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관심종자도 버겁다
4대 3스코어.
단 1점 차이밖에 나지 않는 상황에서, 양 팀 선수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후반 43분에서의 코너킥상황이었고, 멕시코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반대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는 이번 공격만 막으면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무조건 넣어야 해!’
지금 이 순간, 멕시코 선수들의 기세는 잔뜩 올라간 상태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지금, 대한민국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으니까.
따라가기 힘든 점수 차이를 거의 다 따라잡은 상태였으니까.
그때, 코너킥을 차기 위해 나선 이르빙 로사노가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뻐엉-!
로사노가 차낸 공이 페널티 박스 안으로 날아오는 순간.
골키퍼까지 공격에 참여한 멕시코는 공을 따내기 위해 거칠게 경합했다.
‘이찬수 선수, 이거 위험한데요?’
“조용히 하고 봐.”
이찬수는 김상훈의 말에 짧게 쏘아붙였다.
그는 지금, 멕시코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다.
위험한 위기를 넘기려면,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이찬수는 다른 한국 선수들과는 달리, 멕시코 선수 한 명을 막지 않았다.
그는 골대 안에 들어간 채, 선수들의 움직임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만, 그는 언제든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그 순간, 로사노가 차낸 공이 멕시코의 미겔 라윤을 향했다.
미겔 라윤을 마크하고 있던 선수는 황희창이었다.
황희창은 헤딩 능력이 나쁘지 않았지만, 공격수인 그는 수비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친 상황이었다.
“안 돼!”
황희창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겔 라윤이 순간적으로 페인팅 동작을 이용하며 그의 마크를 벗어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이찬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미겔 라윤에게 달라붙은 이찬수는 몸을 날려서 그의 헤딩을 방해했다.
“뭐야!”
미겔 라윤이 짜증을 냈다.
황희창을 벗어나며 점프한 그는 골을 넣을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팀을 구해낼 영웅이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그에게, 이찬수가 제대로 찬물을 뿌린 격이었다.
투웅-!
이찬수의 방해로 인해 미겔 라윤의 머리에 부정확하게 맞은 공, 그 공을 조연우가 멀리 걷어냈다.
뻐엉!
그 순간, 멕시코 선수들과 대한민국 선수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진형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이었고, 모든 선수들이 패널티 박스 안에 모여 있는 상태였다.
멕시코는 빠르게 공을 사수해야했고, 대한민국은 공을 잡기만하면 단숨에 좋은 기회를 얻게 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바뀐 상황에서 양 선수들이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이찬수 역시 이를 악물고 모든 힘을 다해 뛰었다.
빙의 상태에서의 체력소모는 굉장히 크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이찬수의 눈앞에는 시스템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현재 남은 체력은 16입니다.]
[체력이 0이 되면 기절하게 됩니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몸이 무거워졌고 숨이 거칠게 차올랐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찬수는 계속해서 공을 향해 뛰었다.
그때, 이찬수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레전드의 기억!”
시스템은 곧바로 반응했다.
[레전드의 기억(L)을 사용하셨습니다.]
[랜덤으로 레전드 선수의 기억을 가져옵니다.]
…….
[이찬수의 스피드]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스피드가 대폭 상승합니다.(제한시간 10분)
까먹고 있던 레전드의 기억 스킬을 사용한 이찬수.
그의 눈이 커졌다.
“이게 뜬다고?”
동시에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
공을 위해 빨리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 최고의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
공을 향해 달리던 선수 중, 가장 가까웠던 선수는 멕시코의 오초아였다.
골키퍼인 그는, 헤딩을 할 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자마자 곧바로 멕시코 골문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때문에 그는 조연우가 걷어낸 공을 향해 가장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빠르게 전방으로 공을 뿌리면, 한 번의 기회가 더 생길 수도 있어.’
단 한 번의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아내며 달렸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찬수가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됐다!”
공을 잡아낸 오초아가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는 최대한 멀리 공을 차내기 위해 다리에 잔뜩 힘을 준 뒤,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촤악-!
그의 뒤를 쫓던 이찬수가 슬라이딩으로 오초아의 발밑을 파고들었다.
“완벽한 태클.”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의 스킬 사용은 이찬수에게도 부담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망설이지 않고 완벽한 태클 스킬을 사용했다.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
‘멕시코에게 기회를 주면 안 돼.’
오초아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멕시코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게 되는 상황.
이찬수는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오초아의 공을 깔끔하게 뺏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됐으!”
공을 뺏어낸 이찬수의 눈앞에는 아무런 방해요소가 없었다.
오직 골대만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수 천, 수 만 번을 연습한 움직임을 그대로 펼쳤다.
툭!
공을 살짝 밀고, 그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두르는 것.
정확한 위치에 발을 가져다대는 것.
그런 이찬수의 발을 떠난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렁-!
후반 44분, 이찬수의 골로 양 팀의 스코어는 5대 3이 됐다.
남은 시간동안 힘이 빠진 멕시코는 골을 넣는 것에 실패했고, 대한민국은 2점차 점수 차이를 지킨 채,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김상훈은 대한민국에서 영웅이 됐다.
***
러시아에 위치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숙소 안.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던 김상훈이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아! 이거 어떡할 거예요?”
그러자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던 이찬수가 대답했다.
- 뭐 인마.
“아니,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활약해버리시면 어떡하냐고요오!”
- 네가 빙의하자며. 설마 내가 3골 정도 넣을 줄 몰랐던 거야? 엉? 내가 못할 줄 알았어?
“이찬수 선수니까 당연히 잘하실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3골이나 넣을 줄은 몰랐죠.”
- 그래서 이겼잖아. 뭐가 문제야?
이찬수가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김상훈을 쳐다봤다.
“……이것 좀 보세요.”
김상훈은 그런 이찬수의 눈앞에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 김상훈은 누구?」
「아나운서 김인아, ‘내 이상형은 축구선수 김상훈.’」
「개그우먼 박나리, ‘김상훈을 내 집에 초대하고 싶다.’」
「멕시코에게 4골을 넣은 김상훈, 그의 활약은 어디까지?」
「독일 꺾은 멕시코를 이긴 대한민국, 2002년의 4강 기적을 재현할까?」
「김상훈, ‘오늘 활약은 내 능력으로 해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여전히 겸손한 모습을 보이다.」
스마트폰에 나열된 기사들.
그것을 본 이찬수가 웃음을 터트렸다.
- 크하하하하! 이야~! 상훈아 너 그냥 연예인인데? 이 정도면 그냥 축구 때려치우고 방송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지 않냐?
“놀리지 마세요. 아니 이건 너무 심하잖아요. 인터넷에 죄다 제 얘기밖에 없어요.”
김상훈의 말 그대로였다.
지금,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김상훈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기사뿐만이 아니라, 각종 블로그, SNS에서도 김상훈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 잘됐네 뭐. 너 관심 받는 거 좋아하잖아.
“아니 근데 이건 너무 과해요. 제가 관종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관심은 부담스럽다고요.”
- 그래서 어쩌라고?
“아오 진짜 이걸 어쩌지? 저 어떡해요?”
- 뭘?
“연예인들이 고백하고 이러면 어떡하냐고요. 아! 한참 축구에 집중해야 될 때인데, 그러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다고요.”
- 진짜 주접을 싸고 있네. 주제 좀 알아라. 상훈아. 쪼옴!
이찬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김상훈이 정색을 했다.
“예? 제 주제가 왜요? 저 지금 매력 능력치 84 찍고 나서 훈남이라는 소리 엄청 많이 듣는 데요? 아시잖아요?”
- 전혀 모르겠는데? 그리고 훈남은 내가 훈남이지. 너는 추남이고.
“우와~! 진짜 왜 이러실까?”
- 뭐가?
“거울 좀 보세요. 제발.”
- 허! 어이가 없네?
두 남자가 티격태격하며 시간을 보내던 도중, 누군가 김상훈이 머무는 숙소 문을 두드렸다.
똑똑!
- 응?
“응?”
한참 떠들던 두 남자가 서로를 바라봤다.
- 누구 온 것 같은데?
“누구지? 잠시만요.”
잠시 후, 숙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손홍민이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형!”
“홍민아. 이 시간에 웬일이야?”
김상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걸그룹에 관심 있으세요?”
“응? 갑자기?”
뜬금없는 말에 김상훈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가 아니고요. 형, 제가 친한 연예인들 조금 있는 거 아시죠?”
“알지. 조금이 아니라 엄청 많은 거.”
“에이~ 형. 많지는 않아요.”
겸손한 손홍민의 말과는 달리, 그는 많은 연예인 인맥이 있는 걸로 유명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김상훈은 흥미로운 눈으로 손홍민을 바라봤다.
“그래, 근데 그게 왜?”
“걸그룹 DM이라고 들어보셨어요?”
“DM? 다이렉트 메시지야?”
“혀엉…… 재미없어요.”
“크힠! 하여튼, 그분들이 왜?”
“그 중에 한 명이 저랑 친한데, 자꾸 형 번호를 알고 싶다고 해서요.”
“어억?!”
김상훈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아이돌이라니!
축구선수와 아이돌의 열애, 그 아름다운 스토리는 김상훈이 꿈에 그리던 일들 중 하나였다.
때문에 그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손홍민을 바라봤다.
“하하하! 형 여자친구 없으시잖아요. 그래서 저도 일단은 거절 안하고 형한테 물어본다고 했어요.”
“그래, 잘했네!”
“형도 관심 있으신 거예요?”
그때, 김상훈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끄덕이려고 했다.
“당연…….”
- 야!
그런 김상훈의 귀에 천둥 같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 너 미쳤냐? 설마 지금 좋다고 하려는 거 아니지? 엉? 네가 지금 연애할 때라고 생각해?
김상훈은 그런 이찬수의 말을 무시하려고 했다.
- 야! 상훈아. 정신 차려! 너 그 김진혁 사건 몰라?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이었던 녀석이 연애에 빠져서 인생 망한 거! 그리고 또 그 브라질에 에두아르두 사건은 못 들어봤냐? 연예인이랑 연애하다가 결국 폼 떨어져서 클럽에서 방출당한 얘기. 이런 게 드라마에서 나오는 스토리가 아니야 인마. 리얼 실화라고!
계속된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 이게 끝인 거 같지? 축구선수가 연애하면서 실력 떨어진 얘기를 하면 날을 새고 얘기할 수도 있어. 설마 그게 네 얘기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어? 진짜 정신 좀 차려 인마!
“아오! 알았다고요!”
더 이상 참지 못한 김상훈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러자 앞에 있던 손홍민이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예? 상훈 형? 갑자기 왜 화를……?”
“아, 미안하다. 갑자기 짜증나는 일이 생각나서…….”
“그…… 어떻게 할까요? 형 번호 알려줄까요?”
그때, 김상훈이 손홍민의 눈을 보며 미소 지었다.
동시에 그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니. 나도 되게 외롭긴 한데, 아직은 연애를 할 때는 아닌 것 같아. 나는 아직 축구에만 신경을 쏟아야할 때야.”
“형 근데 걔 되게 예쁜데…….”
“아 그래? 그럼…… 아, 아니! 나는 아직은 연애 생각이 없어.”
그 순간, 손홍민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감격에 찬 눈으로 김상훈을 바라봤다.
“……형! 저 진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에요.”
“응? 갑자기?”
“그 전부터 형이 축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어요.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더 말씀 안하셔도 알아요. 형. 제가 실수했네요. 그리고 오늘도 형한테 많이 배워갑니다.”
“……나한테 배웠다고?”
“예. 저도 연애 같은 것 안하고, 축구에만 미쳐야할 것 같아요!”
“아니, 네가 지금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형! 저는 그럼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얼른 주무세요 형!”
말을 마친 손홍민은 도망가듯 김상훈의 숙소를 빠져나갔다.
“하…….”
김상훈은 허탈한 얼굴로 손홍민이 나간 문을 바라봤다.
이찬수가 그런 김상훈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 잘 선택했다. 연애는 무슨 연애야.
“……아.”
-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주접 그만 떨고, 훈련이나 하러가자. 다음 상대, 독일이잖아?
“예, 그렇죠.”
두 남자는 늦은 시간에도 개인 훈련을 위해 숙소 밖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김상훈의 어깨가 유난히 축- 쳐져있었다.
그리고 3일 뒤, 대한민국 대표팀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둔 챔피언, 독일과의 경기를 펼치기 위해 그라운드 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