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스위스, 그리고 반칙
“그래서 그 전술이 가장 적합하다는 말인가?”
“일단 분석결과로는 그렇습니다.”
“‘일단’이라니! 우리는 당장 경기에서 보여줘야 하네. 그딴 나약한 소리는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생각을 하라고!”
흰 머리를 가진 50대의 남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큰 소리를 쳤다.
얼굴까지 붉어져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2014년도부터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온 그는, 요 며칠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의 스트레스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젠장! 상대는 김상훈의 나라라고!”
8강으로 올라가기 위한 16강 경기에서 대한민국을 만났다는 것과.
그 대한민국이 김상훈의 나라라는 것이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을 괴롭히는 이유였다.
‘김상훈은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고 있고, 이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와도 비교를 받고 있는 선수야.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그를 막지 못할 것이 분명해.’
대한민국 자체는 강팀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상훈이 문제였다.
그는 경기력에서 밀려도 어떻게든 골을 만들어내고, 팀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이 거친 목소리로 주변을 둘러봤다.
“좋은 생각 가진 코치 없나? 어?!”
그때였다.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이마에 주름이 잡힌,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중년의 남자였다.
“방법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방법이 있다고? 말해보게.”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의 눈빛이 조금은 부드럽게 변했다.
그때, 중년의 남자가 대답했다.
“부상. 카드를 받지 않는 선에서 부상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뭐?! 자네 미친 건가?”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의 눈이 커졌다.
지금, 중년의 남자가 한 말은 스포츠맨십을 철저히 위반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승리가 중요한 경기라고는 해도.
상대 선수를 부상시키는 전술을 짤 생각은 없었다.
그때 중년의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을 바라봤다.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아, 아니 그래도! 그건 좀 스포츠맨십에 위반되는…….”
“약해지실 겁니까? 스위스는 지금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예선이나 32강이 아닌, 16강이라고요! 이번 경기에서만 승리하면 8강에 오르는 겁니다. 그걸 아시면서도 스포츠맨십을 운운하시는 겁니까?!”
중년 남자의 일갈에 관계자들이 시선을 피했다.
블라디미르 페트코비치 감독은 그 행동들이 무언의 동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젠장! 그래, 일단 어떻게든 8강에 오른다.”
동시에 그는 마음을 먹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위스를 8강에 올려놓겠다고.
비록 그 방법이 상대 선수의 선수생명을 끝장내버리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에 오른 국가들은, 당연하게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국가들이다.
프랑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포르투갈, 브라질, 멕시코, 벨기에, 일본, 스페인, 러시아, 크로아티아, 덴마크, 스위스, 대한민국, 콜롬비아, 잉글랜드로 이뤄진 16강 대진.
하나같이 특유의 팀 컬러를 가지고 있는 강팀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해설들이 대한민국과 스위스의 경기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오늘은 대한민국과 스위스의 16강전이 펼쳐지는 날인데요. 오늘 만나는 스위스가 만만치 않은 팀이죠?]
[예. 그렇습니다. 비록 스위스가 1승 2무를 기록하며 조 2위로 간신히 16강에 오른 팀이지만, 그 전력은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
[스위스가 속한 조의 1위 팀이 브라질이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브라질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축구국가 중 하나죠. 여하튼 오늘, 대한민국 대표팀은 절대로 방심하면 안 되는 경기입니다.]
잠시 후,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로 올라왔고 양 팀의 국가(國歌)가 울려 퍼졌다.
[영광적인 순간입니다! 16강에 오른 대한민국이 먼저 공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손홍민 선수가 뒤에 위치한 김상훈 선수에게 공을 돌립니다. 김상훈 선수는 최근 윙어로 많이 출전했는데, 오늘은 오랜만에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을 했네요?]
[예. 아무래도 스위스 선수들이 키가 크고 피지컬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헤딩 능력과 피지컬이 좋은 김상훈 선수를 중앙에 넣어서 중원 싸움에서 승리하고자하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어어? 김상훈 선수가 과감하게 드리블을 하기 시작합니다!]
경기 초반부터, 공을 잡은 김상훈이 과감한 드리블을 펼쳤다. 그런 김상훈을 향해 스위스 선수들이 빠르게 달라붙었다.
- 오~! 쟤들 제대로 준비해온 것 같은데? 반응이 굉장히 빠르고 체계적이야.
“재밌겠네요.”
동시에 3명이 공간을 좁히며 김상훈을 압박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도 김상훈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3명의 선수 사이로 공을 몰고 들어갔다.
- 미친놈아. 왜 거기로 들어가? 그냥 공을 돌리면 되잖아.
“기선제압하려고요.”
대답과 동시에 김상훈이 스킬을 사용했다.
많은 선수들을 상대로 공을 지켜낼 때, 가장 효율적인 스킬이었다.
[경이로운 탈 압박]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스킬 사용 시 20분간 탈 압박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하루 1회 사용가능.)
레전드 등급의 경이로운 탈 압박 스킬을 사용한 김상훈은 곧바로 다른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시스템을 불렀다.
- 너 설마 그거 쓰려고?
“예. 크힠킼!”
- 벌써 쓴다고? 상훈아, 따끈따끈한 스킬은 아껴 쓰는 게 낫지 않겠냐?
“아뇨. 가장 필요할 때 쓰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이찬수의 말에 대답한 김상훈이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괴물 같은 드리블]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드리블, 민첩, 몸싸움, 피지컬 능력치가 20만큼 상승합니다.(제한시간 20분)
무려 레전드 등급의 드리블, 피지컬 관련 스킬로 그 효과는 동급 최강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당연하게도 이 스킬은 김상훈이 최근, 합성으로 얻어낸 신상 스킬이었다.
‘이걸 얻으면서 아까운 스킬 2개가 날아갔지만, 그래도 이게 이득이야.’
김상훈이 합성에 갈아 넣은 스킬은 무사 뎀벨레의 탈 압박(G)과 강철 같은 피지컬(G)스킬로, 그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패시브 스킬들이었다.
매 순간 효과가 지속되는 패시브 스킬은 김상훈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20분 동안 4개의 능력치를 20만큼 올려주는 스킬이 더 좋게 느껴졌다.
그 정도로 괴물 같은 드리블 스킬은 효과가 뛰어났다.
그리고 지금.
경이로운 탈 압박 스킬과 괴물 같은 드리블 스킬을 사용한 김상훈이 3명의 선수들과 부딪쳤다.
퍼억-!
스위스 선수들은 김상훈의 몸을 부숴버릴 기세로 강하게 몸을 부딪쳐왔고, 그 모습을 본 이찬수가 분노했다.
- 이 새끼들이 미쳤나! 야! 상훈아. 버티지 말고 그냥 넘어져버려!
하지만 김상훈은 넘어질 생각이 없었다.
반칙에 가까운 몸싸움을 해오는 스위스 선수들에게 밀리고 싶지 않았다.
김상훈은 오히려 더욱 공을 몰고 전진했다.
다만, 계속해서 옷을 잡아당기고 팔꿈치로 짓누르는 반칙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크윽!”
김상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그의 붉게 달아올랐다.
- 헉! 상훈아 화났냐? 진정해! 아오! 니들 다 큰일 났다.
그 순간, 김상훈이 또 하나의 스킬을 사용했다.
[디디에 드로그바의 피지컬(L)을 사용하셨습니다.]
[몸싸움 능력과 피지컬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제한시간 20분)]
스킬을 사용한 즉시, 김상훈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이 새끼들, 다 뒤졌어.”
***
스위스 선수들은 피지컬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들은 공중볼 경합과 몸싸움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16강에 진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런데 지금.
김상훈이 그런 스위스 선수 3명의 압박을 버텨내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김상훈 선수, 스위스의 자카, 베라미, 주루 선수의 압박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저 선수들의 압박을 혼자 버텨낸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인데요. 김상훈 선수는 3명을 상대로도 공을 빼앗기지 않고 있습니다.]
[어어?! 뚫고 들어나요? 어억! 뚫고 들어가는데요~!]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해설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하지만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김상훈이 공을 발에 붙인 채, 3명의 선수들을 밀어내며 전진하고 있었으니까.
피지컬이 좋은 3명의 스위스 선수들이 김상훈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으니까.
- 진짜 무식하게 축구하네.
“으아아아아!”
- 어이구~! 지가 무슨 헐크인 줄 아네. 야! 귀 아파 인마!
“우어어어어어어!”
- ……미친놈.
[본드]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스킬 사용 시, 2초 동안 공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하루 3회 사용가능.)
2초간 공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본드’스킬.
이 스킬을 사용한 김상훈은 자신 있게 스위스 선수들을 뚫고 나갔다.
퍽! 퍼억!
그라니트 자카와 요안 주루가 계속해서 공을 걷어찼지만, 공은 김상훈의 발에 붙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미친! 뭐야?! 본드라도 붙인 거야?”
“공이 떨어지질 않아!”
자카와 주루가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김상훈은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더욱 전진했다.
[순간 가속(G)을 사용하셨습니다.]
[5초간 속도가 빨라집니다.]
스킬까지 사용한 가속.
그런 김상훈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도착한 김상훈은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휘익-!
그때 김상훈은 슈팅을 때리지 않고, 공을 발바닥으로 끌어왔다. 동시에 이어지는 턴.
그리고 그 순간, 김상훈의 공이 있던 자리에 스위스의 중앙수비수 마누엘 아카나이의 슬라이딩 태클이 들어왔다.
만약 슈팅을 때리려고 했다면, 태클에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찬수가 분노했다.
- 저 미친 새끼가! 발을 왜 이렇게 높게 들어? 누구 조질려고 작정한 거야?!
태클을 할 때, 아카나이의 발이 너무 높게 들어왔다는 것.
그의 표정과 움직임에서 고의성이 느껴졌다는 것.
그 사실들이 이찬수를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반면 김상훈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물론 그 역시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금 전부터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새끼들…… 나를 부상당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잖아?’
으득!
이를 강하게 문 김상훈이 곧바로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더러운 플레이를 하는 스위스에게, 골로 갚아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김상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동시에 경기를 지켜보던 해설들이 경악했다.
[어어! 아~! 저건 아니죠! 너무 대놓고 들어간 백태클이에요! 발론 베라미 선수. 저런 플레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경기는 전 세계에서 지켜보고 있는 경기입니다!]
[아……! 김상훈 선수. 경기장에 쓰러져있습니다.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느린 화면이 나오는데요. 아…… 슈팅을 시도하는 김상훈 선수의 디딤 발에 제대로 태클이 들어갔어요. 발이 높았고, 정확히 김상훈 선수의 발목을 향해 들어갔습니다.]
[저건 자칫 잘못하면 선수생활이 끝날 수도 있는 위험한 태클이죠! 심판이 벨라미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꺼내드네요.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나저나 김상훈 선수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요. 느린 화면으로 봤을 때, 발목이 많이 꺾였죠?]
[……예. 부디 김상훈 선수가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해설들의 바람과는 달리, 김상훈은 여전히 그라운드 위에 쓰러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