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제 3장 고람
원매는 집으로 돌아와서는 황옥에게 안부 인사를 하고 곧바로 봉영을 찾았다. 봉영은 원매로부터 봉기가 보낸 죽간을 읽고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상공. 소녀가 소싯적에 글을 읽었고, 병법을 깨우친 적이 있지만 밝지는 않습니다. 아버님이 저를 너무 띄우신 것 같아서 부담스럽습니다.”
“장인어른의 엄명이니 오늘부터 병법을 가르쳐주시오. 절대로 그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오. 맹세하겠소.”
원매는 머리를 숙여 그간의 잘못을 사과했다. 봉영은 급히 원매를 일으켰다.
“상공 저는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헌헌장부가 되셨으니, 저는 만족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할까요?”
“고맙소. 오늘부터 저녁때 한 시진(두 시간)씩 부탁하겠소. 내가 배운 후로는 반드시 복습을 하여 병법을 내 것으로 만들겠소.”
봉영은 손자병법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구절을 읽고는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을 하며 원매에게 여러 가지 의견을 물었다. 문답식으로 진행되는 교육에 원매는 처음에 쩔쩔매었다. 지력을 90으로 해 놓았으니, 부족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처음 접해보는 병법이었고, 예상보다 봉영의 지식수준이 굉장히 높았다. 역시 봉기가 말한 그대로였다.
낮에는 지속적으로 체력단련과 무술수련을 하고, 밤에는 봉영으로부터 병법을 배우는 단순한 생활이 반복되었다. 봉기를 만난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다. 소개시켜준다던 무장은 깜깜 무소식이었다. 답답했지만 봉기를 믿고 원매는 지속해서 수련에 매진했다.
‘무술은 이정도로는 부족해. 병사들 상대로야 괜찮지만 제대로 된 무장을 만난다면 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장인께서 빨리 좋은 무장을 보내주셔야 할 터인데.’
원매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집사가 급히 달려왔다.
“주인어른. 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고장군이랍니다.”
‘고장군? 설마 고람인가?’
원매는 드디어 봉기가 호언장담한 뛰어난 무장이 왔다는 소식에 황급히 달려갔다. 문 앞에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기골이 장대한 장수가 서 있었다. 그는 장창을 지팡이 삼아 서 있다가 원매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혹시 현옹(원매)공자님 이십니까?”
“그렇소. 내가 현옹이오. 그대는 뉘시오?”
“저는 고람이라고 합니다. 주군의 명을 받들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고람(31)]
무력:82, 지력:65, 정치력:55, 통솔력:72
원매는 속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새삼 봉기의 힘을 실감한 것이다. 설마 이정도로 대단한 무장을 보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또한 고람은 분명히 원소의 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봉기가 원소를 설득한 것이다.
“반갑소. 이제부터 이곳에서 머물면서 내 무술선생이 되어 주시오.”
“알겠습니다. 하지만 공자님. 제가 주군께 받은 명령은 따로 있습니다. 제가 지휘하는 5천의 군대가 태행산 인근인 무안현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주로 태행산 도적놈들이 위군으로 쳐들어오는 것을 막으며, 동시에 예비대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하여 계속 이곳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제가 5일에 한 번 꼴로 이곳을 방문하여 무술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무안현이라 ..... 군대를 지휘하는 고장군이 군대를 놓아두고 이리 온다면 안 되오. 내가 5일에 한 번 꼴로 말을 타고 가서 가르침을 받겠소. 그게 순리에 맞을듯하오.”
“공자님께서 직접 오신단 말입니까?”
“고장군은 나라를 지키면서 온갖 수고를 다하는데, 나 때문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소이다.”
단호한 원매의 대답에 고람은 원매를 다시 보았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서 옛날 원매의 안 좋은 소문만 기억하고 있었기에, 불편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호방하고, 단호했으며 배려심이 있었다.
원매는 고람을 안으로 이끌었다. 봉영은 시비들을 대동하여 음식을 장만했다. 고람은 황옥과 봉영까지 나와서 자신을 환대하자, 놀라움에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까지 반긴 것은 처음이었다.
원매가 고람과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봉영이 시비를 시켜서 간단한 주안상을 들였다.
“자 한잔 받으시오.”
고람은 원매가 주는 술을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고람은 공손히 원매에게 술을 따랐다. 연거푸 빈속에 술이 들어가자 원매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지만, 고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고장군. 앞으로 많이 가르쳐주시오. 내가 고장군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수련하겠소이다.”
“소장. 성심껏 공자님을 모시겠습니다.”
이런 저런 환담을 하는 가운데, 봉영이 시비를 시켜서 상을 내왔다. 원매로부터 미리 이야기를 들은 상황이라 진수성찬이었다.
“시장하실 터인데, 많이 드시오.”
원매가 권하자 고람도 수저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지만 속은 조금 어색하고 불편했다. 지나친 환대가 오히려 경계심을 일으킨 꼴이었다. 원매는 그런 고람의 마음에 상관없이 지극정성을 다했다.
봉기가 고람을 보낸 이유는 분명했다.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원매와 살가운 대화를 하다 보니, 고람의 경계심도 차츰 완화되었다.
“내 도법을 한번 봐주시겠소?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고, 혼자서 해본 것이라 영 어설플 것이오.”
“편안하게 펼쳐 보십시오.”
원매는 반월도를 들고 마당의 중앙에 섰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는 전력으로 반월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찌르고, 베고, 다시 막고. 가상의 적을 상대로 하는 그의 무술은 간결하면서도 빨랐다. 원매의 시범은 무려 일각(15분)을 지속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원매는 벅찬 숨을 고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어떻소?”
고람은 원매의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고람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정말 무술을 배운 적이 없습니까?”
“그렇소. 대련하는 것을 몇 번보고 그대로 흉내를 내 보았소. 엉망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고람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어 흔들며 강하게 부정했다.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만 탄탄하게 기본기가 잡혀 있습니다. 실질적인 대련이 없었기에 그렇다고 판단합니다. 저와 대련을 해보시고, 수련을 하십시오. 그 후에 기본이 완전히 잡혔다고 판단되면 고급무술로 넘어가겠습니다.”
고람은 그리 말하고는 대도를 쥐고 천천히 걸어 나와 원매의 앞에 섰다. 고람이 공손히 예를 취하자, 원매도 예를 취하고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선공을 하겠소!”
원매가 한걸음 내딛으며 날카롭게 찔러가자, 고람을 몸을 비틀어 원매의 도를 쳐내고는 대도를 휘둘러 원매의 목 근처에서 멈춰 세웠다. 대도를 회수한 고람이 자세를 잡았다.
“이얍!”
원매는 강력하게 도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또 달려들었다. 고람은 냉정하게 도를 막고, 쳐내며 원매의 약점을 짚어 나갔다. 일각에 이어진 대련에 원매는 힘에 겨워 주저앉았다. 그는 숨을 고르더니 그대로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었다. 고람은 조용히 옆에 앉아 기다렸다. 명상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원매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고장군. 고맙소. 그간 뭔가 부족하다고는 느꼈는데, 오늘 그것의 많은 부분을 깨달을 수가 있었소. 며칠 동안 열심히 수련해서 부족한 부분을 고치도록 하겠소.”
“벌써 그것을 깨우쳤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소장 물러가서 기꺼운 마음으로 공자님이 오시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원매는 문밖까지 고람을 배웅하고는 다시 반월도를 잡았다. 지력 90으로 설정했기에 명상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을 바로 깨달았고, 그래서 그가 휘두르는 반월도는 그전보다 훨씬 간결하면서도 예리하게 펼쳐졌다.
휘익--
가상으로 설정한 적의 목을 베며, 그대로 도를 회수하여 그 옆에 위치한 적의 옆구리를 훑어갔다. 그는 온전히 수련에 매진하며 가상의 적을 한명, 한명 베어 나갔다. 이각(30분)을 전력으로 도를 휘두른 원매는 칼을 떨어뜨렸다.
이각이라는 시간이 지옥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굉장히 많은 것을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원매는 수련을 멈추고, 가볍게 달리기를 하면서 몸을 풀고, 기초 체력 훈련에 매진했다. 낮에는 체력을 다지고, 고람에게 배운 도법을 수련하며, 밤에는 봉영에게 병법을 배우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상쾌하고 보람찼다.
어느새 약속한 5일이 되자, 원매는 고람군이 주둔한 무안현으로 말을 몰아갔다. 바람이 그의 귓등을 휘익- 소리를 내며 스쳐지나갔다. 말을 타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이 이렇게 기쁜 일인 줄이야. 약 한 시진(두 시간)을 넘게 말을 달려 고람군영에 도착하자, 경계병이 신분을 확인하고는 급히 고람에게 안내했다.
고람은 원매가 왔다는 소식에 달려 나왔다.
“공자님. 어서 오십시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강녕하셨소? 내가 그대를 만나러 이곳으로 오면서 즐거운 마음에 조금도 힘들지 않았소. 바로 시작해 봅시다. 내가 얼마만큼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원매가 공터의 중앙에서 앉아 차분하게 머릿속으로 도법운용을 떠올리며 고람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고람의 묵직한 목소리에 원매는 눈을 떴다. 갑옷을 입고, 대도를 단단하게 거머쥔 고람이 우뚝 서 있었다. 원매는 차분하게 자신 앞에 놓인 갑옷을 걸치고는 반월도를 쥐었다. 원매는 자세를 잡은 후, 바로 선공에 나섰다.
“타앗-”
신속하게 두 걸음 전진하며 반월도가 날카롭게 고람의 가슴부위를 찔러갔다. 고람이 대도를 이용해 쳐내려고 하자, 반월도는 방향을 꺾으며 옆구리를 훑었다. 고람이 놀라 허리를 빼며 반월도를 쳐냈다.
‘카앙-’
원매는 다시 반월도로 반원을 그리며 고람의 목을 노렸다. 어느새 고람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5일전의 원매가 아니었다. 단순히 방어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자 고람도 대등하게 공격에 나섰다. 20여합의 교전 끝에 고람이 대도가 원매의 목 앞에 멈춰서며 대련이 끝났다.
“쩝.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 이것 밖에 안 되는군.”
원매가 실망스러운 듯 중얼거릴 때, 고람은 눈을 부릅뜬 채,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원매가 의아한 듯 고람을 쳐다보았다.
“고장군. 왜 그러시오? 다시 한 번 해봅시다!”
고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도를 단단하게 잡았다. 원매의 선공에 이제껏 수세적으로 방어를 주로 하던 고람은 반월도를 쳐내며 처음부터 공격에 나섰다. 강맹한 고람의 대도를 원매는 힘겹게 쳐내며 버티고 있었다.
‘윙-’
섬뜩한 소리를 내며 고람의 대도가 원매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원매는 두 손으로 반월도를 잡아 막다가 기우뚱하며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고람이 급히 달려가 원매를 일으켰다.
“공자님. 소장이 지나치게 흥분했나 봅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소. 정말 좋은 교육이었소.”
원매는 엉덩이를 털고는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