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5화 (25/253)

# 25

제 25장 가후賈詡, 순유荀攸

쪼르르륵- 가후는 갈색빛이 감도는 맑은 차를 원매 앞으로 내밀었다. 원매는 차를 들어 향기를 맡고는 한 모금을 머금었다.

“향이 좋습니다. 이곳 완현도 업성 못지않게 살기 좋은 곳이군요.”

“어찌 업성에 비교하겠습니까? 이곳은 시골이지요. 그런데 이곳까지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사람을 한 명 찾으러 왔습니다. 가문화도 아실 겁니다. 황문시랑을 지냈던 순유, 자는 공달입니다.”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인 가후는 몇 번 이름을 되뇌고는 곧바로 순유를 기억해냈다.

“아- 기억납니다. 의기가 대단한 분이셨지요. 불의를 참지 못하고 동상국(동탁)을 암살하려다가 운이 좋게 살아남으셨지요. 그 후, 중앙정치에 넌덜머리를 내시며 촉군태수로 가려고 하다가 길이 막혀 못가고, 이곳에 머물러 계십니다.”

“잘되었군요. 처소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 순공달을 만나는 게 이곳에 온 목적의 전부입니까?”

“급하게 오느라 그것만을 생각하고 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문화를 만나고 보니 가르침을 받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 정세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십시오.”

원매가 고개를 숙이자, 가후도 급히 예를 표했다. 현재 최고의 강자는 원소였다. 가후가 모시는 장수는 사실상 유표의 빈객 정도 위치에 불과했다. 당장 유표가 군량 공급을 끊는다면 처지가 난처해지기 때문이었다. 가후가 전략적으로 뛰어난 인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내정 부분에서는 취약점을 드러냈다.

내정이라는 것이 하나씩 확인하고, 숫자를 대조해가는 따분하고 지루한 임무였다. 번뜩이는 지략을 가지고 있는 가후로서는 어쩌면 전혀 맞지 않는 임무였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가후로서는 원소의 삼남인 원매의 청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글쎄요. 제가 감히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껏 어려운 난세를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능력을 과신하여 지나치게 서두르지 마시고, 일단 계획이 세워져 결단했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과감하게 움직이십시오.”

“그게 다입니까?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는 없습니까?”

“잘 알고 계시고, 행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가후는 원매의 말에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청할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를 하였다. 원매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장장군(장수)께서 이곳 남양에서 얼마나 오래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기는 힘들 것입니다. 가문화께서 전략 쪽으로 밝으시지만 다른 쪽 인재가 전무 하니까요. 힘을 키우기 어렵지요. 형주의 유표, 여남의 원술, 연주의 조조, 기주의 제 부친까지 해서 강자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습니다. 그러니 조만간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그 정도는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더 틈을 보고 결정을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우장군(원소)께서도 강하시긴 하지만 연주의 조목사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당연히 시간을 가지고 살펴보셔야지요. 그래서 제안할까 합니다. 제 아버님, 조조, 유표만 생각하지 마시고 이제부터는 이 원매도 생각해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하하하-’하고 맑은 장소를 터트렸다.

“농이 과하시군요. 척박한 상당군 끝자락을 얻으셨고, 겨우 흑산적을 한번 격파했을 뿐인데, 세상을 다 얻었다고 착각하십니까? 제가 그대를 이렇게 대하는 것도 우장군의 위명이 있으며 그런 것이지요. 꽤 현명하시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었나 봅니다.”

어느새 가후의 눈에서는 싸늘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원매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예상했던 결과였고, 맞는 말이었다.

“당연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지켜봐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관중을 차지하고, 한중, 서량을 얻는다면 생각이 바뀌지 않겠습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가후는 다시 옅은 미소를 짓고는 일어섰다.

“제가 공무가 바빠서 일어서야겠습니다. 순공달의 처소를 아는 종사관을 딸려 드리겠습니다. 일이 잘 처리하시길 바랍니다.”

“가르침 잘 받고 갑니다. 이곳 남양군으로 여러 군데서 손을 뻗어 올 것이고, 선택해야 할 시기가 곧 다가올 것입니다. 그게 3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이 원매의 말이 허황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원매가 치소를 나가는 것을 보는 가후의 눈은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생각보다 더 놀라운 자다. 현재의 남양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그 시기마저 예측을 하고 있다. 저 정도의 인물이라면 관중, 한중, 서량을 차지한다는 것이 허언은 아닐 것이다. 원소의 자식이면 호랑이가 태어나야지 어찌 늑대가 태어난단 말인가? 지켜보면 알겠지.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원매가 치소 밖으로 나오자, 사마구가 기다리고 있다가 급히 달려왔다.

“순공달을 찾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시간을 좀 더 주십시오.”

“내가 처소를 알아냈다. 기병 몇 명에게 명령을 내려 나머지를 불러들여 숙영지를 편성하게 하고, 너와 기병 열 명은 나를 따르거라.”

“예. 도독.”

사마구는 곧 선임 기병에게 명령을 내려놓고는 1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원매를 따라나섰다. 종사관은 순유의 집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그의 집에 완현의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후가 홍농의 단외를 벗어나 완현으로 온지 몇 달 밖에 안되었으니, 처리해야할 일이 많아서 순유를 등용시키는 일이 뒤로 밀렸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후가 동탁과 같은 서량출신이니 순유가 자신을 부담스러워 할 것으로 판단하고,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매로서는 굉장한 행운인 셈이었다.

순유의 처소에 가까이 다가서자, 원매는 말에서 내려 기병들을 근처에 쉬게 하고는 사마구와 종사관을 대동하고 처소로 향했다. 집은 그 주인의 성품을 반영한다고 했던가? 얕은 산자락 아래 작지만, 운치 있게 꾸며져 있었다.

“계십니까?”

하인이 달려 나와 원매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한눈에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 부유한 호족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순공달께서 여기 계시는가?”

“지금 안에 계십니다. 어느 분이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우장군의 삼남 원매라고 전하거라.”

원매의 말이 떨어지자, 하인은 고개를 숙이고는 곧바로 안으로 달려갔다. 조금 후에 청수한 중년인이 빠른 걸음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순유였다. 약간 놀라움이 담긴 눈으로 원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유(39)]

지력:94, 정치력:90

설명하면 입 아픈 실전형 책략가가 순유이다.

“우장군의 삼남이시면 현옹공자 아니 십니까? 업성에서 이곳까지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에 때를 기다리는 잠룡이 웅크리고 있다고 하여 급히 달려왔습니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도저히 그대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군요. 그대와 이 난세를 극복하여 천하를 안정시키고 싶소.”

처음 보자마자 원매가 자신의 마음을 강력하게 표현하자, 순유는 일순 당혹스러웠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대는 동탁의 폭거에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는 높은 의기를 보인 적이 있습니다. 이는 실로 범인이 따르기 어려운 의협심입니다. 또한, 놀라운 능력을 갖췄지만, 항상 겸손하고 그 공을 내세우지 않으니 타의 모범이 될만합니다. 이러니 그대를 찾으러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동탁을 죽이려고 한 것은 맞지만, 실패했습니다. 또한, 어디 가서 제 능력을 자랑한 적이 없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리 단정하십니까?”

순유가 의문을 드러내자, 원매가 빙그레 웃으며 사마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마구는 품에서 순심이 써준 죽간을 꺼내 바쳤다. 순유는 죽간을 받아 펼쳐서 죽 읽어내려갔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순별가(순심)께서 제 얼굴에 금칠하셨군요. 저는 그리 대단한 인물이 못됩니다. 너무 기대가 높으면 실망만 끼쳐드릴까 걱정입니다.”

순유가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하자, 원매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부디 내 청을 거절하지 마시오. 나는 우장군을 명을 받아 곧 관중으로 들어가서 이각을 토벌할 것이오. 공도 알다시피 그곳의 백성들은 매우 어려운 삶을 유지하고 있소. 현자라면 이를 외면하면 안 되오! 그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모두 들어드리겠소!”

원매가 적극적으로 순유가 왜 필요한지를 소개하자, 목소리가 커졌고, 말투가 당당해지며 조금 짧아졌다. 원매의 불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접하고는 순유는 슬쩍 눈길을 돌렸다. 이렇게 간절하게 자신을 원하는 원매가 너무 고맙기도 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능력을 보인 적이 드물고, 순심을 통해 추천을 받았다고 남양군까지 달려온 원매의 행동도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순별가가 써준 추천장을 이리로 보내시지 그러셨습니까? 원가에서 부른다면 달려갈 사람이 많을 텐데요.”

“안회(춘추시대 공자의 제자)에 비견할 만한 재능을 지닌 순공을 얻는 일입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감당키 어려운 말씀만 하시는군요.”

순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그제야 원매에게 결례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멀리서 오셨는데, 제가 공자를 문밖에 세워두는 우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제가 차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순유가 안내하자, 원매의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 원매는 사마구와 종사관을 밖에 기다리게 하고는 순유와 함께 방으로 들어섰다. 순유가 차를 우려내는 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겁고 어색한 침묵이 아니라 무언가를 기대하게 하는 정적이었다.

“자- 드십시오. 고급 차는 아니지만 제가 직접 채취하여 만들었습니다. 제법 맛이 괜찮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원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 좋은 차를 계속 마실 수 있겠소?”

“제게 거부권이 있습니까?”

순유의 얼굴은 밝았다. 원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씀하시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두 해드리리다. 미안하지만 거부권은 없소.”

“그렇군요. 앞으로 공자님의 계획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소. 나는 내년 봄에 이각을 토벌하고, 관중을 안정시킬 것이오. 그 후 힘을 길러서 한중, 서량, 익주까지 점령하고, 중원의 주인을 가르는 일전을 벌일 생각이오.”

“그렇다면 개인의 영광을 위해서 저를 쓰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천만에요. 지금의 매우 혼란한 난세입니다. 공맹의 힘으로 이것을 극복할 수는 없소. 오로지 힘으로 사방에 있는 도적들을 물리치고, 하나로 통일되어야 백성들이 곤궁함을 벗어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위해서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패자가 되겠소.”

“옳은 말씀이십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더는 방법은 오직 하나 전쟁이 끝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합니다. 공자를 따르겠습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호칭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내가 사례도독을 제수받았으니 도독으로 불러주시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마치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쁘구려.”

원매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순유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세상의 정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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