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제 11장 힘을 키우다-5-4
장의가 떠나고, 원매는 체력단련을 하고 반월도로 도법을 수련하면서, 틈틈이 사마구에게 병법을 전달해 주었다. 봉영에게 배운 병법을 땅바닥에 막대기로 그려가며 설명해주었지만, 사마구는 머리만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저는 안 되나 봅니다.”
얼굴이 붉어지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사마구를 보며 원매는 실소를 흘렸다. 곰 같은 덩치에 험악한 얼굴을 한 사마구. 전혀 어울리지 않게도 그는 여린 심성의 소유자였다.
“이봐. 이봐. 안 어울린다고.”
“제가 원래 성격이 이런데요?”
“그럼 처음 봤을 때는 뭐야? 내가 자네를 보고 무서워서 심장이 쪼그라들었다고.”
“그거야 이놈이건 저놈이건 무시하고, 배고프고 먹고 살기 힘드니 표정이 그리 된 것입니다. 공자님 밑에서 얼마 있지 않았지만,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열심히 배워. 배우고 또 배우다보면 언젠가는 되지 않겠어? 사람마다 한계가 분명히 존재해. 하지만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어. 내가 자네에게 이 병법 모두를 암송하고 대군을 자유자재로 운용하라. 이러면 힘들겠지. 하지만 병법 몇 개만이라도 배우라는 거야. 그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잖아.”
“노력하겠습니다.”
사마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하자, 원매는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기습에 대한 설명이었다. 몇 번을 그려가며 설명을 하고는 일어섰다. 사마구는 여전히 앉아서 중얼중얼 거리며 땅에 그려가며 익히고 있었다.
원매는 북쪽으로 눈을 돌렸다. 벌써 3일이 지났는데 전예의 소식이 없었다. 잘못된 것은 아닐까 초조한 생각이 들었다.
‘전예는 반드시 올 것이다. 효심이 깊은 자야. 지금 이곳에, 모친과 부인, 동생까지 있어. 절대 다른 마음을 먹을 리는 없다. 제발 별일 없어야 할 터인데.’
전예는 5일이 지나서야 문안현에 도착했다. 원매는 기다리던 전예가 오자, 사마구와 함께 반갑게 맞이했다. 전예는 혼자 오지 않았다. 기병 8백과 장수 한명을 데리고 왔다. 전예는 그에게 인사를 하라고 손짓을 했다.
“공자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문칙이라합니다.”
“반갑소. 원매요.”
원매는 문칙의 손을 잡고 반가움을 표했다.
[문칙(27)]
무력:74, 통솔력:71
※ 문칙은 공손찬과 장연을 연락해주던 장수였는데, 원소의 척후병에게 발각되어, 죽는 비운의 장수이다.
“문사마는 저와 오랜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도 오랫동안 제대로 녹봉을 받지 못하면서 고통 받았습니다. 이번에 오랜 시간 설득한 끝에 공자님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결코 욕심 많고 무능한 장수가 아니니 중히 써주시기 바랍니다.”
“암, 전사마의 말을 어찌 내가 가볍게 흘려듣겠는가? 그리하지. 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어. 이제는 출발해야겠네.”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중산국 상곡양일세. 그곳에 제법 큰 세력을 가진 자가 있다는 군. 괜찮은 자이면 수하로 얻으려고 생각하고 있네.”
“상곡양이라면 유주와의 경계에 있어서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예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그 장수는 파재일 것입니다.”
“파재? 황건기의 때 굉장히 높은 지위에 있던 자가 아닌가? 어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여남에서 활동하던 자인데, 병법도 읽었고 군사를 부리는 재주가 용한 자입니다. 거기서 쫓기어 이곳까지 올라온 듯합니다. 상곡양이 태행산과 가까운 평야지대입니다. 관군이 오면 산으로 숨고, 물러가면 내려오고 그랬을 것입니다. 태행산의 장연과는 관계가 좋지 않아서 지금은 곤궁한 처지에 몰렸다고 들었습니다.”
“흠. 뿌리는 같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파재가 더 높을 것 같은데.”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이제는 황건기의는 희미해졌고, 거의 독자세력으로 살아남고 있습니다. 뿌리가 같은지는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한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현재 장연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파재는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지요.”
“잘됐어. 어차피 흑산적 놈들과 나와는 물과 기름의 관계야. 양립할 수 없지.”
원매는 궁금증이 풀리자, 파재와 병사들을 얻을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처음에는 원상과 원담의 눈을 피해야 해서 조심했지만, 이제는 원소의 명령을 받아 흑산적을 칠 준비를 해야 하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판단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 내 정신 보게. 이쪽은 사마구야. 이번에 얻었지.”
원매가 소개하자, 사마구와 전예, 문칙은 인사를 나누었다. 출발하기에 앞서 원매가 전예에게 다시 당부했다.
“지금 여기에 기병 일천, 보병 3백이 있네. 업성으로 가면 더 충원해 줄 터이니, 여기 병력을 자네가 책임지게. 만약 파재를 얻는다면 적어도 보병 일천을 얻을 것이야. 파재도 장수로서 키우고 싶군. 물론 능력이 있는지를 먼저 봐야겠지만.”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전예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원매가 자신을 높게 평가했지만, 이렇게 빨리 군권을 크게 맡길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고, 그의 믿음에 마음 씀씀이에 울컥했기 때문이었다.
“문사마.”
“예. 공자님.”
“이제부터는 전사마가 자네의 상관이야. 그는 앞으로 크게 될 사람이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따르게. 자네도 내 사람이 되었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지.”
“전장군의 능력은 일치감치 알고 있었습니다. 당연한 조치이십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마구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마구 자네도 전사마를 따라. 이제부터는 그가 상관이야.”
“전 공자님을 끝까지 모시고 싶습니다.”
“이놈아. 내 밑에 전예가 있어. 당분간 그렇게 하란 말이야. 당분간. 알겠어?”
“네.”
사마구가 힘없이 대답했다. 원매는 한번 그를 흘겨보고는 전예에게 출발명령을 내렸다. 1300의 병사가 일제히 중산국 상곡양으로 출발했다. 중간의 검문소가 있었지만 원매가 있었기에 무사통과였다. 4일에 걸쳐 상곡양으로 들어서자, 장의가 원매를 반갑게 맞이했다.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그래. 고생이 많군. 일찍 와서 정찰한 효과가 있는가? 많이 파악했어?”
“많지는 않습니다. 서북쪽에 태행산 줄기인 항산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적들입니다. 두목은 파재라는 자인데, 지략이 제법 뛰어나다고 합니다. 장연과는 사이가 틀어져서 지금은 좀 난감한 상황입니다. 2천정도 되는 무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제법 규율도 잡혀있어서 토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게 다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알아낸 정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자 장의가 머리를 긁적였다.
“잘했어. 인사하지. 이쪽은 문칙이야.”
“반갑습니다. 문칙이라 합니다.”
“장의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들이 가볍게 인사를 나누자, 원매가 전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떤가? 계책이 있겠는가?”
“무조건 싸울 것이 아니라 설득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장연과 사이가 좋지 않다면 이곳의 생활이 매우 고단할 것입니다. 지략이 있는 장수라고 하니 말이 통할 것입니다.”
“좋아. 자네가 병사들을 풀어서 그들을 찾아보게. 찾는 대로 내게 보고를 하고.”
“예. 공자님.”
전예가 기병들을 이끌고 문칙과 함께 움직이자, 원매가 사마구를 돌아보았다.
“내가 경황이 없어서 물어 보지 못했어. 파재를 아느냐?”
“이름은 들어봤지만 모릅니다. 그는 남쪽에 있었고, 저는 북쪽에 있었으니까요. 그 이후로는 입에 풀칠하기 바빠서 다른 쪽은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원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말없이 항산을 바라보았다. 항산은 매우 큰 산이었다. 저 큰 산골짜기 어딘가에서 파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자 조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산이 워낙 커서 숨으려고 작정하면 찾기 힘들 것이다.
어둑어둑해져서야 전예가 돌아왔다. 전예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그는 문칙에게 기병들을 정비하게 하고는 원매에게 다가와 공손히 예를 표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고생했어. 좀 성과가 있었는가? 항산이 워낙 거대하니 난 대책이 서지를 않는군.”
전예가 싱긋 웃었다.
“아직 공자님께서는 전투경험이 없으셔서 그렇습니다. 항산이 아무리 크더라도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천이 넘는 병력인데, 주기적으로 마을에 내려와서 물건을 구입하므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 역시 내가 사람은 제대로 보았어. 좀 더 자세히 말해봐.”
“파재는 도적치고는 꽤 의리가 있는 자입니다. 이 근처에서 약탈도 없었고, 가능하면 물물교환을 하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장연과 한번 교전이 있었는데, 대치를 하다가 파재가 물러섰다고 합니다. 세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내일 다시 가서 확인하면 수가 생길 듯합니다. 그도 힘들 터이니 공자님이 제안하면 결국 수락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되면 좋겠어. 고생했어. 일찍부터 움직여야 하니 어서 가서 쉬게.”
항산.
상곡양을 전체 관망할 수 있는 봉우리에서 조금 내려온 움푹 파인 곳. 제법 넓은 이곳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은 가운데 거대한 나무로 방책을 세운 산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곳이 파재의 거점이었다.
“그러니까 기병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내 뒤를 캐고 있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우리 측 간자에 의하면 적대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말도 했고, 여러 가지를 묻고 갔습니다.”
“그놈들은 관군이 분명할 터. 이상하구나. 어찌 관군이 대화를 원할까?”
“혹시 이놈들이 거짓으로 이러는 것은 아닐까요? 장군께서 속아서 내려가시면 저놈들이 덮칠지 모르잖습니까?”
“아냐. 아냐. 기병이 이곳 출신이 아니라면서?”
“예. 못 보던 놈들이었습니다. 유주 출신 같다고 하던데요. 그쪽 방언을 쓴다고 합니다.”
“어찌한다?”
부하의 보고를 들은 파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최근 장연이 압박해오면서 입지가 좁아지자, 자신과 대화를 원한다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만약 세가 곤궁하지 않았다면 정체모를 놈이 자신을 찾는다고 할 때 이런 생각하지 않고 산속 깊숙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저들이 물러가면 나오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장연을 피해서 어디론가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애써 만든 터전을 잃는 것이 가슴 아팠지만 장연과 대적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딱히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묘한 시기에 원매가 나타나 대화를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파재는 부하에게 계략을 자세히 알려주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심하거라. 잘못하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어.”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엄정은 싱긋 웃으며 예를 표하고는 곧바로 밖으로 나갔다. 파재는 창문을 열고 산 너머 멀리 보이는 상곡양일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음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게 무엇을 주려고 찾는 것일까? 괜찮은 놈이라면 좋겠구나.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갈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