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제 4장 각성-3-1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이제껏 수많은 장수들을 보았지만, 공자님처럼 무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5일전과는 비교가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하셨습니다.”
“하하 ..... 너무 띄워 주시는 것 아니오?”
원매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겸손해 했지만, 고람의 딱딱한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련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제가 알고 있는 고급단계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고급단계의 도법을 전수한다는 말에 원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람은 정신을 집중하고는 차분하게 도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고람의 도법은 변초가 많기 보다는 간결한 실전초식이 대부분이었다. 어찌 보면 평범해 보였지만 그 속에 숨은 진의를 원매는 놓치지 않았다.
고람은 한 번 더 시범을 보이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원매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모습을 보며 싱긋 웃더니 고개를 흔들고는 갑옷을 벗었다. 일각 정도 명상에 잠겼던 원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이제는 확실하게 고람의 대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였던 것이다.
원매는 고람에게 감사를 표하고, 이곳에서 장수들과 병사들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바쁜 고람의 시간을 계속 빼앗고 싶지 않았다. 이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고람은 원매의 대답을 몇 번이나 듣고 나서야 자신의 업무를 보러 물러났다.
둔장, 사마들이 병사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병사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병법을 배우고, 도법을 배우면서 병사들의 훈련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병사들을 지휘하면 어떨까하는 상상에 빠지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원매는 급히 고람을 찾았다.
“장군. 이제 가겠소. 열심히 수련을 해서 5일후에 돌아오겠소.”
“날이 곧 어두워집니다. 불편하지만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가시지요?”
“괜찮소. 그럼.”
원매가 급히 말에 올라 출발하려고 할 때, 고람이 급히 원매를 붙잡았다. 원매가 의문을 표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혼자 오신 겁니까?”
“아~ 그게 그대와 대련을 할 생각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하인들을 데려오지 않았소. 뭐, 이제는 내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으니 괜찮소.”
고람은 고개를 흔들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건 공자님께서 세상을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호위무사를 붙여 드리겠습니다.”
곧이어 고람이 명령을 내리자, 날래고 젊은 병사 10명이 말을 타고 왔다. 그들은 곧바로 말에서 내려 원매에게 군례를 올렸다. 고람은 그들을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예기병입니다. 이번에 갈 때, 호위기병으로 삼아 데려가십시오. 아직도 기주에는 도적이나 황건적 잔당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업성은 치안이 잘 되어 있지만, 이곳은 업성에서 제법 떨어져있고, 태행산이 가깝습니다.”
“고맙소. 내 그대의 은혜를 잊지 않으리다.”
원매가 말을 타고 앞장서자, 그 뒤를 10명의 호위기병이 따랐다. 아직 해가지지 않았기에 빨리 달린다면 어둡기 전에 업성에 도착할 것이라 판단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수련을 하면 할수록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말 타는 것도 훨씬 숙련되어 전속력으로 안정되게 질주할 정도가 되었다. 오늘은 매우 많은 것을 깨달았기에 업성으로 돌아가는 원매의 마음은 뿌듯했다. 문득 자신의 능력치가 궁금해졌다.
[원매(23)]
무력:71(100), 지력:82(90), 정치력:50(60), 통솔력:51(80)
무력 21, 지력 2가 올랐다. 워낙 무력이 밑바닥이었기에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껑충껑충 능력치가 올랐지만, 곧 한계에 부딪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오로지 실전을 통해서 극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정도면 어지간한 장수들은 상대할 정도는 된 것이다.
“공자님!”
원매는 생각에 잠겨 무심코 달리다가 호위기병의 외침에 급히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는 급히 말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냐?”
“저 멀리 보이는 작은 마을에 도적놈들이 침입한 것 같습니다. 멀리서 비명소리 들리고, 화재가 난 듯,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습니다. 마을을 우회하여 가시지요.”
“도적놈들이라면 흑산적을 말하는 것이냐?”
“그건 알 수 없습니다. 일반도적일 수도 있고, 태행산에서 가까우니 흑산적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흑산적이라면 부딪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와야 저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원매는 흑산적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섣부른 공명심으로 몸이라도 다친다면 큰일이었기에 우회를 결정했다. 마을에 대규모 흑산적이 내려왔다면 현재의 실력으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마을을 우회하여 급히 업성으로 달려가는 원매에게 불현듯 고람의 충고가 떠올랐다.
‘앞으로는 정말 조심해야겠어. 고장군의 충고를 새겨들을 걸 그랬구나. 오늘은 길보다는 흉이 많겠구나.’
원매는 호위기병을 이끌고 급히 우회를 하고 있을 때, 일단의 무리가 앞을 막아섰다. 급히 후방을 바라보자, 그 길도 막혔다. 호위대장이 크게 소리쳤다.
“방원진을 펼쳐라! 목숨을 걸고 공자님을 보호하라!”
호위기병이 원매를 둘러싼 가운데, 무리의 대장인 듯 한자가 앞으로 나서서 소리쳤다.
“네놈들은 누구냐? 모조리 도륙하기 전에 이름을 밝혀라!”
원매가 나서려고 하자, 호위대장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만류했다. 호위대장이 앞으로 나와 큰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고장군의 기병이다. 썩 길을 터거라!”
“고장군? 그럼 고람의 병졸들이구나.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고가 놈 때문에 우리 형제들이 많이 죽었다. 원수를 갚아야겠다.”
고람의 이름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니, 흑산적이 분명했다. 일반도적 이었다면 고람이라는 말에 꼬리를 내렸을 것이다. 호위대장은 눈빛을 굳히더니, 원매를 바라보았다.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저들은 흑산적의 패거리가 분명합니다.”
호위대장은 즉각 소리쳤다.
“추행진을 형성하라! 돌파한다!”
호위대장이 삼각형 모양의 추행진 꼭짓점에 위치하여 앞장서고, 원매가 중앙에 위치했다. 그들은 일제히 도를 뽑아들었다. 도를 비스듬히 아래로 내린 가운데, 한손으로 단단히 말고삐를 쥐고 약해보이는 곳을 찾아 그대로 돌파를 시도했다.
처음으로 접하는 전투에 원매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시원하게 느껴졌던 바람이 칼날같이 뺨을 스쳐지나갔다. 적의 수가 많았지만 두려움 보다는 강렬한 승부욕이 솟구쳤다. 무력100으로 설정한 영향 탓이리라.
흑산적의 좌측으로 돌격하자, 흑산적이 기병의 돌격에 놀라 이리 저리 피하면서 공간이 생겼다.
“공격하라! 물러서지 마라!”
대장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독려하자 흑산적 병사들이 창을 들고 대항하기 시작했다. 고람이 엄선한 호위기병들은 대단했다. 도를 휘두를 때마다 앞을 막던 병사들이 쓰러졌다. 피가 튀고, 역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흑산적이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기병이 보병보다 전투에서 우위에 섰고, 실제로 정예기병의 경우 10배 정도 위력이 강했다. 문제는 흑산적이 너무 많고, 기병이 원매를 포함하여 11명이라는 것이다.
호위기병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중과부적이었다. 원매도 반월도를 들고 전투에 참여했다.
‘서걱-’
그의 반월도가 병사 한명의 목을 날렸다. 피가 얼굴에 튀었다. 병사를 죽이면서 원매의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동안 가상의 적을 상대로 수 없이 연습했던 무술이 그의 반월도를 통해서 재연되기 시작했다.
원매의 반월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졌다.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게 초식이 연결되었다. 처음의 부자연스러웠던 연결동작이 막힘없이 펼쳐졌다. 찌르고, 베고, 내리치고. 그의 반월도가 움직일 때마다 한명씩 황천길로 향했다. 고람이 펼쳤던 고급단계의 도법이 원매의 반월도로 재현되고 있었다.
어느새 원매가 추행진을 이끌었다. 마치 지옥의 사신이 재림한 듯 그의 앞을 막아서는 자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다.
쉬익-
화살이 날아왔다. 긴 화살이 흔들거리며 날아오는 것이 마치 느린 화면으로 재생되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원매는 병사의 목을 날리며 도를 들어 올려 쳐냈다. 화살을 날린 놈은 어설프게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저놈이 대장일 것이다. 원매가 그쪽으로 방향을 잡자, 5명으로 줄어든 호위기병도 그를 따랐다.
“어.... 어.... 막아라!”
그는 당황하여 소리치며 병사들을 앞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제발 이거 맞고 죽어라!’
간절한 바람을 담아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그의 기대를 처참하게 무너뜨리며 원매가 화살을 쳐내고는 곧바로 달려들어 반월도로 호선을 그렸다. 대장이 쓰러지자, 흑산적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고, 틈이 생겼다.
“돌파한다!”
원매와 호위기병은 그대로 흑산적을 돌파해 멀리 달아났다. 한참을 정신없이 내달리다 낮은 언덕을 발견하고는 그 아래에 말을 숨기며 휴식을 취했다. 혹시나 흑산적이 추격하면 어쩌나 경계를 했지만 더 이상의 추격은 없었다.
원매가 돌아보니 기병은 대장 포함하여 3명이었다. 7명이 죽은 것이다. 원매는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내가 판단을 잘못해서 7명이나 목숨을 잃었구나. 미안하다.”
“당치않습니다. 흑산적이 있을 줄 누가 알았습니까? 오히려 저희들이 공자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토록 강력한 무위를 가지고 계신 줄 몰랐습니다.”
호위대장과 기병들은 원매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급히 엎드렸다. 신분제가 엄격한 이 시대에 병사들은 소모품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었고, 지금 이들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랜 전쟁이 인성을 말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부분을 원매가 깨뜨리자,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두려움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어찌하면 좋겠는가?”
원매의 물음에 호위대장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했다.
“체력이 회복되면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저들은 분명히 우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주변 정찰을 하고 오겠습니다.”
호위대장은 2명의 기병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원매는 홀로 남자 눈을 감고 처음으로 접한 실전을 머릿속에 하나씩 짚어나갔다. 고람의 말대로 실전의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기에, 전투를 겪으면서 그의 무력은 확실하게 한 단계 올라섰다.
원매가 눈을 뜨자, 형형한 눈빛이 반짝였다.
[원매(23)]
무력:80(100), 지력:82(90), 정치력:50(60), 통솔력:51(80)
드디어 무력이 80으로 올라섰다. 극상은 아니지만 상급의 단계로 올라선 것이다.
‘여기서 더 올라서려면 강력한 무장들을 상대하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
깨달음을 기반으로 다시 한 번 고람에게 배운 도법을 펼치자, 부드럽게 하나로 연결되며, 윙- 윙- 하고 도가 바람소리를 냈다. 그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 정찰을 나갔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일각이 더 지나자 3명이 모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