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제 24장 원소袁紹와의 협상協商
아침을 일찍 먹은 원매는 사마구를 대동하고 원소의 치소로 향했다. 미리 기별을 넣었던지라 원소는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참으로 장하구나. 이렇게까지 뛰어난 공을 세울 줄을 몰랐구나. 참으로 장해.”
원소는 너털웃음을 터트리고는 원매의 등을 다독이며 격려했다.
“장연까지 격파하려고 준비했는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두장 한 놈 죽였습니다. 그래도 아버님께 칭찬받으니 제법 일을 잘 처리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충분히 잘했어. 두장은 용맹해서 내가 보낸 장수들도 곤욕을 치렀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주었어. 내가 다시는 너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야.”
원소는 차를 마시며 말을 잠시 끊었다가 이어갔다.
“처음에 내가 군사를 적게 보내서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능력을 보고자 한 것이니, 섭섭하더라도 털어버리거라.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 지난번처럼 이리저리 머리 굴리지 말고.”
“제 휘하에 제대로 된 장수라고는 고람이 유일합니다. 장수를 지원해 주십시오.”
“생각해둔 자가 있느냐?”
“제가 말하면 주실 것입니까?”
“음- 순우경, 안량, 문추, 장합, 견초는 안된다. 다른 장수라면 허락하마.”
원매가 욕심냈던 장수들은 모조리 차단되었다.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차단할 줄은 몰랐다. 원매의 표정이 살짝 경직되자 원소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놈아. 그들은 하북의 기둥이다. 한번 공을 세웠다고 기둥을 뽑아가려는 네놈이 염치가 있는 놈이냐?”
화가 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가벼운 힐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원매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전풍, 저수, 순심도 안 되겠군요.”
“이놈아. 그들은 누군지나 아느냐? 기주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들이다. 왜 허자원(허유)이나 곽공칙(곽도), 신중칙(신평)을 달라는 말은 하지 않느냐?”
“그 셋은 관심 없습니다. 솔직히 없는 것이 나은 인물들입니다.”
원매의 단호한 대답에 원소가 눈이 가늘어지며, 입을 닫았다. 사실 원소의 마음은 서서히 영천 출신 인재들에게로 기울어지고 있었는데, 원매가 그 주요 구성원인 허유등을 평가절하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리 박하게 그들을 평가한 것이냐? 능력으로 본다면 대단한 자들이다. 네게 그런 평가를 들을 인물들이 아니란 말이다.”
“능력으로 본다면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세 명 모두 지나치게 물욕이 강합니다. 욕심이 많은 자는 결코 진정한 충성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 세 명은 관심이 없습니다. 아버님께서도 그들보다는 전별가(전풍)나 저감군(저수)을 가까이하십시오.”
“이 아비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여기까지 하거라. 내가 너보다는 훨씬 오랫동안 그들을 봐왔고, 정치했느니라. 네가 아직 그들의 재능을 모르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야. 세상에 물욕이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
원매는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원소의 고집으로 보았을 때, 충언이 통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약은 잘 챙겨 드셔야 합니다.”
“고맙구나. 아직은 견딜만하다. 약은 잘 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빨리 원하는 장수가 있다면 말해 보아라.”
“장준예(장합)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돼. 한 번 더 내 입에서 ‘안돼.’란 말이 나오면 없던 일로 하겠다.”
원소가 강력하게 거부하자, 원매는 아쉽게 뜻을 접었다. 그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한순을 주십시오. 그리고 기병 1천을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순이라······. 역시 네놈이 보는 눈이 있구나. 기병 1천도 같이 조치를 해주마.”
그 후 주변 정세에 대해서 원소에게 한참을 듣고 나서야 이야기가 끝이 났다. 장합을 얻으려던 원매의 계획은 무참히 깨졌다. 대신 한순을 얻었다. 원소의 처소를 나온 원매는 봉기에게 들려서 인사를 올렸다. 봉기는 원매의 성공을 자신의 것인 양 매우 기뻐했다.
“정말 잘했네. 대견하이. 대견해. 이 정도로 장수자질이 있으니 이각을 물리치고 관중을 석권하는 것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관중에 들어가면 확실하게 내정을 하고, 군대를 키우게. 업성에서는 내가 자네를 돕겠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남양군에서 서서의 행적은 나왔습니까?”
“그게 쉽지가 않아. 죄를 짓고 도망간 자야. 우리가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종적을 감추었거든. 아무래도 자신을 어찌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오해를 한 것 같아. 자네와 인연이 아닌 것 같네.”
서서와 인연이 아니라니. 참으로 땅을 칠 노릇이었다. 이제는 순유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나중에라도 연락이 된다면 꼭 제게 보내주십시오.”
“자네가 이리 말하는 것을 보니 대단한 인재인 모양이군. 내가 그리함세. 걱정하지 마시게.”
봉기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눈 원매는 마지막으로 순심을 찾았다. 순심은 기주별가로 재직하고 있었다.
“차 한 잔 주시겠소?”
원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순심이 급히 일어나 자리를 안내했다. 종사관이 차를 내오자, 순심은 문을 닫고는 의혹이 담긴 눈으로 원매를 바라보았다. 원매는 이번에 순심을 처음 만났다. 그전에는 왕래가 없었기에, 순심이 경계의 눈빛을 띠는 것이다.
[순심(40)]
지력:77, 정치력:75
“이번에 장연군을 대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그런데 이곳엔 어인 일이십니까?”
“내년 봄에 군대를 이끌고 관중으로 들어가서 이각을 격파하고, 그곳을 아버님의 영토로 만들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계속하시지요.”
“장수들은 그럭저럭 모였고, 병사들도 2만 정도 되니 많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중심을 잡아줄 관리가 부족합니다. 구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더군요. 그래서 염치없지만 순별가에게 부탁 좀 하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무슨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제 동생인 문약(순욱), 휴약(순연)은 모두 조목사(조조)에게 출사를 한 상태입니다. 영천지역에 인재가 많았지만 모두 주인을 찾아간 상태입니다.”
순심이 고개를 흔들었다. 큰 인연이 없던 원매가 난데없이 부탁했음에도 순심은 고민하여 자기 생각을 표출했다. 곽도, 신평과는 다르게 마음이 곧은 자였다. 순심을 얻고 싶은 생각이 다시 간절해졌지만, 원소의 강한 거부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자 더욱 아까웠다.
“한 명 있지 않습니까?”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아-”
순심은 놀라움에 눈을 부릅떴다.
“어찌 그를 알고 계십니까? 그전의 한량으로 지낸 것은 진정으로 세상을 속이려고 그런 것이었습니까?”
순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원매는 쓴웃음을 지으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순유에 대해서 꼭 필요한 인재이니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관중을 다스리는데 순공달(순유) 정도의 인물이어야 중심을 잡아줄 수가 있습니다. 그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원매가 정중하게 부탁을 하자, 순심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의 없는 원담, 너무 어린 원상, 선하지만 무른 원희. 이들과 비교하면 원매는 예의가 있었으며, 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순심이 이게 과연 잘하는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도독을 믿고 추천서를 써드리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반드시 예로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도독을 위해서 힘을 써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원매는 순심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하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이 잘 풀리자 원매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순심이 적극적으로 원매에게 협조를 한 것도 어쩌면 봉기의 사위였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순심이 써준 추천장이 손에 있으니 직접 순유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 후, 순심의 치소를 나왔다. 밖으로 나와 잠시 햇볕을 쬐며 앞으로의 일을 궁리하고 있을 때, 멀리서 날랜 장수가 다가왔다. 한순이었다.
[한순(29)]
무력:80, 통솔력:70
순유가 한순을 ‘날래고 의기가 강하지만, 적을 가벼이 여긴다.’고 평가했다.
“원도독.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도독과 손발을 맞추어서 관중을 장악하는 데 힘을 보태라고 주군께 명령을 받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오셨소. 내가 그대를 원했소. 그대의 용맹스러운 힘이라면 내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먼저 상당군 고도현으로 가시오.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꽤 시일이 걸릴 것 같소.”
원매는 사마구에게서 죽간을 받아 유려한 필체로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 후 인장을 찍고는 돌돌 말아 한순에게 건넸다.
“이것을 가지고 간다면 지내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오. 내년 봄에는 관중으로 들어가야 하니, 준비를 단단히 해두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한순은 원매에게 군례를 올리고는 기병을 인솔하러 물러났다. 사마구가 원매의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사람 한 명 찾으러 가야겠다.”
“이곳으로 부르지 않고, 직접 찾으러 간단 말입니까? 얼마나 대단한 자이기에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으십니까?”
“대단한 자야. 황문시랑을 역임하면서 동탁을 암살하려고 했지. 물론 실패했어. 그 후 촉군태수가 되어 그곳으로 가려다가 길이 막혀 지금 형주에 있네. 아주 재능이 뛰어난 자야.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가기 전에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그런 인물이 있었습니까?”
“그래. 이름은 순유라고 하지. 지금 형주 남양군 완현에 있다네.”
“남양군이라면 유표의 영지 아닙니까? 혹시 잘못되면 어쩌시려고.”
“걱정 말아라. 조조, 유표는 아버님과 동맹을 맺고 있느니라. 우리는 영천군을 지나 남양군으로 갈 것이다. 아마 지금은 장수란 자가 남양군에 있을 것인데, 그도 유표의 도움을 받는 처지이니 감히 내게 대적하지 못할 것이다. 준비하거라. 시간이 없다.”
“알겠습니다.”
원매의 명령에 사마구는 급히 기병을 불러모았다. 원매는 곧바로 사마구의 호위를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인사를 한 후, 기병 일백을 이끌고 곧장 남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하내군-하남윤-영천군-남양군으로 이어지는 이동로였다. 모두 조조, 유표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이동로는 모두 평지였다. 5일을 말을 타고 달리자 남양군 완현에 도착했다. 완현은 장수의 치소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원매는 기병을 풀어서 순유의 처소를 찾게 하고는 장수의 치소로 향했다. 종사관에게 자신을 소개하자, 그는 매우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자리를 권하고는 부리나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생각지 못한 놀라운 인물이 장수를 대신해서 나왔다.
[가후(49)]
지력:96, 정치력:95
“하북의 원가에서 오셨다고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군사를 맡은 가후입니다.”
“우장군(원소)의 삼남 원매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가문화를 뵐 줄은 몰랐습니다.”
“저를 어찌 아십니까?”
“염충 신도령으로부터 진평에 필적하는 뛰어난 인물이라는 평을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문화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말로 저를 추켜세운 것뿐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원매는 가후를 따라서 그의 치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