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137화 (137/200)

137화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 그리고

푹신한 침대, 부상으로 인한 편안한 휴식 모두 좋았다. 하지만 눈앞에 뜬 메시지만큼은 아니었다.

김상훈은 3일간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지를 바라봤다.

[시스템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레드 박스가 사라지고, 레인보우 박스가 추가됩니다.]

[소모품 상점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시스템 업데이트로 인한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으로 10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현재 보유 포인트는 26980P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하게도 보상이었다.

“와…….”

- 무슨 보상으로 10000포인트나 줘? 왜 이래 진짜 이거?

“근데…… 레드 박스가 사라졌다네요?”

- 어차피 이제 사지도 않는 거, 없어지는 게 낫지.

그때, 김상훈이 아련한 눈빛으로 메시지를 바라봤다.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요. 꽤 추억이 담긴 박스였는데.”

- 괜히 감성적인 척하지 말고 확인이나 해보는 게 어때?

“아오! 하여튼 감성이 폭발하려고만 하면 초를 치신다니까.”

- 안 어울리는 짓을 하니까 그러지. 난 네가 주접 떠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SNS에 잘생긴 척하면서 셀카 올리는 꼬라지도 보기 싫고, 경기 다 끝나고 괜히 웃통 까재끼는 것도 진짜 못 봐주겠어.

“……너무하시네요.”

- 네가 내 눈한테 너무했지.

“……오늘 멘트가 좀 강하신데요? 쉽지 않네.”

- 좀 늘었지?

“예. 이젠 말싸움 대회 같은데 나가도 좋은 성적 거두시겠어요.”

- 비꼬는 거지?

“당연하죠.”

- 어으! 진짜 때려주고 싶네. 짜증나려하니까 빨리 시스템이나 확인해봐.

“안 그래도 확인하려고 했어요.”

말을 마친 김상훈은 업데이트가 된 시스템을 확인했다.

그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바뀐 박스 선택 창이었다.

“시스템, 일단 박스 선택 창 좀 보여줘.”

시스템의 반응은 빨랐다. 김상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박스 선택 창이 생성됐다.

[오렌지 박스 ▷ 5,000포인트]

[옐로우 박스 ▷ 10,000포인트]

[그린 박스 ▷ 20,000포인트]

[블루 박스 ▷ 40,000포인트]

[네이비 박스 ▷ 80,000포인트]

[퍼플 박스 ▷ 160,000포인트]

[레인보우 박스 ▷ 300,000포인트]

시스템의 설명처럼 바뀐 것은 오직 레드 박스가 사라졌다는 것과 레인보우 박스가 생겼다는 것뿐이었다.

“별로 바뀐 건 없네요. 근데 레인보우 박스…… 아 이건 너무 비싼데?”

- 사라고 만든 건 아닌 것 같다. 30만 포인트면 진짜 오바지. 그걸 언제 모아.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 상훈아 너 지금 박스 살 거야?

“아뇨. 아직 생각 없어요.”

- 그럼 바로 확인하자.

“소모품 상점이요?”

- 그래.

“진짜 기대되네요. 과연 어떤 것들을 팔까요?”

- 보면 알겠지 인마.

“그럼…… 갑니다!”

김상훈은 새로 생긴 소모품 상점을 띄웠다.

***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화주제는 축구다.

“유 대리,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올라갈 것 같나?”

“제 생각에는…… 여기까지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역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다만 국민들은 8강에 오른 대한민국 대표팀의 승리를 의심하고 있었다.

“예.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이니까요…….”

“그래. 잉글랜드는 우리가 이기기에는 힘든 상대지.”

상대가 잉글랜드라는 것.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최상급 선수들이 가득한 팀이라는 것.

그 사실에 국민들의 기대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강하다는 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맞습니다. 잉글랜드는 워낙 강팀이니까요. 그리고 김상훈이 부상이라…….”

“하아.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 김상훈만 있었어도 희망을 가져볼 만 했을 텐데.”

국가대표 팀의 에이스인 김상훈이 부상이라는 것과.

무려 2주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기대감 하락의 진짜 이유였다.

김상훈의 부상소식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수도 없이 오르내리는 기사 때문이었다.

「김상훈 발목 부상! 잉글랜드 전 출전 불가능?」

「신태웅, ‘김상훈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큰 손실. 하지만 잘 준비해서 잉글랜드에게 승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손홍민, ‘상훈이 형이 빨리 부상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형은 나의 정신적 지주다.’」

「김상훈 부상 확정! 2주간 출전 불가능. 대한민국은 어떡하나?」

「첩첩산중! 잉글랜드를 상대로 김상훈 없이 경기해야하는 한국, 해결법 있나?」

「김상훈, ‘이런 시기에 부상을 당해서 국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 소속팀에도 너무 죄송스럽다. 최대한 빨리 회복하겠다.’」

그런 상황에서 잉글랜드와의 경기는 빠르게 찾아왔다.

2018년 7월 7일 토요일 밤 11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축구를 보기위해 TV앞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지금.

경기가 시작됐다.

모두의 예상대로 김상훈은 출전하지 못했다.

황희창, 손홍민, 이재선, 정우용, 구자천, 이승운, 이용훈, 정승헌, 김영곤, 유홍철, 조연우가 선발진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잉글랜드는 해리 케인, 라힘 스털링, 애슐리 영, 제시 린가드, 조던 헨더슨, 델레 알리, 키어런 트리피어, 해리 맥과이어, 존 스톤스, 카일 워커 조던 픽포드라는 화려한 선수들을 내세웠다.

[경기 시작합니다! 해리 케인, 라힘 스털링에게 공을 넘깁니다.]

[잉글랜드가 천천히 공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이전 경기를 보면, 잉글랜드는 경기 초반부터 조금씩 점유율을 높여가며 골까지 연결하는 전술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오늘 역시 초반 움직임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초반부터 기어를 올리네요. 잉글랜드에게 강한 압박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잉글랜드의 패스플레이를 방해할 수 있지만, 체력이 빨리 방전된다는 단점이 있는데요.]

[부디 우리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관중석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응원이 빗발쳤다.

축구 종주국이자 축구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잉글랜드는, 그것을 증명하듯 엄청난 인파가 경기장에 몰리며 그 위세를 드러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잉글랜드보다 관중 수는 적었지만, 응원의 열기는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경기양상은 많은 축구팬들의 예상대로였다.

잉글랜드가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며 대한민국의 진형에서 안정적으로 공을 돌렸다.

정확한 패스와 개인기량을 가진 잉글랜드 선수들은, 대한민국의 강한 압박에도 쉽게 공을 내주지 않았다.

이들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특히 김상훈의 소속팀인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해리 케인, 델레 알리, 키어런 트리피어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킴이 있다면 몰라도, 그냥 대한민국은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이지.’

‘솔직히 8강에 올라온 것도 김상훈이 있었기 때문이잖아?’

‘쏘니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상훈이 없는 대한민국은 약팀이야. 충분히 이길 수 있어.’

김상훈이 없다는 것.

그 사실이 이들의 자신감을 드높였다.

그리고 자신감이 오른 잉글랜드 선수들은 가진 기량을 100%에 가깝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해리 케인이 김영곤 선수를 등진 채 공을 받습니다. 어어…! 해리 케인 슈웃! 아… 골대에 맞고 나갑니다. 천만다행입니다. 대한민국!]

[방금 김영곤 선수가 해리 케인 선수를 완전히 놓쳐버렸어요. 수비수를 등진 뒤에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서 슈팅을 때리는 것은 해리 케인 선수의 전매특허거든요. 특히 조심해야합니다!]

[느린 화면이 나옵니다. 김영곤 선수가 해리 케인가 몸을 돌리는 것을 막아보려 했지만, 몸싸움에서 완전히 밀렸어요. 역시 무서운 선수입니다.]

해리 케인의 슈팅이 골대에 맞은 뒤로도 잉글랜드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가둬놓고 패는, 그런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집중해! 선수 놓치지 마!”

조연우 골키퍼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선수들을 향해 소리쳤다. 평소 화를 내거나 큰 소리를 잘 내지 않는 그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심각했다.

하지만 그런 조연우의 외침에도 양 팀의 경기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빈틈을 노출하며 위기를 맞았다.

[델레 알리, 이승운을 상대로 멋진 개인기를 선보입니다. 이승운이 끝까지 쫓아보지만 델레 알리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아~! 델레 알리! 간결한 움직임으로 유홍철까지 제쳐냅니다. 대한민국의 사이드가 비어버렸어요.]

[우리 선수들은 집중해야 됩니다. 델레 알리 크로스~! 위험합니다!]

[아! 조심해야……! 아…… 들어갑니다.]

[해리 케인의 골입니다. 델레 알리가 띄워준 공에 정확히 머리를 갖다 대네요.]

[양 팀의 스코어가 1대 0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많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는다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해설들은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며 대한민국을 응원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힘들어…….’

‘경기력 차이가 너무 심해. 이대로 가다가는 더 골을 먹혀도 이상하지 않아.’

해설들의 생각처럼, 잉글랜드는 어렵지 않게 추가골을 넣으며 대한민국을 절망에 빠뜨렸다.

전반전에만 2점차였고, 경기력을 봤을 때는 대량실점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골을 허용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더 이상의 골은 내주지 않겠다는 듯, 몸을 날려가며 추가 실점을 막아낸 채 전반전을 마쳤다.

삐이익-!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양 팀 선수들의 모습은 상반됐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키득거리며 장난을 치며 천천히 라커룸을 향해 걸어갔고.

대한민국 선수들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한 남자를 떠올렸다.

‘잉글랜드가 생각보다 더 강해. 이럴 때 김상훈이 있었더라면…….’

‘솔직히 이대로 가다간 이기기 힘들어. 김상훈이 있다면 달라졌을까?’

‘김상훈, 정말 싫지만 지금은 보고 싶다…….’

그리고 경기를 보는 대한민국 국민들도 생각했다.

“김상훈이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부상이잖아…… 절대 못나와.”

“……그럼 이대로 져야 된다는 거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아직 경기는 안 끝났어.”

김상훈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기적처럼 후반전에는 김상훈이 투입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잠시 후.

후반전을 뛰기 위해,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때, 관중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 축구팬들도 경악했다.

“뭐, 뭐야?”

“이게…… 무슨!”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그들의 눈앞에는.

후반전 시작과 함께, 이승운과 교체되어 들어온 선수가 보였다.

180cm의 키에 적당히 기른 검정색 앞머리를 내린 선수.

뛰어난 실력만큼이나, 이제는 훈훈해진 얼굴로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선수.

바로 부상을 당했던 김상훈이었다.

- 이야~! 사람들 표정 참 볼만하네!

“크힠! 많이 놀란 것 같네요. 그나저나 상황이 많이 안 좋은데요?”

- 뭐, 2대 0이면 할 만하잖아?

“그렇긴 하죠.”

- 그래도 오늘은 엄살은 안 부리네.

“에이~! 엄살 부리면 양심 없는 거죠.”

- 그치. 그렇게 소모품을 쳐 샀으면서. 자신 없다고 하면 안 되지.

그리고 지금, 그라운드 위에 올라선 김상훈은 눈앞에 주르륵 떠있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크히힠! 맞습니다. 그럼 이제 복수를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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