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 전(3)
김상훈의 몸에 빙의한 이찬수, 그는 혼잣말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에 빙의를 해서 그런가? 몸이 좀 뻐근하네.”
‘예? 그저께도 빙의 하셨잖아요.’
“그건 인마 훈련 때잖아.”
‘다 똑같은 빙의 아닌가요?’
“하~! 이 새끼, 진짜 감성이 없네.”
‘예? 갑자기 감성이요?’
“그래. 감성이 다르잖아. 감성이! 그저께는 훈련이었고, 오늘은 실전 경기잖아. 그것도 월드컵!”
이찬수는 주변을 살피며, 짜증스럽게 혼잣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 대상은 김상훈이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도 모르겠는데요.’
“네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
‘예에? 진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그리고 저 친구 많거든요?’
“동료들 말고 친구, 인마!”
‘와~! 제가 영국에 있느라 바빠서 못 만난 거지, 없어서 못 만난 거겠어요?’
“시끄럽고, 나 집중해야 되니까 조용히 좀 해.”
‘와!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트인데?’
평소 하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받은 김상훈은 계속해서 투덜댔다.
하지만 이찬수는 그 소리들을 전부 무시한 채, 경기에 집중했다.
현재, 이찬수는 체력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다.
때문에 멕시코의 선수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쟤는 후반전에는 어쩌려고 저러는 거지?”
“무슨 로봇도 아니고…….”
반면, 이찬수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미친 듯이 스프린트를 해도 조금도 숨이 차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강철 체력]
- 등급 : 골드(G)
- 효과 : 강철 체력 사용 시, 10분간 체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하루 1회 사용가능.)
체력을 소모하지 않게 해주는 스킬을 사용했으니까.
더불어 5분간 드리블 능력치를 10만큼 상승시켜주는, 미친 드리블 스킬까지 사용한 이찬수는 지금.
계속해서 그라운드 위를 뛰어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장형수가 길게 걷어낸 공을 향해, 이찬수가 발을 뻗었다.
톡-!
특유의 아름다운 트래핑으로 공을 잡아낸 그는, 곧바로 주세준에게 공을 넘긴 뒤 빠르게 달렸다.
주세준은 곧바로 그런 이찬수에게 재차 패스했고, 그 움직임으로 인해 압박을 하려던 멕시코의 안드레스 과르다도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됐다.
동료를 이용한 움직임으로 압박을 벗어난 이찬수가 공을 몰고 전진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빈틈이 보였다.
멕시코의 풀백과 중앙수비 사이에 생긴 틈을 본 것이다.
그때, 이찬수는 곧바로 패스를 찔러 넣었다.
아니, 찔러 넣으려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빡-!
뒤에서 들어온 거친 태클에 몸이 붕 떠버렸기 때문.
“아익! 이 개색!”
얼굴을 일그러뜨린 이찬수가 짜증을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였다.
‘헐!’
김상훈이 경악했다.
바닥에 떨어지던 이찬수의 발이, 태클을 한 엑토르 에레라의 허벅지로 향했기 때문이다.
퍼억-!
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감각을 공유하는 김상훈은 알 수 있었다.
‘이 양반, 일부러 밟았네?’
이찬수가 엑토르 에레라의 허벅지를 일부러 밟아버렸다는 것을.
100%의도된 보복성 플레이라는 것을.
‘아니, 이래도 되는 거예요?!’
놀란 김상훈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찬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스스로의 무릎을 만지며 엄살을 부리고 있었다.
‘우와…… 맨날 저보고 연기한다고 뭐라고 하시더니, 저보다 더 하시네요. 역시 스승님입니다.’
“……닥쳐라.”
계속해서 깐죽대는 김상훈을 향해, 한 마디를 한 이찬수가 여전히 인상을 쓰며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엑토르 에레라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괜찮아? 많이 다친 거 아니야?”
“끄으윽……!”
축구화 스터드에 허벅지를 강하게 밟힌 에레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이찬수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뒤, 고개를 푹 숙였다.
이윽고 그는 엑토르 에레라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며, 그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후, 이찬수에게 악의적은 태클을 했던 엑토르 에레라는 오히려 부상을 얻은 채, 들것에 실려 나갔다.
“이게 반칙이 아니라고요?”
멕시코의 중앙수비수 카를로스 살세도가 주심을 향해 항의했다.
그러나 주심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태클은 에레라가 했어. 킴은 넘어진 것뿐이야.”
“넘어진 것뿐인데, 왜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냐고요!”
“킴의 움직임에는 고의성이 없었어.”
이처럼 이찬수의 움직임은, 베테랑 심판의 눈마저 속일 정도로 교묘했다.
조용히 포지션으로 복귀한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재수 없게 너랑 비교하지 말아줄래?”
그러자 그의 머릿속에 김상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보다 더 심하신데요? 오히려 제가 한 수 배웠습니다.’
“지랄하지 말고.”
‘크힠!’
“웃지마. 진짜 억울하니까.”
김상훈을 향해 짜증을 낸 이찬수가 다시금 기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가져갔다.
그 움직임의 시작은 수비였다.
아르빙 로사노는 독일과의 경기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선수였다. 멕시코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평가받는 그는, 오늘 경기에서 대한민국의 사이드를 흔들어 놓는 역할을 받았다.
“젠장!”
그런 로사노는 지금,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풀리는 거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와 같은 라인에 서있는 선수 한 명이 문제였다.
“김상훈……!”
오늘 경기에서 사이드 미드필더로 출전한 그의 수비 때문에, 로사노는 원하는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수비를 왜 저렇게 잘하는 거야?”
로사노는 드리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때문에 수비수와의 일대일 돌파시도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다.
그런데, 오늘 경기에서는 자꾸만 막히고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화려한 페인팅과 빠른 속도로 돌파를 시도한 그는, 김상훈과 빙의한 이찬수에게 손쉽게 막혀버렸다.
“안 돼~! 어디서 버릇없게 개인기를 쳐?”
이찬수는 어린 아이를 상대하듯, 로사노를 상대했다.
그가 왼쪽으로 움직이면 같은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고, 페인팅을 넣어도 속지 않았다.
속도 역시 밀리지 않았다.
“젠장!”
계속된 돌파 실패에 로사노가 거칠게 이찬수를 밀어버렸다.
그런데, 이찬수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가떨어진 것은 로사노였다.
퍼억-!
“어린놈의 새끼가 싸가지 없이!”
이찬수는 로사노를 한껏 비웃으며 공을 몰고 달렸다.
그때 김상훈이 질문했다.
‘진짜 이찬수 선수는 왜 이렇게 꼰대에요?’
“내가 왜 꼰대야?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김상훈의 질문에 대답한 이찬수는 이번에는 동료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앞을 막고 있던 안드레스 과르다도를 향해 전진했다.
동시에 플립플랩을 할 것처럼 움직인 뒤, 빠른 마르세유 턴을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휘익-!
과르다도를 제친 이찬수는 대각선으로 방향을 꺾은 뒤, 바로 슈팅을 때렸다.
37m의 먼 거리에서의 슈팅.
현역시절의 이찬수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정확한 슈팅.”
먼 거리에서도 원하는 곳으로 슈팅을 때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스킬이 있었기 때문이다.
퍼엉-!
과르다도를 제치자마자 때린, 빠른 타이밍에 나온 슈팅이었다.
때문에 멕시코 선수들은 이찬수를 제대로 방해하지 못했고, 그의 슈팅은 빠른 속도로 골문을 향해 날아갔다.
***
텅!
골대와 공이 부딪혔을 때 나는 소리.
그 소리가 그라운드 위에 울려 퍼졌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지만, 골대에 맞은 공이 골대 안으로 굴절되어 들어갔을 때.
비로소 국민들은 커다란 환호성을 뿜어낼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 고오오오오올!”
“고오오오오올!”
“거봐! 김상훈이 해낼 줄 알았다니까!”
이찬수와 김상훈의 빙의에 대해서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골을 넣은 사람이 김상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 당사자인 김상훈은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뜨겁게 포효하고 있었다.
‘우오오오오오! 고오오오오올~!’
너무나도 감동적인 제자의 뜨거운 환호성에, 이찬수는 당연하게도 짜증을 냈다.
“아오! 시끄러 이 새꺄! 머리가 울려대니까 조용히 좀 해라.”
‘좋으시면서 꼭 이러신다니까?’
“아니, 농담이 아니라 네 목소리가 머릿속에 너무 세게 울린다니까?”
‘크힠킥!’
“아오!”
결국 김상훈의 방해에, 이찬수는 제대로 세레머니를 펼치지 못했다.
이후, 대한민국은 멕시코의 공격을 견뎌내며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라커룸에 들어온 이찬수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신태웅 감독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뭐하시려고요?’
당황한 김상훈이 소리쳤다.
이찬수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신태웅 감독을 불렀다.
“감독님.”
“응? 상훈이? 왜”
이찬수, 그는 감독을 바라보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신태웅 감독은 순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인내한 뒤 이찬수를 바라봤다.
“감독님,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부탁? 뭔데?”
“후반전에는 저를 공격수로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응? 공격수?!”
신태웅 감독의 눈이 커졌다.
갑작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김상훈을 공격수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문제는 그가 오늘 경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찬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
“예. 제 권한이 아닌 것도 알고, 어려운 제안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 제안을 들어주시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근데, 저는 후반전에는 공격수로 뛰고 싶습니다.”
이찬수는 신태웅 감독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잠시 후,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신태웅 감독이 피식 웃으며 질문했다.
“자신 있어?”
이찬수의 대답은 빨랐다.
“당연하죠.”
***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2대 0으로 밀리는 멕시코는 전반전과는 달리, 조금 더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
물론 공격에 비중을 높인 만큼, 수비가 불안해질 수도 있지만 멕시코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전술 변화는 멕시코만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신태웅 감독 역시 변화를 가져왔다.
큰 틀은 변하지 않았지만, 선수의 위치가 바뀌었다.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김상훈이 이재선과 자리를 바꾼 것이다.
즉 손홍민과 함께 공격수로 출전했던 이재선이 사이드 미드필더로 내려가고, 김상훈이 공격수로 올라오게 된 것.
‘오~! 공격수로 출전한 이찬수 선수는 지~인짜 오랜만에 보네요!’
지금 이 순간, 김상훈은 잔뜩 흥분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우상과도 같았던 이찬수.
그의 주 포지션인 스트라이커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너무 기대하지마라. 많이 녹슬었을 거야.”
‘왜 갑자기 겸손한 척을 하세요?’
“에이~! 난 원래 겸손한 사람이야.”
‘진짜 지나가는 개가 웃겠네요.’
“네 싸가지는 날이 갈수록 없어지는 것 같다?”
‘훌륭한 스승님을 둔 덕이죠.’
“존나 패고 싶다.”
‘진정하시죠.’
“후. 하여튼! 오랜만에 공격수로 뛰려니까 긴장되네.”
김상훈의 공격을 받던 이찬수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하지만, 김상훈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표정은 전혀 긴장하신 것 같지 않은데요?’
“이제 그 입 좀 다물면 안 되냐?”
‘서운하네요. 이찬수 선수는 매일 저를 놀리셨으면서.’
“그래, 내가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니까 좀 닥쳐주라.”
‘예압~!’
간신히 김상훈의 공격을 막아낸 이찬수는, 드디어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삐이익-!
후반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찬수는 곧바로 멕시코의 수비진형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그때, 공을 잡은 기성영이 길게 패스를 뿌렸다.
뻐엉-!
전방으로 쇄도하는 이찬수를 노린 롱패스였다.
쉬이익-!
공을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이찬수는 카를로스 살세도와 함께 공을 따내기 위해 몸을 띄웠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멕시코의 중앙수비수 카를로스 살세도와 함께 공중에 뜬 이찬수, 그가 다리를 하늘로 쭈욱 뻗은 것이다.
그러자 태권도 발차기를 하듯 다리를 높게 뻗은 이찬수의 발에 공이 찰싹 달라붙었다.
믿을 수 없는 트래핑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살세도의 강한 차징에도 공을 놓치지 않고 지켜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 순간, 이찬수가 왼쪽으로 몸을 빠르게 돌렸다.
휙!
살세도의 몸이 따라오는 것을 본 이찬수가 곧바로 오른쪽으로 몸을 빠르게 회전했다.
순간적으로 방향을 연속으로 바꾸는 고급페인팅이었다.
살세도는 끝까지 이찬수의 움직임을 쫓아내는 것에 성공했지만, 약간의 각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이찬수는 놓치지 않았다.
몸을 돌림과 동시에, 그는 곧바로 간결하게 슈팅을 때렸다.
“정확한 슈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