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제 9장 힘을 키우다-5-2
원매는 길고 얇은 헝겊을 손바닥을 펴서 감은 후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최적의 상태로 만들었다. 주먹을 들어 올린 상태에서 앞으로 나오자 사마구가 크게 웃었다.
“그건 또 뭐냐?”
원매가 신속하게 보법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자, 사마구도 험악하게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 들어왔다. 곰같이 커다란 덩치를 가진 사마구는 원매를 잡아 한방에 메다꽂으려는 생각이었다. 그가 원매를 잡으려고 손을 뻗을 때였다.
휘익- 빡!
힘이 제대로 들어간 주먹이 그대로 안면에 작렬했다. 비틀거리며 주춤 물러서는 사마구를 원매는 빠르게 달라붙으며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가며 연달아 안면을 타격하고는 그대로 옆구리에 오른손 주먹을 크게 돌려 강력한 한방을 쑤셔 넣었다.
“커헉-”
허리가 꺾어지며 사마구가 앞으로 숙여질 때, 원매의 주먹이 아래에서 위로 쏘아져 올라가며 그의 턱을 날렸다.
덜컥-
쿵-
사마구는 힘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서려고 했지만 머리가 빙빙 돌고, 옆구리가 당겨서 할 수 없었다.
“와아아아아---”
원매가 순식간에 사마구를 쓰러트리자, 기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도적들은 어안이 벙벙한 듯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시 덤벼보겠느냐?”
원매의 말에 사마구가 분기를 터트리며 일어서려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원매가 작정하고 주먹에 힘을 넣어서 때렸기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권투를 미리 알고 대비를 했다면 조금 충격이 줄었을 테지만 모르는 상태에서 당했으니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마구는 반각 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가 괴성을 지르며 다시 덤벼들었다.
휘익- 휘익- 빡! 빡!
막으려고 팔을 들어 올렸지만 원매의 주먹은 야속하게도 살짝 비켜가며 다시 한 번 안면을 연속으로 강타했다. 그 후 또다시 옆구리에 연타가 꽂혔다. 단순한 방식이었지만 원매의 주먹이 워낙 빠르고 강했기에 알면서도 당했다.
주저앉은 사마구는 머리를 흔들었다. 도저히 당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금 즉시 밥을 지어라! 어서!”
원매의 명령에 기병들이 일제히 말에 걸치고 다니는 납작하고 넓은 솥을 꺼내어 나무를 이용해 받치고, 물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밥이라기보다는 죽에 가까웠다. 간편하고 효율적이었기에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부산하게 식사를 준비하자, 도적떼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원매가 사마구에게 가까이 와서 쪼그려 앉았다.
“어떠냐? 패배를 인정하느냐?”
“나으리는 누구십니까?”
원매의 강함을 겪고 나자, 사마구의 목소리는 한풀 꺾여있었다.
“나는 원매라고 한다.”
“혹시 우장군(원소)의 자제분이십니까?”
사마구는 짚이는 것이 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반문했다. 원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원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찌 우리를 죽이지 않고 거두려고 하십니까?”
“인간이란 다 똑같지. 너희들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이리 된 것이 아니더냐? 하지만 계속 이리 살면 결국엔 죽음뿐이다. 나를 믿고 따라 오거라. 젊고 힘센 자는 병사가 되고, 늙은 자들은 농토를 받아 농사꾼이 되면 된다.”
사마구는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지금까지 힘 있는 자들에게 당하고만 살았기에, 쉽게 원매의 말이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눈치 챈 원매가 일어나서 크게 말했다.
“이 원매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내게로 온다면 쌀을 주고, 땅을 줄 것이다. 더 이상 호족들에게 억울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원매가 모두에게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약속을 하자, 그제야 사마구도 결심을 굳히고는 넙죽 절했다.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오. 저들은 불쌍한 자들입니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금 기병들도 모두 내 말을 들었어. 어찌 나중에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겠느냐? 이 원매의 이름이 그리 가볍지 않아.”
사마구가 엎드리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일제히 엎드렸다. 그들은 상황을 정확히 몰라 두리번거렸다.
원매가 그들을 불러 모아, 말린 야채와 쌀을 넣어 끓인 죽을 그들에게 돌렸다. 그들은 희멀건 죽을 허겁지겁 먹으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많은 쌀을 소비하기는 했지만 원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곳은 기주고, 자신은 원가의 핏줄인 것이다.
밥을 먹고 나자, 원매는 그들을 모아 놓고 상황을 설명한 후, 젊고 힘센 자들은 병사로, 나이 들거나 약한 자들은 농민으로 분류했다. 그 후 기병 50명에게 농민으로 분류된 6백명을 고람이 주둔한 군영으로 보내게 했다.
고람의 군영이 위치한 무안현은 태행산에서 가까워 버려진 농토가 많았다. 그곳을 개간하여 먹고 살게 할 것이다.
3백명의 젊은 장정들에게는 가까운 강으로 데려가 씻기었다. 또한 기병들을 시장으로 보내어 급히 그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장만하게 했다. 기병들이 시장을 돌며 3백명의 옷을 준비해 오자, 그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옷을 입었다.
지저분한 옷만 입다가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를 묶으며 단정히 하자 그들의 표정은 단숨에 밝아졌다. 사마구에게는 옷과 더불어 갑옷과 대도를 챙겨주었다. 병사들에게 무기까지 챙겨줄 수는 없었다. 무기는 고람군영에 가야 가능할 것이다.
임시로 그들에게는 봉을 쥐어 주며, 무기를 대신하게 했다.
“어떠냐? 내말이 이제는 믿어지느냐?”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사마구가 곰 같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원매가 이토록 신속하게 자신들을 위하여 무언가를 해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동안 입만 가지고 자신을 이용하려는 놈들은 많았다. 그들은 뭔가를 크게 약속했지만, 당장 해주지는 않았다. ‘무엇을 하면 뭘 해 준다.’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원매는 달랐다. 수하가 되기가 무섭게 새로 옷을 구입해 입히고, 갑옷과 무기까지 제공해 준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은 도적이나 다름없는 황건적 잔당인데도 말이다. 절로 원매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원매는 너무 지체했다고 생각하자, 명령을 내려 행군을 재촉했다. 보병 3백이 새로 충원됐기에 처음보다는 행군속도가 늦어졌다. 며칠에 걸쳐 행군을 한 끝에 원매는 하간국 문안현에 도착했다.
하간국 문안현.
기주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문안현은 거마수를 끼고 있었다. 전예의 모친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양군 옹노현은 이곳에서 꼬박 말을 타고 반나절을 가야 했다.
원매는 이곳에 도착하여 먼저 보낸 장의일행을 찾았다. 그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외곽의 커다란 공터에 주둔지를 편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객잔에 묵으려 해도 백여 마리의 말 때문에 힘들다고 판단되자 과감하게 외곽으로 빠진 것이다.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장의는 수하의 보고를 받고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급히 달려 나와 군례를 올렸다. 원매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고생이 많아. 이곳에서 성과는 있었는가?”
“큰 문제없었습니다. 공손찬이 역경성에 들어간 이후로 어양군, 우북평군 일대의 장수들에게 군량 등을 제대로 지원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하여 그들의 불만이 많이 팽배해 있어 약간의 은을 쥐어주면 무사통과입니다. 전예라는 자는 어양군 천주현에서 기병 4백을 이끌고 주둔중이며, 그의 모친도 근처에 함께 있습니다.”
“4백이라? 공손찬이 참으로 사람 보는 눈이 없구나. 모친의 상태는 어떻더냐?”
“나이가 이순(60)을 넘었는데, 제대로 거동을 못할 정도로 안 좋습니다. 의원들을 불러서 진맥을 보게 하고, 탕재를 해주었습니다. 그간 꽤 정성을 들였더니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전예는 소문을 들으니 매우 올곧은 자입니다. 공손찬이 제대로 녹봉을 지급해주지 않지만, 약탈을 하지 않으니 빈곤한 듯합니다.”
원매는 장의의 말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공손찬의 상태가 많이 심각하구나. 아직은 힘이 있을 터인데, 어찌 역경성에 틀어박혀서 부하장수들마저 제대로 챙기지를 않는 것일까? 장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예를 반드시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구나.’
“네가 모친을 돌봐줬으니, 전예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냐?”
“처음에는 상인으로 속였지만, 나중에는 눈치를 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모친의 건강이 매우 염려가 되었는지 더 이상 우리를 막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이 꽤 무거운 자 같습니다. 직접 만나보시겠습니까?”
“그래야지. 내일 함께 들어가세.”
“예. 공자님. 저들은 누구입니까?”
장의는 사마구와 3백의 보병을 보고는 못 보던 얼굴이라 궁금증을 드러냈다.
“이번에 내가 새로 얻은 자들이지. 이리 와서 인사하거라. 이쪽은 도백 장의. 곧 사마가 될 것이다.”
사마구는 원매의 부름에 달려와 군례를 올렸다.
“사마구요. 만나서 반갑소.”
“장의요. 정말 덩치가 크구려.”
“내가 지금까지 힘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소. 그런데 ...... ”
사마구는 말을 하다 말고 힐끔 원매를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공자님께 죽도록 맞았소. 정말이지 공자님의 주먹은 마치 쇠몽둥이 같았소.”
사마구는 원매에게 맞은 것이 억울했던지 장의가 묻지도 않았는데, 원매와 대련을 벌였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장의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듣더니, 흑산적과의 전투, 고람과의 대련등을 이야기하며 뿌듯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굉장한 분을 모신 것이오. 행운인줄 아시오.”
“그건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밥도 해주시고, 옷에, 갑옷, 무기까지 ...... ”
“자, 그만하고 사마구 너도 얼른 숙영지를 편성하거라. 그리고 이곳에서 병사로서의 규칙을배우거라. 나는 장도백과 함께 내일 아침 일찍 다녀올 곳이 있느니라.”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자, 원매가 중간에 끊었다. 사마구는 곰 같은 덩치와 험한 인상에 비해 의외로 수더분했고, 말도 많았다. 정이 가는 자였다.
날이 밝자, 원매는 갑옷을 안에 받쳐 입고, 평상복을 걸쳤다. 장의와 10명의 기병을 이끌고 출발하며, 나머지 기병은 은밀하게 우회를 하여 뒤를 따라 올 것을 명령했다. 불상사라도 생긴다면 그들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의는 익숙하게 검문소의 병력들에게 은자와 먹을 것을 쥐어주며 농담을 하고 있었다. 무사통과였다. 한참을 달려 오후가 되었을 때, 전예의 노모가 있는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십니까?”
삐이이걱-
문이 열리며 노파가 힘겹게 밖으로 나왔다. 장의가 급히 달려가 부축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고맙습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저분은 뉘십니까?”
전예 모친의 눈은 예리했다. 단번에 원매가 범상치 않은 자임을 알아본 것이다. 아무래도 전예의 영리함은 모친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원매는 망설이다 앞으로 나와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