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낚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프랑스는 우승후보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그런 프랑스는 또 다른 우승후보 팀들을 줄줄이 꺾었고, 이내 결승까지 오르며 우승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압도적인 선수들의 실력과 뛰어난 조직력.
지금의 프랑스가 결승까지 오른 이유였다.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팀들을 상대로 강력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프랑스는 대한민국을 상대로도 좋은 경기력을 펼치고 있었다.
[앙투안 그리즈만이 공을 잡습니다. 그리즈만 패스를 줄 곳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즈만 선수! 올리비에 지루를 노리나요? 아!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블레즈 마튀디를 노립니다! 대한민국, 위험합니다!]
위기였다.
앙투안 그리즈만이 가볍게 찍어 찬 공이 정확히 블레즈 마튀디의 앞 공간에 떨어졌고, 블레즈 마튀디가 어렵지 않게 공을 잡아냈다.
슈팅을 때릴 수도 있고 올리비에 지루를 노리는 크로스를 올릴 수도 있는 위치였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골까지 연결될 수도 있는 상황.
대한민국 수비수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젠장! 완전히 놓쳤어!’
‘제발 아무나 막아줘!’
‘마튀디를 막아야 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마튀디를 막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블레즈 마튀디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게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특별한 남자가 있었다.
특별한 실력을 지닌, 더불어 남들에게는 없는 아주 특별한 능력까지 가진 남자.
지금 이 순간, 그 남자는 공을 잡아낸 블레즈 마튀디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갔다.
[순간 가속(G)이 적용중입니다.]
[속도가 빨라집니다.(남은 시간 3초)]
남자, 김상훈은 순간 가속 스킬까지 사용하며 블레즈 마튀디를 향해 달려들었다.
- 더 빨리!
‘이미 전속력이라고요!’
김상훈은 이찬수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그는 모든 힘을 다해서 블레즈 마튀디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김상훈의 다리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그가 몸을 띄웠다.
부웅!
[김상훈! 마튀디를 향해 몸을 날립니다!]
[쫓아가기 힘든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김상훈 선수의 스피드가 굉장히 빠르네요!]
[김상훈의 태클! 우와! 블레즈 마튀디가 크로스를 올려는 그 순간에 공을 뺏어냅니다!]
- 캬! 개사기 스킬들로 떡칠을 하니까 이걸 따라붙네.
“대신 체력이 많이 소모됐잖아요.”
- 효과가 사긴데 체력이라도 소모돼야지.
“그나저나 전반전에 체력 소모가 좀 컸네요.”
말을 마친 김상훈이 허공을 바라봤다.
[강철 체력(G)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완벽한 태클(H)을 사용하셨습니다.]
[체력이 7만큼 소모됩니다.]
[현재 남은 체력은 93입니다.]
‘강철 체력 스킬이 끝났지만 남은 체력이 많아.’
아주 좋은 상태였다.
하고 싶은 움직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몸 상태였다.
‘한 골을 더 노린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에 들어가게 되면 적용됐던 스킬 효과가 전부 끝나게 된다.
지금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경기가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지금.
김상훈은 또 한 번, 골을 노릴 생각이었다.
***
상대방의 골대를 향해 공을 차 넣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난이도는 점점 높아진다.
프로축구선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거리가 먼 곳에서의 슈팅은 정확도가 떨어졌고, 각도에 따라서도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골대에 공을 넣는 것이 너무나도 쉽게 느껴지는 선수도 있었다.
김상훈.
정확한 슈팅(L)스킬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는,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 넣는 것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거리도 상관이 없었다.
반대편 골대에서도 상대 골대를 향해 공을 차 넣을 수 있었고, 더 먼 거리에서도 넣을 자신이 있었다.
이런 김상훈의 비현실적인 슈팅능력은 전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몇몇 축구팬들은 김상훈의 슈팅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슈팅 능력을 가졌으면 골을 넣는 게 너무 쉽지 않을까?’
‘그냥 아무 때나 슈팅을 때려도 유효슈팅이 될 테니까 골을 넣기 쉬울 것 같은데.’
‘저런 슈팅을 가지고도 골을 못 넣으면 바보 아니야?’
항상 골대 안으로 공을 차 넣을 수 있는 실력이 있다면, 너무나도 쉽게 골을 넣을 수 있겠다고.
그 어떤 팀을 상대로도 쉽게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아! 김상훈이 슈팅을 때리는 순간, 뤼카 에르난데스가 태클로 막아냅니다!]
[김상훈 선수가 빠르게 반응을 했지만 뤼카 에르난데스의 태클이 조금 더 빨랐습니다.]
상대인 프랑스는 김상훈에 대한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물론 김상훈이라는 선수는 분석을 했다고 무조건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분석을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오는 선수였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슈팅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
슈팅을 허용했을 땐, 공이 날아가는 궤적에 몸을 날려서 막는 것.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압박이 필요했다.
더불어 뛰어난 체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 이런 역할을 맡은 선수들은 은골로 캉테와 뤼카 에르난데스.
더불어 블레즈 마튀디까지 이들을 도와서 김상훈을 방해하고 있었다.
‘압박이 너무 심한데?’
김상훈은 현재 각종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 상태였지만, 프랑스의 수비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김상훈이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쟤들, 협력수비가 상당한데? 저건 메시가 와도 못 뚫어.
은골로 캉테와 뤼카 에르난데스, 블레즈 마튀디의 협력수비는 이찬수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강력했다.
세 명의 선수에게 둘러싸인 김상훈은 쉽게 돌파를 해내지 못했다.
결국 그는 슈팅을 시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동료에게 공을 넘겼다.
[아~! 김상훈이 뒤로 공을 뺍니다. 프랑스의 압박이 부담스러운 것 같습니다.]
[김상훈 선수의 돌파능력이 좋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돌파를 시도하는 건 무리죠. 자칫 공을 빼앗겼을 때는 위험한 역습을 허용하게 될 수 있거든요.]
[위험합니다! 김상훈 선수가 막혀버리면 대한민국은 큰 무기를 잃게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해설들의 목소리에 걱정스러운 감정이 담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가 바로 김상훈이었으니까.
더불어 김상훈은 팀의 에이스였으니까.
계속해서 돌파 시도를 하지 못하는 김상훈을 보며, 해설들의 걱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과 한국 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상훈이 힘을 못 쓰고 있는데?”
“김상훈 답지 않게 돌파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어. 과감한 패스도 하지 않고, 계속 백패스만 하고…….”
“프랑스의 압박이 너무 강해. 김상훈이 공을 잡기만하면 삼각형을 만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고 있어.”
“점점 프랑스가 기세를 잡고 있는 것 같은데……? 이대로 후반전이 되면 진짜 위험할 것 같아.”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팬들이라면 알 수 있었다.
분위기가 프랑스를 향해 급속도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큰 위기를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찬수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김상훈을 불렀다.
- 상훈아 괜찮냐?
“뭘요?”
- 멘탈 괜찮냐고.
“제 멘탈이 왜요?”
- 압박에 고생하고 있잖아. 돌파 시도도 하지 못하고 있고.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이 작게 중얼거렸다.
“……예요.”
- 뭐라고? 잘 안 들려! 크게 좀 얘기해.
“낚시 중이라고요.”
- 뭐?
김상훈의 말에 이찬수의 눈이 커졌다.
“빈틈을 만들고 있다고요.”
훽!
그 순간, 이찬수의 시선이 김상훈을 막던 3명의 선수의 얼굴로 향했다.
- 뭐, 뭐야?!
***
“이런 젠장! 저 미꾸라지 같은 놈!”
“……쥐새끼 같은 놈이 운 좋게 빠져나가네!”
“얄미워……!”
3명의 선수, 블레즈 마튀디, 뤼카 에르난데스, 은골로 캉테가 붉어진 얼굴로 김상훈을 노려봤다.
그를 효과적으로 막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약이 올랐다.
정말 이상하게도 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아무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상훈은 그들과의 경합도중, 계속해서 작은 목소리로 욕설을 퍼 부었고 은근슬쩍 얼굴을 밀고 옆구리를 꼬집었다.
3명 사이에 완전히 둘러싸여있을 때는 팔꿈치로 찍기까지 했다.
다만.
이런 일들은 프로축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이렇게까지 화가 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튀디, 에르난데스, 캉테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김상훈의 한쪽 입꼬리가 높이 치솟았다.
“크히히힠!”
상대 선수는 화가 날 테지만, 그에게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눈앞에 뜬 메시지 때문이었다.
[이찬수의 도발(J)효과가 적용중입니다.]
[도발에 걸린 선수는 확정적으로 약이 오르게 됩니다.]
[블레즈 마튀디, 은골로 캉테, 뤼카 에르난데스가 도발에 걸렸습니다.]
[마튀디, 캉테, 에르난데스의 집중력이 하락합니다.]
[마튀디, 캉테, 에르난데스의 경기력이 하락합니다.]
“드디어 걸렸네~?”
김상훈이 환하게 웃었다.
이찬수는 김상훈을 보며 스스로의 팔뚝을 쓰다듬었다.
- 으으으……! 진짜 소름 돋는다. 왜 그렇게 무섭게 웃는 거야?
“크힠……! 이찬수 선수. 사랑스러운 제자한테 무섭다뇨.”
- 아니, 진심으로 내가 아니라 네가 귀신같아. 이 음흉한 놈아!
“다 스승님한테 배운 거 아니겠습니까?”
- 난 그런 거 안 가르쳤다고!
“스킬 이름이 ‘이찬수의 도발’이잖아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지 않나요?”
- 아오!
도발에 걸려서 경기력과 집중력이 하락했다는 것.
그 사실은 김상훈을 막던 3명의 선수에게는 최악의 일이었다.
[김상훈! 조금 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돌파를 시도합니다.]
[프랑스의 선수들이 여전히 김상훈을 에워싸는데요! 어어? 선수들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집중력을 잃은 걸까요? 은골로 캉테 선수 성급하게 태클을 시도하네요!]
은골로 캉테가 시도한 태클은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타이밍의 태클은 공이 아닌, 김상훈의 발목을 걷어차 버렸다.
퍼억!
“끄아아아악!”
김상훈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때, 이찬수가 엄지를 날렸다.
- 연기 좋았고~! 아주 그냥 연기대상감이야. 살짝 맞았지만, 보는 사람들은 네가 거의 뼈가 부러질 정도로 걷어차인 것처럼 보였을 거야.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대단한 연기력.
이찬수는 그런 김상훈의 연기력에 경의를 표했다.
삐이이익-!
빠르게 다가온 주심이 은골로 캉테를 향해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때.
한국 팬들이 있는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됐다!”
“이야아아아아! 김상훈 최고다!”
관중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주심이 꺼낸 카드의 색깔이 붉은색이었으니까.
은골로 캉테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명령받았으니까.
그 순간, 허탈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은 은골로 캉테에게 김상훈이 다가갔다.
“캉테.”
“……?”
캉테가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순한 눈망울로 김상훈을 바라봤다.
김상훈은 그런 캉테와 눈을 마주치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고개를 숙여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김상훈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은골로 캉테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