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제 10장 힘을 키우다-5-3
“원가라고요?”
전예의 모친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름을 말하지 않고, 원가라고만 하는 것을 듣고는 부담스러운 상황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힘 있는 사람이 자신을 밝히지 않는데 더 이상 캐물을 수는 없었다.
“누추하지만 안으로 드시오. 오늘은 내 아들도 올 것입니다.”
“예. 그럼.”
원매는 호위병들에게 경계를 명하고는 장의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섰다. 검소하고 아담한 방이었다. 모친은 내줄 것이 없다며 숭늉을 내왔다. 그래도 한지역의 장수인데,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조촐한 살림이었다.
주로 장의가 살갑게 모친과 대화를 이어갔고, 원매는 가끔씩 추임새를 넣는 정도였다. 곧 날이 어두워졌을 때, 문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원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형형한 눈빛의 사내가 족히 일백의 병사들을 이끌고 와 집을 포위하고 있었다. 전예였다.
[전예(26)]
무력:74, 지력:83, 정치력:75, 통솔력:83
“그대는 누구시오? 무슨 목적으로 이리 하는 것이오?”
전예의 날카로운 질문에 원매가 앞으로 나섰다.
“나는 전예 그대를 만나러 원가에서 왔소.”
“원가라면? 설마 우장군(원소)의 사람이란 말이오?”
“보는 눈이 많으니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합시다.”
전예는 기가 찬지, 말을 하지 않고 매섭게 원매를 훑어보며 노려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리며 험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은 역후(공손찬)가 다스리는 땅이오. 감히 원가의 힘이 여기서도 통할 것이라 생각하시오? 내가 그대를 잡아 역후에게 바쳐서 포상을 받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는 않았소?”
“그럴 거라면 더 많은 병사들을 데려왔겠지. 나는 그대가 시류를 아는 자라 생각하고 이곳에 왔소이다. 어떻소? 나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겠소?”
원매가 손짓을 하자, 전예의 모친도 둘의 대화를 들으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전예는 원매와 모친을 번갈아 보다가 병사들에게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을 주문하고는 방으로 들어섰다.
“나는 우장군(원소)의 셋째 아들인 원매라고 하오.”
“공자께서는 무술과 학문을 게을리 하며, 여인을 탐하는 소인배라고 들었소. 하지만 오늘 공자를 보고나서야 헛된 소문이란 것을 깨달았소. 어째서 이런 헛된 소문이 난지는 모르겠지만, 의도한 일이라면 공자는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오.”
“의도한 것은 아니오. 실제로 그런 바보 같은 생활을 하였소.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열심히 노력을 하는 중이오. 나는 그대를 만나러 멀리서 온 손님이오. 손님대접이 너무 박한 것 아니오?”
전예는 원매를 노려보다가 모친에게 눈을 돌렸다.
“어머니,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래. 여기 장공(장의)께서 많이 돌봐주셔서 많이 좋아졌구나. 이분들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홀대하면 안 된다.”
원매덕분에 모친이 건강해진 것은 사실이다. 전예도 모친의 병을 고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부정을 저지르고 백성들을 약탈하여 뱃속을 채우지 않았다. 그래서 뻔히 모친이 건강이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간이 탕재만 쓰며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정도였다.
“어머님을 보살펴주신 것은 감사드립니다.”
전예의 말투는 어느새 훨씬 부드러워지고 존칭으로 바뀌었다. 모친에게 정성을 다해 대해주는 고마움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원매가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전장군. 나는 그대를 얻기를 간절히 원하오. 그대가 공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할 것이오. 모친께서도 계속 약을 쓴다면 건강이 훨씬 좋아지리라 생각하오. 나를 도와주시오.”
“저보고 역후(공손찬)를 배반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시류를 아는 자가 현자라고 했습니다. 그대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알 것이오. 탁군 역경성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짐짓 영웅이란 백성들의 고초에 눈을 감으면 안 되는 것. 공손찬은 그것을 망각하고 있소. 이제 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오.”
“그럼 원공자 그대가 영웅입니까?”
“진정한 영웅은 내 앞에 있지 않소? 전국양(전예). 그대가 진정한 영웅이오. 영웅은 한사람이 아니오. 백성들을 위하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영웅이지요. 나는 그런 영웅들을 모아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오.”
전예는 원매의 진정어린 말을 듣고는 입을 닫았다. 그도 역경성에서 공손찬이 어떤 짓을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온갖 수탈을 해대는 통에 탁군의 백성들이 굶어죽고, 이를 견디다 못해 기주나 다른 군으로 도주를 한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로인해 전예 자신도 수많은 날을 잠을 못 이루며 고민해왔다.
전예는 공손찬 이전에 유비의 부장이었다. 모친이 병에 걸렸기에 어쩔 수 없이 고향에서 할거하고 있는 공손찬을 따르는 상황이었다. 공손찬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영웅의 기개가 있었지만, 지금 역경성에 틀어박힌 이후로는 목숨에 연연하는 필부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나는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해줄 용의가 있소이다.”
“어찌하여 제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시는지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중원전체에 뛰어난 장수들이 굉장히 많소. 하지만 그들 중에서 진정으로 지략을 갖추고, 대군을 이끌 수 있는 장수는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많지 않소이다. 나는 거기에 전장군이 충분히 포함된다고 생각하오. 기주, 유주만 본다면 전장군이 제일이오.”
원매의 말에 전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곧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충격에서 벗어났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겨우 4백의 기병을 지휘하는 사마에 불과합니다. 기주, 유주 제일의 장수라니요. 저를 놀리시는 것입니까?”
“내가 굉장히 바쁜 사람이오. 실없는 농이나 하러 유주까지 온 것이 아니오. 지금도 전장군이 최고의 장수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이다. 그래서 어떡하든 얻으려고 이렇게 왔소.”
원매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전예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토록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간절히 원한 자는 원매가 처음이었다. 유비도 휘하에 있다가 떠날 때 아쉬워하고 눈물을 보였지만, 결코 기주 제일이니 이런 말은 없었다. 아니 그곳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두 명이 있었다.
공손찬은 정도 없었다. 데면데면했다. 인재가 넘쳐난다는 원가에서 자신을 만나러 오고, 기주/유주 제일의 무장으로 치켜 세우는 원매를 보며 호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모친을 정성을 다해 보살펴주었다.
“예야, 이 어미가 볼 때는 원공자님이 진심을 담아 말씀을 하시는구나. 나도 역후께서 역경성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 참으로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계시지 않느냐? 원공자께서는 나 같은 늙은이도 보살필 줄도 아시는 분이야.”
모친까지 나서자, 전예의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사실 공손찬의 최근 행동을 보고 정이 떨어진 상황이었고, 혹시 모친이 다른 생각이라도 가지고 계시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친이 결정해주니, 전예도 원매에게 호감이 커지고 있었다.
“공자님. 그럼 어머님께서는 업성에서 거주를 하시는 것입니까?”
“물론이오. 내 집이 넓으니 일단 그곳에서 거주를 하는 것이 좋겠소. 그래야 몸이 아프면 바로 의원을 불러 조치를 하지 않겠소?”
전예는 손을 휘이휘이 내저었다.
“그냥 작은 집이면 됩니다. 어찌 공자님께 이런 일로 폐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소. 그대가 장수인 만큼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 허다할 것이오. 그때 모친이 갑자기 병이 들고, 집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어찌되겠소? 그것에 대비를 하자는 뜻으로 하는 말이니 다른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 뜻을 받아들이시오.”
“제. 내자(부인)가 있는데....”
모친이 그런 전예의 손을 잡고는 말을 끊었다.
“공자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너무 사양하는 것도 보기에 안 좋구나. 네가 공자님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면 뜻을 따르거라. 내가 병이 다 나으면 그때 가서 집을 얻어도 되지 않느냐?”
전예는 이빨을 깨물며 고민을 거듭했다. 방안에는 침묵이 깊게 흘렀다. 침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전예는 결심을 굳히자 나머지 가족을 호출했다. 그는 부인, 동생, 자식과 함께 원매에게 절을 올렸다. 원매를 따르겠다는 굳은 결의였다.
원매는 무릎걸음으로 급히 다가가 전예의 손을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떨려나오고 있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내 결코 오늘의 일을 잊지 않을 것이며, 그대의 모친의 내 모친처럼 돌볼 것이오.”
실로 파격적인 원매의 대답이었다. 그만큼 원매는 전예가 절실히 필요했고, 그를 얻은 것이 기뻤던 것이다.
“오늘 저녁을 기해 바로 출발하세.”
“저녁이면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밤을 이곳에서 유하시고, 아침 일찍 출발하십시오. 모친과 내자, 동생들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곳에서 회유 가능한 장병들을 데리고 뒤를 따르겠습니다. 늦어도 2~3일이면 될 것이니 문안현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전예는 예를 올리고는 곧바로 일어서서 밖으로 나섰다. 원매가 밖으로 나오자, 전예는 병사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고는 말에 올랐다. 그는 다시 원매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침이 되자, 원매는 전예의 모친, 내자, 동생을 데리고 문안현으로 향했다. 올 때도 문제없었던지라, 가는 길도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가 문안현 주둔지에 도착하자, 사마구가 급히 달려 나왔다.
“공자님. 가신 일은 잘 되었습니까?”
“그래. 정말 잘 되었어. 며칠 동안 이곳에서 지내보니 어떠냐? 도적생활보다야 낫지 않느냐?”
“물론입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모두 잡아 죽이려고 하는 그 생활에 넌덜머리가 났습니다. 이제는 마음이 편합니다.”
“열심히 노력해봐. 업성으로 돌아가면 네게도 장수직을 내려주마. 나는 내 사람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아.”
“저 ..... ”
사마구는 슬금슬금 원매의 눈치를 보며 말 꺼내기를 주저했다.
“왜? 할 말 있으면 편하게 이야기해봐.”
“도적출신이 괜찮다면 좀 더 데려올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무력도 강하고, 군사력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습니다.”
“호오~ 좋지. 내게 충성을 한다면 신분이니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얻을 수 있겠는가?”
“중산국 상곡양일대의 산속에 2천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호걸이 있는데, 매우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나서 관군도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사마구 자네보다 용맹한가?”
“직접 부딪쳐보지 않아서 이름도 얼굴도 모릅니다. 소문만 들었지만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정도로 소문이 날정도면 공자님께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장의!”
“예. 공자님!”
“자네도 들었지? 중산국 상곡양으로 먼저 가서 첩보를 수집해봐. 나는 전예가 오면 그때 출발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장의는 곧바로 군례를 올리고는 기병 1백을 이끌고 중산국으로 출발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원매는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괜찮은 인재라면 좋을 텐 데.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