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제 26장 형주荆州 호걸豪傑 -3-1
원매는 순유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후, 봉가에 가기 위해 서두르며 순유를 찾았다.
“내가 육양현의 봉가에 잠시 다녀와야겠소이다. 이곳에 기병 다섯을 놓아둘 터이니, 호위병으로 생각하시오.”
“감사합니다. 아- 그게 그렇게 된 것이군요.”
“무엇을 말이오?”
“봉가에서 인재를 구하려고 수소문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법 뛰어난 능력을 지닌 세가의 자제들이 원가에 출사하고자 달려갔지만, 모조리 거부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도독의 뜻이었군요.”
“그렇소. 오로지 능력이 되는 자만 뽑으라고 했지요. 이곳 남양군이 매우 크니 능력 있지만 등용되지 못한 자가 많을 터인데, 등지 한 명밖에 얻지 못했소. 혹시 알고 있는 뛰어난 인재가 있으면 추천해주시오.”
“글쎄요. 저도 영천군 출신이라 이곳 사정이 밝지 않습니다. 영천군의 뛰어난 인재들은 대부분 자리를 찾아 떠났습니다. 아마도 남아 있는 자는 도독의 성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구려. 참, 궁금한 게 한가지 있소. 유목사(유표)휘하에 있는 하급장수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장수나 관리들을 내가 등용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흠- 좋은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이는 오롯이 도독께서 우장군(원소)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오.”
“지금 우장군께서는 유목사를 통해서 후장군(원술)을 견제하고 있습니다. 즉 유목사는 우장군에게 있어서 놓치기 어려운 중요한 제후입니다. 장수급 인물을 빼내시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유목사와 우장군의 사이를 갈라놓는 작은 균열을 만들 것입니다. 커다란 강둑도 결국은 작은 균열이 모이고, 커져서 생기는 법입니다.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교위 이상은 힘들겠고, 이곳에서 괄시를 받는 인재라면 가능하지 않겠소?”
“맘에 드는 자가 있습니까?”
“강하에 감녕이란 자가 있는데, 익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형주로 왔고, 지금은 강하에 있소이다. 용맹이 뛰어난 자인데, 강하태수 황조에게 괄시를 받고 있소.”
“저도 그자라면 조금 압니다. 익주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도망쳐온 자입니다. 수적 생활도 오래 했기에 예의범절을 잘 모릅니다. 하여 처음에 유목사가 기대를 했다가 실망을 하고는 내쳤습니다. 지금은 강하군 황조에게 의지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감녕이라면 어찌 수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황충, 문빙은 결국 힘들고 감녕은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보십시오. 욕심내서 모두 데려가려면 데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후에 큰일을 하려면 유목사와 협조가 힘들어집니다. 사람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감정을 따라 움직입니다. 이미 기분이 상해있는데, 협조가 되겠습니까?”
“충고 고맙소. 역시 내가 사람을 잘 얻었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웃 영천군 출신이고, 이곳에 몇 년 있었으니 도독께 조언해드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알겠소.”
원매는 순유가 준비하는 동안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형주에 인재가 많은 듯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얻을 수 없는 인재들이었다. 감녕 정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도 곧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순유가 준비를 하고 나오자, 원매는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쳤다. 종사관을 돌려보낸 후, 사마구와 순유 기병 100명을 이끌고 육양현의 봉가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았기에 아침에 출발한 원매 일행은 점심때가 되어서 도착할 수 있었다. 봉가에서는 봉기의 동생 봉휘가 나와 있었다.
“조카. 어서 오시게. 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는가?”
“처숙부. 강녕하셨습니까? 어려운 일을 부탁드려놓고는 이제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 염치가 없습니다.”
“이 사람아. 우리는 한 가족이 아닌가? 업성에 계신 형님(봉기)께서도 좋은 인재를 구해내라고 연신 독촉을 하신다네. 참, 저번에 올려보낸 등지는 어떤가? 가문은 보잘것없어도 박학다식하고, 아주 재능이 뛰어났어.”
“아주 뛰어난 인재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이쪽은 순유라고 합니다.”
원매가 소개하자, 순유가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순유, 공달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오. 자- 안으로 들어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세.”
봉휘가 원매와 순유를 안으로 이끌었다. 육양현의 대호족인 봉가의 장원은 규모가 엄청났다. 원매는 집안을 둘러보며 새삼 봉기의 힘을 절감했다. 이러니 대호족인 허유, 곽도등을 원소가 내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곳에서 봉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삼 유표의 힘을 실감했다. 일기필마로 내려와서 형주를 장악한 유표였다. 물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채모, 괴월의 힘은 매우 커졌다.
“처숙부. 혹시 강하군 태수부에 아는 지인이 있습니까?”
“강하군이라? 거기는 황조가 태수로 있는 곳 아닌가? 그곳에 마음에 드는 인재가 있는가?”
“감녕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감녕이라······. 아- 그 수적 출신 장수를 말하는 것인가? 그라면 알고 있지. 우리 봉가의 인척이 그곳에서 군승으로 일하고 있어서 잘 알지. 황조에게 단단히 미운털이 박혀서 아주 많이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네. 그를 욕심 내고 계시는가?”
“그렇습니다. 얻을 방법이 있겠습니까?”
봉연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마음에 든다면 해봐야지. 황조가 괄시를 해도, 절대 다른 곳으로 감녕을 보내려고 하지 않을 것일세. 감녕이 제법 장수의 기질이 있거든. 내가 쓰기는 싫고 남한테 주기는 아까운 것이지. 내가 연통을 써줄 터이니 그곳에 가서 봉의를 만나게. 그리고 그자와 의논을 해봐. 분명히 뭔가 수가 나올 것이야.”
“고맙습니다.”
이후 원매는 봉휘로부터 여러 가지 말을 들었지만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
“처숙부. 강하를 먼저 다녀와야겠습니다. 왠지 생각이 그쪽으로 향해서 좀처럼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어서 다녀오시게. 그리 감녕이 맘에 든다면 꼭 얻었으면 좋겠군. 다녀와서 반주를 곁들이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세.”
“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원매는 봉휘로부터 죽간을 받아들고는, 감사를 표하며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 급했기에 바로 출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순유, 사마구와 기병 100명을 이끌고 강하군으로 출발했다. 남양군과 강하군은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이곳 육양현에서 남쪽으로 쭉 내달리면 강하군의 치소인 서현이 있었다. 한 3~4일은 말을 타고 내달려야 할 것이다.
이틀을 내달리자 남양군을 벗어나 강하군으로 접어들었다.
“이곳이 어디인가? 풍광이 참으로 아름답구려.”
“강하군 평춘현입니다. 뒤로는 대별산을 끼고, 앞으로는 넓은 평야를 끼고 있어 지리적으로 매우 훌륭한 곳입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황건적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원매의 물음에 순유는 열심히 설명을 시작했다. 평춘현은 강하군 소속이지만 여남군과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 열심히 설명하던 순유는 문득 생각난 게 있는지 얼굴을 굳혔다.
“도독. 이 부근에 괜찮은 의협 집단이 있는데, 만나보시겠습니까?”
“의협 집단?”
“황건적의 난을 거치면서 수많은 도적이 난립하고 있습니다. 그런 도적들도 의협 집단을 자칭하지만, 실제로는 도적들에 맞서서 고향을 지키기 위해 결성한 집단이 의협 집단이죠. 이곳 평춘현 출신으로 지략도 뛰어나고 용맹한 자가 거느리는 의협 집단이 있습니다.”
“호오~ 그런 뛰어난 자를 어찌 봉가에서 소개하지 못했단 말이오?”
“의협 집단이니까요. 봉가에서 보았을 때는 도적의 무리로 보았을 것입니다. 이곳이 평춘현이니 수소문하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도독께서 대의를 밝히시고, 예로 대하시면 반드시 따르리라 생각합니다.”
“그자가 누구요? 자꾸 들으니 점점 궁금해집니다.”
“이통, 문달입니다.”
“그럼 이곳에 잠시 머무르면서 수소문해보시오. 생각만 해도 설레는구려.”
원매가 눈을 지그시 감고 이통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순유는 빠르게 사마구를 통해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이통이라. 조조를 따랐던 여남군의 호족인 줄 알았는데, 강하군 평춘현 출신이었어. 아직 조조를 따르지 않았다니, 내가 정말 운이 좋구나. 강직하고, 지략 있고, 용맹한 장수야. 이거야말로 복이 넝쿨째 들어오는구나. 반드시 내가 얻어야겠어.’
원매는 개활지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반월도를 꺼내서 도법 수련을 시작했다. 생각이 번잡할 때는 어떤 하나의 일에 집중하는 게 좋았다.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도는 점차 빠르고 강력하게 움직였고, 칼끝에서는 힘이 넘쳐 흘렀다. 약 이각(30분)을 전력을 다하여 펼치자 온몸에 땀이 났다.
순유는 원매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동탁이 상국으로 있을 당시 낙양, 장안에서 벼슬을 했던 순유는 수많은 무장을 볼 수 있었다. 그중의 여포, 장료, 서영, 화웅등 뛰어난 맹장들을 많이 봐왔고 그들에게서 무력의 끝을 보았다고 생각할 만큼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원매가 도법 수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강렬한 충격이 되살아났다.
“휴우-”
거친 숨을 몰아쉰 원매는 조심스럽게 반월도를 칼집에 집어넣었다.
“역시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는 도법 수련이 최고야.”
원매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순유를 돌아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계시오.”
“놀랍습니다. 지금 도독의 무술 경지는 굉장히 높아 보입니다. 제가 그동안 수많은 무장을 봐왔지만, 결코 그들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 자부심이라 할 수 있소. 그동안 최선을 다해서 수련한 만큼, 반드시 무력의 끝을 보고 말 것이오.”
“그리될 것입니다. 도독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굉장히 빠른 성취입니다. 제가 굉장하다고 평가했던 장수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독은 20대 초반이니 놀랍다는 말밖에는 표현한 말이 없습니다.”
“듣기 싫은 말은 아니구려. 이통이라면 꼭 얻고 싶었던 장수요.”
“이통을 알고 계셨습니까?”
“여남지역에 지략과 용맹이 출중한 이통이란 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소. 다만 여남군이 원술의 영역이기에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을 접었소. 한데, 강하군 평춘현 출신이라니, 더군다나 이곳과 남양군 일대에서 활동한다니 얻을 수 있으면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겠소.”
“꼭 그리될 것입니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원매와 순유는 형주에 대한 이야기와 이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순유가 말을 하고, 원매가 간간이 질문하며 듣는 방식이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기에 원매는 지루한 줄 모르고 순유의 말에 빠져들었다.
“저기 기병이 오고 있습니다. 벌써 오는 것으로 보아 이통의 처소를 알아낸 듯합니다.”
순유가 이같이 말하며 일어서자, 원매도 따라서 일어섰다. 역시 순유의 예측대로 기병은 그의 처소를 파악해냈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유한 후에, 내일 아침 일찍 기병을 이끌고 이통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