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남자(2)
15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매우 짧은 시간이다.
특히 많은 활동량이 필요한 운동선수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그 15분이 축구에서의 연장전 시간이라면?
전반전과 후반전에 추가시간까지, 93분이 넘는 시간을 미친 듯이 뛰어다닌 이후의 15분이라면?
그 어떤 선수에게도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아직 연장전 시간이 조금 남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김상훈이 쓰러졌다.
선 채로 기절해버린 그는, 바닥을 향해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잔디로 이뤄진 바닥이기는 했지만, 바닥은 바닥.
무방비한 상태에서 이대로 쓰러진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이상함을 눈치 챈 손홍민이 김상훈의 몸을 받치는 것에 성공했다.
터억-!
“상훈아! 왜 그래?! 상훈아! 정신 차려!”
그 순간,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상훈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술렁거림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김상훈 지금 쓰러진 거 맞지?”
“그런 것 같은데? 손홍민이 쓰러지는 거 받은 것 같고.”
“왜 그러지? 갑자기 왜 쓰러진 거야?”
“어디 아픈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김상훈이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안 하고 쓰러질 리 없잖아!”
기적처럼 터진 골에 기뻐하던 관중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쓰러진 김상훈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라운드 위에는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투입됐다.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과, 김상훈과 친분이 있는 몇몇 잉글랜드 선수들도 빠르게 달려왔다.
많은 선수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쓰러진 김상훈을 쳐다볼 때, 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심판! 지금 시간 없다고요! 얘 이거 엄살일 수도 있잖아요! 아오! 빨리 경기 속행하시라고요!”
그 순간,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이 굳었다.
가장 먼저 나선 선수는 손홍민이었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손홍민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해리 맥과이어의 몸을 밀쳤다.
“뭐?! 지금 사람이 다쳤는데, 그게 할 말이야?!”
해리 맥과이어도 지지 않았다.
그는 자국인 잉글랜드가 4강에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마음이 너무 컸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쳤으면 빨리 꺼져야지, 왜 여기서 누워있어?! 어? 내 말이 틀렸어?”
“뭐 이 새끼야?”
손홍민과 맥과이어가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그 순간,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달려들어 서로를 말리기 시작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강하게 불며 선수들을 떼어냈다.
“그만! 너희 다 경고야. 당장 멈춰!”
주심은 손홍민과 맥과이어에게 곧바로 옐로우 카드를 내밀었다.
해리 맥과이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타겟은 기절한 김상훈이었다.
“김상훈! 빨리 나가라고!”
그때였다.
한 남자가 맥과이어의 뒤통수를 강하게 잡아챘다.
퍼억!
“크윽! 누구야?!”
해리 맥과이어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그는 당황했다.
피지컬이 좋고 성격이 거친 그에게,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힘이……!’
간신히 고개를 돌려낸 해리 맥과이어가 그의 머리를 잡은 남자를 바라봤다.
그 선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해리 맥과이어를 노려보고 있었다.
“……케인?”
남자는 해리 케인이었다.
“맥과이어.”
“……케인 네가 왜?”
“경기장에서 선수가 다쳤는데, 지금 이게 무슨 행동이야?”
“아니! 케인? 지금 우리는 지고 있다고! 연장전이고! 빨리 골을 넣어야 되는데 시간이 흘러가잖아!”
“해리 맥과이어!”
해리 케인이 소리쳤다.
그는 지금,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쓰러져있는 김상훈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팀 동료였으니까.
그런 팀 동료가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때, 해리 맥과이어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케인! 지금 네 팀 동료라고 감싸는 거야? 정신 차려! 너는 지금 잉글랜드를 위해 뛰고 있는 선수라고!”
“알아. 그래도!”
해리 케인이 맥과이어를 노려본 뒤, 거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최소한 매너 있는 모습을 보이자고. 지금 이 경기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경기야. 맥과이어.”
말을 마친 해리 케인이 다시금 김상훈의 상태를 확인했다.
해리 맥과이어는 더 이상 심판에게 항의를 하지 못했다.
화가 난 해리 케인이 굉장히 무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김상훈의 상태를 확인한 의료진이 그를 들 것으로 실은 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꺄아아아악! 어떡해! 지금 김상훈 기절한 거지? 어떡해! 어떡해! 흐어어어엉!”
“아…… 제발 괜찮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길래 기절을 하지? 부상이 심해진 건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김상훈! 일어나!”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팬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김상훈의 이름을 큰 목소리로 부르며, 그가 멀쩡히 일어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순간, 김상훈을 지켜보던 이찬수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 상훈아! 김상훈 이 새끼야! 아오! 체력도 없는 놈이 거기서 스킬을 왜 써? 어?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를 했냐고! 항상 체력관리 잘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
그런데, 소리를 지르던 이찬수의 표정이 갑자기 변했다.
- 응……? 방금 이상한 걸 본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건가? 스읍! 아닌 것 같은데? 뭐지? 상훈아? 야!
이상함을 느낀 이찬수는 계속해서 김상훈을 향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 내가 비록 귀신이 됐지만, 시력은 좋거든? 분명히 기절한 놈이 눈을 살짝 떴던 것 같은데……?
말을 하던 이찬수가 김상훈의 얼굴에 귀를 가져다댔다.
- 상훈아. 내 느낌엔 지금 네가 정신을 차린 것 같거든? 맞으면 대답 좀 해봐.
그때였다.
이찬수의 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쉿!”
- 으악! 깜짝이야! 아오……! 간 떨어질 뻔했네!
이찬수가 놀라서 소리쳤다.
잠시 후, 이찬수가 다시 김상훈의 얼굴에 귀를 가져다댔다.
- 너 언제 일어났냐?
“……아까 누워있을 때요.”
- 경기장에서?
“예.”
- 근데 왜 안 일어났어?
이찬수는 궁금했다.
김상훈이 기절했다가 깨어났음에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를.
그때, 김상훈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간 끌려고요.”
- 뭐? 이 미친놈이!
“크힠……!”
- 와! 너는 진짜 미친놈이다. 거기서 기절한 척 연기를 해? 시간을 끌려고?
“새삼스럽게 왜 그러세요. 근데 지금 연장전 얼마나 남았어요? 10대 11로 싸우고 있을 텐데…….”
- 우와……. 진짜 당황스럽네. 네가 미친놈이고 양심이란 게 없는 새끼인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을 속일 생각을 했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빨리요. 지금 연장전 몇 분 남았어요?”
- ……2분 남았다 이 새끼야!
“우리 선수들이 잘 버티고 있어요?”
- 모르지. 기절한 척하는 새끼 쳐다보느라 경기 못 봤다.
“아오! 빨리 좀 보고 와주세요!”
- 몰라 이 새끼야!
두 남자는 계속해서 말다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잉글랜드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상태였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고 몸을 날렸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생각은 같았다.
‘김상훈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 수는 없어!’
‘김상훈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녀석의 노력은 진짜다. 나도 모든 것을 걸고 잉글랜드의 공격을 막아내겠어.’
‘기절을 할 정도로 모든 것을 쏟아 붓다니…… 젠장! 그래, 몸을 좀 던진다고 죽기야 하겠어?’
죽을힘을 다해서 몸을 던지겠다는 것과.
김상훈이 기절까지 하며 만들어놓은 점수를 지켜내겠다는 것.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강한 의지를 보였고, 그런 의지는 경기력에 드러났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몸을 던져가며, 잉글랜드의 무서운 공격들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아아……!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선수들!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지친 몸이지만,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해설들의 목이 멨다.
실제로 지금,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한 골을 지켜내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만만치 않았다.
꾸역꾸역 대한민국을 밀어붙이던 잉글랜드는 기어코 코너킥을 만들어내며 마지막 기회를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연장전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제 잉글랜드에게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반대로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은 이번 기회만 막아낸다면 4강입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수들! 힘내십시오! 버텨낼 수 있습니다!]
해설들의 격앙된 목소리와 함께, 잉글랜드의 코너킥이 진행됐다.
퍼엉-!
높고 빠르게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모든 선수들이 몸을 띄웠다.
모두 지쳐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양 팀의 선수들의 점프력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기어코 그들 사이에서 공을 따낸 선수가 있었다.
[아! 해리 케인! 헤딩!]
해리 케인이었다.
그는 김영곤을 뿌리치며 머리에 공을 맞추는 것에 성공했다.
그 순간, 경기를 지켜보던 한국 팬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결정력이 워낙 좋은 해리 케인이었고, 그가 중요한 순간에 골을 넣어주는 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수호신이 있었다.
[우아아아아아악! 조연우! 막아냅니다! 해리 케인의 슈팅을 막아냈어요!]
[조연우 골키퍼! 대한민국을 지켜냅니다!]
조연우.
월드컵 기간 동안 높은 선방 성공률을 보여주며, 빛연우라고 불리던 그가 기어코 잉글랜드의 마지막 공격을 막아냈다.
동시에.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심의 휘슬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이이익-!
대한민국의 월드컵 4강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
- 팔자 좋다?
“…….”
- 어쭈 이젠 대답도 없네? 이제 국민영웅이 됐다 이거야? 응? 우와~! 대단하신 영웅님 납셨습니다! 4강의 주역!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실신해버린 남자! 여심폭격기!
계속된 이찬수의 공격에, 소파에 누워있던 김상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오! 그 여심폭격기 소리 좀 그만해주시면 안 돼요?”
- 왜? 기사도 나고 난리가 났더만! 으하하핫! 아주 여성 팬들이 많으셔서 좋겠습니다?
“그만 좀 해주세요…….”
- 왜 그만해? 너 관심 받는 거 좋아하잖아? 전 국민이 너한테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안 즐거워?
“저도 사람입니다. 관심이 제가 생각한 수준을 넘어가면, 저도 민망하다고요.”
- 그런 놈이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있어? 너 뭐하냐? 지금도 SNS하지?
“아닌데요.”
- 그럼?
“오늘의 운세 보고 있었는데요.”
- 응? 운세? 운? 럭키?
“예. 오늘 제 운이 어떤지 알고 싶어서요.”
김상훈은 대답과 동시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찬수를 바라봤다.
- 뭐야? 왜 그렇게 기분 나쁘게 웃냐? 그래서 운은 왜 알려고 그러는데?
그때였다.
미소를 짓던 김상훈이 시스템 창을 띄웠다.
“이번에 보상 받은 것 좀 까려고요.”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은 잉글랜드 전에서 승리하며 얻은 보상들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