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20화 (20/253)

# 20

제 20장 흑산적전투 黑山賊戰鬪. 3-1

상당군 고도현 원매치소.

이곳은 험한 산골짜기였기에 9월이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매우 쌀쌀했다. 원매는 치소 안에서 두기와 하동군을 장차 어찌 다스릴까를 이야기하다가 피곤함을 느끼고, 잠시 회의를 중단했다. 그는 밖으로 나와 기지개를 켜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 보이는 발구산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파재가 잘 해야 할 터인데. 혹시 잘못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구나.’

미간을 찌푸리며 파재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멀리 서쪽에서 먼지구름이 이는 것이 보였다. 자연적인 먼지가 아니었다. 대규모로 사람들이 이동할 때 발생하는 먼지였다. 그렇다면 원소가 보낸 지원군일 것이다. 원매는 가슴이 뛰었다.

뿌연 먼지의 실체는 원매의 예상대로 병사들이 일으키는 것임이 확인되었다. 정문을 지키던 위병이 급히 달려와서 보고했다.

“도독. 우장군(원소)께서 보내신 병력입니다. 장군 여광이 보병 5천을 이끌고 오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어서 이쪽으로 모시어라.”

“예.”

위병이 급히 물러가자, 원매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 대단한 장수나 병력을 많이 보내주기를 바랐지만, 원소는 이런 부분에서는 냉정했다. 말은 살갑게 할지 몰라도 병력 운용에서는 어떤 특혜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다소 아쉬운 마음에 얼굴이 굳어 있을 때, 여광이 병사들을 쉬게 하고는 원매에게 다가와 군례를 올렸다.

[여광(33)]

무력:65, 통솔력:66

아쉬운 능력치였다.

“도독. 반갑습니다. 주군의 명령을 받아 보병 5천을 이끌고 흑산적 토벌 작전을 지원하러 왔습니다.”

“잘 왔소. 그런데 흑산적 토벌 작전을 지원하러 오셨다고 했소? 그렇다면 토벌 작전이 끝나면 돌아가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유주의 상황이 꼬이고 있습니다. 병력을 많이 투입하는지라, 흑산적을 토벌하면 바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심배의 농간이다. 이 정도로 견제가 심할 줄은 몰랐다. 원매는 종사관을 호출하여 여광에게 편의를 봐줄 것을 명령했다. 여광이 군례를 마치고 돌아가자, 등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도독. 축하드립니다. 5천이면 상당한 규모입니다.”

“그렇게 기뻐할 일이 아닐세. 저들은 흑산적이 토벌되면 돌아갈 것이야.”

“우장군(원소)께서 참으로 모질게 결정하셨군요. 기왕이면 하동군을 점령할 때까지만이라도 도와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어쩌겠나? 현사형님(원담)이 평원도독에서 시작해서 청주를 석권했으니 나도 그처럼 강하게 키우려는 생각이시겠지. 힘을 내보세. 이번에 파교위가 제대로 임무를 수행해낸다면 적어도 5천의 병사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야. 강하게 키우시겠다면 내가 스스로 커야지.”

원매는 심배의 농간이라 추측되었지만 등지에게 까지 그런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확증도 없고 말이다.

“파교위가 잘 해낼 것입니다. 저도 그의 생각을 전해 듣고는 매우 놀랐습니다. 손경이 무지막지한 인간이라고 했는데, 부디 무탈하게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원매는 대답 대신 발부산을 바라보았다. 그도 파재를 생각하면 걱정스러우면서도 기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발부산 손경치소.

파재는 손경의 부름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자신을 부른다는 것이 못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며 치소로 들어섰다. 치소 안으로 들어서자, 안면을 딱딱하게 굳힌 채 상좌에 앉아있는 손경이 눈에 들어왔다.

“손두령 찾으셨소이까?”

파재가 예를 취하며 물어보았지만 손경은 사납게 파재를 노려볼 뿐 대답이 없었다. 오록이 애가 타는지, 손경을 독촉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곳에 오면서 모든 게 어그러졌어. 밖에서 볼 때는 도적들이 사는 형편없는 곳으로 보일지 몰라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질서가 있는 곳이야. 그것이 모두 무너졌단 말일세.”

“저로 인해 그리되었다면 참으로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로지 좋은 기회가 있음을 알려드리려고 이리한 것뿐입니다. 어찌 다른 사심이 있겠습니까? 속 시원히 마음을 보여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원도독께서는 내게 어떤 것을 해주실 수 있는가?”

“손두령께는 교위, 오소두령께는 사마를 내리실 것입니다. 또한, 그에 걸맞은 집과 봉록 등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된다면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위엄을 가지고 사실 수 있습니다. 신분이 상승하는 것입니다.”

신분이 오른다는 말에 오록은 가슴이 뛰었다. 천민으로 이놈, 저놈 소리 들었는데, 이제는 장군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내 자식은 천민을 벗어나는 것이다.

“두령님. 그리 하시지요. 어차피 왕당이 대두령에게 전령을 보내서 다른 방법도 없지 않습니까?”

오록이 재촉하는 말을 꺼내자, 손경은 아차 했다. 나름대로 계략을 짜내서 협상하는 중이었는데, 오록이 판을 깨버린 것이다.

‘멍청한 놈. 그걸 벌써 이야기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에잉. 한심한 놈!’

손경이 혀를 차는 동안, 파재는 오록의 말을 듣고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지 않아도 왕당이 왜 보이지 않는가 했다. 이들 간에 내분이 있었고, 그 결과로 전령이 대두령 장연에게 갔다면, 그는 필시 손경을 추궁할 것이다. 그리하면 손경의 입장은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다.

“손두령. 원도독을 따르시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오. 만약 장연이 군대를 보낸다면 원도독께서 군대를 출병하여 격파할 것이오. 또한, 손두령의 용맹이라면 교위보다 높은 곳까지 바라볼 수가 있소이다.”

손경은 고심에 빠졌다. 그간 고민했던 계략은 다 어그러졌고, 파재로부터 들을 것은 다 들었다. 이제는 대두령 장연을 배신하는 시기만이 남은 것이다. 그의 고뇌는 그리 길지 않았다. 장연이 의심을 해서 추궁하기 시작하면 끝이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두드려 맞은 왕당이 좋은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좋소. 내 솔직히 말하겠소. 왕당이 파재 당신을 의심하고 대두령에게 전령을 보냈소. 그의 눈 밖에 나면 끝이오. 그러니 원도독을 따르겠소. 이제부터 어찌하면 좋겠소?”

“잘 생각하셨소이다. 지금부터 급히 병사들을 불러모아, 주변을 정리하고 신속하게 이곳을 벗어나야 하오. 나는 곧바로 도독께 달려가서 군대를 이끌고 오겠소. 장연이 군대를 이끌고 내려온다면 손두령께서 직접 상대하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지 않겠소?”

파재는 말을 끊고는 손경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다시 다짐을 받았다.

“이제 손두령도 원도독의 사람이 되었으니, 딴 마음 먹지 마시고 어서 준비를 서둘러 주시오. 만약에 장연이 군사를 보낸다면 누가 올 것으로 예상하오이까?”

“두장이 올 것이오. 대두령의 명령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놈이지. 곰같이 용맹하지만, 나름대로 지략도 있는 놈이니 만만히 보면 절대 안 될 것이오.”

“알겠소이다. 그럼 이 몸은 도독께 보고를 드리러 가겠소이다.”

파재가 급히 데리고 온 병사 20명과 함께 신속히 내려가자, 손경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사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럇- 이럇- 두두두두두--

20여 명이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남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뿌연 먼지가 날리고, 말이 지쳐갔지만, 속도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라!”

우렁차고 날카로운 목소리. 파재였다. 발구산에서 상당군 고도현까지는 계곡을 따라서 이어진 길이었기에 가파른 언덕은 없었다. 온종일 달려서 원매치소에 도착하자, 쓰러질 듯 달려가며 소리쳤다.

“도독! 파재가 왔습니다!”

원매는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섰다. 파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는 급히 복장을 갖추고, 밖으로 나오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파재가 그를 반겼다. 원매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성공했습니다. 손경은 도독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다만 양두산에 주둔 중인 장연이 낌새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빨리 군대를 보내서 저들을 맞이해야 합니다.”

원매는 말없이 파재의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냈다. 파재가 의아한 얼굴로 원매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터이니, 고람을 만난 후에 가서 쉬게. 고맙네. 정말 큰일을 해주었어.”

원매는 급히 고람, 등지를 호출했다. 밤이 늦었지만 원매의 명령에 고람은 신속히 달려왔다.

“찾으셨습니까?”

원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파재를 가리켰다. 고람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원매가 입을 열었다.

“손경이 항복하기로 했어. 문제는 장연이 그걸 눈치챘다는 것이지. 내일 아침 일찍 군대를 이끌고 발구산으로 가서 그들을 데려와야겠어.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니 대비를 해두시게.”

“명을 따르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겠습니다.”

고람이 원매의 명령에 복명하자, 곁에 있던 등지가 급히 입을 열었다.

“고장군, 잠시 기다리십시오. 도독. 무작정 갈 것이 아닙니다. 장연이 군대를 보낸다면 우리가 그들을 격파하여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냥 도망친다면 손경의 무리가 불안해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들을 물리친다면 손경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등지는 급히 정밀하게 지도가 그려져 있는 상황판으로 원매, 고람, 파재를 이끌었다.

“여기 보시면 양두산, 발부산에서 발원한 심수가 계곡을 이루며 고도현을 지나 하내군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심수를 따라서 계곡이 크게 잘 발달해있습니다. 손경의 무리나 장연의 무리도 이 계곡을 통해서 올 것입니다. 중간에 미리 매복하여 장연을 물리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바로 여기서 말입니다.”

등지가 지도의 소하서라는 지역을 지시봉으로 짚었다. 그곳은 심수와 지류가 만나면서 작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등지의 부연설명이 계속되었다.

“이곳은 작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백성들이 백여 가구 사는 한적한 마을입니다. 미리 그들을 대피시키고, 여기 입구에 보병으로 적을 막고 수풀 속에 기병을 숨겼다가 급습을 한다면 손쉽게 저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백묘(등지). 이곳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곳인가?”

“물론입니다. 흑산적에 대한 첩보를 얻으려고 중요한 곳은 다 가보았습니다. 이곳이 매복의 최적 장소라고 확신합니다.”

“좋소. 고장군은 어찌 생각하시오?”

“좋은 작전입니다. 작전이 성공한다면 큰 피해 없이 저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은 적은 수의 보병으로 저들을 속여야겠군요. 두장이 안심하고 공격하게 만들어 놓은 후에 기병과 보병으로 후방을 급습하면 무리 없이 전투가 끝날 것입니다.”

“좋아. 준비하시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겠소. 파교위. 어서 쉬게.”

원매는 파재를 막사로 들여보냈다. 고람과 등지가 사마, 도백, 종사관들을 호출하여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며 원매는 생각에 잠겼다.

‘흑산적을 치는데도 이렇게 할 게 많고, 변수가 많다. 하동군이나 경조윤의 이각을 치려면 더 치밀하게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좀 더 세분화할 필요가 있어. 모략과 군략에 강한 책사가 필요해. 내가 너무 소극적으로 움직였어. 더 적극적이어야 해.’

원매는 서서나 순유가 적격이라 생각했다. 아직 그들은 주인을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미 마음먹은 이상 장연과의 전투가 끝나는 대로 직접 움직일 것이다. 지금은 하동군 태수 겸 사례도독이라는 관직까지 얻었으니,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을 얻으면 좋겠지만 안되더라도 한 명은 반드시 얻으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된다면 군재와 외교능력이 뛰어난 등지는 감군의 역할을 주어, 군대를 전반적으로 다루게 할 것이고, 내정수완이 뛰어난 두기에게는 호조역할을 맡기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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