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124화 (124/200)

124화 러시아 월드컵, 멕시코 전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밤 12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각각 술집, 안방, 거실에서 뜨거운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가자아아아아!”

“그래! 가즈아!”

멕시코 전이 힘든 싸움이 될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미 어려운 상대였던 스웨덴을 꺾어낸 대한민국 대표팀이다.

국민들은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대감 역시 한없이 올라가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삐익-!

신태웅 감독은 오늘 경기에서 이재선과 손홍민을 공격수로 세웠고, 미드필더 자리엔 김상훈, 주세준, 기성영, 황희창을 투입했다.

더불어 수비 자리엔, 최근 선발로 기용하던 이용훈, 장형수, 김영곤, 김민욱을 투입시켰다.

빠르고 개인기술이 좋은 멕시코를 상대하기 위한 안정적인 442전술이었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수비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장형수랑 김민욱을 자꾸 왜 쓰는 거야? 저번 경기에서도 개 똥쌌잖아?”

“장형수가 실수해서 먹힌 골만 몇 개야?! 그만 좀 쓰라고오!”

“쟤네는 축협의 빽이 있는 거야 뭐야? 어떻게 자꾸 선발로 나오는 거야?”

당연하게도 국민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신태웅 감독이 실수를 반복하는 선수들을 선발로 내세우는 것을.

자꾸만 고집을 부리는 것을.

하지만.

신태웅 감독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선발진을 선별할 때, 소속팀에서의 모습과 훈련 때의 모습을 본다.

또한 그가 원하는 전술을 제대로 소화해줄 수 있는 선수를 기용할 수밖에 없다.

장형수와 김민욱은 훈련을 할 때마다 신태웅 감독이 원하는 전술을 그나마 제대로 수행하는 선수들이었고,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주던 선수들.

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멕시코는 독일을 꺾었을 때와 거의 다르지 않은 선수들을 선발로 내세웠다.

발이 빠르고 개인기량이 뛰어난 이르빙 로사노,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카를로스 벨라를 쓰리톱으로 세웠고, 미드필더로는 안드레스 과르다도, 엑토르 에레라, 미겔 라윤을, 수비진에는 헤수스 가야르도, 엑토르 모레노, 카를로스 살세도, 에드손 알바레즈로 이뤄진 멕시코의 선발진.

433전술을 들고 나온 그들은, 시종일관 빠른 패스와 뛰어난 개인기량으로 대한민국을 박살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 준비됐냐?

“예.”

이찬수의 말에 김상훈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는 멕시코 전을 대비해서, 요 며칠간 특별훈련을 진행했다.

개인기량이 뛰어난 멕시코를 막아내고, 뚫어내기 위해 김상훈은 수비와 드리블 돌파 훈련을 반복했다.

그는 그런 반복 훈련을 거듭한 끝에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는 것에 성공했다.

- 오늘 경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 역할이 굉장히 어려운 역할이야. 알지?

“예, 알고 있죠.”

김상훈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찬수는 약간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가르쳐온 김상훈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김상훈이 맞은 역할이 너무 어려웠다.

신태웅 감독이 김상훈에게 지시한 전술은 다음과 같았다.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서 풀백인 이용훈을 도와, 월드컵에서 무서운 활약을 보이고 있는 멕시코의 이르빙 로사노를 막아내는 것.

공격 시에는 멕시코의 풀백 헤수스 가야르도를 완벽하게 박살내고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

그 두 가지 역할을 소화해내면서도 끊임없이 중앙으로 내려와 선수들의 빌드업을 돕는 것.

사실, 이건 한 선수에게 맡기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지시를 한 신태웅 감독 역시 미안함을 갖고 있을 정도였다.

- 뭐, 네가 못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찬수 선수.”

김상훈이 근심에 쌓인 이찬수를 불렀다.

- 응? 왜?

“제가 누구 제자입니까?”

- ……갑자기? 야, 미리 말하는데 오글거리는 말 할 거면 하지 마.

이찬수가 인상을 팍-쓰면서 짜증을 냈다.

그런데 김상훈은 하얀 치아를 보이며 씨익 웃었다.

- 왜, 왜? 뭐?! 왜 그렇게 쪼개는데?

“제가 왜 이찬수 선수의 제자인지, 오늘 경기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감독님이 지시한 전술, 완벽하게 소화해낼 겁니다.”

그 순간, 이찬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동시에 그는 고개를 홱- 돌리며 크게 소리쳤다.

- 지랄하지 말고 경기에나 집중해! 다른 선수들 열심히 뛰는 거 안보여?

***

경기 초반, 김상훈은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중앙과 왼쪽 사이드를 번갈아 돌아다니며, 멕시코 선수들을 압박했다.

멕시코가 공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김상훈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대표팀은 이상할 정도로 전반 20분 동안은 강하니까.’

대한민국 국가대표 팀은 그의 생각처럼, 최근 경기에서 전반 초반에 굉장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의 집중력이 높아서 수비도 안정적이고, 마무리가 안 좋긴 하지만 공격 역시 날카로웠다.

하지만, 전반전 20분이 지나가면서부터 급격히 집중력을 잃기 시작한다.

‘일단은 지켜보자.’

그것을 알고 있던 김상훈은, 전반 10분간은 동료들과 상대 선수들을 관찰하며 신중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온다면 그 어떤 스킬도 아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상훈아!”

기성영.

뛰어난 패스 능력을 지닌 그가 김상훈이 달려 들어가는 공간으로 강한 패스를 찔러 넣었다.

퍼엉-!

거의 슈팅에 가까운 속도로 뿌려진 공을 향해, 김상훈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잡는다.’

동시에 그는 스킬을 사용했다.

저 공을 잡아낸다면, 단숨에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스킬을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순간 가속!”

[순간 가속(G)을 사용하셨습니다.]

[5초간 속도가 빨라집니다.]

눈앞에 뜬 메시지는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스스로의 움직임과 빠른 속도로 쏘아져나가는 공을 향해 달리 뿐이었다.

투다다닷-!

순간 가속을 사용한 김상훈의 속도는, 사용하기 전보다 눈에 띄게 빨라졌다.

더불어, 현재 그의 속도는 다른 때보다도 더욱 빨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차둘희의 달리기]

- 등급 : 조커(Joker)

- 효과 : 스피드가 상승합니다.

최근에 얻은 차둘희의 달리기.

이 스킬로 인해서 그의 스피드가 한층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김상훈은 질풍처럼 달려 나갔다.

“우와아아악!”

“오오오오!”

“미, 미친!”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던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김상훈의 속도가 그야말로 미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저렇게 빨라?!”

“저게 말이 되는 거야?”

“저 정도면 우사인 볼트보다도 빠른 거 아니야?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저 속도는 진짜 미쳤잖아?”

그런 미친 속도로 달렸기 때문일까?

김상훈은 기성영이 뿌려낸 공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공을 잡아내는 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토옥-!

발끝으로 공을 투욱 쳐서 밀어낸 그는, 몸을 홱- 돌렸다.

프로선수들이 볼 때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비효율적인 움직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상훈은 일부러 이런 움직임을 가져갔다.

화려한 플레이로 인해서, 경기 초반부터 기세를 올리기 위함이었다.

“우와아아아!”

“멋있다아아아아!”

귓전에 스치는 커다란 환호성을 들으며, 김상훈은 공을 몰고 전진했다.

아직 순간 가속 스킬의 제한 시간이 조금 남은 상황에서, 그는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당황한 멕시코의 수비수들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김상훈은 모든 속도를 죽였다.

촤악!

잔디 강하게 찍어내며 속도를 죽인 그는, 몸을 직각으로 틀며 공을 몰았다.

툭-! 툭!

“젠장, 막아!”

“더 집중해! 움직임 놓치지 마!”

순식간에 속도를 죽이고, 방향을 전환하는 김상훈의 움직임을, 멕시코의 수비수들은 쉽게 따라가지 못했다.

‘무슨 움직임이……!’

김상훈의 앞에 선 멕시코의 중앙수비수, 엑토르 모레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토트넘의 에이스 김상훈, 그의 실력을 멕시코 선수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상대하는 김상훈의 움직임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순간적으로 속도를 죽인 드리블을 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고, 너무나 부드러웠다.

‘이건 무슨 브라질 선수 같잖아?’

남미, 그곳에서도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지닌 브라질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여줬다.

엑토르 모레노는 모르지만, 호나우지뉴의 드리블과 에당 아자르의 드리블 능력을 가진 김상훈에게는 당연한 움직임이었다.

그야말로 미친 드리블을 선보이던 김상훈은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의 앞에만 2명의 선수가 있었고, 그들은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수비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움직임 좋고~!”

그때, 무언가를 본 김상훈은 실실 웃으며 공을 살짝 찍어 찼다.

툭-!

김상훈의 판단은 정확했다.

멕시코의 수비수 두 명이 그에게 달라붙어있는 지금, 반대편은 수비가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김상훈의 발을 떠난 공은 헐거워진 공간 사이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그때, 공간을 향해 파고든 선수는 황희창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그의 터치가 좋지 못했다.

텅-!

생각보다 길게 밀려나간 공을 향해, 황희창이 다급하게 달렸다.

- 이런 미친! 저걸?!

이찬수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김상훈이 만들어준 기회는 완벽했고, 황희창의 터치는 아쉬웠다.

다만, 황희창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공을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터치만 조금 좋았다면, 곧바로 노마크 슈팅을 가져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길게 튕겨나간 공을 잡아내기 위해, 너무 깊숙이 침투한 상태였다.

즉, 황희창이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각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

아쉬움 섞인 소리를 토해낸 황희창.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슈팅이 아닌 패스였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는 이미 멕시코의 수비수들이 재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아쉽게 기회를 날린 상황.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 선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 끝까지 집중해. 아직 기회 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때, 황희창의 패스를 받기 위해 공격수로 출전한 손홍민과 이재선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상훈이 움직였다.

멕시코의 패널티 박스 안에서, 골을 노리는 선수들과 막아내려는 선수들이 각자의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을 때.

투욱-!

황희창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손홍민에게 공을 넘겼다.

“어딜!”

에드손 알바레즈가 다리를 뻗었지만, 흐르는 공은 아슬아슬하게 그의 몸을 스쳐지나갔다.

탓-!

공을 잡아낸 손홍민은 슈팅 각도를 만들기 위해 상체페인팅을 하며 좌우로 움직였지만, 미리 자리를 잡고 있던 카를로스 살세도가 각을 주지 않았다.

“크윽!”

강한 압박을 받던 손홍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슈팅을 때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최악의 상황에서는 역습까지 당할 수 있다는 걸.

그런데 그때, 그의 눈에 한 선수가 보였다.

“상훈이 형!”

손홍민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공을 차냈다.

퍼엉-!

가까운 거리에 비해 너무 강한 패스였지만, 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공이 정확히 김상훈을 향했고, 그가 공을 향해 발을 뻗었으니까.

그가 알고 있는 김상훈은 세계 최고의 퍼스트 터치를 가진 남자였으니까.

‘상훈이 형은 어떻게든 해줄 거야!’

같은 팀에서 뛰며, 김상훈의 실력을 알고 있는 손홍민은 김상훈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믿음에 대한 결과가 펼쳐지려하고 있었다.

- 뒤에 멕시코 수비수 한 명 붙었고, 근처에 한 명 더 있다.

김상훈은 이찬수의 브리핑을 들어가며, 몸에 힘을 줬다.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디디에 드로그바의 피지컬(L)을 사용하셨습니다.]

[몸싸움 능력과 피지컬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제한시간 20분)]

[경이로운 탈 압박(L)을 사용하셨습니다.]

[탈 압박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제한시간 20분)]

스킬을 사용한 순간, 강한 압박이 등 뒤에서 들어왔다.

퍼억-!

압박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스킬까지 사용한 김상훈은 어렵지 않게 버텨냈다.

동시에 공을 향해 발을 뻗었다.

톡-!

강하게 깔려오던 공은 그의 발에 닿자마자 힘을 잃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때, 김상훈은 오른쪽으로 상체를 빠르게 돌렸다.

훅-!

그의 뒤에서 압박을 하던 엑토르 모레노는 그 움직임에 곧바로 반응했다.

김상훈은 그런 모레노를 밀어내며 몸을 돌렸다.

모레노는 약간의 반칙까지 이용해가며 그의 턴을 방해하려 했다. 하지만 모레노의 몸은 형편없이 밀려버렸다.

꾸우욱-!

“무, 무슨······!”

김상훈에게 질질 끌려가던 모레노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지금 이 순간, 마치 어린 아이가 된 느낌을 받았다.

압도적인 피지컬로 모레노를 벗겨낸 김상훈은 곧바로 슈팅을 시도하려했다.

조금의 각도가 있다면, 언제든지 위협적인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그는, 지금 역시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귀에 이찬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야! 태클 들어온다!

그 순간 김상훈은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온몸에 힘을 준 뒤, 작게 중얼거렸다.

“본드.”

스킬명을 외쳤을 때, 김상훈은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느꼈다.

퍼억-!

멕시코의 풀백, 헤수스 가야르도의 깊은 태클이 들어온 것이다.

그 순간 김상훈의 시야가 빙글- 돌았다.

부웅-!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한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발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아냈다.

‘절대 안 놓친다!’

이를 악문 김상훈은 몸이 공중에서 회전할 때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채, 공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눈에 발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는 공이 보였다.

2초간 지속되는 본드 스킬의 효과가 끝이 난 것이다.

그 순간, 김상훈은 왼팔로 땅을 짚었다.

‘크윽!’

회전력이 걸린 상태에서 땅에 떨어지는 힘을 모두 받아낸 왼팔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김상훈은 그 고통을 버텨내며 발에서 떨어진 공을 향해 다리를 휘둘렀다.

그 순간, 커다란 소음이 그라운드 안에 울려 퍼졌다.

뻐어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