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제 7장 원소
봉영은 사랑스러운 눈을 들어 원매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참으로 옷이 맵시가 납니다. 자~ 이것을 걸치셔요.”
원매는 봉영의 도움을 받아 의관을 정제했다. 그간의 체력단련으로 몸이 단단해졌기에 그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멋진 헌헌장부의 모습이었다.
“고맙소. 내 다녀오리다.”
원매는 사랑스러운 봉영을 꼭 안아 입을 맞춘 후 밖으로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위연이 고삐를 잡고 말을 끌고 왔다. 황옥과 봉영도 문밖까지 나왔다. 이번에는 황옥도 동행할 것이다. 원소가 불러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옥이 가마에 오르고, 원매가 봉영에게 인사를 한 후, 말에 올라 원소의 치소로 나아갔다. 위연과 호위병이 뒤를 따르자 확실히 든든했다. 치소로 들어선 후, 위연에게 대기를 명한 후, 황옥과 함께 원소의 집무실로 들어섰다.
종사관은 급히 마중 나와 인사를 올리고는, 자리를 안내했다. 차를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황옥을 향해 고개가 돌려졌다. 40이 넘었지만 고운 얼굴의 그녀는 매우 긴장한 듯 보였다. 자신 때문에 원소에게 미움을 받아 일 년 넘게 과부 아닌 과부생활을 한 황옥에게 미안한 감정이 솟았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종사관이 허리를 굽히며 안내하자, 원매는 황옥을 조심스레 일으켜 세우고 함께 집무실로 들어섰다. 열린 창으로 환한 빛이 쏟아지자 원매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어서 오너라.”
나지막하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에 원매와 황옥이 급히 허리를 숙였다. 원소의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의자에 앉아 종사관이 내주는 차를 들이키자, 원소는 그제야 죽간을 내려놓고는 천천히 걸어와 원매의 건너편에 앉았다.
원소. 기주와 청주, 병주를 틀어쥔 이 시대 최고의 강자. 부드럽고 호감 가는 얼굴과 강인한 고집을 드러내는 눈매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얼굴이었다.
[원소(47)]
무력:72, 지력:81, 정치력:90, 통솔력:81
정치력이 높았다. 삼국지게임을 할 때는 보통 80대 초반이거나 70대 후반이었는데, 놀라운 일이다. 조조가 통일을 하며 원소는 격하되었고, 연의에서 다소 무능하게 나오며 정치력이 낮게 나온 것 같다. 정사를 보면 원소만큼 대단한 정치력을 발휘한 인물이 없었다. 이게 정상인 것이다.
“부인. 그간 격조하였소. 나랏일이 바빴다고는 하지만 모두 내 책임이오. 나를 용서하시구려.”
“용서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살짝 보니 황옥은 매우 긴장한 듯 보였다. 정상적인 부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확실한 상하관계. 남편의 눈 밖에 난 첩의 생활은 이런 것인가? 원매가 잠시 딴 생각에 빠졌을 때, 황옥과 잠시 담소를 나눈 원소가 눈을 돌렸다.
“현옹아. 확실히 몸이 좋아졌구나. 이제는 기방도 드나들지 않고, 무술을 배우고 병법을 열심히 익힌다고 들었다. 참으로 대견하구나.”
“소자 너무 늦게 그것을 깨달아 송구할 따름입니다. 다시는 아버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원가의 자식이지. 봉호군(봉기)에게 들었어. 능력을 발휘해보고 싶다고?”
“제가 원가의 핏줄인데 언제까지 한량으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는 아버님께 폐를 끼치는 일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맡겨 주시면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많이 늦었구나. 많이 늦었어.”
원매를 지그시 바라보던 원소가 짧게 탄식했다. 그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떼었다.
“청주는 현사(원담)가 스스로 얻어낸 것이니 일부를 떼어서 네게 주기 어렵다. 기주는 이미 현보(원상)에게 주겠다고 공언을 했으니 이도 안 돼. 유주는 반쪽이야. 쪼개기도 어렵지. 지금 원재(고간)가 병주자사로 있으니 그도 어려워.”
원소는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다시 이어갔다.
“병주 일부를 떼어내어 네게 줄 수는 있지만, 십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태수가 전부일 것이다. 뭔가 망설여지는구나 ...... 그래서 말인데.”
원소는 잠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다가 결심한 듯 원매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가을에 군대를 내줄 터이니 태행산 도적을 토벌하거라. 확실하게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면 이 아비가 수를 내보마. 모든 것은 네가 하기에 달렸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원매는 대답을 시원하게 했지만, 원소가 말하는 그 수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원소는 원매의 속마음을 짐작한 듯 싱긋 웃었다.
“궁금한 것이냐? 욕심이 생겼구나. 지금 연주에 조조, 서주에 유비, 사례에 이각이 있다. 그들이 완전히 그곳을 장악했다고 볼 수 없다. 내가 너를 그곳 중 한곳의 목으로 임명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군대를 이끌고 가서 그들과 싸워서 빼앗아야 한다. 그래서 네 능력을 보겠다는 것이야. 현사(원담)도 평원도독에서 시작해서 청주를 석권했지. 어떠냐? 할 수 있겠느냐? 힘들겠다면 그냥 편하게 이 아비 곁에서 살거라.”
“하겠습니다. 저도 원가의 핏줄이고, 아버님의 아들입니다. 숨죽이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형님(원담)께서 청주를 석권했으니, 저는 서주나 연주, 사례를 반드시 점령하여 아버님의 이름을 높이겠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하지만 말만으로는 안 된다. 정말 면밀하게 준비해야 될 것이야.”
“물론입니다.”
원매는 원소의 제의를 흔쾌하게 수락하고는 담소를 더 나누다가 밖으로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황옥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원매를 바라보았다.
“매야. 흑산적을 물리치고, 서주나 연주, 사례로 간다면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위험한데를 꼭 가야겠느냐?”
원매는 황옥의 걱정에 잠시 난감했지만, 부드럽게 설득했다.
“제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가까운 곳에 자리가 있다면 모르지만, 아버님 말씀대로 현재 갈 수 있는 자리가 그곳밖에 없습니다. 이제 제 한 몸은 지킬 정도가 되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나는 네가 어디로 가든 따라 갈 것이다.”
황옥은 단호했다. 하나뿐인 아들 원매였다. 편안한 업성보다는 하나뿐인 아들 원매와 함께 하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었다. 황옥의 마음이 느껴지자, 원매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제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파종을 하고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됩니다. 군대를 일으킬 때가 아니니 가을이 되면 흑산적을 소탕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것입니다. 빨라야 내년입니다. 마음을 편안히 가지십시오.”
“고맙구나. 우리 매가 참으로 든든해졌구나.”
황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마의 창문을 닫았다. 원매는 집으로 가면서 계속 생각에 잠겼다. 가을까지는 4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다. 원소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고람의 부대를 이용해서 흑산적을 칠 것이다. 그리고 잘 된다면 내년에 서주목이나 연주목 아니면 사례교위로 발령이 날 것이다. 그사이에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원소의 명령이 있었으니, 군사를 키워도 될 것이다.
‘그래. 전예를 얻으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위연을 이용해서 친위대를 만들면 될 것이다.’
원매는 결심이 서자, 집에 도착한 후 곧바로 실행에 착수했다. 봉기에게 인편을 보내어 전예의 위치를 파악해줄 것을 부탁했다. 공손찬에게 중용을 받지 못했고, 노모를 모시면서 효심이 매우 깊으니 노력하면 분명히 등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조심히 처신해야 할 상황이었기에 전예 말고는 미련을 갖지 않았다.
그날은 집에서 보내고, 아침 일찍 날이 밝자, 수련을 생략하고 위연과 함께 곧장 고람군영으로 말을 몰아갔다. 고람은 원매를 보자 의아했다. 아직 올 때가 아니었고, 너무 이른 시각에 온 것이다. 원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반갑지 않은 것이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너무 일찍 오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상의할 일이 있어서 조반을 급히 먹고 달려 왔소.”
상의할 일이라는 말에 고람은 눈을 반짝였다. 장수인 그와 상의를 한다면 필경 전투에 관한 것이다. 고람이 원매를 안으로 안내하고는 종사관을 시켜 차를 내왔다.
“아버님께서 내게 흑산적을 토벌하라는 엄명을 내리셨소. 가을에 공식명령이 내려올 것이오. 그때가 되면 고장군과 함께 움직이고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시오?”
“공자님을 따르겠습니다. 봉호군으로부터도 언질을 받았습니다.”
“좋소이다. 이제부터는 나도 여기 군영에서 상주하면서 5일에 한 번 집에 다녀오겠소.”
“공자님 뜻대로 하십시오. 이곳에 머무르시는 동안은 장의와 일백기병은 공자님께서 언제든지 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필요하시면 그들을 데리고 사냥을 다녀오셔도 되고, 태행산을 둘러 보셔도 됩니다. 일백기병이면 설령 수백의 흑산적을 만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고맙소. 나는 전투를 대비하여 온 것인데, 사냥은 하는데 기병을 부릴 수야 없지 않겠소?”
“오해를 하셨군요. 사냥은 전투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짐승을 잡으려면 상당한 노력과 전술이 필요합니다. 활도 잘 쏴야 하고요. 한번 해보십시오. 그러면 제가 왜 사냥을 해보라고 한 것인지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내가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소. 그리고 내 호위대를 직접 양성하고 싶소. 대장은 선발해 놓았으니 그대가 병력을 충원하는 부분을 맡아 주시오. 아무래도 그런 부분은 내가 부족하오.”
“걱정 마십시오. 공자님께서 점찍으신 대장이란 자가 궁금하군요.”
“어려울 것 없소. 문장! 들어 오거라!”
원매의 호출에 위연이 “예!”하고 큰소리를 치며 막사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위연은 고람을 보며 군례를 올렸다. 늠름한 그의 모습을 보고는 고람이 감탄했다.
“아니? 공자님. 언제 이런 대단한 장수를 얻으셨습니까?”
위연은 낡은 옷을 벗고, 원매의 지시에 따라 갑옷을 챙겨 입자, 확실히 장수다운 기개가 드러났다.
“내가 복이 있어서 남쪽에서 얻었소. 어떻소? 이정도면 호위대를 충분히 맡을 만하지 않소?”
“경험만 쌓인다면 훌륭한 인재가 되겠군요.”
“그럼 부탁하겠소. 문장(위연). 너는 지금부터 고장군을 따르거라. 신병들을 소집해 줄 터이니, 네 것으로 만들어 보거라. 할 수 있겠느냐?”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위연은 생각 밖으로 기회가 빨리 오자, 매우 흥분한 표정이었다. 원매는 다시 엄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당부하지만 여기 있는 장수들에게 항명을 하거나 불만이 있다고 함부로 나대면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원매는 위연이 이정도면 알아들었을 것이라 판단했다. 고람에게 위연을 부탁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가 나오자 장의가 다가와 군례를 올렸다.
“공자님. 소장 장의입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저와 일백기병은 공자님을 위해서 항상 대기할 것입니다.”
“고맙군. 조만간 하간국이나 발해군 가야할 일이 있을 것이야. 그때가 되면 언질을 줄 것이니, 기병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훈련을 시키게.”
“명을 따르겠습니다.”
장의가 물러나자 원매의 곁에는 호위병 4명이 남았다. 그들은 원매가 군영내에서 어딜 가든 따라다닐 호위병으로 고람이 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