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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삼국지 - 원소 셋째 아들 천하를 품다-13화 (13/253)

# 13

제 13장 견제

업성 봉기치소.

봉기는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자를 보고는 인상을 구겼다. 그는 선하게 웃으면서 종사관들을 일일이 아는 체했다.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지 않는 기묘한 사내였다.

“심치중(기주치중 심배). 자네가 이곳은 웬일인가?”

“봉호군(호군 봉기). 손님이 왔으면 차라도 주는 게 예의 아닌가? 어찌 도끼눈을 뜨고 그러시는가?”

심배는 빙글빙글 웃으며 봉기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봉기는 고개를 흔들고는 종사관에게 차를 가져오도록 명령한 후 심배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후, 차를 가져오자, 종사관을 물리치고는 문을 닫았다. 봉기가 입을 열었다.

“말해봐. 왜왔어?”

“이사람 성미하고는. 급한 건 여전하구만.”

심배는 차를 홀짝 마신 후, 굳은 표정의 봉기를 보고 다시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현옹공자말이야. 참 취미가 독특하더군. 도적들을 열심히 수하로 걷어 들이고 있어. 그런 근본도 없는 것들을 수하로 둬서 뭘 어쩌자는 것인지. 자네는 알고 있었는가?”

더 이상 심배는 웃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경고였다.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봉기는 심배가 원매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훤하게 꿰뚫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현보공자 뒤나 졸졸 따라다니는 줄 알았더니, 뒷조사를 하는 솜씨도 제법이군. 하지만 자네가 알바는 아니지 않은가?”

“안타까워서 그러지. 왜 그런 짓을 하는지는 대충 이해는 하겠는데, 아무리 급하더라도 이건 아니지. 도적들을 수하로 두다니. 허참. 요즘 정신 차렸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끌끌끌.”

봉기는 뜨거운 차를 심배의 얼굴에 끼얹고 싶은 불쾌한 충동을 느꼈다. 이 죽일 놈은 항상 이런 식으로 빈정댄다.

“왜? 혹시라도 현옹공자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는가? 그렇지 않다면 세력도 없는 그를 이토록 집요하게 파고들 이유가 없잖아?”

“하하하하~ 현옹공자가 후계자라? 우흐흐흐~ 이사람 농이 지나치군.”

심배는 비웃음을 터트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봉기를 훑어보며 경고를 날렸다.

“현보공자님이 나이는 어리지만 영특하셔. 또한 주군의 총애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더군다나 정실의 자제이시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현옹공자와는 신분이 다르단 말일세. 주제를 아셨으면 좋겠군. 아무튼 기주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다 알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게. 경고로 받아들여도 좋아.”

심배는 손을 휘휘- 저으며 자리를 떴다. 봉기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자, 뜨거운 찻잔이 엎어지며 찻물이 쏟아졌다.

“저 죽일 놈의 새끼! 오냐. 언젠가는 네놈의 뼈를 추릴 날이 있을 것이다.”

봉기의 치소를 나온 심배는 다시 웃는 얼굴을 하였지만 속은 그다지 편치 않았다. 그간 오직 원담을 견제하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원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져갔다. 원소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고, 중립을 지키던 괜찮은 장수인 고람을 빼앗겨 버린 것이다.

‘아무리 날뛰어봐야 소용없다. 청주자사 원담도 어쩌지 못하는 것을 네놈이 어쩔 것이냐? 오직 현보공자만이 후계자의 자격이 있다.’

기주 중산국 상곡양 항산.

파재는 자신의 치소로 돌아온 후, 고민에 빠져들었다. 원매의 제의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처음에 황건기의를 일으킬 때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것은 현실에서 어렵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원소의 아들인 원매의 입에서 자신조차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신분타파를 들고 나온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어찌 신분을 무시하고 오로지 능력으로 사람을 쓸 생각을 했을까? 물론 호족에 맞서기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혁신적인 생각임은 틀림없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피가 끓는구나.’

파재가 고민을 거듭하여 생각이 원매에게로 기울어지고 있을 때, 엄정이 참지 못하고 들어섰다.

“형님! 뭘 그리 오래 생각합니까? 공자님께 귀부합시다. 장연 저 죽일 놈 때문에 갈 곳도 없는데, 잘됐지 않습니까? 기쁘게도 공자님께서는 우리를 사람으로 대우해줍니다.”

엄정은 마음이 급해지자 자신도 모르게 ‘형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파재가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녀석. 급했나보구나. 그래 나도 너와같이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분을 공자님이 깨우쳐주셨구나. 가보자.”

파재는 싱긋 웃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지어보는 웃음인지 몰랐다. 항산에 머물러 있던 2천 여명은 파재를 따라 나섰다. 병사 7백, 부양가족 1천 3백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보따리 하나 들쳐 메고 원매를 따라 나섰다.

원매는 파재와 엄정을 격려하고는 곧바로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이제 업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업성은 먼 길이었지만 원매의 마음은 가벼웠다. 이번에 유주로 전예를 얻기 위해 나선 성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장수로 전예, 문칙, 사마구, 파재, 엄정을 얻었다.

‘다른 놈들은 이들의 가치를 제대로 모를 것이다. 전예도 전예지만 파재가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황건기의 때 중추적인 역할을 한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생존능력이 있는 자이다. 이제 무안현으로 가서 군대를 양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면 되겠구나. 곧 아버님께서도 흑산적 토벌명령을 내리실 터이고.’

십일의 행군 끝에 원매일행은 업성 근교에 도착했다.

“전예!”

“예. 공자님.”

“나는 업성으로 들어갈 것이니, 자네는 장의의 안내를 받아 무안현의 고람군영으로 가게. 그곳에는 신병들이 많이 있을 것이니 군대를 훈련시키게. 자네 모친과 가족은 당분간 내 집에서 거주하도록 하지.”

전예가 수긍하며 예를 표하자, 원매는 곧바로 시선을 파재에게 돌렸다.

“파재. 전예와 같이 가서 군대를 훈련시키게. 고장군이 준비를 해두었을 것이야. 가족들도 묶을 숙소와 개간할 땅도 안내줄 것이니 걱정 말고.”

“예. 공자님.”

그들은 일제히 원매에게 군례를 올리고는 무안현으로 출발했다. 기병 1천 1백, 보병 1천, 백성 1천 3백의 대규모 일행이 출발한 것이다. 원매는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전예의 모친과 가족을 데리고 업성으로 들어갔다. 집에 가까워지자 반가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 달 만에 돌아오는 집이었다.

“몸은 무사한 것이냐?”

원매가 들어서자, 황옥이 버선발로 달려 나와 그를 끌어안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무심한 놈 같으니. 어찌 연통하나 없더란 말이냐? 이 모진 놈아.”

“죄송합니다. 공무에 바빠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황옥은 한동안 원매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안심이 된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 원매는 하나뿐인 아들 그 이상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모든 것이었다. 원매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끼며, 남다른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애써 표정을 밝게 지으며 소리쳤다.

“어머니. 배고픕니다.”

“어서 씻고 기다리거라.”

황옥은 눈을 한번 흘기고는 시비들을 재촉하여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봉영은 눈물을 그렁거리면서도 황옥 때문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리 오시오.”

원매는 봉영을 가볍게 안았다. 봉영이 서럽게 울음을 터트리자, 가볍게 그녀를 토닥였다. 난감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두 여인이 있다는 생각에 책임감을 느꼈다. 황옥과 봉영에게 전예의 가족을 소개하고는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그날은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아침 일찍 봉기를 찾았다.

봉기는 원매를 보자 굳은 표정으로 맞이했다.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문을 닫고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한참 후, 그의 입이 열렸다.

“그간 뭘 했는지 설명을 해보게.”

원매는 전예를 얻은 일하며, 파재, 사마구등을 얻은 경위를 소상히 설명했다. 그는 이런 부분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봉기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심정남(심배)이 자네가 무엇을 했는지 다 알고 있어. 조심하라고 내가 말했지 않은가? 그리고 굳이 그런 도적놈들을 부하로 쓰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장수들은 모아 준다고 했잖은가?”

“심정남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부딪칠 거라면 부딪쳐야 합니다. 백성들을 징병하면 그만큼 농사를 지을 인력이 부족해집니다. 하지만 도적들을 병사로 거두면 백성들을 수탈하지 않으니 좋은 일이고, 따로 농사지을 백성들을 징발하지 않아도 되니 좋은 일입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그리 한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그런 것이었군. 그래도 조심하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자네를 눈 여겨 보고 있어. 이제는 무조건 성과를 내야해. 병사들을 훈련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게. 곧 가을이 될 것이고, 그러면 주군께서 흑산적 토벌 명령을 내리실 것이네.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이니 무조건 놓치지 말고 꽉 잡아야하네. 알겠는가?”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내 마음이 다 뿌듯하군.”

원매는 봉기와 차를 한잔 마시며, 현재 정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예상대로 원소가 최강이었다. 조조가 연주, 유비가 서주, 원술이 예주 / 양주, 유표가 형주를 지배하고 있었다. 손책은 아직 원술을 따르고 있었다. 원매는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봉기의 말을 편하게 듣고 있었다.

“황제가 장안을 나왔어. 그래서 지금 관중일대가 아주 시끄럽다는 군.”

“아버님께 건의하시어 황제를 가까운 곳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명색이 황제이니 충분한 명분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강의 힘에 명분까지 얻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글쎄. 어려울 거야. 주군께서는 지금의 황제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런데 가까운 곳으로 데려와서 모신다? 그것이 가능할까? 어려운 일이야.”

봉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원소의 고집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매는 조조가 황제를 끼고 얼마나 힘을 키웠는지를 알았기에, 그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려다가 멈칫했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황제는 내년 197년에 조조가 모실 것이다. 하여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더욱 망설이게 한 것은 시간을 두고 이것을 어찌 이용할까 하는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원가의 복잡한 정치구도상황에서 황제의 등장이 원매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생각해보고, 아버님을 뵐 때 말씀을 드려야겠다. 내년쯤이면 원술이가 황제가 되겠다고 나서겠구나. 무슨 생각으로 그 미련한 놈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을까? 아무래도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

원매가 잠시 황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때쯤, 봉기는 말을 정리하고 있었다.

“흑산적을 토벌하면 아무래도 자네가 가야할 곳은 관중이 될 것 같아. 조조나 유비가 만만치 않아. 원술은 더 강하고. 관중의 이각은 멍청하니 그곳으로 가야지. 어떤가?”

“좋습니다. 관중만한 곳도 없습니다. 지금은 이각의 실정으로 망가졌지만, 유민들을 받아들여서 개발하면 꽤 괜찮아질 것입니다.”

원매는 이같이 대답하며 번개같이 머리를 굴렸다.

‘고민이 깊어지겠구나. 시기상으로는 내년에 조조가 황제를 모신다. 내가 빨리 움직여 이번 겨울에 하동으로 들어서면 협천자를 내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될까? 참으로 어렵구나. 고민이 깊어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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