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신들린 축구선수-119화 (119/200)

119화 러시아 월드컵, 스웨덴 전

2018년 6월 14일에 개최된 러시아 월드컵.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최강의 축구 국가를 뽑는 대회.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본인의 국가가 월드컵에 참여한다면, 큰 관심을 갖는다.

그 열기는 굉장히 뜨겁다.

술집에 가면 스크린으로 실시간 경기를 중계해줬고, 인터넷에 들어가도 죄다 월드컵 이야기뿐이었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국가는 총 32개국으로 유럽에서 14개 국가, 아프리카에서 5곳, 남아메리카에서 5곳, 북중미에서 3곳, 마지막으로 아시아에서는 5개의 국가가 진출했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의 분위기는 그 어떤 국가보다도 뜨거웠다.

개최국인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첫 경기에서, 5대 0이라는 대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크로아티아 등이 좋은 경기력을 보이며 축구팬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속한 F조의 32강 경기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2018년 6월 18일 월요일.

유럽의 강호인 스웨덴과의 경기를 앞둔 한국 대표팀은 라커룸에서 신태웅 감독 앞에 서 있었다.

“드디어 월드컵이다. 긴장되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신태웅 감독의 모습에, 선수들은 옅은 미소를 띠웠다.

“다들 열심히 해온 것 잘 알고 있다. 오늘은 그것들을 경기장에서 보여줄 차례야. 물론, 스웨덴은 강팀이다.”

신태웅 감독의 말 그대로였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웨덴은 피파랭킹 14위에 위치해있을 정도로 굉장한 강팀이었다.

너무나 강팀이지만, 독일, 멕시코 같은 강팀과 한 조가 된 대한민국에게는 꼭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때문에 신태웅 감독은 사전 인터뷰에서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말을 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가 속한 F조에는 강팀이 아주 많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경기에서 꼭 승리해야한다.”

그의 단호한 말에, 선수들의 눈이 빛났다.

그들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게 패배한다면, 16강 진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을.

멕시코, 독일과는 훨씬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걸을.

때문에 대표팀 선수들도 오늘 경기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다.

‘어떻게든 이긴다!’

‘스웨덴 전에서는 무조건 승점을 가져가야 해!’

‘국민들에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말 거야.’

‘감독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

각기 다른 이유였지만, 결과는 같았다.

승리하겠다는 것.

게다가 그들의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만드는 남자가 있었다.

“촤르르르~!”

감독이 말을 하건 말건, 혼잣말을 하며 딴 짓을 하고 있는 김상훈.

그를 힐끗 쳐다본 선수들은 더욱 의지를 불태웠다.

‘적어도 저놈한테 못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어!’

‘저 새끼가 우리를 무시하는 꼴은 더 이상 못 본다.’

‘경기에서 실수하면 저놈이 얼마나 비웃을까? 그런 일은 절대 만들지 말자.’

이유가 어찌되었건, 대한민국 대표팀이 미친 듯이 뛸 의지는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경기장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됐다.

***

대한민국에서는 아주 먼 나라인 러시아에서 펼쳐지는 경기.

그럼에도 경기장 관중석에는 대한민국을 응원하기 위해 온 한국 팬들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대~한~민~국~!”

“김상후우우우우우우운! 오늘 한 골 무조건 가자!”

“홍민아! 감아차기 한 방! 알지?!”

“기성영 선수! 어시스트 갑시다!”

한국 팬들의 응원 역시 대단했다.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상대 팀인 스웨덴의 관중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묻혀서 들릴 정도였다.

4년에 한 번뿐이라는 월드컵의 압박감과, 수많은 국민들이 경기를 사비를 들여 응원을 왔다는 것.

그것은 선수들에게 큰 무게감으로 느껴졌다.

스웨덴 선수들도 큰 압박감을 느꼈고, 대한민국 선수들도 그랬다.

당연하게도 압박감은 긴장감으로 돌아왔다.

선수들의 손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그때였다.

선수들이 일렬로 서서 서로를 바라볼 때, 김상훈이 큰 목소리로 손홍민을 불렀다.

“홍민아!”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손홍민은 김상훈과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같은 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상훈이 룸메이트인 손홍민에게는 신태웅 감독과 기성영과의 일을 전부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김상훈과 손홍민은 미리 약속된 일을 시작했다.

“예, 형!”

관중들의 목소리에 묻힐 수도 있기 때문에, 손홍민의 대답소리는 굉장히 컸다.

당연하게도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스웨덴 선수들까지 그들을 바라봤다.

원하던 상황이 펼쳐졌기에, 김상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크게 외쳤다.

“경기 시작하기 전에 쫄아 있으면, 이길 수 있겠냐? 없겠냐?”

“……이기기 힘들겠죠.”

손홍민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조금 미안했지만, 김상훈은 여전히 실실 웃으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그치? 맞지? 근데 왜 내 눈에는 잔뜩 쫄아있는 선수들이 보이냐? 졸라 한심하게.”

긴장하고 있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을 저격하는 발언이었다.

반응은 빨랐다.

“뭐 이 새끼야?”

가장 빠르게 반응한 것은 수비수인 이용훈이었다.

대표팀 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그는, 평소에는 점잖은 성격이었다.

쉽게 화를 내지도 않고 동생들의 장난도 잘 받아주는 형.

그런 선수였지만, 얄미운 표정으로 도발하는 김상훈의 말에 참지 못한 것이다.

“예? 왜 욕을 하고 그러시지? 제가 용훈 형한테 말한 것도 아닌데.”

“너 진짜 미쳤냐? 어?! 누굴 바보로 아는 거야? 국민들 앞이야. 까불지 말고 경기에 집중해.”

“저는 누구보다도 집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아직 경기 시작 전이에요. 진짜 프로는 경기가 시작되면 집중한다고요. 근데 벌벌 떨고 있으면 집중이 될까요? 전 그게 궁금하네요.”

“뭐 인마?”

“제 말이 틀렸어요? 쫄보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경기하면 제대로 된 경기력이 안 나올 것 같은데, 아닌가요?”

“하! 이 새끼…… 진짜!”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이용훈이 이윽고 고개를 훽- 돌렸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면 속이 터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김상훈은 주변을 둘러봤다.

손홍민과 기성영을 제외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모두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밝게 웃었다.

- 진짜 여러 의미로 대단하다.

“뭐가요?”

- 네 멘탈이 대단해. 너 지금 대표팀에서 거의 왕따잖아.

“하하…… 그렇긴 하죠.”

- 근데 이게 진짜 효과가 있을까?

이찬수는 사실 의심을 하고 있었다.

선수들을 도발해서,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것.

삼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진짜 될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김상훈의 생각이 궁금했다.

“저도 모르죠.”

- 뭐?

모른다니?

이찬수가 당황했다.

하지만 김상훈은 여전히 뻔뻔했다.

“저도 이런 걸 처음 해보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아쉬운 거죠.”

- 미친놈.

“자꾸 왜 욕을 하십니까. 가뜩이나 요즘 욕도 많이 먹어서 기분 꿀꿀한데.”

- 그런 놈이 매일 SNS를 하면서 실실 쪼개?

“그건 취미 생활이고요. 이찬수 선수는 제가 대표팀에서 다른 선수들한테 맨날 욕먹는 거 아시잖아요.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아세요? 저처럼 착한 사람이 억지로 악역을 맡고, 욕을 먹는 거. 진짜 힘듭니다.”

- 근데 왜 내 눈에는 네가 즐거워 보이지……?

이찬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김상훈은, 악역을 맡아서 연기를 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진짜 힘들었다면, 숙소에 돌아와서 힘든 티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오늘은 어떤 욕을 먹었다며, 낄낄대며 웃었다.

흡사 욕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그거야 당연히…….”

- 당연히 뭐?

“재밌긴 하잖아요.”

- 뭐가?

“생각해보세요. 제가 마치 영화 주인공처럼 팀을 위해 희생해서 악역을 맡고, 결국 좋은 성적을 내는 것에 성공해요. 그리고 그 일화가 기사로 나가서 유명해진다면? 축구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 또라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니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거나.

“아니죠! 멋있다고 생각하겠죠.”

- 난 잘 모르겠는데……?

“모르는 척 그만하시고요. 어? 경기 시작하려나 봐요. 저 집중 좀 하겠습니다.”

- 아~ 예. 그러세요.

이찬수의 말을 들으며, 스스로의 포지션으로 향하는 김상훈.

그런 그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타고난 멘탈이 강하고, 팀을 위해 악역을 맡고 있긴 했지만, 그 역시 긴장을 한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김상훈은 이제 프로 2년차 선수였고, 처음 월드컵을 겪는 선수였으니까.

짧은 경력에도 대표팀의 에이스라고 불렸고, 많은 국민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으니까.

‘이겨내야 해.’

이찬수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진심으로 대표팀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기를 원했다.

‘다들 죽기 살기로 준비했으니까 잘하겠지.’

그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선수들은 소집 초반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훈련에 임했고, 미친 듯이 훈련을 했다.

그리고 오늘, 김상훈은 대한민국 대표팀이 스웨덴을 맞아 그 노력의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믿었다.

***

대한민국 국민들은 스웨덴 전을 보기위해 TV앞에 앉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늘 경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인 김상훈이 있지만, 그 혼자서는 경기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가전에서의 경기력에 크게 실망한 국민들의 기대치는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앞서 펼쳐진 같은 조의 경기, 독일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멕시코가 1대 0으로 독일을 꺾는 이변이 일어났다.

때문에 2위를 노리던 대한민국에게는 더욱 어려운 길이 펼쳐졌다.

독일을 이길 확률이 아주 적은 대한민국에게는, 오늘 펼쳐지는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무조건 승리해야만 희망이 보이게 되는 상황이었다.

“아빠! 우리나라가 16강에 올라갈 수 있어요?”

“……잘 모르겠네.”

“우리나라 축구 못해요?”

“못하진 않지. 근데 상대팀들이 너무 강해. 하지만…… 그래도 잘하면 올라갈 수도 있어.”

현실적인 대한민국의 전력으로는 16강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기적적인 4강 진출을 했던 것.

그 기억이 국민들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과 스웨덴의 경기가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손홍민, 김신훅, 김상훈, 구자천, 기성영, 이재선, 박주후, 김영곤, 장형수, 이용훈, 조연우가 선발로 출전했고.

스웨덴은 마르쿠스 베리, 올라 토이보넨, 빅토르 클리에손, 세바스티안 라르손, 알빈 에크달, 에밀 포르스베리, 루드비그 아우구스틴손, 안드레아스 그랑크비스트, 폰투스 얀손, 미카엘 루스티그, 로빈 올센이 선발 출전했다.

양 팀의 전술은 다음과 같았다.

경기 전부터 ‘트릭’이라는 말을 하던 대한민국의 신태웅 감독은, 433전술을 들고 나왔다.

키가 크고 피지컬이 좋은 김신훅을 원톱으로 두고, 발이 빠른 손홍민과 김상훈을 윙어로 두며, 빠른 역습을 노리겠다는 전술이었다.

반면 스웨덴이 들고 온 전술은 정석적인 442였다.

공격과 수비, 역습상황에서 무난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전술로 스웨덴이 월드컵을 준비하며 꾸준히 써왔던 전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양 팀의 전술을 확인한 대한민국의 축구 전문가들은 표정을 굳혔다.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태웅 감독의 전술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현역시절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었고, 지금은 해설을 하고 있는 이형표가 근심어린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태웅 감독이 역습을 노리는 전술을 들고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너무 위험한 전술인 것 같아요.]

그의 말에 옆에 있던 이광윤 캐스터가 질문했다.

[이형표 해설위원은 오늘,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신태웅 감독의 전술은 김상훈과 손홍민이 발이 느린 스웨덴의 뒷공간을 파고들고, 김신훅 선수의 높이로 마무리를 짓겠다는 것 같은데요.]

[예. 그런데 이게 어떤 문제가 생긴다는 거죠?]

이광윤 캐스터가 재차 질문했다.

이형표는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제는 스웨덴 수비수들의 높이가 김신훅 선수보다 더 높다는 것이죠. 자칫 잘못하면 대한민국의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형표은 솔직히 신태웅 감독의 전술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불어 그 역시 대한민국이 승리하기를 바라는 국민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도대체 왜 이런 전술을 꺼내든 거야? 스웨덴 수비한테 김신훅은 통하지 않을 텐데…….’

이렇듯 많은 전문가들의 걱정 속에서, 대한민국이 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된 지 20초도 되지 않았을 때.

대한민국 국민들이 찢어질 듯 커진 눈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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