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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4화 (14/253)

# 14

제 14장 전풍田豊

촤르르륵---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그래도 한때는 유주와 기주를 넘어 중원제일의 패자였거늘 어찌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한단 말인가?”

전풍은 공손찬이 탁군에서 역경성을 지으며, 저지르는 만행을 확인하고는 치를 떨고 있었다. 탁군에서는 수많은 백성들이 식량을 빼앗겨 굶어죽고,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또 다른 죽간을 펼쳐들다가 문득 이상한 기운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 범상치 않은 자가 문 앞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현옹공자. 어쩐 일이십니까?”

원매를 확인한 전풍이 황급히 일어서자, 원매도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왔다.

“연통을 준다고 하여 오래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소식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차 한 잔주시겠습니까?”

전풍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몇 달 전에 원매가 차 한 잔 달라며 대화를 청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제가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자~ 안으로 드시지요.”

전풍의 손길을 따라 원매가 방으로 들어섰다. 호화롭지 않은 담백한 실내였다. 원매는 자리에 털썩 앉아 실내 배치를 구경할 때, 전풍이 직접 차를 가져와 원매 앞에 놓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제가 큰 실례를 했습니다. 공무에 바빠 그런 것이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괜찮습니다. 그래서 제가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전별가께서 오지 말라고 내쫓아도 계속 올 것입니다.”

전풍의 얼굴에 의아함이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말없이 찻잔을 들어 그윽한 향을 삼켰다.

“어째서입니까? 그때 분명히 제 뜻을 알았을 텐데, 어째서 계속 찾아오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봉호군과 제 관계를 볼 때, 공자께서 이리 오시는 것이 불편합니다.”

“그것은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장인과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전별가와 척을 지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국에 대해서 많은 의논도 나누며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봉호군의 정치적인 공세가 먼저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공자께서 이리 찾아오시는 것도 봉호군이 안다면 못마땅해 할 것입니다.”

“제 앞가림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 장인이신 봉호군이나 곽공칙(곽도)등 소위 말하는 영천출신의 공격에 전별가, 저기도위(저수)등 기주출신들이 서서히 밀리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처음에 비해서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정치야 밀릴 때도 있고, 밀어붙일 때도 있는 법입니다. 말씀이 좀 과하시군요.”

“표현이 노골적이었다면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시간을 두고 저와 인연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원매는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대는 분명히 알 것이오. 이미 아버님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것을. 다만 그대가 너무 뛰어나기에 곁에 두고 쓰고 있을 뿐이오. 왜냐하면 그대는 윗사람들이 보기에 불편하니까. 힘이 없고 곤궁할 때는 대쪽 같은 성품도 참을 만하지만, 배에 기름이 끼면 그게 귀에 거슬립니다. 그렇지 않소?”

원매가 눈빛을 빛내며 강하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자, 어투도 처음에 비해 조금 짧아지며 달라졌다. 전풍의 얼굴도 더할 나위 없이 굳어졌다.

“놀랍군요. 그동안 한량처럼 보인 것은 연극이었습니까? 세상을 속이려고 그런 것입니까?”

“연극을 하려면 뭔가를 얻어야 하는데, 전혀 얻은 게 없소. 원재(고간)가 병주를 얻는 동안 저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소이다. 연극이 아니라 실제로 바보 같은 생활이었소.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오.”

“그럼 편하실 때 오십시오. 차 한 잔 대접 못하겠습니까?”

전풍의 표정은 조금 풀어져 있었다. 원매가 속내를 드러내 보이자, 그것이 마음의 문을 조금 열게 했다. 원매가 머리를 굴려봐야 지금은 전풍을 당해내기 어려웠다. 하여 아픈 부분을 살짝 찔러본 것이다. 하지만 전풍은 큰 표정 변화 없이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나에게 조언을 해줄 것은 없으시오?”

“정말 엉뚱하시군요.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공자님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다음에는 뭔가 드릴 말씀이 있지 않겠습니까? 한 말씀 드린다면.”

전풍은 말을 끊고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많은 눈이 공자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발자국이라도 삐끗하는 날이면 굶주린 늑대들처럼 달려들 자들이 한둘이 아니란 것만 알아두십시오.”

“거기에 전별가도 포함되어 있소이까?”

“그래 보입니까? 자, 그만 일어나시지요. 제가 할 일이 많습니다.”

전풍의 명백한 축객령. 원매는 싱긋 웃으며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오겠소. 조언 고맙소. 전별가가 그런 자들이 아닐 것이라 믿소. 내게 칼을 들이미는 자들을 용서할 만큼 나는 관대하지 못하오. 그럼. 다음에 뵙겠소.”

원매가 먼저 예를 표하자, 전풍도 급히 마주 예를 표했다. 원매가 돌아서서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가자, 전풍은 매서운 눈초리로 원매를 쏘아 보았다.

‘어찌 원가에 저런 늑대 같은 자가 태어났단 말인가? 내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자는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피바람을.’

전풍은 털썩 의자에 몸을 앉혔다. 처리해야할 죽간이 많았지만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원매에게 받은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래 어차피 난세다. 이를 종결하려면 차라리 현옹공자 같은 자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현사(원담)는 정치력이 너무 없고, 현보(원상)는 너무 어리다. 현혁(원희)은 욕심이 없지. 동등한 경쟁이었다면 세 명이 현옹(원매)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한 데, 그게 무엇일까? 숙제를 받은 셈인가?’

전풍은 원매의 몇 마디에 잠시 심기가 흐트러진 자신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196년 8월. 건안 원년. 위군 무안현 고람군영.

원매는 상좌에 앉아 고람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었다.

“공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군대를 개편했습니다. 이대로 훈련을 거듭하여 가을에 흑산적 토벌에 임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때 주군께서 공자님의 능력을 확인하려고 하시는 만큼, 군대를 추가로 편제해 줄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담판을 통해서 얻어내겠소. 흑산적을 물리치는데, 군사력을 모두 허비하면 정작 중요한 곳에 쓰지를 못하오. 걱정 마시오.”

원매는 고람을 안심시키고는, 고람이 내밀은 죽간을 훑어보았다. 자신의 생각이 잘 반영된 군대편제였기에, 저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중랑장 고람.

- 교위 곽소 : 보병 2천.

- 교위 전예 : 보병 2천.

- 교위 파재 : 보병 2천.

- 사마 위연 : 보병 1천.

- 사마 엄정 : 보병 1천.

- 사마 조독 : 기병 5백.

- 사마 장의 : 기병 5백.

- 사마 문칙 : 기병 5백.

- 아장 사마구 : 기병 1백. 보병 5백.

※ 곽소는 원상의 부하로 사성교위를 지냈으며, 조조에게 포위되자 항복한 무장이다.

사마는 4백을 지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교위로 키우기 위해서 원매가 병력을 일천씩 충원하였다. 아장은 호위대장이다.

“흠. 보병 8천 5백. 기병 1천 6백이구려. 내가 데려온 자들도 있고, 신병들도 그렇고 가을까지 훈련이 되겠소? 그들이 정예병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운 목숨만 버릴 터인데.”

“완전한 정예병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충분히 전투에 나설 정도는 될 것입니다. 기존의 정예병들과 신병을 섞어 놓은 만큼 전투에 나서더라도 우왕좌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공자님께서 데려온 자들이 병력을 부려본 자들이라 적응이 빠릅니다.”

“일단은 고장군이 모두를 통솔하겠지만, 내가 태수나 목사로 부임하게 되면 좀 더 병력을 보충하여 부대를 분리할 생각이오. 가을까지 최대한 훈련을 시켜주시오. 이번 가을에 흑산적을 토벌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일이다보니 조금씩 긴장이 되는구려.”

“맡겨주십시오.”

원매는 고람의 손을 맞잡아 다시 한 번 신뢰를 표시하고는 독대를 끝냈다. 밖으로 나서자, 여러 교위와 사마들이 병력을 훈련시키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파재, 엄정등도 제법 잘 갑옷을 착용한 모습이 잘 어울렸다.

“공자님. 병영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아장을 맡은 사마구였다. 호위대장직책을 맡기고, 그간 병법을 가르친 덕분인지, 요즘은 제법 진중해졌고, 말도 차분해졌다. 수더분하고 발끈하던 성질이 많이 없어진 것이다. 원매가 빙그레 웃었다.

“안 어울려. 역시 안 어울려.”

“아니. 열심히 하고 있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그래. 지금처럼 행동해. 괜히 다른 사람 흉내 낸답시고 되지 않는 말투 따라하지 말고. 힘차게 활기 있게! 내가 그걸 바라고 아장으로 앉힌 거야. 아장은 진중한 맛도 필요하지만 항상 당당해야해.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도 필요하고. 알겠어?”

“알겠습니다요.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군영을 한 바퀴 돌아보자구나. 내 뒤를 따르거라.”

“옛. 공자님!”

원매의 일침에 사마구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커졌다. 그는 커다란 덩치에 험악한 얼굴을 하며 원매의 뒤를 따랐다. 가려 뽑은 건장한 호위병 10명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뒤를 따르자, 원매는 매우 든든했다.

‘허저의 호위를 받았던 조조의 심정이 이럴까? 물론 무력면에서 사마구가 허저에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덩치나 험악한 얼굴은 빠지지 않겠지.’

“차앗-”

“타핫-”

병사들이 기합소리가 사방에서 날카롭게 들렸다. 대규모의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훈련을 하는 모습은 언제 보더라도 가슴을 들뜨게 한다. 두 달여간의 노력으로 신병들과 도적출신들도 제법 정예병다워졌다.

교위, 사마들이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모습을 꼼꼼하게 지켜보는 원매는 문득 다른 생각에 잠겼다. 봉기에게 남양군에서 인재를 얻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위연 빼고는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3달이 넘은 것 같은데, 왜 소식이 없을까? 하긴 남양군이 여기서 멀기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초조함이 드는구나. 그래 어쩌면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몰라. 제갈현은 괴씨일족과 혼인을 통해 인척관계를 형성했다.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오려면 벌써 왔을 것이다. 대호족보다는 작은 호족들이나 가난한 이들 중 쓸 만한 이들을 모아야겠어.’

원매는 마음이 불편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누가 있을까?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구나. 한명만 제대로 된 문관을 건지면 거기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터인데. 아마도 관중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동탁, 이각이 난리를 쳐 놨으니 내가 상대적으로 좋게 보이겠지. 대호족들도 많이 사라졌을 테고. 좀 갑갑하구나.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려보는 수밖에.’

원매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가만히 있자니 더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심각한 표정의 원매를 보자, 사마구도 말없이 뒤를 따를 뿐이었다.

‘대호족들과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를 유지해야해. 그들을 무시하고 살수는 없으니까. 다만 내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자작농과 작은 호족은 계속해서 키워야지. 그들의 땅을 대호족들이 빼앗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면 될 것이야. 이번에 파재, 사마구를 따라온 자들을 과부들과 적극적으로 결합시켜 8백 가구 정도를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면 오직 나만 바라보는 세력이 생길 것이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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