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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6화 (16/253)

# 16

제 16장 격장지계激將之計

196년 9월 건안원년. 업성.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원매는 사마구와 호위병 2명을 뒤를 따르게 하고 원소의 치소로 향했다. 업성 안이었기에 과한 호위는 자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거라.”

원매는 잠시 사마구에게 눈길을 준 후, 치소 안으로 들어섰다. 종사관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원소에게로 안내했다.

“왔느냐?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거라.”

원소는 심배와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원매에게 자리를 가리켰다. 심배는 원매를 보자 선한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날카로운 눈매를 숨기지는 못했다. 원매는 담담하게 심배의 눈길을 받아낸 후,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했다.

[심배(43)]

무력:59, 지력:83, 정치력:73, 통솔력:70

전반적으로 아주 양호한 능력치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 사람이 될 확률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그에 대한 생각을 중단했다.

지금 심배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원소가 흑산적 토벌 명령을 내릴 것이다. 반드시 군대지원을 얻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년 봄에 태수나 목사로 부임할 때, 병력이 부족하여 힘들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심배가 장난을 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원소가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원매는 급히 일어서서 고개를 숙이고는 원소가 자리에 앉자 다시 공손히 앉았다.

“도대체 무술을 어떻게 수련한 것이냐? 고람도 너의 무술실력이 늘은 것을 많이 칭찬하더구나.”

원소는 앉자마자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늦게 정신을 차린 원매가 원담 못지않게 장수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원소가 환한 얼굴을 한 것이다.

“밤낮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현사(원담)형님께서도 하는 것을 어찌 제가 못하겠습니까? 맡겨주십시오. 반드시 성공하여 아버님의 위명에 오점을 남기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믿음직하구나. 너를 보니 내가 젊을 때가 떠오르는구나. 그때는 정말 물불안가렸지.”

원소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죽간을 원매에게 밀었다. 턱짓으로 읽어보라고 하자, 원매는 공손히 들어 펼치고는 한눈에 읽어 내려갔다. 봉기와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 부분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다만 심배의 농간 탓인지 병력을 더 지원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원매가 죽간을 돌돌 말아 조심히 내려놓자, 원소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떠냐? 네 생각을 말해봐.”

“전체적으로 괜찮습니다. 흑산적을 토벌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독의 지위를 주십니까?”

“녀석. 조금 실망스러울 텐데, 표현을 하지 않는구나. 연주목은 조조가 있어서 힘들어. 조조는 내 오랜 벗이기도 하고, 동맹을 맺고 있어. 서주는 유비가 여포를 끌어 들여 방비를 강화하고 있어. 그래서 연주와 서주는 힘들 듯 하구나. 이 아비가 고민을 하고, 여러 책사들에게 의견을 구했어.”

원소는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힐끔 원매의 표정을 살폈다.

“결론이 관중이야. 사실 처음에는 사례교위를 생각했는데, 조조가 사례교위부의 하내군과 하남윤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야. 뭐, 완전히 점령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굳이 동맹인 조조를 불편하게 하면서까지 사례교위를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해서 하동군 태수겸 사례도독을 신설하여 내리는 것이다. 조조가 당분간 관중으로 힘을 뻗을 여력이 없을 것이니, 하동군부터 시작해서 관중을 모조리 제압하거라.”

“반드시 관중을 석권하겠습니다. 하동은 물론이고, 홍농, 삼보까지 모조리 점령하여 아버님의 이름을 멀리까지 알리겠습니다.”

※ 관중은 경조윤, 우부풍, 좌풍익, 하동군, 홍농군일대의 커다란 분지를 말하며, 특히 경조윤, 우부풍, 좌풍익을 묶어서 삼보라고 한다.

원매는 형형하게 눈빛을 반짝이며 다짐했다. 이제 명분은 얻었으니 실리를 얻을 차례다. 군사를 더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보병/기병 합하여 약 1만인데, 이것으로는 조금 부족했다. 그런데 죽간에는 군사부분이 빠져있었다.

“아버님. 황제께서 장안성을 나왔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 이각이 제정신이 아닌 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원소는 이각을 욕하면서도 황제에 대한 걱정이나 어찌해야한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런 원소의 대답을 예상했기에 원매는 좀 더 도발적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지금의 황제는 동탁이 세운 괴뢰황제입니다. 하지만 황제의 명령은 아직 힘이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군대를 보내서 그를 업성에 가까운 곳으로 모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버님께서는 중원최강의 힘을 가지셨으니, 명분마저 얻게 됩니다.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 아비가 그런 괴뢰황제를 등에 업어야 될 정도로 약하단 말이냐?”

황제를 모시자는 원매의 말에 원소는 불쾌감을 표했다. 좀처럼 마음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원소였기에, 원매는 지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동탁이 소제를 폐하고, 지금의 황제 즉 헌제를 옹립했을 때, 이는 부당한 처사라며 반동탁연합군을 일으켜 맹주로 옹립된 이가 원소였다. 결국 이러한 명분과 원가의 후광을 통해 지금의 힘을 얻은 원소로서는 헌제를 맞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원매는 위험하기는 하지만 좀 더 도발적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럼 아버님께서 황제자리에 오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원소는 숨이 막힌 듯, ‘흡’ 하고는 말없이 원매를 노려보았다. 실제 역사에서도 원소는 하북을 장악하자, 경포에게 ‘붉은 덕(赤德)은 쇠하였고, 원(袁)은 황윤(黃胤)이 되니, 당연히 하늘의 뜻에 순응해야한다.’라고 신하들에게 말하게 하여 상황을 떠보았지만, 모두 반대하자 경포를 죽여 상황을 모면한바 있다. 이로 볼 때 분명히 욕심이 있을 것이다.

“네 이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어디서 역적질이냐?”

원소가 짐짓 화를 내며 원매를 나무랐지만, 원매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자신의 생각을 이어갔다.

“물론 지금은 아닙니다. 하지만 곧 공손찬을 물리치고, 제가 관중을 점령한 후에, 조조와 유비를 쳐서 중원을 점령하시면 누가 있어 막겠습니까? 저는 그때 아버님께서 결심을 하신다면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지지하겠습니다. 이미 썩어빠진 황실입니다. 처음에는 천하의 민심이 흔들리고, 지자들이 분노하여 들고 일어나겠지만 곧 잠잠해질 것입니다.”

원소는 지긋이 원매를 노려볼 뿐이었다.

‘이놈이 어찌 내 속을 들여 본단 말인가?’

원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가 되면 제가 군대를 이끌고 거부하는 놈들을 모조리 제압하겠습니다. 이미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을 때, 한은 끝이 났습니다. 유씨의 기운이 쇠했으니, 누가 대신하겠습니까? 오직 원씨만이 대신할 것입니다.”

“하하하하하--”

원소는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리고는 원매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요런 맹랑한 놈을 보았는가? 황제가 무슨 주머니 속 물건이라도 된단 말이냐?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거라. 그걸 농이라고 하는 것이냐?”

원소는 원매의 위험한 발언을 농으로 취급하며 웃어넘기는 대담함을 보였다. 원매의 제안에 대해 원소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욕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천하의 3/4을 차지해야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있었다. 노련한 원소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기뻤다. 자신의 숨은 뜻을 알고, 그걸 적극 지지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그는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며 입을 닫았다. 원매도 찻잔을 들었다. 그는 원소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딸그락.’ 찻잔을 내려놓은 원소의 매서운 눈초리가 원매를 향했다.

“제법이구나. 네가 격장지계激將之計를 쓸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 격장지계 :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여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계책.

“그렇지 않습니다. 소자는 진심입니다.”

“됐다. 이 아비가 네놈의 속도 모를 줄 아느냐? 원하는 게 무엇이냐? 일을 이정도로 크게 벌려서 나를 격동시켰으면 바라는 게 있을 것 아니냐?”

“상당군의 양아, 고도, 현씨 세 개현을 제게 주십시오. 그곳에서 세를 키워서 하동군과 관중을 공략하겠습니다.”

“상당군을 통째로 달라고 하면 내가 거절할까봐서 남쪽의 세 개현만 달라고 하는 것이냐? 그쪽은 관중에서 중원으로 나올 수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 곳이지. 무슨 꿍꿍이냐?”

“공손찬을 토벌하고 나면 조조는 더 이상 동맹이 아니라 토벌할 대상이 됩니다. 그때 관중의 군대가 올 수 있는 수월한 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원재(고간)가 병주자사야. 상당군도 그가 다스리고 있고.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된단 말이냐?”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입니다. 만약 대치가 팽팽해지면 그가 다른 마음을 먹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아들이니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 피붙이 말고 누구를 믿겠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원소는 원매의 말을 일축했다.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손가락으로 원매를 가리키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오늘 네놈에게 여러 번 놀라는구나. 좋아. 세 개현을 주는 것이야 뭐가 문제겠느냐. 그리 조치하지. 그리고 .... ”

원소가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진짜는 군대를 더 지원해 달라 이거지? 그래서 되지도 않는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나를 흔든 것이 아니더냐?”

“어찌 아버님을 격동시키겠습니까? 저는 진심이었습니다. 다만 군대를 지원해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원매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앞으로는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하거라. 이리 저리 머리 굴리지 말고.”

“아버님 제가 군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상당군 남쪽의 세 개현도 반드시 필요하고요.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아버님께서 그것을 결심하시면 저는 모든 역량을 기울여서 도울 것입니다. 반대하는 놈들은 제 손으로 처단할 것입니다.”

“군대는 조치해주마. 고람군영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추수가 끝나면 태행산에 자리 잡은 흑산적을 토벌하거라. 장연까지 잡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적어도 중간 두목급은 잡아야 할 것이다. 만약 거기서 실망을 시킨다면 모든 것은 무효가 될 것이고, 감히 이 아비를 격동시킨 죄를 물을 것이다.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네 생각을 말해보거라.”

“상당군과 하동군의 경계인 태행산 남쪽에 주둔하고 있는 손경을 치겠습니다.”

“손경이라면 장연의 오른팔이야. 만만치 않은 놈이야. 휘하에 병사만 2만정도 된다고 하는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그 정도는 되어야 원가의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놈의 목을 벨 것이니 심려를 놓으십시오.”

원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는 좀 더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를 파했다. 원매는 치소를 나오면서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원소가 자신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관중을 빠른 시간 내에 장악하고 힘을 기르는 것이 당면과제이다. 관중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힘을 키운다면 남쪽으로 내려갈 힘이 생길 것이다. 진짜 싸움은 그때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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