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루카 모드리치의 제안
대한민국의 청년 김창수는 축구를 아주 좋아한다.
그는 주말만 되면 회사 동료들과 모여 축구를 했고, 쉬는 날에는 밀린 축구경기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축구에 대한 사랑이 큰 만큼, 그는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들을 좋아했다.
다만, 그런 김창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가 있었다.
“김상훈 쟤는 왜 저렇게 나대는 거야?”
분명히 실력은 있지만,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대는 것을 좋아하고 경기 중에 괴상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김창수가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김상훈의 안티 팬이 되어갔다.
“2골 1어시를 하긴 했지만…… 어우! 그래도 너무 싫다!”
지금,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크로아티아와의 4강전에서 김상훈이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기는 했어도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순간, 김상훈이 이반 라키티치에게 멋진 태클을 성공시켰다.
“오우……! 실력 하나는 확실하네. 바로 패스해! 그래!”
이반 라키티치에게서 공을 뺏어낸 김상훈이 전방을 향해 공을 찼을 때.
김창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오! 뭐하는 거야? 패스를 왜 저렇게 세게 줘?! 저걸 받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무슨 슈팅도 아니고!”
김상훈이 뿌려낸 공은 패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강하게 뻗어나갔다.
실수인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응……? 설마?”
공의 궤적을 바라보던 김창수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비명을 질러댔다.
“뭐, 뭐야! 슈팅이었어?!”
***
김상훈이 전방으로 공을 뿌린 순간,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은 당황했다.
“뭐야?! 패스 아니야? 왜 저렇게 길어? 실수인가?”
“김상훈이 패스 실수를 하는 선수가 아닌데……?”
“아무리 봐도 패스가 너무 긴데…….”
“설마…….”
그리고 잠시 후, 경기를 지켜보던 축구 팬들이 경악했다.
“슈팅이야?!”
“헐! 슈팅이었어? 이게 돼?”
“아무리 김상훈이라도 이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김상훈이 믿을 수 없는 중거리 골과 장거리 골을 기록한 선수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 거리의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김상훈이 라키티치에게 태클을 성공한 위치는 바로 대한민국의 페널티 박스 안.
즉, 반대편에 위치한 크로아티아의 골대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강한 킥력을 자랑하는 골키퍼조차 시도하기 힘든 그런 슈팅이었다.
그런데 김상훈은 망설임 없이 과감한 슈팅을 때렸다.
그리고 지금.
그의 발을 떠난 공이 빠른 속도로 쏘아져나가고 있었다.
[김상훈 선수! 슈팅이었습니다!]
[거리가 굉장히 멀거든요! 하지만 공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 이게 될까요?!]
그 어떤 경기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에, 해설들조차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가장 당황한 사람은 바로 크로아티아의 골키퍼 다니옐 수바시치였다.
“미친! 이건 또 뭐야!”
다니옐 수바시치는 지금 당황함을 넘어, 경악하고 있었다.
처음 슈팅을 때렸을 때는 설마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김상훈이 때려낸 슈팅은 너무나도 위협적인 궤적으로 골대를 향해 날아왔다.
“아니 무슨 저기서 때린 게!”
말도 안 되는 거리에서 때린 슈팅이 골대를 향해 날아온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공이 골대 구석을 겨냥해서 날아온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안 돼!”
다니옐 수바시치는 최선을 다해서 몸을 날렸다.
그는 모든 힘을 쥐어짜내서 팔을 뻗었다.
이런 슈팅에 골을 먹히는 것은 골키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었기에, 그는 어떻게든 막아낼 생각이었다.
더불어 다니옐 수바시치는 191cm의 키에 긴 팔을 가진 선수였다.
하지만.
얄궂게도 날아오는 공은 그의 손에 닿지 않았다.
그의 손끝이 닿지 않는 골대 구석으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고오오오올! 골입니다! 김상훈의 믿을 수 없는 골이 터졌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골이네요!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김상훈 선수! 경기를 지켜보는 전 세계 축구팬들을 놀라게 만듭니다!]
축구를 전문적으로 하는, 그것도 세계에서 최고의 미드필더라고 평가받는 루카 모드리치마저 놀란 눈으로 김상훈을 바라봤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그리고.
골을 넣은 김상훈은 팬들을 향해 최대한 가깝게 다가갔다.
동시에 그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대~! 한~! 민~! 국~!”
김상훈의 외침이 끝난 순간, 관중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짝짝-! 짝짝짝-!
“다시 한 번! 대~! 한~! 민~! 국~!”
짝짝-! 짝짝짝-!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박수를 치자, 그 소리가 경기장 내부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찬수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 저 오글거리는 세레머니를 받아준다고…? 사람들이 참 착하시네.
***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김상훈의 초장거리 골이 터지기 전만해도, 크로아티아가 대한민국을 몰아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크로아티아의 공격이 무뎌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후반전인 지금, 3점 차이를 좁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승리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멘탈이 완전히 부서져버렸으니까.
[크로아티아의 의지가 많이 꺾였습니다! 대한민국이 크로아티아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의지가 꺾인 크로아티아는 전반전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오히려 대한민국이 크로아티아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재선이 멋진 턴으로 이반 페리시치의 압박을 벗어납니다! 이재선! 황희창에게 패스합니다!]
[황희창!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합니다. 아…! 하지만 도마고이 비다의 수비에 막히네요. 그래도 좋은 시도였습니다.]
[하하! 확실히 점수 차가 많이 나니까 우리 선수들의 자신감이 많이 올랐네요.]
해설들의 목소리에 여유가 느껴졌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경기력에는 점점 더 좋아졌고, 크로아티아는 무너져 내렸다.
[구자천 슈팅! 아! 아쉽게 빗나갑니다!]
[대한민국이 계속해서 크로아티아의 골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분위기상 더 많은 골이 터질 것 같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의 지금 경기력이 너무 강력합니다!]
분위기가 계속해서 치솟아 오르는 상태에서 또 한 번의 기회가 대한민국을 찾아왔다.
투욱-!
전방에서 공을 받은 김상훈이 마르첼로 브로조비치의 압박을 터치 한 번으로 벗어났다.
휘익-!
몸을 돌린 김상훈은 전방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크로아티아의 센터백 데얀 로브렌과 도마고이 비다 사이에 있는 틈이 보였다.
‘저기!’
틈을 본 김상훈은 곧바로 공을 찼다.
세밀한 패스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투웅-!
그리고 그가 본 틈을 향해 손홍민이 쇄도했다.
두 선수의 호흡은 이미 토트넘에서 완성된 상태.
지금 나오는 움직임은 수많은 훈련으로 반복된 것이었다.
때문에 손홍민은 너무나도 편안하게 공을 받고, 슈팅까지 이어갔다.
뻐엉-!
[고오오올! 역시 손홍민입니다! 다니옐 수바시치가 미동도 하지 못합니다!]
[김상훈의 패스도 너무 완벽했습니다. 정확히 수비수들의 틈을 파고드는 패스였어요!]
손홍민의 추가 골로 양 팀의 스코어는 5대 1이 됐다.
이후, 양 팀 모두 더 이상의 추가 득점 없이 경기시간이 끝을 향해 달려갔다.
삐익! 삐이익-!
[경기가 종료됐습니다! 대한민국! 결승입니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버렸습니다!]
[경기장에 있는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순간입니다!]
경기가 종료된 순간, 김상훈은 잔디 위에 드러누웠다.
- 힘드냐?
“예. 힘듭니다.”
- 고생했다.
“팀원들이 잘해줘서 이길 수 있던 거죠.”
- 겸손한 척은 나한테는 하지 말고.
“예. 제가 다 했습니다. 막말로 3골 2어시스트면 다 한 거 아닙니까?”
- 으하핫! 그래, 이게 김상훈이지. 이 미친놈!
“갑자기 왜 또 욕을 하고 그러세요?”
- 얌마, 스승이 제자한테 욕 좀 하고 그러면 안 되냐? 엉? 안 돼?!
“요즘엔 제자한테 욕하면 잡혀갈 수도 있어요.”
- 그 정보, 확실하냐?
“몰라요. 그냥 어디서 들었어요.”
- 그럼 귀신도 잡아갈 수 있다냐?
“그럴 리가요.”
- 에이~! 뭐야 그럼 욕해도 되겠네.
“아오! 저 힘들어서 대답할 힘도 없어요. 장난 좀 그만치세요.”
- 짜식 엄살은!
이찬수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는 지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직접 가르친 제자가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가 되었으니까.
4강이 최고 기록이었던 대한민국을 결승까지 끌고 올라갔으니까.
더불어.
그 어떤 팀을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가진 실력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선수가 되었으니까.
그때 김상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질문했다.
“무슨 생각하세요? 또 야한 생각하셨죠?”
- 뭐? 뭔 개소리야?!
“표정이 너무 음흉하셨어요.”
- 너는 예의라는 게 아예 없냐?
“원래는 그 누구보다도 예의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어떤 스승님을 만난 뒤로 이렇게 돼버렸네요.”
- 아오! 저 이빨을 그냥!
김상훈은 계속해서 이찬수와 대화를 나눴다.
그때였다.
이찬수가 소리쳤다.
- 어? 야! 모드리치다.
“예?”
김상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는 어느새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는 루카 모드리치가 보였다.
“김상훈.”
“모드리치?”
“네 이름, 이렇게 발음하는 거 맞아?”
“아주 정확해.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어.”
“하하. 괜히 그러지마. 아닌 거 나도 알고 있으니까.”
“맞아. 사실 농담이었어. 근데 무슨 일이야?”
김상훈의 말에 루카 모드리치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래. 너도 수고했다. 근데 진짜 그 말만 하려고 온 거야?”
김상훈의 말에 루카 모드리치가 뜸을 들였다.
그러자 김상훈이 재차 질문했다.
“왜 대답이 없어? 내 생각엔 네가 뭔가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아니야?”
“그래 맞아.”
“뭔데? 얼른 말해봐.”
김상훈은 시큰둥한 얼굴로 루카 모드리치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그는 모드리치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에 대해서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더불어 루카 모드리치라는 월드클래스 선수와 대화를 하는 것에도 큰 감흥이 없었다.
‘맨날 이찬수 선수랑 얘기하는데 뭐.’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이찬수와 매일 티격태격하는 그에게, 루카 모드리치와의 대화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루카 모드리치가 숨겼던 속마음을 꺼냈다.
“김상훈, 나는 네가 나와 함께 레알(Real)에서 뛰었으면 좋겠어.”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상훈의 눈이 커졌다.
“레알?”
“그래.”
“너 설마 레알 마드리드를 말하는 거야?”
“맞아.”
“그게 뭐, 내가 뛰고 싶다고 거기서 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니. 네 실력이면 충분히 우리의 동료가 될 수 있어.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네가 레알의 에이스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뭔 소리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된 건 알고 있지?”
“……기사로 봤어.”
“나는 그 자리를 네가 메워줬으면 좋겠어.”
폭탄발언이었다.
김상훈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은 루카 모드리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너 미쳤어?!”
반면, 루카 모드리치의 표정은 평온했다.
“전혀 미치지 않았고, 내 솔직한 심정을 얘기한 것뿐이야. 월드컵이 끝나는 즉시, 너는 분명히 많은 팀들에게 이적제안을 받을 거야.”
“그 말은……?”
“그래, 이건 비밀이지만…… 너는 레알 마드리드한테도 이적제안을 받을 거야.”
말을 마친 루카 모드리치는 몸을 돌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야! 모드리치! 그게 뭔 소리야? 갑자기 레알이라니?”
김상훈이 소리쳤지만, 루카 모드리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순간 이찬수가 김상훈을 불렀다.
- 상훈아.
“……예? 이찬수 선수, 방금 모드리치가 한 말 다 들으셨죠?”
- 들었지.
“근데 안 놀라세요? 레알 마드리드가 저를 원한다잖아요!”
이찬수는 시큰둥했다.
- 그게 뭐?
“예? 세계 최강의 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가 저를 원한다니까요?”
- 아 그래서 그게 뭐?! 그게 대단한 거야?
“……예?”
김상훈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찬수를 바라봤다.
그러자 이찬수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올해 네 활약은 걍 미친 수준이야. 알아?
“잘한 것 같기는 한데…….”
- 하! 얘 진짜 현실감각 없네. 잘한 수준이 아니라, 너만큼 활약을 한 선수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야. 인마.
“……그래요?”
- 그래. 그러니까 레알에서 너를 노리는 건 놀랄 일이 아니라고. 그냥 당연한 일이지. 그리고 레알에서만 너를 원할 것 같아?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 파리생제르망 같은 팀들 모두 너를 원하고 있을 걸?
“……정말요?”
- 영악해빠진 놈이 이런 부분에서는 왜 이렇게 바보 같지? 너 이거 컨셉이냐? 약간 어벙한 척하는 컨셉?
“아닌데요. 그냥 레알 마드리드는 아직 너무 멀게 느끼고 있었어요.”
그 순간, 이찬수가 김상훈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 그래서, 레알 마드리드로 가고 싶어?
그때였다.
지금까지 어벙한 표정을 짓던 김상훈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그가 이찬수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거야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