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127화 (127/200)

127화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 전(4)

중앙수비수를 등지고 있는 상황에서, 압박을 이겨내며 몸을 돌려서 슈팅을 때리는 것.

이 동작은 스트라이커가 갖춰야할 기본적인 움직임 중 하나였다.

다만 상대하는 수비수의 수준에 따라 슈팅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진다.

때문에 수준 높은 리그의 팀일수록 어떻게든 유효슈팅을 만들어내는 공격수를 선호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어떤 상황에서도 슈팅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선수가 그라운드 위에 있었다.

이찬수, 그가 지금 멕시코의 골문을 향해 강력한 슈팅을 때려 넣었다.

철러엉-!

크게 흔들리는 골망을 힐끗 바라 본 이찬수는 코너킥 라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카메라 근처까지 달려간 그는 화려한 덤블링을 했다.

현역시절, 그가 즐겨했던 세레머니 중 하나였다.

“이거거든!”

주먹을 불끈 쥔 이찬수가 큰 목소리로 포효했다.

그 순간, 멕시코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며 절망감을 느꼈다.

너무나도 쉽게 골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3번째 골을 허용했을 때, 멕시코는 분명히 흔들렸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욱 열정적으로 움직이며 기회를 노렸다.

엑토르 모레노가 미겔 라윤을 향해 패스했고, 공을 잡은 미겔 라윤이 카를로스 벨라에게 다시 공을 넘겼다.

툭!

카를로스 벨라는 원터치 패스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를 향해 공을 넘겼고, 에르난데스 역시 공을 오래 끌지 않았다.

투웅-!

에르난데스에게서 공을 받은 이르빙 로사노는 이찬수와 대치했다.

‘뚫고 싶다.’

그 순간, 로사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 있는 김상훈을 제쳐내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냉정해야할 때였다.

팀을 위해서라면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그리고 로사노는 팀을 위해서라면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선수였다.

퍼엉-!

로사노는 이찬수를 상대하지 않고, 대각선으로 쇄도하는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를 향해 공을 찔러 넣었다.

“안 돼!”

장형수가 다급하게 공을 끊어내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반응이 느렸다.

결국 로사노의 발을 떠난 공은 장형수가 지키고 있던 공간을 뚫어내며, 에르난데스의 근처로 날아갔다.

쉬익!

날아오는 공을 향해 달리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는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렸다.

공을 잡아둘까? 아니면 그냥 발리 슈팅을 때릴까?

공을 잡아둔다면 안정적인 자세로 슈팅을 때릴 수 있을 것이고, 곧바로 발리 슈팅을 때리면 골키퍼가 반응하기 힘들 것이다.

각자의 장점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에르난데스는 공을 잡아두지 않았다.

‘집중하자.’

날아오는 공을 보며, 미친 듯이 집중한 에르난데스가 다리를 휘둘렀다.

강한 의지와 높은 집중력 때문일까?

그는 정확한 임팩트로 공을 때려내는 것에 성공했다.

빠앙-!

날아오는 공을 발리 슈팅으로 좋은 임팩트로 때렸을 때.

그 파워는 굉장히 강력하다.

지금 역시 그랬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슈팅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골대로 파고들었다.

조연우 골키퍼가 굉장한 반응속도를 지닌 선수였지만, 제대로 반응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철렁-!

에르난데스의 골로 멕시코는 드디어 1골을 넣는 것에 성공했다.

***

이찬수의 표정이 굳었다.

“분위기가 변했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자, 최고의 선수였던 그는 느낀 것이다.

멕시코에게 분위기가 넘어갔다는 것을.

그들의 기세가 대단히 높아졌다는 것을.

그때, 이찬수의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갔다.

이럴 때 어떻게 분위기를 바꿔야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쉽게 가볼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이찬수는 아주 쉬운 방법을 쓸 생각이었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으니까.’

생각을 마친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뛰어난 리더십(G)을 사용하셨습니다.]

[팀원들의 기세가 올라갑니다.(제한시간 20분)]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우오오오오! 멕시코 별 거 없네? 기왕 이렇게 된 거 3골 더 넣자!”

“진짜 이길 수 있겠는데? 생각보다 안 세잖아?”

“이 정도밖에 안 돼? 너무 할 만한데?”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선수들은 어느 팀과 붙어도 절대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효과가 확실한데요?’

“그러게. 당황스러울 정도로 직빵이네.”

‘부디 저 기세가 경기력으로 나타났으면 좋겠네요.’

“일단 한 번 보자고.”

두 남자의 걱정과는 달리, 대표팀의 경기력은 급속도로 좋아졌다.

분위기를 탄 멕시코의 공격들을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퍼억-!

대한민국 대표팀의 협력수비에 공을 빼앗긴 카를로스 벨라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반칙을 범했다.

반칙에 당한 선수는 풀백으로 출전한 김민욱이었다.

“으윽!”

정강이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주심은 곧바로 휘슬을 불었다.

삐익-!

대한민국의 수비진형에서 얻은 반칙이었기에 별다른 공격 기회를 노리긴 어려웠다.

보통은 그랬다.

하지만 이찬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저 멀리서 킥을 준비하고 있는 기성영과 눈을 마주쳤을 때.

찡긋!

과할 정도로 강한 윙크를 날렸다.

그 즉시 기성영이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성영이라면 괜찮은 패스를 뿌려주겠지.”

이찬수는 뛰어난 패스까지 바라지 않았다.

괜찮은 수준의 패스 정도면 충분했다.

아주 먼 거리에서의 간접프리킥 상황.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런 상황에서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동료에게 공을 돌리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기성영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대표팀 내에서 가장 믿는 선수인, 김상훈이 롱패스를 원했기 때문이다.

‘상훈이라면, 뭔가 생각이 있겠지.’

다만 기성영은 알지 못했다.

그에게 패스를 요구한 선수가 김상훈이 아닌, 이찬수였다는 것을.

이윽고 기성영이 저 멀리 있는 이찬수를 겨냥한 패스를 뿌려냈다.

뻐엉-!

강렬한 소리와 함께 공이 쏜살같이 쏘아져나갔다.

그때, 이찬수는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엑토르 모레노의 압박을 벗어나고 있었다.

“지금!”

원하는 자리를 선점한 이찬수가 바위처럼 버티고 선 뒤, 점프했다.

유리한 자리를 내준 모레노는 공중볼 경합에서 불리하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도, 이찬수는 심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반칙으로 모레노의 점프를 방해했다.

이윽고 머리로 공을 받아낸 그는, 튕겨나가려는 공을 발등으로 가져오는 것에 성공했다.

그 움직임은 미리 계산된 것처럼 자연스럽고, 빨랐다.

공을 잡아낸 이찬수는 황희창에게 공을 툭- 밀어준 뒤 다시 달렸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이찬수를 본 모레노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쫓았다.

그때, 황희창이 곧바로 이찬수를 향해 공을 찔러 넣었다.

난이도가 어려운 패스는 아니었다.

이찬수가 모레노를 맡으며, 공간을 만들어놓은 상태였기에.

황희창은 그냥 그 빈 공간으로 공을 찔러 넣기만 하면 됐다.

물론 적당한 파워와 스피드로 패스를 해줘야했지만, 이찬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국가대표가 됐으면 그래도 이 정도 패스는 할 수 있겠지.”

물론 약간의 불안함은 있었다.

황희창은 신체능력이 뛰어나고, 그것을 이용한 드리블 돌파가 좋은 선수였지만 패스 능력은 많이 떨어지는 선수였다.

화려한 플레이를 좋아하지만, 실수가 잦은 아직 어린 선수.

이찬수가 평가한 황희창은 그런 선수였다.

그리고 지금, 황희창이 뿌려낸 패스는 이찬수가 원하던 공간으로 정확히 깔려 들어갔다.

“나이스 패스!”

씨익 웃은 이찬수는 황희창이 찔러 넣어준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빠르게 움직이는 공을 때려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찬수에게는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투웅-!

약간의 힘으로 방향만 틀어놓는 슈팅.

그럼에도 이찬수의 발에 맞은 공은 위력적인 속도로 쏘아져나갔다.

멕시코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가 몸을 날렸지만, 공의 궤적이 너무 날카로웠다.

철렁-!

중요한 순간에서 골을 허용한 오초아는 바닥에 엎드린 채 좌절했고, 이찬수는 다시 한 번 덤블링을 하며 대한민국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4대 1스코어로 큰 점수 차가 나는 상황.

신태웅 감독은 선수교체를 지시했다.

교체되어 들어온 선수는 중앙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자리에서 뛸 수 있는 정우용이었다.

기성영을 빼고, 수비력이 더 나은 정우영을 투입하며 더욱 수비적인 운영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기성영 형을 빼네요?’

“점수를 지키겠다는 거지.”

김상훈과 이찬수 역시 그런 감독의 생각을 단번에 눈치챘다.

그런데, 그런 신태웅 감독의 의지와는 달리.

대한민국의 수비진형에서 큰 실수가 나오고 말았다.

퍼억-!

코너킥 상황에서의 핸드볼 파울.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반칙을 대한민국의 장형수가 하고 만 것이다.

“아!”

장형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책했다.

그런 장형수에게 조연우가 다가가 위로했지만, 그는 이미 멘탈이 부서져있었다.

이윽고 조연우는 골문 앞에 선 채, 슈팅을 하려는 선수를 바라봤다.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에르난데스.

그는 뛰어난 결정력을 가진 선수로, 패널티 킥 성공률도 꽤 높은 선수였다.

당연하게도 조연우는 긴장된 얼굴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를 바라봤다.

비록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상황이었지만,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축구였다.

어떻게든 막아내야만 했다.

***

퍼엉!

에르난데스의 슈팅이 골문의 정중앙으로 날아갔다.

보통은 골대의 구석을 노리기 마련이었지만, 그는 과감하게 중앙을 노리는 슈팅을 시도한 것이다.

부담감이 컸기 때문일까?

조연우는 그런 에르난데스의 심리전에 완벽하게 속아버렸다.

철렁-!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PK골로, 양 팀의 스코어는 4대 2가 되었다.

“아오! 썅!”

이찬수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경기가 흘러갔기 때문이다.

후반전부터 공격수로 출전한 그는, 많은 골을 넣을 생각이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에게 추가 골을 먹힌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의 집중력이 무너져버렸다.

더불어.

[뛰어난 리더십(G)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그나마 선수들의 기세를 유지해주던 뛰어난 리더십 스킬마저 끝이 났다.

“에잉~! 어쩔 수 없지.”

짜증을 낸 이찬수가 곧바로 스트라이커 포지션이 아닌, 미드필더 자리까지 내려갔다.

그때 김상훈이 질문했다.

‘그렇게 멋대로 자리 옮기셔도 돼요?’

“뭐 어쩌겠냐. 애들 맛탱이 간 거 안 보여?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 돼.”

‘중원싸움에 힘을 주시려고요?’

“그래. 내가 수비로 내려갈 수는 없고, 그건 효율적이지도 않아. 차라리 내가 중원에서 최대한 멕시코 애들의 빌드업을 방해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오…… 그렇네요.’

김상훈이 작게 감탄했다.

그 역시 조금만 생각하면 충분히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지만.

지금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이후, 중앙 미드필더 자리까지 내려간 이찬수는 미친 듯한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퍼억-! 투욱!

그는 재빠르게 멕시코의 공을 뺏어서 흐름을 끊었고, 때로는 가벼운 반칙으로 멕시코의 공격을 막아냈다.

집중력이 떨어진 대한민국 대표팀 사이에서. 이찬수는 홀로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계속해서 위기를 맞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반전 내내 김상훈이 막아낸 이르빙 로사노와 안드레스 과르다도의 사이드 돌파를 이재선과 이용훈이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용훈과 이재선, 같은 라인을 맡은 두 선수는 그야말로 탈탈 털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크로스를 허용했고, 공간을 내줬다.

“다들 집중해!”

신태웅 감독이 답답함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표팀 내에서 이용훈보다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는 없었고, 중원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김상훈을 다시 이재선과 교체하기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결국 골이 터졌다.

골을 넣은 팀은 멕시코였다.

철렁-!

에르난데스와의 2대 1패스로 대한민국 수비진을 농락한 로사노가 골대 구석을 향해 가볍게 공을 찔러 넣었다.

이후, 그는 골대 안에 있는 공을 들고 뛰었다.

동점 골을 노리겠다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후반 43분.

4대 3스코어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버티기 급급했고, 멕시코는 골을 넣기 위해 선수까지 교체하며 총공세를 펼쳤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수비진은 언제 뚫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타앗-!

“크윽!”

간신히 라인 밖으로 공을 걷어낸 김영곤이 다리를 잡고 쓰러졌다.

엄살이 아니었다.

장형수의 부족한 수비력을 메꾸어주던 그는, 경기 내내 많은 활동량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김영곤은 쥐가 난 다리를 부여잡은 채 쓰러졌다.

김영곤이 쉽게 일어나지 못하자, 주심은 경기장 밖으로 나가서 치료를 하라는 지시를 했다.

당연하게도 수비수가 한 명 줄어든 대한민국은 더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더군다나, 멕시코의 코너킥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후우!”

땀을 닦아낸 이르빙 로사노는 날카로운 눈으로 패널티 박스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선수들이 모여 있었고, 멕시코 선수들 역시 전부 모여 있었다.

심지어 골키퍼인 기예르모 오초아까지 골을 노리고 있었다.

멕시코에게는 마지막 기회였고, 대한민국에게는 어떻게든 막아내야 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이르빙 로사노가 숨을 참은 채,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퍼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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