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 전(2)
김상훈은 마치 비보이가 된 것처럼,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펼쳤다.
한 팔로 땅을 짚은 뒤, 다리를 휘둘러서 슈팅을 때리는 동작.
다만,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닌 태클에 당한 상태에서 펼친 움직임이었다. 자세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김상훈은 어떻게든 시저스 킥으로 공을 때려냈다.
“정확한 슈팅!”
그리고 그 순간, 김상훈의 눈앞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확한 슈팅(H)을 사용하셨습니다.]
[캐논 슈터(G)가 발동됩니다.]
[슈팅력이 강해집니다.]
이윽고 그의 발에서 떠난 공은 커다란 굉음을 낸 뒤,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뻐엉-!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일까?
골키퍼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김상훈의 슈팅은 골망을 찢을 듯 강렬하게 흔들고 있었다.
철러엉-!
관중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고, 너무나도 화려한 골이었다.
다만, 그들은 좋아하지 못했다.
스스로의 입을 막고, 놀란 눈으로 김상훈을 바라봤다.
“으윽…….”
김상훈은 골을 넣은 직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그가 팔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에 신음할 때, 옆에 있던 이찬수가 소리쳤다.
- 상훈아! 괜찮아? 어? 팔 좀 봐봐!
그때, 김상훈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예. 저는 괜찮아요.”
그러자 이찬수가 불같이 화를 냈다.
- 괜찮긴 이 새끼야! 그러다가 평생 팔병신되면 어쩌려고? 어? 왜 그딴 무리한 동작을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
“죄송합니다.”
- 그래서 정확히 상태가 어떤데?
“다행히 떨어질 때는 낙법을 해서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아까 땅을 짚을 때 어깨를 조금 다친 거 같아요.”
- 조금? 확실해?
“……예. 용가리 통뼈 스킬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깨를 삐끗한 정도인 것 같아요.”
잠시 후, 어깨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키는 김상훈을 보며 이찬수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어휴~! 진짜 왜 저렇게 몸을 함부로 굴리는지…….
김상훈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기성영, 손홍민의 축하를 받았다. 여전히 다른 동료들은 보여주기 식으로 천천히 다가올 뿐, 진심으로 김상훈을 축하하지 않았다.
- 우리 상훈이, 진짜 왕따네…….
“나중에는 다 알아줄 겁니다.”
- 근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돼?
“해야죠. 보세요. 선수들 눈에 독기 생긴 거.”
김상훈의 말에, 이찬수가 빠르게 날아다니며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을 훑어봤다.
- 오~! 진짜 효과 제대론데? 훈련 때마다 싸가지 없게 행동한 보람이 있겠다?
“예에! 아~주 뿌듯합니다.”
이찬수의 말처럼, 김상훈은 훈련 때마다 동료 선수들을 도발했다.
물론 아무 때나 도발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조용히 훈련에 임했다.
다만 터무니없는 실수를 할 때나 중요한 기회를 날렸을 때.
그럴 때만큼은 가차 없이 동료들을 향해 쓴 소리를 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하지 않았다.
김상훈은 오로지 실력으로 동료들을 도발했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라운드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
골을 넣은 뒤, 김상훈은 신태웅 감독가 원하던 플레이를 정확히 구사했다.
지금도 그랬다.
“완벽한 태클.”
퍼억-!
대한민국의 수비진형까지 달려온 김상훈이 돌파를 시도하는 로사노를 태클로 막아냈다.
반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완벽하게 공을 건드려서 빼낸 태클이었다.
툭-! 툭!
전방을 바라보며 전진하던 김상훈은 황희창을 향해 전진패스를 찔러 넣었다.
타앙-!
먼 거리였음에도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정확한 방향으로 쏘아져나갔다.
투욱-!
황희창은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낸 뒤, 멕시코의 사이드로 파고들었다. 그때, 그의 앞을 멕시코의 풀백 에드손 알바레즈가 막아섰다.
수비수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스피드에 자신이 있는 황희창은 길게 공을 친 뒤 빠르게 달렸다.
퉁!
하지만,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를 시도하는 황희창을 에드손 알바레즈는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아!”
황희창이 아쉽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다만, 그의 돌파시도가 아무런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에드손 알바레즈가 공을 걷어내며 수비에는 성공했지만, 코너킥을 내주고만 것이다.
삐익!
멕시코 진형에서 진행되는 코너킥 상황.
코너킥을 차기 위해 나선 선수는 킥 능력이 좋은 기성영이었다.
김상훈 역시 킥 능력이 좋은 선수였지만, 그는 코너킥을 찰 생각이 없었다.
신태웅 감독도 그가 코너킥을 차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선발로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 중, 헤딩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거의 없었으니까.
오직 김상훈만이 헤딩 능력이 뛰어난 선수였으니까.
- 제대로 등지고, 조금 더 앞으로 가있어. 어차피 잘라먹을 거잖아?
“예.”
- 오케이, 신호 줄 테니까 집중해.
“알겠슴다.”
대화를 마친 이찬수가 기성영이 서있는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이윽고 기성영이 코너킥을 찬 순간, 이찬수가 소리쳤다.
- 상훈아! 킥이 좀 길다. 1m 정도.
그 목소리를 들은 김상훈은 곧바로 위치를 수정했다.
동시에 그는 점프했다.
부웅-!
공중에 몸을 띄운 김상훈은 멕시코의 수비수 에드손 알바레즈와 거친 경합을 펼쳤다.
사실 김상훈의 헤딩 능력치는 83으로, 다른 능력치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헤딩 관련 스킬들이 있었다.
[강력한 헤딩]
- 등급 : 실버(Silver)
- 효과 : 헤딩의 파워가 강해집니다.
[높은 점프력]
- 등급 : 골드(Gold)
- 효과 : 점프력이 좋아집니다.
점프력과 헤딩 슈팅의 파워를 높여주는 스킬.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그때, 김상훈은 최근에 구매한 옐로우 박스에서 나온 스킬을 힐끗 바라봤다.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헤딩]
- 등급 : 레전드(Legend)
- 효과 : 하루에 한 번, 한계를 뛰어넘는 헤딩을 할 수 있습니다.(코너킥과 간접프리킥 상황에서만 발동)
미로슬라프 클로제.
독일의 전 축구선수인 그는, 화려한 기술이나 돌파 능력을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골을 넣는 능력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선수였다.
기본적으로 골 결정력이 뛰어난 선수였지만, 클로제의 주특기는 단연 헤딩이었다.
그는 다른 헤더들에 비해서 평범한 편인, 184cm의 신장이었지만, 미친 듯한 위치선정과 점프력, 타이밍으로 축구 역사상 최고의 헤더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헤딩(L)이 발동됩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점프력, 위치선정, 타이밍, 경합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리고 지금, 김상훈은 그의 한계를 뛰어넘는 점프력과 위치선정, 타이밍으로 공을 따내는 것에 성공했다.
파앙-!
그의 이마에 맞은 공은 날카로운 궤적으로 골대의 오른쪽 상단을 파고들었다.
웬만한 골키퍼는 반응조차 하기 힘든, 위협적인 슈팅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멕시코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가 김상훈의 헤딩슈팅에 반응해낸 것이다.
쉬익-! 퍼엉!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헤딩 슈팅이었지만.
기예르모 오초아는 그 슈팅에 반응한 것뿐만 아니라, 주먹으로 공을 쳐내기까지 했다.
믿을 수 없는 슈퍼세이브였다.
“우오오오오!”
“오초아! 오초아!”
“네가 멕시코의 수호신이야!”
멕시코를 응원하러 온 관중들이 열광했다.
오초아는 뜨겁게 포효하며 선수들의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때, 아쉽게 골을 놓친 김상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깝네.”
- 네가 못한 건 없어. 골키퍼가 잘 막은 거니까 그냥 잊어버려.
“예. 그래야죠.”
고개를 세차게 흔든 김상훈은 다시금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며, 대표팀의 움직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전반 20분이 넘어간 지금, 김상훈은 고민에 빠졌다.
‘슬슬 다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어. 근데 후반전을 생각하면 스킬을 아껴야 될 것 같은데…….’
그때, 이찬수가 질문했다.
- 뭐가 그리 고민인데?
“……스킬을 쓸 타이밍을 잡는 게 어려워요.”
- 왜? 걍 시간 계산만 잘해서 쓰고 싶을 때 쓰면 되지. 뭘 그런 걸 고민하냐? 그렇게 자신이 없어?
“…….”
김상훈은 침묵했다.
잠시 후, 그는 실실 웃기 시작했다.
- 어우~! 소름끼치게 또 왜 웃어?
“이찬수 선수 덕분에 생각이 정리됐거든요.”
- 내가 뭘 했는데?
“자신이 없냐고 하셨잖아요.”
- 어 그랬지. 네가 존나 쫄보처럼 행동하길래.
“국가대표가 된 뒤로 너무 저답지 않았던 것 같아요.”
- ……그래서 어쩌겠다고?
“걍 제 멋대로 하려고요.”
- 뒷일 신경 안 쓰고?
“그렇죠. 그리고 부담감도 좀 내려놓으려고요.”
그때, 이찬수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 이제야 마음에 드네.
“예?”
- 너 인마, 네가 국가대표가 되면서 부담감이 생긴 거는 알아. 근데, 그게 너무 과했어. 막말로 축구 혼자 하는 거 아니잖아? 근데 너는 왜 혼자서 모든 걸 바꾸려고 해? 왜 네가 다 책임지려고 해?
“…….”
- 상훈아, 그냥 즐겨 인마. 축구가 얼마나 재밌는 건데, 왜 재미없게 하려고 하냐. 월드컵은 뭐 축구가 아니고 다른 스포츠야? 왜 다르게 해? 응? 아니야?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느낌과 동시에 더 이상 그를 짓누르던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휴~! 이제 진짜 마음이 편해지네요.”
- 그래,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스킬 바로 쓸 거야?
그때였다.
김상훈은 이찬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 그 뭣같은 눈빛은 또 뭐냐? 응? 뭐냐니까?
“스킬보다 좋은 걸 쓰려고요.”
- 스킬보다 좋은 거? 그게 뭔데? 근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도 안 땡기는데?
“아뇨, 들어보시면 땡기실 걸요?”
- ……뭔데?
“저는 복잡했던 머릿속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해서,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 그래서 어쩌라고?
이찬수가 인상을 팍- 쓰며 물었다.
그러자 김상훈이 여전히 실실 웃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오랜만에 빙의 한 번 하시죠.”
***
오랜만의 빙의였다.
물론 김상훈과 이찬수는 훈련 때, 잦은 빙의를 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빙의를 한 것이 굉장히 오랜만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이찬수의 얼굴이 평소보다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 ……빙의를 하자고?
“예. 왜요?”
- 갑자기 왜?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머릿속이 복잡해서 정리를 좀 해야 돼요.”
- 정말 그 이유뿐이야?
이찬수의 질문에 김상훈이 씨익 웃었다.
“당연히 아니죠.”
- 그럼 뭔데?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이찬수 선수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판단을 내릴지 보고 싶어서요.”
솔직한 말이었다.
김상훈은 토트넘처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선수들이 많은 팀이 아닌, 조직력과 개인기량이 비교적 떨어지는 대표팀에서의 이찬수를 보고 싶었다.
이찬수가 지금의 대표팀에서 뛰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과연 그는 멕시코를 상대로 늘 하던 대로 멋진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이 김상훈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찬수의 한쪽 입 꼬리가 높이 치솟았다.
- 그래, 보여주마.
“오오!”
이찬수의 대답에 김상훈이 환호했다.
과거의 레전드가 현재의 국가대표팀에서 뛰는 모습을 보는 것.
그건 축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상훈은 빙의를 했을 때, 이찬수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김상훈에게는 좋은 공부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빙의를 하며 김상훈의 몸에 들어온 이찬수가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철 체력(G)을 사용하셨습니다.]
[체력이 소모되지 않습니다.(제한시간 10분)]
[미친 드리블(J)를 사용하셨습니다.]
[드리블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제한시간 5분)]
그때였다.
김상훈이 볼멘소리를 냈다.
‘아니, 무슨 빙의를 하자마자 스킬을 쓰세요?’
그러자 이찬수가 빽- 소리를 질렀다.
“야 인마! 아깝냐? 엉? 내가 스킬 써서 아까워?”
‘아니, 아까운 게 아니라…….’
“와~! 서운하네.”
‘아니라니까요?!’
“아니면 그냥 조용히 지켜봐.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아~ 예. 근데 아무리 이찬수 선수여도 쉽지 않을 걸요?’
김상훈의 도발적인 말.
그 말에 이찬수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하!”
‘왜요?’
“짜식이, 요즘 좀 컸다고 까부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이찬수 선수죠.’
“근데 나를 의심한다고? 이 사기 스킬들까지 썼는데?”
‘대표팀에서는 좀 다르지 않을까 해서요. 전술도 다르고 감독님이 원하는 것도 다르니까요.’
“감독이 원하는 건 내 알바가 아니고, 결국 골을 넣어서 이기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건 맞죠.’
김상훈의 대답을 들은 이찬수가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냥 믿고 보면 돼. 어떻게든 골을 넣어줄 테니까.”
그 말과 동시에 이찬수가 상대 선수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