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레알 소시에다드
- 호오!
“오!”
이찬수와 김상훈, 두 남자의 입에서 작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리오넬 메시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안녕.”
작지만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다만 김상훈의 눈에는 메시가 억지로 밝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원래는 소심한 성격이라고 그랬었지?’
어린 시절의 메시는 말수가 적고 소심한 성격을 가진 남자라는 것.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였다.
그것을 알기에, 김상훈은 환하게 웃으며 메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메시.”
“네 경기는 많이 봤어. 정말 잘하더라.”
“난 네 팬이야.”
“정말?”
“그럼. 나는 빨리 너랑 축구를 하고 싶어서 미칠 것 같다고.”
“하하……!”
리오넬 메시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김상훈 역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메시와의 짧은 대화를 마친 김상훈은 다른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경계를 하며 다가오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 왜? 왜 또 그래? 상훈아 그냥 훈련하자.
“지금 확실히 해놓지 않으면 또 패스 안 주고 주접들을 떨 것 같아서요.”
- 뭘 또 확실히 해두려고?!
“보여드릴게요.”
- 뭔지는 모르겠지만 안 봤으면 좋겠다.
“크힠!”
김상훈은 잠시 훈련을 멈춘 채, 모여 있는 선수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외쳤다.
“다들 반가워! 나는 김상훈이야. 앞으로 같이 뛰게 될 거니까, 잘 지내보자.”
그 순간,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상훈이 원어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표정을 본 김상훈이 다 안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다들 왜 놀래고 그래? 바르셀로나 같이 위대한 팀에서 뛰려면 당연히 스페인어를 공부해야하는 거 아닌가?”
- 아주 누가 보면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한 줄 알겠어. 걍 스킬빨이면서!
김상훈은 이찬수의 말을 무시한 채, 선수들과 눈을 마주치며 악수를 나눴다.
경계를 하던 선수들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럽게 변했다.
‘시작이 나쁘지 않네.’
동시에 김상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모든 것이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바르셀로나의 훈련은 토트넘에서의 훈련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전체적인 훈련의 강도는 토트넘에 비해 약했지만, 패스, 슈팅과 같은 훈련에서는 더욱 집중도 있는 훈련을 했다.
특히 패스.
바르셀로나의 패스훈련은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템포가 워낙 빠른 편이었는데, 그럼에도 정확한 패스를 요구했다.
보통 선수들이라면 적응하기 힘든 난이도의 훈련이었다.
하지만.
김상훈은 달랐다.
“저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거였어?”
“어떻게 저래? 쟤 뭐야?”
“뭐지? 바르셀로나에서 훈련을 해본 적이 있나?”
“패스를 저렇게 잘하다니…….”
너무나도 쉽게 적응했고 오히려 바르셀로나에서 수년을 보낸 선수들보다도 완벽한 패스를 보여줬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놀랐지만 김상훈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사비 에르난데스의 패스]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스페인의 사비 에르난데스, 그의 패스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패스를 잘했던 선수인 사비 에르난데스.
김상훈은 그런 사비의 패스 능력을 갖고 있었으니까.
더불어.
지금 그의 패스 능력치는 98이라는 높은 수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김상훈은 가진 실력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스킬 역시 아끼지 않고 사용하며 바르셀로나 선수들과의 훈련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며칠 뒤.
축구 팬들이 좋아할 만한 기사가 떠올랐다.
「김상훈, 소시에다드 전 명단에 포함! 바르셀로나에서 뛰는 모습, 드디어 보나?」
「바르셀로나의 발베르데 감독, ‘바르셀로나는 모든 선수들이 주전으로 뛸 수 있다. 김상훈 역시 경쟁을 할 것이다.’」
「김상훈은 어떤 포지션에서 뛸 것인가?」
「바르셀로나에서 김상훈은 어떤 역할?」
「축구 팬들, 김상훈 출전 기대!」
2018년 9월 15일.
2018-2019시즌을 진행 중인 바르셀로나에게 여러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김상훈은 커다란 전력이 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주전을 차지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리고.
김상훈을 벤치에 앉힌 채, 바르셀로나와 소시에다드의 경기가 시작됐다.
바르셀로나의 선발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우스만 뎀벨레, 수아레스, 메시, 하피냐, 라키티치, 로베르토, 조르디 알바, 움티티, 피케, 세메두, 테어 슈테겐으로.
강력하긴 하지만 조금은 실험적인 멤버가 출전했다.
[바르셀로나와 소시에다드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레알 소시에다드의 홈에서 시작되는 경기이기 때문에 바르셀로나로서도 긴장을 해야 하는 경기입니다.]
[맞습니다. 그 어느 팀이든, 홈에서는 강한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죠.]
[과연 김상훈 선수가 출전할 것인가에 궁금증을 가진 채, 선수들이 공을 돌립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초반부터 빠르게 공을 돌리며 기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제대로 몸이 풀리기 전에 크게 흔들어놓겠다는 계획이었다.
[후안미 히메네스가 피케를 등진 채 공을 따냅니다. 히메네스가 공을 흘려줍니다! 루벤 파르도 슈웃! 아~! 아쉽게 골대를 벗어납니다.]
레알 소시에다드는 적극적으로 슈팅을 시도하며 골을 노렸다.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특유의 삼각편대 수비로 소시에다드의 선수들을 방해했다.
하지만 소시에다드의 초반기세가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리오넬 메시를 제외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당황한 나머지 실수를 연발하며 위기를 맞았다.
[이야라멘디의 슈팅을 테어 슈테겐 골키퍼가 간신히 막아냅니다! 바르셀로나가 초반부터 레알 소시에다드의 공격에 힘들어하는데요?]
[이변입니다. 레알 소시에다드가 바르셀로나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당황한 사람은 단연 발베르데 감독이었다.
바르셀로나의 감독인 그는 이런 상황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이끄는 팀이 어디던가?
스페인 최강인 바르셀로나였다.
레알 소시에다드가 강한 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르셀로나는 팬들에게 이런 경기력을 보여줘서는 안됐다.
‘이대로는 안 돼.’
발베르데 감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동시에 그가 코칭 스태프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
바르셀로나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축구 팬들이 바르셀로나의 승리를 예상했다.
“바르셀로나가 몇 대 몇으로 이길까? 3대 0? 4대 0?”
“에이~! 그래도 레알 소시에다드가 1골을 넣지 않을까? 리오넬 메시가 해트트릭을 해서 3대 1로 이길 것 같아!”
“김상훈도 골을 넣지 않을까?”
“김상훈은 오늘 출전할지 안 할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니 반전이 펼쳐졌다.
레알 소시에다드가 전반전 내내 경기를 지배했고 바르셀로나는 버텨내는 것에 급급했다.
“뭐, 뭐야?! 소시에다드 왜 이래?”
“바르셀로나는 또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거야?! 다들 정신차려!”
전반전의 경기력을 보면 최소 2골을 먹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골키퍼인 테오 슈테겐의 선방과 몇 번의 운이 따르면서 골을 먹히는 것만은 막아낼 수 있었다.
결국 전반전이 끝난 후의 스코어는 0대 0.
레알 소시에다드는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후반전을 준비했고 바르셀로나는 비상이 걸렸다.
발베르데 감독과 코치진이 머리를 싸맸고, 전술도 조금씩 변경하며 레알 소시에다드를 공략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후반전이 시작됐다.
바르셀로나는 후반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선수를 교체했다.
교체되어 들어온 선수는 필리페 쿠티뉴였다.
화려한 발재간과 강력한 오른발 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중요한 순간에 골을 터트려줄 능력이 있는 선수였다.
[쿠티뉴 선수가 교체되어 들어옵니다. 세메두 선수가 빠져나가네요. 그리고 세르지 로베르토 선수가 풀백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무래도 바르셀로나가 후반전에는 조금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습니다.]
쿠티뉴가 들어오며 바르셀로나의 공격이 풀릴 것이라는 해설들의 예상.
하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후반전의 경기내용은 전반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교체되어 들어온 쿠티뉴는 별다른 공격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리오넬 메시가 고군분투했지만 소시에다드 선수들에게 집중마크를 당하며 역시나 기회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결국 발베르데 감독은 후반 8분 만에 또 다시 선수를 교체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경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상훈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그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김상훈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선수를 교체하는데요? 설마 김상훈 선수가 나오나요?]
[아! 부스케츠 선수를 투입하네요.]
하지만 교체되어 들어온 선수는 부스케츠였다.
[……김상훈 선수가 투입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바르셀로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부스케츠 선수는 바르셀로나에서 오랜 기간을 뛰어온 베테랑이거든요.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맞습니다. 발베르데 감독으로서도 아직 팀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김상훈 선수를 쓰기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을 한 것이죠.]
김상훈을 원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느꼈지만, 결론적으로 발베르데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부스케츠가 들어온 뒤로 바르셀로나는 안정감을 찾았다.
특유의 패스플레이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부스케츠가 공을 끊어냅니다. 곧바로 리오넬 메시에게 연결합니다. 메시! 메시! 두 명의 선수를 달고 전진합니다. 메시가 사이드로 공을 넘겨줍니다! 쿠티뉴가 공을 받습니다. 쿠티뉴우우! 슈웃!]
[고오오올! 쿠티뉴의 환상적인 슈팅이 터졌습니다!]
[역시 쿠티뉴 존이라고 불리는 위치에서의 슈팅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의 쿠티뉴는 정말 무서운 선수죠!]
계속해서 바르셀로나를 밀어붙이던 레알 소시에다드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실점이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후반 30분에 소시에다드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끊어낸 뒤 날카로운 역습으로 동점골을 넣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발베르데 감독이 코치진을 불렀다.
“준비시켜.”
잠시 후.
경기장에 모인 바르셀로나 팬들이 환호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 축구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PL, 챔피언스리그, 아시안게임까지 우승을 차지한 남자가 경기장으로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 바르셀로나 유니폼이 겁나 안 어울리는데?
“에이~! 아직 익숙하지 않으신 거겠죠. 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 그건 모르겠고, 어쩔 거야?
“예? 뭘요?”
- 그래도 바르셀로나 데뷔전인데 뭔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김상훈이 씨익 웃었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 뭔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죠.”
- ……그럼?
“제가 왜 바르셀로나에 왔는지 제대로 보여줘야죠.”
말과 동시에, 김상훈은 우스만 뎀벨레와 가벼운 포옹을 한 뒤 그라운드 위로 달려 들어갔다.
[김상훈 선수가 우스만 뎀벨레 선수와 교체되어 들어옵니다! 김상훈의 프리메라리가 데뷔전입니다!]
[뎀벨레 선수와 교체되었다는 것은 김상훈 선수가 왼쪽 윙어로 뛰게 된다는 건데요. 오른쪽에는 메시, 왼쪽에는 김상훈! 이 장면은 많은 축구 팬들이 원했던 장면일 겁니다!]
해설들의 말 그대로였다.
현재 바르셀로나의 공격진은 김상훈, 수아레스, 리오넬 메시로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었다.
막강한 공격력을 보여줄 것이 분명한 조합이었다.
때문에 관중들은 더욱 열광했다.
동시에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는 팬들도 많았다.
“우오오오오! 드디어김상훈이 나왔다!”
“김상훈과 메시가 같은 팀에서 뛰는 걸 보다니!”
“과연 김상훈이 바르셀로나에서도 잘할 수 있을까?”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아직 적응을 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을까? 더군다나 김상훈은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느라 바르셀로나에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바르셀로나에서 짧은 기간 훈련을 한 뒤에 출전하는 김상훈이 완벽히 팀에 녹아든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
아무리 타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김상훈이더라도 팀원들과의 손발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
“그러네. 에휴! 그럼 아무래도 데뷔전에는 좋은 모습을 보이긴 힘들겠다.”
“처음부터 너무 기대를 하면 안 되지.”
그것이 바로 현실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상훈은 경기장에 투입되자마자 그런 팬들의 생각을 철저하게 부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