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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8화 (18/253)

# 18

제 18장 파재波才

196년 9월. 병주 상당군 고도현 천정관.

원소가 상당군 고도, 현씨, 양아 세 개현을 내주자, 원매는 군사들을 이끌고 곧바로 이동했다. 중앙의 고도현에 임시 치소를 차리고는 천정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천정관은 하내군에서 상당군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매우 중요한 관문이었다.

“좋구나. 하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저 넓은 들판을 내 손에 넣었어야 했는데, 한발 늦어서 조조에게 빼앗겼구나.”

“곧 하동군을 얻는다면 그런 마음이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동군은 예부터 부호들이 많다고 소문날 정도로 풍요로운 곳입니다. 물론 동탁/이각으로 인해 많이 망가지긴 했지만, 저력이 있는 만큼 빨리 복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겠어.”

“더군다나 그곳에는 철광도 있고, 염수호(소금호수)가 있습니다. 원래 나라에서 관리하던 것이니만큼, 그것을 되찾아서 철, 소금 전매를 한다면 재정을 확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원매는 빙그레 웃으며 두기를 돌아보았다.

“역시 자네를 잘 데려왔어. 철광과 염수호는 호족들이 무단으로 소유하여 부를 축적하고 있겠지?”

“그렇지요. 도독께서 하동으로 들어가신 후, 그들에게 돌려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만약 거부한다면, 하동군의 호족들에게 연판장을 받아서 그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한 후, 되찾으시면 됩니다. 이것은 저들이 내놓지 않을 명분이 없으니, 최악의 경우 군대를 동원해서 토벌해도 됩니다. 대호족들과 척을 져서도 안 되지만, 원칙에서는 절대 물러서면 안 됩니다.”

“나라의 것을 제 놈들이 계속 가지고 있다면 안 돼. 그런 부분에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아. 물러선다면 내가 원가가 아니야. 그리고 이제부터 대호족의 약점을 파악해놔. 몇 놈은 내 편으로 만들어 놓고, 쳐버릴 놈은 쳐야겠어. 가만 놔두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설 거야.”

“원래 호족들이 그렇습니다. 강하게 반발하는 한, 두 호족만 징계를 내리시고 나머지는 그대로 끌어안고 가시면 됩니다. 포도를 드셔보셨습니까?”

“포도? 그것은 무슨 말인가?”

“포도는 심하나에 수많은 포도알이 달려있습니다. 포도알 하나를 포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포도 심과 포도알이 합쳐져야 포도라고 하지요. 즉, 포도 심과 포도알은 하나입니다. 도독께서 포도 심이면 호족이 포도알입니다.”

두기는 잠시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포도알은 포도 심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아 자랍니다. 포도 심이 단단하게 붙잡아주어야 땅에 떨어지지 않고요. 포도알인 호족은 이에 대한 적당히 대가를 지급하고, 핍박받지 않는 생활을 원합니다. 힘들다 싶으면 포도 심을 갈아타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생각하시고, 호족을 대하신다면 큰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합니다.”

“명심하겠소.”

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천정관을 좀 더 둘러본 후, 관을 내려와서 곧바로 고도현의 치소로 향했다.

치소로 내려오자 두기는 다시 하동군 첩보를 관리하러 움직였고, 등지와 상황판을 사이에 두고 발구산일대에 주둔하고 있는 손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손경이 2만의 군사를 가졌다고 알려졌지만 이번에 파악해보니 실제로는 병력이 8천 남짓이고, 부양가족이 2만 정도 됩니다. 현재 우리의 군사력으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고, 기주목사(원소)께서 지원을 해준다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문제는······.”

등지가 상황판에서 눈을 뗀 후,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이 우리가 강함을 눈치채고 도망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태행산이 워낙 크고 험하므로 도망치려고 작정하면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손경이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원매는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손경 때문에 시간이 늘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등지는 원매의 그런 마음을 눈치채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원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계책을 세워야지요. 일단 저들에게 우리의 병력이 약함을 알리고, 지속해서 저들을 자극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은 전투에서 패배하여 저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합니다. 다음 전투에서 절대 피하지 않고 덤벼들 것입니다. 그때 숨겨둔 기병을 이용해서 일거에 중심부를 와해하고, 정예는 격멸시키고 나머지는 항복시키면 됩니다.”

“고의로 패배를 한다? 아까운 목숨이 날아가겠구나.”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승리하더라도 반드시 병사들의 죽음은 있는 법입니다. 그들에게 보상체계를 확실히 해주는 방안을 마련하시면 됩니다. 차차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희생이 적도록 계획을 수립하겠습니다.”

“그래. 꼭 그렇게 해주시게. 내가 손경을 좀 쉽게 생각했어.”

원매는 등지를 격려하여 정밀하게 작전을 수립할 것을 당부하고는 막사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 얻은 상당군 남쪽은 상당히 오지였다. 대부분 산이었고, 계곡을 따라서 군데군데 작은 분지와 마을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었다. 세 개현의 인구를 다 합해야 겨우 2만일 정도로 매우 적었다. 흑산적이 난리를 치는 통에 더 줄어든 것이다.

‘어차피 이곳은 관중에서 하내로 들어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해서 얻은 것이다. 단순히 인구로 따질 수 없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야.’

원매가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거닐고 있을 때, 파재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파교위. 웬일인가? 병사훈련 시키기도 바쁠 것인데?”

“이번에 손경 토벌 작전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원매가 이야기를 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파재가 진언을 올리기 시작했다.

“제가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저들을 회유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흑산적의 가장 고달픈 점은 배고픔입니다. 민가를 약탈해도 예전처럼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없을뿐더러, 이제는 그들도 자체적으로 방어를 하는 만큼 힘듭니다. 산속에 있으니 농사짓기는 어렵고요. 하여 이번에 저들을 달래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손해볼 것은 없으니, 허락하신다면 시도해보겠습니다.”

원매는 파재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워낙 장연의 세력이 강했기에 손경을 설득하여 항복시킨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래. 내가 생각이 편협했어. 하지만, 손경은 자네와 다르네. 아주 위험한 자야. 행여 잘못해서 헛된 목숨을 잃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누가 그 일에 적임자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토록 위험한 일에 누가 나서려고 할까?”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예전에 장연과도 부딪친 적도 있고 하여 흑산적을 대략 알고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을까?”

원매는 선뜻 허락할 수가 없었다. 파재는 그가 기대했던 대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실천할 자는 파재 말고는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망설여지는 것이다.

“제가 이제껏 모진 세월에도 살아남았습니다. 무모하게 움직이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보내 주십시오.”

“파교위. 꼭 살아오게. 자네에게 이런 위험한 임무를 맡기는 나 자신이 싫어지는군. 중간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돌아오게. 안 되면 토벌하면 되니까. 목숨을 보중하게. 알겠는가?”

원매가 파재의 손을 잡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파재는 웃었다. 싱그러운 웃음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성공하면 도독께서는 큰 포상을 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야. 다시 말하지만, 목숨을 중히 여기게. 나는 자네를 잃고 싶지 않아.”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파재는 원매에게 군례를 올리고는 발길을 돌렸다. 그는 원매를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포상 운운했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원매의 진정한 말에 마음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계획인 만큼 어깨도 무거웠다. 그는 엄정을 호출했다. 엄정은 파재의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님···. 아니 파교위, 안됩니다. 손경은 무지막지한 놈입니다. 말이 안 통하는 놈입니다. 왜 이런 임무를 자청하십니까? 이제 도독 휘하에서 편안히 살수가 있는데······.”

“이것이 잘 성사되면 수많은 목숨을 구할 수가 있는데, 해봐야지. 손경이라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부딪쳐보면 수가 생길 듯도 하구나. 만약 내가 잘못되면 내 가족을 부탁하마.”

“안되오. 다시 생각해보시오.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왜 이리 무모한 짓을 하시오?”

“죽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걱정 말아라.”

파재는 엄정의 만류를 뒤로하고, 병사 20명과 함께 수레에 쌀을 실어서 발구산으로 출발했다. 그의 표정은 비장했다. 4일을 이동하여 발구산 계곡으로 들어서자 예상대로 손경의 부하들이 나타났다. 근 백여 명에 달하는 그들이 파재 일행의 앞뒤를 막아섰다. 대장인 오록이 앞으로 나섰다.

“흐흐흐흐, 그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쌀이오. 손두령께 드리려고 30섬을 가져왔소이다.”

※쌀 한 섬 : 약 160kg. 성인이 일 년 동안 먹을 양. 이때는 하루 두 끼라서 가능함.

당당한 파재의 말투에 오록은 그제야 파재가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다. 곧 그들의 말투도 길어졌다.

“혹시 두령님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까?”

“그렇소. 나는 두령께 많은 것을 드릴준비가 되어 있소. 두령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니, 그대에게도 포상을 내릴 것이오. 안내해 주시겠소?”

오록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부하 한 명을 손경에게 먼저 보내 상황을 알리게 하고는, 파재 일행을 천천히 산채로 이끌었다. 오록은 이동하면서 힐끔 파재를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우리와는 다른 분 같은데, 무엇하러 이곳까지 오셨소?”

“손두령을 만나러 왔소.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 그대와 같았소. 관군에게 쫓기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 상황이 나아졌소. 하여 손두령께도 이런 것을 알려드리려고 가는 길이오.”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어떤 놈들이 우리를 사람 취급한답니까? 제 놈들 속이 더 시꺼머면서 매일 우리를 들들 볶고 죽이려고만 하지요. 이 죽일 놈들!”

“나도 그걸 몰랐소. 그런데 그런 분이 계십니다. 편하게 살 수가 있는데, 굳이 어렵고 힘들게 살 수는 없지 않소? 나는 파재요. 항산에서 있다가 지금은 사례도독인 원매공자를 모시고 있소. 그분께서는 과분하게도 내게 교위직을 내려주셨소.”

“교위를 내려주셨다고요?”

오록은 더할 나위 없이 눈이 커졌다. 관군 교위라니? 그럼 봉록도 받고 집도 생길 것이다. 오록은 침을 꿀꺽 삼켰다. 교위가 아니라 도백만 보장되더라도 이 빌어먹을 산적질을 그만두고 싶었다. 오록의 심경을 눈치챈 파재는 상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손경의 주둔지에 도착했다. 계곡 안에 넓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곳에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이곳은 농토가 매우 적어서 농사를 짓는 것은 불가능했고, 약탈해야 살 수 있었다. 파재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록은 파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급하게 손경의 치소로 뛰어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매우 날랬다. 파재는 오록의 마음이 어느 정도 움직였다고 생각하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의 예상대로 손경의 상황도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오록이 밖으로 나왔다.

“두령께서 들어오시랍니다.”

파재는 부하들에게 쌀을 잘 관리하라고 지시하고는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치소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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