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제 28장 형주荆州 호걸豪傑 -3-3
“크흑- 세상이 좁다고 여기던 내가 어찌 이렇게 초라해졌단 말인가?”
감녕은 또다시 술을 들이켰다. 술을 마실수록 속에서는 분통이 터져 나왔다. 황조에게 푸대접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을 따르던 빈객들도 모조리 다른 곳으로 배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수족을 자르고, 목을 옥죄어 오는 황조를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다.
“빌어먹을- 유표를 믿고 이곳에 온 내가 멍청하지. 이제 어쩌란 말인가? 평생을 이렇게 황조의 눈치나 보다가 죽으란 말인가?”
감녕의 두 눈에서는 분통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감장군. 계시오?”
다시 술을 들이켜려던 감녕은 급히 술잔을 내려놓고, 눈물을 닦았다. 그는 일어나서 문을 벌컥 열었다.
“아니. 봉군승 아니시오? 이 야밤에 어쩐 일이시오?”
“차 한 잔 마시고 싶어서 왔소이다.”
감녕은 별로 친분이 없는 봉의가 찾아오자, 내심 경계심이 일었다. 그가 거절하려는 찰나, 봉의가 웃음을 지었다. 순간 감녕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쳤다. 무엇이 두려워서 거절하는가?
“들어오시오.”
감녕을 따라 들어가자,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감녕은 아무렇게나 앉고는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봉의는 맞은편에 앉아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방약무도한 자를 어찌 공자께서는 욕심을 낸단 말인가?’
감녕은 힐끔 봉의를 보고는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하러 오셨소? 황태수가 내가 어떻게 지내나 알아보라고 염탐이라도 보냈소?”
“하북에서 사는 것은 어떻습니까?”
감녕이 무슨 소린가 하여 큰 소리로 떠들려고 하자, 봉의는 자신의 입에 집게손가락을 대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죽간을 내밀었다. 감녕은 급히 죽간을 받아 쫙 펼쳤다. 잠시 후, 죽간을 덮은 감녕이 의혹이 서린 눈으로 봉의를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이오? 어찌 하북에서 나를 알고······. 설마. 이거 황태수가 농간 피우는 것은 아니겠지?”
“감장군도 황태수를 잘 아시지 않소? 그가 장군을 노골적으로 무시하지, 이런 짓을 하겠소? 어떻소? 한번 원도독을 만나보시겠소?”
감녕은 잠시 봉의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감녕은 변복을 하고 봉의를 따라나섰다. 중간에 혹시라도 미행이 붙는가 아닌가 하여 숨어서 지켜보았지만 없는 것이 확인되자, 빠르게 움직였다.
봉의가 감녕이 왔음을 알리자, 곧바로 원매의 허락이 떨어졌다. 봉의와 감녕은 방으로 들어섰다. 감녕은 중간에 서서 원매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무력 90이 넘은 원매에게서는 엄청난 위압감이 풍겨 나왔기 때문이었다. 원매를 자객으로 생각한 감녕은 분통을 터트리며 칼을 뽑아 들었다.
“이 죽일 놈이 함정을 팠구나!”
[감녕(42)]
무력:93 지력:63 통솔력:77
감녕이 칼을 뽑아 들자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봉의는 급히 원매 뒤로 숨었다. 사마구가 급히 칼을 뽑았을 때, 원매가 고개를 저으며 사마구를 뒤로 물리고는 반월도를 뽑아 들었다.
“내가 우장군의 삼남이자 사례도독인 원매다. 칼을 내리거라!”
“거짓말하지 마라. 삼남이라면 잘해야 약관(20)을 벗어났을 터인데, 어찌 네놈과 같은 엄청난 무술 경지에 올라섰단 말이냐? 네놈 같은 살귀가 원가의 귀한 도련님이란 말이냐?”
“그런가? 그럼 밖으로 나가서 시원하게 대련을 해보지 않겠는가? 도객이라면 검으로 말을 하는 법이지. 따라 나오거라.”
상황이 묘하게 꼬여가자 순유가 급히 원매를 말렸다. 원매는 빙긋 웃으며 순유를 물리치고는, 사마구에게 절대로 나서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원매의 한마디에 모두가 절도있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감녕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살귀가 원매라는 것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본 호족이나 제후의 자제들은 대부분 귀하게 자랐기 때문에 이런 살기를 뿜어내지 않았다. 당장 유표의 자식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한수 가르침을 받겠소!”
원매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그는 반월도를 가볍게 말아쥐고는 곧바로 감녕의 가슴을 찔러 갔다. 원매의 기습적인 공격에 감녕은 급히 막았지만, 선공을 당하자 계속하여 밀리기 시작했다. 십여 합을 찔러가던 원매의 도가 짧게 반원을 그리며 감녕의 목을 노렸다.
감녕은 급히 구르며 도의 반경을 벗어났다. 어느새 그의 눈에서는 독한 살기가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얏-!”
캉- 캉- 감녕이 힘을 바탕으로 연속하여 도를 내리치며 원매를 압박했지만, 원매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둘의 무력이 대등했기에 일진일퇴하였다. 사마구는 연신 도의 손잡이를 잡고는 기회를 노렸다. 만약 원매가 당하기라도 한다면 바로 달려들 기세였다.
캉-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감녕의 대도가 공중으로 붕- 날아 멀리 땅바닥에 박혔다. 42수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감녕이 나이가 많았기에 결국 힘에서 밀린 것이다. 원매가 도를 칼집에 넣어 사마구에 맡기며 소리쳤다.
“맨주먹으로 해보겠느냐?”
“으아아아아-”
감녕의 분노가 폭발했다. 여기 오기 전에 술을 마셨기 때문에 그간 쌓인 울분이 더욱 크게 폭발한 것이다.
“죽여버린다! 이 새끼!”
감녕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자 원매는 냉정하게 바라보다 빠르게 옆으로 한걸음 빠지면서 비어있는 옆구리에 그대로 한방을 쑤셔 넣었다. 감녕은 또다시 달려들었다.
“하악- 하악- 이 여우 같은 새끼가······.”
원매가 빠른 발걸음과 체력적 우위를 앞세워서 치고 빠지는 전술을 취하자, 감녕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동안 쫓아다니며 죽도록 맞기만 했다.
원매가 때려 보라는 듯이 두 팔을 들어 보였다. 술기운에 더욱 흥분한 감녕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원매는 감녕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최대한 방어기술을 이용해서 감녕의 주먹을 막으면서 얼굴과 옆구리에 사정없이 주먹을 쑤셔 넣었다.
무지막지한 난타전에 순유는 입이 딱- 벌어졌다.
원매의 주먹이 밑에서 위로 쏘아져 올라가며 감녕의 턱을 날려버리자, 감녕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며 쓰러졌다.
“의원을 불러와라!”
봉의가 원매의 명령에 급히 밖으로 달려나갔고, 사마구가 눈치 빠르게 급히 의자를 대령했다. 털썩- 의자에 앉은 원매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는 사마구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고맙구나. 물 한 잔 가져오너라.”
사마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물을 바가지로 주었다. 원매는 벌컥- 벌컥- 물을 들이켜고는 남은 물을 머리 위로 쏟아부어 열을 식혔다. 잠시 후, 감녕이 머리를 흔들면서 일어나 앉았다. 하지만 머리가 흔들려서 일어서지는 못했다.
“정신이 드느냐?”
“뉘시오?”
감녕의 말투는 한풀 꺾여있었다.
“우장군의 삼남 원매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럼 귀하게 자라셨을 텐데, 어찌 그리 막강한 무예를 보유하셨소?”
“세상의 편견에 빠진다면 진실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원매는 일어나서 감녕의 앞으로 다가와 털썩- 앉았다. 어느새 그의 말투는 부드럽게 변했다.
“나는 감장군을 얻기 위해서 이곳까지 왔소. 세상에 그대만큼 뛰어난 무장을 찾기 어렵소. 한데 황태수는 미련하게 그것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대를 무시하고 있소이다. 이 기회에 나를 따라서 하북으로 올라와 능력을 펼쳐보는 것은 어떻소?”
“진정 원도독이 맞소이까?”
아직도 감녕은 믿기지가 않았다. 순유와 사마구까지 나서서 이야기하고 나서야 감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술기운은 멀리 날아가고 없었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구만.”
감녕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수적 생활을 오래도록 한 탓인지 그의 말은 여전히 거칠었다. 이것이 유표와 황조로부터 괄시를 받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어떤가? 이곳에서 괄시를 받느니 나와 함께 하북으로 올라가지 않겠는가? 영웅이면 영웅답게 살아야지.”
“그럼 하북으로 올라가면 제 역할은 무엇입니까?”
“내가 장수 직위를 내려줄 터이니, 마음껏 능력을 발휘해보게. 이토록 훌륭한 무예를 지녔는데, 이런 곳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어딜 가든 여기보다는 낫겠지요. 원도독을 따르겠습니다.”
감녕은 자세를 바로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원매는 그의 손을 잡고는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했다.
“그런데 제가 없어진 것을 알면 황태수가 찾아 나설 텐데요. 그건 어찌하시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순유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감장군의 빈객들은 모두 흩어져 있고, 데려가면 황태수가 알아차릴 것이니 지금은 데려갈 수가 없소이다. 감장군의 집에 불을 내고 비슷한 체구의 불에 탄 시체가 나온다면 황태수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오. 빈객들은 나중에 연통을 보내어 데려오시지요.”
감녕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를 준비하셨소?”
“적당한 놈을 물색해봐야죠. 이미 썩었다면 저들이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내게 맡기시오. 그렇지 않아도 황조의 부하 한 놈이 성질을 건드리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처치해 버리겠소.”
“그럼, 일이 커지는 것 아니오?”
“겨우 지위가 도백이니 문제없소. 황조가 날 괄시하니 이놈 저놈 다 기어올랐는데, 잘됐소. 내가 변복을 하고 그놈을 죽여버려서 내 대역으로 쓰겠소.”
“칼을 대시면 아니 되오.”
감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매를 바라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의미였다.
“조심해서 다녀오시게.”
감녕의 봉의와 함께 돌아간 지 한시 진(두 시간) 후 감녕의 처소에서는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순식간에 불길이 솟아오르며 집을 삼켰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며 불을 끄기 시작했고, 어수선한 틈을 타고 감녕은 집을 빠져나왔다.
봉의는 신속하게 황조에게로 달려갔다.
“태수어른! 큰일 났습니다.”
봉의가 큰 소리로 몇 번을 아뢰자, 황조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왔다. 그의 얼굴은 짜증이 가득했다.
“너는 승을 맡은 봉의가 아니냐? 뭐가 바쁘길래 이 밤에 찾아왔느냐?”
“큰일 났습니다. 지금 감녕의 집에 불이 났는데, 그놈이 안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저녁때 그놈이 잘 있나 가봤더니 술이 잔뜩 취해서 난리를 쳤었는데, 불이 났으니 술에 취해서 못 빠져 나왔을 것입니다.”
“어서 가보자.”
황조의 얼굴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죽었다면 시체를 확인해야 한다. 감가 이놈은 매우 위험한 놈이야.’
황조가 친위대 수백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 불길은 거의 잡혀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코와 눈을 찔렀다.
“감녕은 어찌 되었느냐?”
“감녕의 방에서 거구의 시체가 나왔습니다. 불에 타서 형체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평소의 그의 복장이 확실합니다.”
황조는 병사를 밀치고 꼼꼼하게 시체를 확인했다. 불길에 형체가 훼손되어 감녕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옷을 보니 평소에 그가 입던 옷이 분명했고, 옆구리에는 항상 차고 다니던 구리방울도 달려있었다. 또 얼마나 술을 먹었는지 술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이 뒈질 놈이 속을 썩이더니 이렇게 죽는구나. 내일 장사를 치르고, 인근 공동묘지에 안장시켜주거라.”
황조는 그의 빈객들과 여러 병사의 보는 눈이 있는지라 시체를 잘 묻어 줄 것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