로 들어가자!”
설사하던 병사들이 엉거주춤한 상태로 일제히 내달리기 시작하면서 성문 앞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로 안으로 들어가려고 몰리면서 문이 닫히지를 못했다.
그 틈에 감녕이 말한 숫자 40을 셀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었고, 제일 먼저 도달한 기병 넷이 통나무를 놓고는 옆으로 빠지자 관성에 의해 통나무는 그대로 사람들을 치면서 성문 사이에 끼었다. 그 뒤를 이어 계속 4인조 기병이 달려들어 통나무를 성문 사이로 끼워 넣었다.
“어서 통나무를 치워라! 어서!”
급히 소두령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자, 병사들이 통나무를 치우러 움직였다. 이때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활구를 길게 하고, 받침대를 만들어 명중률을 높이고, 사거리를 늘인 개량형 노에서 일제히 화살이 발사된 것이다.
“으악-”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전방에서 방패를 들고 중무장한 원매군이 달려드는 것이 보였지만 성문을 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는 틈에 위연이 이끄는 보병이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 방패를 들어 화살을 막으면서 도끼로 남은 성문을 부수고, 틈을 이용해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처절한 접전이 일어났다.
“비켜라!”
위연이 한 손에 방패를 들고 대도를 휘두르며 안으로 들어서자, 병사들이 분연히 그 뒤를 따랐다.
쿵- 쿵- 성문이 차례대로 무너졌다. 위연의 군사들이 밀어닥치자, 감녕군이 그 뒤를 이었다. 고람은 보병들을 남김없이 모조리 성안으로 밀어 넣었다. 보병을 다 넣고는, 기병마저 공격시켰다. 그리 크지 않은 평양성은 그야말로 엄청난 병사들이 백병전을 벌이는 곳으로 돌변했다.
위연과 감녕이 선두부대로 들어서서 닥치는 대로 죽이고 파괴하면서 기를 꺾어 놓고는 뒤로 빠지자, 이통, 파재가 각각 3천 5백의 병사들을 이끌고 전과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틈이 벌어지자, 위연과 감녕은 뒤로 완전히 빠졌고, 한순, 조독, 장의가 이끄는 기병 2천이 들어왔다. 설사로 고통받고, 보병의 급습으로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을 기병이 짓밟기 시작했다. 기병들은 가을에 곡식을 추수하듯 목을 베었다.
“이런 쳐죽일 새끼들이 함정을 팠구나!”
호재가 분통을 터트리며 정예호위군을 이끌고 달려들자, 조독이 기병 4백을 이끌고 그대로 짓밟아 버렸다. 좁은 성안에서 기병이 날뛰기 시작하니 보병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호재 또한 호위군들이 무너지자 난전 중에 목이 날아갔다.
살기 위해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원매군은 저항하는 병사들은 무참히 학살했다. 8천의 병사들이 지키는 평양성은 이렇게 힘없이 원매의 손에 떨어졌다.
원매는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눈살을 찌푸리며 전쟁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전히 비명이 그의 귀에 선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성안에서는 학살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부분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았다.
“대승을 축하드립니다.”
순유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하자, 원매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고맙소. 이제 병사들을 재분류하고, 백성들을 재배치해야 하오. 인근의 농토를 파악하여 이른 시일 안에 끝내시오. 또한, 이곳의 농지를 호족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겠소?”
“어렵지 않습니다. 농지의 주인의 바뀔 때는 반드시 현령의 허락을 받으라고 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몰수한다고 선포하시면 됩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불편한 놈이 매수하려고 하면 트집을 잡아서 못하게 하면 되니까.”
“분수 북쪽은 백파적이 설치고, 많은 백성이 죽으면서 빈 땅이 많습니다. 그곳을 장부 정리하여 백성들을 이주시켜 놓겠습니다. 명의변경을 어렵게 한다면 호족들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좋소. 그리 조치하시오.”
원매는 순유를 보며 빙긋 웃었다. 어떤 일이든 군말 없이 잘 처리하는 그를 보면 뛰어난 책사를 보유하기 위해 조조가 왜 그리 뛰어다녔는지가 이해가 되었다. 한 시진(두 시간) 정도가 흐르자 평양성은 잠잠해졌다. 전쟁 아니 학살이 끝난 것이다.
성안에 있던 수많은 병사와 백성들이 줄줄이 끌려 나왔다. 그들은 넓은 개활지에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원매군은 숫자를 세고, 이름을 적는 등 순유의 지휘 아래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더 기다리자, 고람이 피를 대충 닦은 얼굴로 원매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거참. 고장군은 여기서 지휘를 하라니까 언제 성안으로 들어갔소?”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그리고 장수들이 자꾸 뒤로 빠지면 그 밑의 장수나 병사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고생했소. 상황은 어떻소?”
“대승입니다. 정확한 사상자는 파악해봐야 알겠지만 피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호재는 난전 중에 창에 찔려죽었습니다.”
“알겠소. 고장군이 장수와 병사들의 공을 확실하게 파악해서 보고하시오. 포상할 것은 포상하고,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지. 성공한 작전이니 벌 받을 장수는 없겠군.”
“그렇습니다.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열심히 싸웠습니다. 특히 위연의 공이 아주 컸습니다. 그가 성문을 부수고 입구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전투는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포상을 넉넉하게 해줘야겠어. 고장군은 장수, 병사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부대를 어찌 재편할지를 판단해서 보고하시오. 너무 빨리하려고 하지 말고, 정확하게 알아보고 생각해서 보고하시오.”
“예. 도독!”
고람이 물러가자, 원매가 뒤에 서 있는 사마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의 계략 덕분에 큰 승리를 거두었구나. 고맙다.”
“장병들이 도독을 중심으로 하나로 똘똘 뭉쳐서 싸운 결과입니다. 순치중(순유)이 쌀에 약을 탄다는 계책을 추가함으로써 완벽한 계책이 완성되었고요. 제가 칭찬을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거참. 너무 많이 변하는 거 아냐? 가끔 자네가 사마구가 맞나 의심스러워.”
사마구는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원매는 너무 많이 변한 사마구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호위대장이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도 참으로 피곤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성을 점령하면서 병사와 백성들의 분류 및 재배치 작업은 그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전쟁이 끝나고 꼬박 하루가 지나서야 대략적인 결과가 원매의 손에 들어왔다.
항병-4천 5백명.
백성-2만 2천명. 호구 3천 2백.
아군현황.
보병(중상자 및 사망)-1천 1백명.
기병(중상자 및 사망)-20명.
압도적인 전투다 보니 운이 없는 기병들 몇 명이 죽었을 뿐이었다. 일반적으로 보병 대 기병 전투가 벌어지면 십 대 일의 비율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이번처럼 압도적으로 밀어붙였으니 기병은 재수 없게 죽는 경우 빼고는 사상자가 나지않았다.
원매는 항병 4천 5백중에서 젊고 힘센 병사 2천을 추려서 병사로 합류시키고, 늙거나 힘이 부족한 2천 5백은 백성으로 편입시켰다. 이들은 이제 원매를 위하여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원매는 백성들을 한군데로 모아 놓고, 앞으로의 규칙과 방침을 설명했다. 지금 나눠주는 땅은 함부로 넘겨줄 수 없으며, 땅을 넘기려면 반드시 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못 박았다. 이를 어기면 곤장을 맞고, 심할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경고를 했다.
또한, 세금은 원매가 한 해에 한 번 징수할 뿐 호족들의 어떤 수탈도 없을 것을 선포하자, 못 믿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원매에 이어 여러 장수와 관리들이 재차 강조하자 그들의 표정은 정말 밝아졌다. 그리만 된다면 도적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원매는 이곳에서 열흘을 머물면서 평양성 일대를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임분성 이락치소.
“뭐라? 다시 말해보거라!”
이락이 분통을 터트리자, 보고하던 소두령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시 보고를 시작했다.
“호재 장군께서 목숨을 잃으시고, 평양성은 원매에게 넘어갔다고 합니다. 병사들이 갑자기 설사하는 통에 잠시 성문을 열었는데, 그 틈을 타고 급습을 하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합니다.”
“이런 개자식들을 보았는가? 원가의 자식이면서 이런 비열한 수를 쓴단 말인가?”
그는 이각의 무리와 싸우면서 오로지 정면승부가 전투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원매의 손끝에서 지금까지 놀아나고 있었다. 또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손경의 군사들은 이락과 호재의 중간 지점을 점령하고 서로가 지원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방책까지 치고 견고하게 버티고 있으니 공격하기도 힘들었다. 이락이 의자를 집어 던지고 화를 내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경계강화를 지시하고는 곧바로 정은에게 전령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